상식과 민주주의 그리고 남북관계

<칼럼>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김창수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07.01 10:19:50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통일의 주체는 전체 민족이라고 말한다. 전체 민족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민족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운동은 전체 민족을 주체로 나서게 하는 대중화와 전체 민족의 삶속에서 운동을 전개하는 일상화가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통일운동의 대중화와 일상화가 이뤄지면 통일의 주체가 튼튼해지기 때문에 통일방안에 대한 논쟁을 소모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주체가 강하면 결합력이 약한 통일방안이라도 하더라고 통일의 길로 안내할 것이며, 주체가 약하면 결합력이 강한 통일방안도 통일의 길로 안내하기에 어려움을 맞이할 것이다. 분단을 유지하는 힘, 분단을 극복하는 힘 그런데 통일운동의 대중화와 일상화는 언제나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통일운동은 각성의 정도가 큰 선각자들이 이끄는 운동에 청년학생과 종교인,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각계각층이 통일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가로막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분단 그 자체였다. 그리고 분단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대중들의 일상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소가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38도선을 경계선으로 삼았다. 이렇게 영토의 분단이 시작되었지만 그 때만해도 그것이 60년이 넘는 분단선이 될 줄은 몰랐다. 1948년에 남북에 각각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선 것을 정부의 분단이라고 한다면 1950년 발생한 한국전쟁은 민족의 분단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일제 식민지 지배가 35년이었는데, 분단은 60년을 넘기고 있다. 이렇게 분단이 지속되면서 분단을 유지하는 힘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힘보다 더 크게 작용했다. 일제의 침략과는 다르게 민족의 분단과정에서부터 민족이 둘로 나눠졌다. 2차대전 이후 국제질서도 한반도의 분단에 강력하게 작동했다.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내부의 힘보다는 분단현상을 유지하는 힘이 더 크게 작용해온 배경이다. 이렇게 해서 분단이 일상화되면서 분단은 시민의 일상적인 삶이나 한국의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현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계층별로 삶에 대한 요구가 분단극복보다 더 우선한 과제가 되었다. 분단이 계층별 삶에 대해 미치는 영향에 대한 설명은 지극히 타성적인 것이 되어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통일운동의 일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이다. 결국 통일운동은 분단극복의 과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의 영역으로 국한되게 되었다.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사안으로 남북관계의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진보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들도 분단과 민주주의의 연관성보다는 이분적인 사고에 익숙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시민들의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이 단순한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격’의 논쟁의 비상식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 상승 남북대화에서 이른바 ‘격’의 논쟁의 배경과 결과에 대해서도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풀이할 수 있다. 격의 논쟁의 핵심은 한국의 통일부장관과 북한의 통전부장이 격이 같다는 점과 북한의 조평통 서기국장이 우리의 차관급 격이라는 것이다. 남북의 제도와 권력구조의 차이를 무시한데서 비롯된 유치한 논쟁이지만 격의 논쟁 이후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상승하였다. 인사 실패 이후 박근혜 정부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게 만든 요인은 대북정책이었다. 한중정상회담에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윤병세 외무장관과 왕이 외교부장 사이에 대화의 창구를 만들었다. 이 창구는 상호 격이 맞는다. 통일부장관과 통전부장의 관계는 윤병세 외교장관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북한의 통전부장이 실세라고 그를 통일부 장관의 파트너로 나오라고 한 것은 중국외교의 실제가 외교담당 국무위원이니 그를 외교장관 파트너로 나오라고 하는 거와 동일한 것인 게다. 조평통 서기국장을 ‘서기국 국장’이라고 하면서 우리의 국장급이라고 주장한 것이 무지인지 악의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북한의 권력 작동구조 속에서 그의 역할은 우리의 장관급 이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상황이 이렇지만 국민들은 조평통 서기국장을 우리의 국장급으로 받아들이고, 남한을 무시하는 북한을 단호하게 혼 낸 박근혜 정부를 지지하였다. 분단체제의 작동원리를 간파하고 있는 새누리당 새누리당이 NLL(북방한계선)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대통령 선거에 이용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였다고 작년 10월 8일에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내용은 단 한 문장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미 대선 과정에서 많은 내용이 허구로 드러났다. 하지만 NLL 문제를 가지고 새누리당의 허구와 맞서는 것에 주저하는 진보적인 인사들이 많이 있었다. NLL은 새누리당이 주도권을 쥐고 폭로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NLL에 대응하는 것 자체가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말려든다는 것이다. 레이코프가 쓴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영향이다. 상대가 만든 프레임에 대항하는 것은 상대의 프레임만 더 강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타당성이 있다. 대선국면에서 NLL 논란은 쉽게 마무리 될 수 없는 것이므로 사안을 키워서 새누리당의 프레임을 강화시켜주는 것보다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간과하지 말아야할 것은 한국의 보수세력은 분단체제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맞물려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선을 비롯한 큰 선거에서 항상 ‘북풍’을 활용해왔던 것이다. 반면에 진보세력은 ‘선 민주, 후 통일’, ‘선 통일, 후 민주’의 낡은 패러다임의 영향인지 분단체제가 한국의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항상 소극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여줬다. 분단 상황을 국내정치에 악용하는 것 자체가 분단과 국내정치의 상호관계를 증명해주는 것이다. 분단을 정치에 악용하는 정치세력이나 주체의 측면에서 볼 때 분단이나 한국의 현안이나 모두 자신들의 정치기반을 강화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분단이 국제정치에 파급력이 약할 때 그토록 집요하게 선거에 활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중관계가 한국 민주주의나 국내정치에 대한 파급력이 크다면 한중관계를 대선에 이용할텐데, 그 상관관계는 남북관계와 국내정치의 상관관계보다 훨씬 미약한 것이다. 북한의 말폭탄의 여파, 민주주의로 극복해야 남북 당국회담이 ‘격’ 논쟁 이후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간 것은 올 상반기 북한이 거칠게 내뱉은 말폭탄과 관련이 있다. 이 말폭탄 때문에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단호하게 맞서서 상한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다. 박근혜 정부의 ‘격’ 논쟁이 상한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조치로 여겼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올라간 것이다. 박근혜 정부로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수확을 올렸으니 앞으로도 계속 이런 북한에 대한 태도를 유지해 나갈 것이다. 국내정치적으로 그것이 더 이익이기 때문이다. 국내정치 세력의 활용이라는 측면을 넘어서 북한이라는 행위자까지 고려해서 남북관계와 한국 민주주의의 상호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복잡해진다. 북한은 화해해야할 대상이면서도 한국정 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복합적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문제를 하나하나 구분하고 상호관계를 각각의 사안마다 가닥 잡아가면서 살펴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한중이 정상회담 중에 ‘북핵불용’에 대한 언급여부에 대해 한중정상회담 공동성명과 청와대의 설명이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과 리커창 총리의 회담에서 리커창 총리와 북핵포기를 합의했다는 청와대의 발표도 중국측 발표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한중 정상회담대화록 공개를 요구하는 것은 국제적 스탠다드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새누리당이 날조된 주장을 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요구하고, 이에 반대하면 뭔가 감추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다. 남북관계에도 상식을 적용해야 한다. 결국 분단체제의 극복이 민주주의 발전의 힘으로 가능하다는 인식이 남북관계에도 상식의 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이다. 정치세력의 왜곡을 왜곡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남북관계를 편리하게 이용하는 것에 현혹되지 않는 민주주의 발전이 남북관계를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통일운동의 대중화와 일상화는 민주주의의 발전이 가능하게 한다. 민주역량의 성장과 통일운동의 발전은 동일한 궤적을 그린다. 김창수 (통일맞이 정책실장) 1988 평화연구소 연구원 1995 민족회의 정책실장, 통일맞이 정책실장 1998 민화협 정책실장 2003 청와대 NSC 정책조정실 국장 2006 민주평통 전문위원 2009 존스합킨스대학 국제관계대학원 방문연구원 2012 통일맞이 정책실장, 한반도 평화포럼 정책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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