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를 바라보는 '세 개의 눈'

안철수를 바라보는 '세 개의 눈' 프레스바이플이 만난 사람⑦ -조희연 민교협 상임의장 - (프레스바이플 / 이경직 기자 / 2012-08-20) [인터뷰 전문] 먼저 총론적인 질문부터 드려야 하겠다. 오랜만에 책을 냈는데, 이미 여러 곳에서 대선을 앞두고 일정 수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 무엇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그동안 학술 서적을 주로 냈다. 그런데 이번엔 철수와 원순, 안철수와 박원순을 다루는 책을 썼다. 사실은 이번에 시대에 편승해 보려고 해 봤다. 기본적으로 두 측면을 생각해봤다. 여기에는 긴장의 축이 있다. 한 축에는 민주주의 좌파라는 개념이 있다. 혹자는 민주주의 좌파인 ‘철수와 원순을 논하다’라는 식으로 이해해서, 철수와 원순이 어떻게 민주주의 좌파냐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그게 아니다. 제 시좌인 민주주의 좌파 처지에서 철수와 원순을 논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철수와 원순의 지지자들이 그들을 선전하기 위해 하는 논의와는 달리, 한 명의 정치사회학자로서 그리고 민주주의 좌파라고 제가 설정한 그 시각으로 철수와 원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결론이다. 이 책을 통해 시대를 보는 프레임을 제시하고 싶었다. 이것은 책의 부제를 통해 드러나는데, 바로 ‘포스트(post) 민주화 시대’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새로운 정치현상에 대한 극단적인 두 견해 그러니까 1987년부터 지난 20년간 민주화 시대 속에서 우리 사회가 일정하게 전환됐다. 그래서 정치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안철수와 박원순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치적 현상에 대해서 극단적인 두 견해가 있는 것 같다. 한 편에서는 "안철수나 박원순이 뭐를 아나?", "그들이 무슨 뿌리가 있어?"라고 하는 과잉 폄하의 시각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운 지도자”라며 극단적 지지를 하는 시각이다. 사실 이번에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 지지를 선언하고 나온 것에 대해 약간 놀랐다. 강 교수는 과거 이념적 갈등의 시대에서, 탈이념의 시대에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지도자라고 말했다. 이 발언 같은 경우도 조금 다른 차원의 극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안철수에 대한 완전한 지지적 입장이라는 하나의 극단, 또는 안철수로 상징되는 어떤 새로운 정치적 변화를 과잉 폄하하는 시각을 넘어서, 조금은 진보적인 시각에서 이 새로운 현상을 우리가 어떻게 보고, 어떻게 진보와 결합할까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보고 싶었다. 책에서는 1987년 6월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일련의 현상들을 2007년 체제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2007년 체제’라는 명명에서, ‘체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는 그 완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포스트-민주화라는 개념이 나에게는 개인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다. 지난 20년의 민주화는 87년 민주화로 시작했다. 그리고 이명박의 집권으로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정당, 시민운동, 정당의 성격, 개혁의 이슈와 과제 것들이 독특한 방식으로 정해져 있고, 큰 의미에서 시대정신은 민주주의 개혁이다. 독재 유산을 척결하면서, 새로운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시대정신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시대적 과제를 둘러싼 각축과 갈등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독재냐?, 반독재냐?, 개혁이냐?, 반개혁이냐?'라는 과제는 남아 있지만, 일정하게 전환 되었다고 본다. 원래 2007년 대선이 있었고, 2008년 2월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으니, 그래서 08년 체제라는 표현도 쓰곤 했다. 혹은 07년 체제라고 해도 큰 관계는 없지만, 나는 이 책에서 포스트 민주화라는 개념을 조금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장했다. 결국, 포스트 민주화는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는 것인가? 2012년 말 박근혜 정부가 성립할 수도 있고, 민주당 정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가 수립된다고 해도, 과거 민주화 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즉, 우리 사회의 중심적인 갈등의 의제가 바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 민주화는 하나의 화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시대정신이 딱히 고정되어 있지 않아서, 현재 그 화두에 대해 각축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는 진보대로 그것을 복지민주화 시대로 만들고 싶은 것이고, 저쪽은 보수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 또 다른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중요하게 보고 있는 것은 두 적대적인 주체가 각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박근혜 후보가 있기 때문에 흥미로운 내용이 된다. 박정희 시대를 통과하면서, 우리 사회에 두 거대한 주체가 출현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 중 하나는 개발독재를 통해서, 박정희 체제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한 우리 사회의 거대한 계급적, 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한 편에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들과 싸우면서 정치의식이 발전하고, 의식이 평등의식을 가진 거대한 대중이 있다. 그것을 상당히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한 대중, 평등지향적 대중이 마주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니까 거대한 기득권 세력인 재벌로 시작하여, 또한 우리 사회엔 거대한 토지귀족들도 있지 않나? 강남으로 상징되는 거대한 사회적, 경제적 세력들이 있다. 이 두 주체가 거대한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이기도 하고, 계급적, 사회적 기득권 세력이 훨씬 더 개방적이고, 사회를 잘 운영해서 이 평등지향적인 대중을 끌어안고, 포섭하고, 순응시켜야 한다. 결국, 우리 사회의 보수가 천박한 것이다. 평등지향적 대중의 요구와 안철수 우리 사회의 계급적, 사회적 기득권 세력은 더 큰 특혜를 요구한다. 대중들이 어느 정도 만족할 수 있도록 사회복지를 확대한다고는 하지 않고 있지 않나? 그러다 보니까 두 세력이 어찌 보면 적대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역동성이 한국 정치의 역동성이고, 그것이 사실상 안철수 현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러니까 만족하지 못하는 그것이 거대한 정치적 불만으로 나타나는 평등지향적이 대중들이 기성 체제에 대한 불만족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안철수 현상이라고 본다. 2007년 체제라고 한다면, 기존 반독재 민주진영의 위기를 극명하게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이 책에서는 중도개혁정당이나 진보정당의 혁신을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참 힘든 문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단순하게 말하면, 사회에는 크게 세 가지 영역이 있다. 첫번째는 정부 등 국가영역이 있다. 두 번째는 경제, 시장 영역이 있다. 세번째는 시민사회영역이 있는데, NGO 영역이라고도 할 수 있고, NPO와 같은 비영리단체기구영역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세 가지 영역이 있다. 지난 20년간의 민주화 과정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하고 있었다. 정당이라는 것은 바로 그 국가 영역이고, 정치영역의 일부 아닌가? 포스트 민주화라는 새로운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이 각각의 영역들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정치영역인데, 정당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 안을 크게 보면 보수정당이 있고, 중도개혁 정당이 있다. 또한, 진보정당이 있다. 결국은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대중들이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하고, 새로운 정치적 요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안철수라는 것으로 표현되니까, 기존의 정당들이 민주화 시대에 표현되는 대중들의 새로운 요구와 기대 등을 각자가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현재 각축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그런 도전이 있는 것이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대중적인 지지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려면 이런 변화에 대한 대중의 요구들을 각자가 끌어안으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런 변화된 모습은 꼭 중도개혁정당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4·11 총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을 진두지휘하면서, 예를 들어 민생, 복지, 재벌개혁을 비롯한 경제민주화를 말했다. 물론 총선 이후에는 꼬리를 내렸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의 변화를 수용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계속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다. 그 점에서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도개혁정당이나 진보정당이 급진적으로 자기혁신을 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서, 현재 민주통합당에 대한 중도 개혁정당에 대한 지지가 불안정한 것이다. 그렇지 않나? 다음으로, 진보정당인 통합진보당은 아예 자기가 개겨버리니까, 내분을 겪고 수습을 못 하니까, 이런 것들을 해 볼 기회도 없이 현재 굉장히 주변화되고, 완전한 재창당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다. 그리고 민주통합당은 그 출현 자체가 중도개혁정당으로서 나름대로 노력한 측면은 있다. 혁신과 통합 등의 재야 시민 층을 끌어안으면서 과거의 민주당을 민주통합당으로 재편해 냈다. 그러나 국민은 그것도 미흡하다고 지금 째려보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본다면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더 많은 요구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설을 하나 제시해 보겠다. 왜 우리 사회의 대중이 높은 평등지향적 기대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보면, 여러 가지 역사적인 요인도 있을 것 같다. 6개월 정도 일본에 있었다. 내가 일본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과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고 보는데, 물론 집단 심성을 단정할 필요는 없지만……. (한국인과 일본의 사이의) 중요한 차이는 지난 3.11 원전 사태와 지진 직후에 일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 같았으면 난리가 났을 것이었다. 그리고 신문에서 사고의 원인과 누가 잘못했지 파헤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국가와 정부를 신뢰하며 출발을 한다. 그렇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일단 씹고 출발한다. 일단 기성 정당과 정부에 대한 불신을 품고, 비판하며 출발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 사회 대중들이 굉장히 높은 평등주의적 기대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강연할 때 농담처럼, 아마 한국 사회는 스웨덴보다 조금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가 되어야 조금은 안정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안 된다. 나는 이런 정치적 불안정과 안철수 현상으로 표현되는 기성 정당으로부터 이탈한 대중들의 정치적 표현이나 태도들, 기대, 요구 이런 것들이 나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다이내믹 코리아"의 일부라고 본다. “빨리빨리”도 있지 않나? 그 경제적 다이내믹스로 표현되지만, 정치적 다이내믹스로도 표현될 수 있다. 나는 이런 방식으로 이해해 보자는 것이다. 강준만 교수의 안철수 지지, 그 논리에 반대한다. 특히 정당정치라는 측면에서 과정에서 소위 안철수 현상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가령 이명박에 대해 허망한 기대를 했던 것처럼, 안철수에 대한 기대도 허망한 기대가 아니냐는 표현인 것 같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일단 안철수 개인보다는 안철수 현상이라고 보고 싶다. 왜 대중이 기성정당에 대한 지지를 통해서 혹은 지지나 반대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않고, 왜 기성정당과는 전혀 멀리 떨어져 있는 개인에게 자신의 정치적 요구나 이해를 투사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안철수 현상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는 기성 정당은 현존하는 체제, 국가체제, 경제체제 일부이지 않나? 결국, 대중이 불만이 있는 것이다. 현재 재벌체제, 기업 체제, 그리고 정당 체제, 정부 체제에 대해 불만이다. 그래서 그 불만을 기성 정치로부터 이탈된 안철수라는 개인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안철수는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정치적 기대가 투사되는 빈 기표다. 그것은 한때 조국 교수에게도 몰렸지 않나? 단지 문국현에서 안철수로 이어지는 계보 속에 있는 것이다. 대중들이 새로운 지도력을 원하고, 새로운 정치력을 요구하는데, 그것이 기성 정당인물에서 표현될 수도 있고, 정당 외부인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 결국, 문국현이나, 안철수는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일종의 성공한 그러나 공적 마인드가 있는, 공화주의적인, 전체 공동체를 생각하는 그런 엘리트였던 것이다. 문국현의 약력 상 그런 것이 도출된다. 이것을 대중의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체제 외부에 있는 개인보다는 신뢰성이 있는 것이다. 왜냐면 기성 체재 내에서 일정한 미덕을 가지고 성공했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지점이 있는 것이다. 단지 현실적으로는 이 대선에서 야권은 이렇게 되지 않겠나? 크게 보면 민주통합당 후보가 만들어지고, 안철수라고 하는 당 외부의 나름대로 개혁적인 후보가 있고,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진보개혁 진영의 후보가 있고, 결국 박원순 시장의 사례처럼, 시민사회가 만들어 낸 플랫폼이라는 경쟁의 장에서 경쟁해서 단일 후보가 나오는 식의 형태로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이미 경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철수 역시도 대통령을 뽑는 것은 인기투표는 아니다. 그러니까 국가와 경제를 운영할 수 있는 지도자로서 검증받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어떻게 본다면 진보개혁 진영의 후보가 되는 과정도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본다면 세 진영이 만나서 박근혜에 맞설 단일 후보를 만들어 내는 일련의 과정이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안철수도 자신을 스스로 변화시켜야 한다. 안철수 후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때 후보는 연합 후보의 성격이 있는 것이다. 안철수와 결합한 연합후보다. 거기에 서로 셰도 캐피넷(shadow cabinet)을 만들어서 안철수가 국무총리를 맡는 등의 방식으로 국민에게 연합후보로서의 그 어떤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나는 강준만 교수처럼 모든 갈등을, 갈등의 시대를 종결시킬 수 있는 지도자라는 표현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안철수도 계급적ㆍ사회정치적 갈등을 대면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존의 갈등은 계급적․사회경제적 갈등이었지 않나? 이런 것들은 보듬어 안고, 경청해 준다고 이 갈등이 해결되는 것인가? 그건 아니다. 안철수도 이 문제를 대면해야 한다. 지금은 굉장히 좋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 이 문제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고, 이 치열한 갈등의 현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또는 진보개혁의 입장을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4개월 동안은 그런 과정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강준만 교수의 말처럼 구세주 같은 지도자가 나타났다고 하면서, 우리가 지지하면 되는 문제로 이런 논의들을 왜소화하면 안 된다. 그래서 안철수 후보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거다. 결국, 안철수의 한계를 정확하게 보아야 하고, 안철수로 표현되는 이 새로운 정치적인 요구들을 진보개혁진영이 어떻게 결합할까, 안철수와도 결합할 것을 고민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는 안철수를 구세주라고까지 표현했다. 안철수는 구세주인가? 강준만 교수가 단순하게 말해서 약간 놀랐다. 나도 강 교수를 존경한다. 강 교수는 사회학자나 역사학자가 못하고 있는 현대사 전집을 썼고, 대단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갈등을 완전히 종결할 수 있는 구세주처럼 안철수를 보는 것에 대해 명백히 반대한다. 그것은 진보개혁적인 입장을 그렇게 설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책 속에 있기는 하지만, 나는 포스트 민주화라는 관점에서 세 가지 정치성으로 나누어 봤다. 제3의 정치성, 안철수 현상 그 세 가지 정치성은 제1의 정치성, 제2의 정치성, 그리고 안철수를 제3의 정치성이다. 제1의 정치성은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냐 권위주의냐, 독재냐 반독재냐의 갈등에서 나타나는 정치성이다. 이 정치성은 대중들의 정치적 요구, 태도, 이해 등을 포괄적으로 정치성이라고 표현했다. 제1의 정치성은 주로 사회경제적인 모순에 의해 나타난다. 우리가 통상 계급적인 의제와 관련된 정치성이다. 복지에 대한 요구도나 재벌개혁에 대한 요구도 이 정체성에 해당한다. 이것들은 다른 의제에 비해서, 상당 부분 적대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는 제1의 정치성은 반독재 민주 세력이나 민주단체나 시민단체가 대표하고 있는 면이 있다.그리고 제2의 정치성은 주로 노동자 정당, 진보세력이나 진보정당이 대표하고 있는 면이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로 환원될 수 없는 대중의 새로운 요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젊은 세대들에게서 집중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정치성은 굉장히 복합적이다. 이 행태는 잔여범주와 같은 것이고,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포스트 산업사회적인 것일 수도 있고, 요즘 지식 정보화 사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대중들의 요구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우리가 이미 초기 산업화를 지났으니, 이제는 경제적 풍요의 시대에 새로운 요구도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권위주의적 모순도 있고, 사회경제적 모순도 있지만,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은 꼭 이와 같은 비정규직의 문제 등 사회경제적인 모순에 대한 것만은 아니지 않나? 젊은 세대의 감성으로는 체질적으로 싫은 것도 있을 수 있다. 현 정부의 천박한, 세련되지 못한, 탐욕, 공정하지 못한 것 등 복합적인 요구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안철수다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제1의 정치성과 제2의 정치성을 대표하는 세력들은 이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지 말고, 어떻게 대중적인 요구를 결합하고, 자신이 그에 대한 대안을 어떻게 낼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강준만 교수가 말하는 것과 같이 안철수가 소통하고, 보듬어 안고, 경청한다고 해서 이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것을 두고 갈등을 뛰어넘는 지도자로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제1의 정치성과 제2의 정치성에서 발언하는 아주 강한 정치적 열망들이 어떤 빈기표로 안철수에게 투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는 것이 낫다. 안철수의 변화, 다행이다.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은 분리되어야 한다는 논의가 일반적이다. 대중은 이 분리작업을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 2007년 체제가 바로 이런 오류의 사례라고 본다. 안철수에 대한 대중의 지지 중 50% 이상은 이명박 정부의 그 포악스러운 측면들, 권위주의적 측면들, 소득분배 악화라든가, 고용 불안정이나 실업 등에 관한 문제들이다. 안철수를 그 자체로 지도자라고 보면 안 된다. 단지, 안철수가 진보연합 진영의 후보가 될 가능성은 열어놓고 싶다. 앞으로 대선 과정은 이미 3 분할이 되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기존의 민주통합당으로 상징되는 중도개혁정당,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 다음으로 급진 진보정당으로서 진보정당인 통합진보당이 있는 것이다. 그다음으로 제도 정당으로부터 수렴되지 않는 당 외 대중들의 정치적인 요구나 기대들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는 만나야 한다고 본다. 만나고, 만나는 과정에서 또 상호 침투 내지는 결합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은 안철수의 초기, 그러니까 이명박 중반의 안철수는 한나라당 후보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제 박근혜가 대선 후보로 버티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비한나라당 진보개혁후보로서의 자기 차별화를 이미 한 것이다. 이번에 낸 안철수의 책은 진보 개혁진영의 후보로서 이미 변화된 안철수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충분히 진보적이지는 않지만, 그만큼 나는 비한나당 후보로서 자기 변화가 있었다.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야권 연합후보를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안철수도 참여하면 안철수가 후보가 되든, 안 되는 간에, 이 과정에서 제2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다른 민주당 후보가 되든, 진보당 후보가 되든 간에 그때에는 안철수적인 요소들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안으로서의 '생태평화 사회 민주주의'와 '사회적 완충 국가론' 이 책의 결론부에서 대안 담론의 구체적인 이념으로서, '생태평화 사회 민주주의'와 '사회적 완충 국가론'이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두 개념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상당히 독창적인 개념이고, 개인적으로는 애정을 가지고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되어 있다. 2부에서는 기존 정당의 혁신 지점을 담았다. 심지어는 보수정당의 혁신가지도 진보적인 시각에서 주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대안을 제시했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진보개혁 진영의 핵심 담론은 공공성이다.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런 높은 차원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민주주의다. 그것이 우리들의 지향점이다. 한 단계 높은 공공성이라는 것은 예를 들어 지금 현재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이면서, 친기업적 정책,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자기 개인이 시장에서 고투하여 문제를 해결하는데, 나는 공공재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가장 못사는 사람들까지도 공공재를 통해 상당 부분, 인간다운 삶을 향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건 의료, 노후생활, 의료 등의 영역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즉 한 단계 높은 공공성이 실현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고, 자본주의를 완벽히 부정하지 않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순치된 공공성이 실현된 사회적 시장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이념적으로 접근한다면 생태평화 사민주의가 있다. 일단 사민주의이기는 하지만, 생태주의적인 요소와 평화주의적인 요소가 결합한 사민주의여야 한다. 애초 사민주의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의 사회적 확장이었다. 좀 전에 말한 것처럼 그와 같은 체제는 공공성이 실현되는 민주주의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19세기 말, 사민주의와 21세기 초의 사민주의는 달라야 한다. 가장 중요한 도전은 생태주의적 도전이다. 다음으로, 군사 주의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적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아주 온건한 기든스(Anthony Giddens)와 같은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는 지점이다. 생태주의적 평화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생태평화 사회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필연적인 양극화의 동학이 있다. 또 하나는 내 나름대로 굉장히 독창적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사회적 완충 국가론인데, 보통 서구의 케인스주의적인 복지국가를 사회적 국가나 사회국가라고 하는데, 지구화 시대에 사회적 국가이기는 하지만, 나는 이 상황에서 또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대중들의 삶에 대단히 파괴적인 영향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 이병천 교수의 논의를 따르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다이내믹스 속에는 양극화의 동학이 있다. 경제적으로 굉장히 양극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전 세계를 무대로 비즈니스하는 사람은 더욱 잘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비행기 표 살 돈도 없는 사람은 더 하층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이미 양극화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국가가 이 범퍼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고 본다. 결국, 공공성의 완충 기제가 있어야 한다. 왜냐면 그냥 놔두면 비정규직, 청년실업 막 늘어난다. 그것이 사실은 지구화의 한 논리 속에 있다. 생각해 보라. 전 세계와 경쟁을 하려면 당연히 저임금, 시간제 노동력을 서야 하지 않나? 글로벌 경쟁을 하려면,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기업의 입장에서만 보면 훨씬 더 열악한 조건을 지금 대졸 졸업자들에게, 노동자들에게 강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꼭 이것이 휴머니스트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국가가 이 험악한 세계화의 파도 속에서 완충 기능을 해 주어야 한다. 지난 민주 정부 10년 동안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국가적 '기본소득(basic income)제도'를 넘어, 아시아 '기본소득'으로 그래서 예를 들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개방화를 하거니 주식시장을 열거나 FTA를 열어 이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박정희식 모델이다. 초기 산업화 과정은 시장이 성장하고, 산업이 발전하니까 고용도 확대된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금은 기술 발전으로 말미암아, 예를 들어 삼성이 잘 된다고 고용이 늘어납니까? 고용이 오히려 줄어들지 않나? 바로 그런 새로운 조건, 신자유적 지구화라는 것이 굉장히 험악한 과정이다. 그래서 꼭 이것이 사회주의 이념이 아니더라도, 완충 기제를 국가가 제도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름대로 독창적인 개념이니 알아주었으며 좋겠다. 상기 두 담론과 관련하여, 현재 한국 사회의 다양한 계층과 환경 속에서 ‘기본소득’과 ‘무상의료’ 등이 심도 있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특히, 고용에 기반을 둔 사회보장정책이 한계에 봉착해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가요? 사실은 진보개혁 진영에서도 지구화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런 노력 중 하나가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기본 소득(basic income)’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기본적으로 변화된 지식 정보 사회, 고도 산업 사회, 후기 자본주의 단계 프로그램의 성격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노동자와 시민의 경계가 이전 같지 않은 것이다. 옛날에는 노동자라고 하면 블루칼라를 생각한다. 이제는 사회적 노동자라는 말을 쓰는 것처럼, 이제 어떻게 본다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기제가 협의의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만을 가지고, 잉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전 시민, 내지는 전 사회적 구성원들의 피와 땀을 활용해서, 사실은 장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협의의 고용 모델에 기초한 복지 모델, 특히 시장에서 이탈한 고용시장에서 이탈해 있는 주변적 존재들의 소득을 보완해 주는 방식이 아니라, 어찌 보면 사회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성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이 바꿨다는 지점이 있다. 한 편, 복지국가 자체가 서비스 전달 자체가 오히려 과잉 비용을 지급하게 되는 국가 관료화 현상과 같은 것도 있다. 사각지대도 생각난다. 기존의 복지국가가 가지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 탓에 기본소득이 제안된 것이다. 단지 기본소득의 틀 자체는 시의적절하는데, 시행모델로 볼 때에는 에서는 여러 가지 보완지점이 발견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본다.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수출 무역 의존도가 놓은 사회다. 그 기제는 이미 한계에 왔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세계 경제불안정성을 고려할 때, 대단히 불안정한 모델이다. 결국, 기본적으로 우리 정치의 불안정도 거기에 원인이 있다. 그런 지적이 있다. 일본의 경우, 우리보다 4배 정도의 내수시장에 비중을 두고 있다. 우리 무역 의존도가 너무 높다. 그런 면에서 일정한 차원의 완충 역할로 모델을 바꿔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공(公)으로 돌아가자. 원래 공무원이 공(公)자지 않나? 옛날의 공무원은 조국 근대화를 위해 성장 가능성이 있는 잠재력이 있는 수출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주는 것을 공공적 역할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이야기도 있다. 성적 장학금은 이제 폐지해야 한다는 말. 옛날 성적 장학금은 가난한 집 자녀를 공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주는 것이었으나, 지금은 성적 장학금이 잘 사는 집에 똑 하나 더 주는 것이 되었다. 같은 제도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사회도 이런 시스템 자체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시대에 일정하게 완충 역할을 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이제 우리 공무원들이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취할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세계화의 거센 파도 속에서 약자들이 누구인가? 이 세계화의 바람 속에서 대기업이 훨씬 더 파행적인 지점이 어디인가를 보완하고, 그런 것들……. 균형을 잡아주고, 한 방향이 너무 과잉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바로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公)으로 돌아가자는 말도 이 책에 써봤다. 세계화 시대, 우리를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현재 아시아의 시민사회단체의 지도자들을 교육하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설립한 MAINS(아시아 비정부 기구학 과정)도 그 중 하나라고 본다. 결국, 이 책에서도 대안 담론으로 제시하고 있는 지역 시민사회 간 연대의 구체적인 사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전반적으로는 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포스트 민주화라는 시대 기제가 있지 않나? 이것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라는 거대한 글로벌한 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어찌 보면 지구화와 결합한 포스트 민주화 시대다. 이 시대에는 대학도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지난 90년대 이재정 통일부 장관과 함께 성공회대학교을 진보적 정체성을 만드는 데, 나도 나름대로 깊이 참여했다. 민주개혁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갈등하고 있던 그 민주화 시대에 진보개혁적인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성공회대학교가 형성한 것이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성공회대학교가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확장해 갈 것인가? 세계화를 배경으로 한 이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어떻게 자신을 혁신해 갈 것인가? 이런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사실은 다른 여러 대학도 마찬가지 지점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 대학도 도전을 받고 있고, 이미 세계화된 대학과 국내 대학으로 양극화도 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진보적 성공회대학교가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진보적인 세계화를 지향하는 대학으로 갈 것인가?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동료와 함께 MAINS라고 하는 아시아 비정부 기구학 과정을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1999년에 NGO 대학원을 만들었다. 어찌 본다면 세계화를 배경으로 하는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NGO 대학원의 확장, 성공회대학교의 진보 프로그램의 혁신적 확장이라는 성격도 있다. 자본이나 우리 사회의 가진 사람들은 위로부터의 세계화를 추구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위로부터 아시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본다. 아래로부터 아시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은 일주일 전에 우리가 아시아의 MAINS와 같은 진보적인 시민사회교육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만들고, 여름학교를 함께 했다. 이것을 계기로 아시아 시민운동과 여름학교로 성장시켜 나갈 생각이다. 즉 아래로부터 아시아 시민사회를 만들고, 글로벌 시민사회를 만들어 가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굉장히 작지만, 그런 노력 중 하나다. '한류'는 <대장금>만 보는 것이 아니다. 운동(movement)도 한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류가 있지 않나? 그러하면 대장금만 볼 것이 아니라, 운동 한류도 만들어야 한다. 진보적인 한류, 이번 여름학교에서 <두 개의 문>을 함께 봤다. 영어 자막을 넣어서……. 김일란 감독도 찾아와서 아시아 활동가들의 글을 다 읽었다.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자신들의 사회와 연관된 경험들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운동 내지는 진보적인 다큐멘터리와 같은 것들을 번역해서 함께 공유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대만에서 몇몇 활동가들이 한국의 운동권 다큐멘터리를 중국어 자막을 붙여 상영했던 적이 있었다. 경계도시와 같은 영화들인데, 나도 초청되어 토론하고 왔다. 이런 식으로 진보적인 시민사회, 사회운동 진영 간에 초국가적인 네트워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목표는 이름도 이미 만들어놨는데, “국경 없는 지식인 네트워크”다. 어찌 되었든, 아래로부터 세계화를 해야 한다. 아래로부터 인권단체, 환경단체, 운동단체, 시민사회 등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나는 아세안+3가 더 강화되어 갈 경우, 아래로부터 압력을 가해야 하지 않나? 아시아의 기본소득도 생각할 수 있지 않나? 보수도 반북주의로 일관하는 보수에서 온정주의적 보수로 혁신해야…. 결국, 모든 개혁은 기득권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이 책에서도 보수의 변화를 주문하고 있는데, 진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학자로서 그 주문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이 책에서 굉장히 길게 보수의 혁신을 위한 제언을 했다. 나는 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진보개혁도 변해야 하지만, 보수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진보의 입장에서 보수를 보면 답답한 면이 많다. 거꾸로 가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보수에 대한 제언은 이렇다. 한편에서 보면 너무 반북주의적 보수가 되어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주의적 보수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여러 가지 시점에서 온정적 보수라고 할까, 더욱 인간적인 얼굴을 가진 보수주의로 자기 혁신을 해야 한다. 물론 이것을 강제하는 힘은 궁극적으로 대중의 분노와 비판이다. 지난번 4.11 총선에서처럼 박근혜가 민생을 말하고, 복지를 얘기하고, 경제민주화를 얘기하면 손뼉을 칠 것이다. 물론 한계가 있다고 본다. 결국, 성형수술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총선에서 표를 얻기 위해. 그러니까 보수 측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고, 그 역할을 진보에서 입장의 바꾼 전향파 보수가 보수 내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거꾸로 되어가고 있다. 신보수가 북한에 대한 접근방식이 구보수보다 보다 더욱 반북적이다. 이것이 보수의 비극이고, 어찌 본다면 진보의 입장에서도 좋은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보수가 그토록 개방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요소를 끌어안으면 진보진영의 입지가 좁아지는데, 보수가 그렇지 못하니까 진보개혁의 공간이 이렇게 크게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수가 조금은 자기 변화를 하면 좋겠다.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일정하게 온정적인 요소, 자유주의적인 요소를 끌어안고 천천히 가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보수와 진보 간 적대적 강들 영역이 축소된다. 그런데 한번 보라, 현 정부 들어 이 두 진영 간 갈등 영역이 많이 늘어났지 않나? 나는 이것이 현 정부의 퇴행 요인이다. 말 그대로 선진화된 보수, 중도 개혁도 선진화되고, 진보도 선진화되고, 포스트 민주화 시대라는 조건 속에서 각자가 변해가야 한다. 적대적 갈등을 빚지 말라고는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적대적 갈등의 소지들을 축소하라는 말이다. 거기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 보수정당이다. 보수정당이 좌측으로, 진보적인 방향으로 오면, 진보개혁이 오히려 공간이 좁아지는 것 아닌가? 진보는 반드시 분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진보도 당연히 변화해야 할 텐데, 진보의 변화를 위한 제언을 부탁한다. 여러 지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진보는 분화될 수밖에 없고, 분화되어야 한다. 중도개혁세력 등 큰 의미에서는 진보세력 얘기인데, 말한다면 이런 세계회의 상황 속에서 한국 경제를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드러내야 한다. 대중들이 노무현 정부의 긍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복권해 주면서도, 노무현 정부의 통치세력으로서의 신뢰성에는 아직도 의문을 표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도 이 점에 대해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본다면 통치세력으로서의 미진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사회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도 사회정책을 강화시켜 가면서 한국 경제를 지속 가능하게 관리할 수 있는 능력도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는 여러 차원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훨씬 더 급진적인 운동세력의 입장에서는 더 앞으로 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이 보다 분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주 급진적인 세력이 바로 집권할 수는 없지 않나? 소금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소금역할을 계속하면서 급진적인 요구를 하고, 급진적인 비판도 해야 한다. 이것을 배경으로 하면 3기 민주정부가 들어설 수도 있지 않나? 그런데 다시 통치 세력으로서의 공신력을 대중들로부터 의심받는 상황이 오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하다. 출처: http://www.pressbyple.com/news/articleView.html?idxno=5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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