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실명제’, 결국 날개 꺾이다
‘인터넷 실명제’, 결국 날개 꺾이다
대법원, ‘표현의 자유’ 침해에 시대 추세도 안맞아 ‘위헌’ 결정
정운현 기자 | 등록:2012-08-23 20:56:53 | 최종:2012-08-24 09:22:32
인터넷 공간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은 물론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침해여부를 놓고 논란의 빚어왔던 ‘제한적 본인확인제’ 즉, 인터넷 실명제가 시행된 지 5면 만에 폐지된다.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는 23일 재판관 8명 전원일치로 인터넷실명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번 위헌 결정은 2010년 12월 ‘미네르바법(허위통신죄)’ 위헌 결정, 지난해 12월 ‘인터넷 선거운동 금지(공직선거법)’ 한정위헌 결정 등에 이어 선관위가 인터넷상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전향적 결정을 내린 것으로 ‘SNS 선거허용’에 이어 또 하나의 쾌거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실명제’란 이용자가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 자신의 인적사항을 등록한 뒤에야 댓글 또는 게시글을 남길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법적 근거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 1항. 이에 근거하여 2007년 7월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는 당초 하루 방문자 30만명 이상 사이트를 대상으로 적용됐으나 2009년 4월 하루 방문자 10만명 이상 사이트로 확대됐다.
헌재는 결정문을 통해 “표현의 자유를 사전제한하려면 공익 효과가 명확해야 한다”며 “(실명제) 시행 이후 불법 게시물이 의미 있게 감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용자들이 해외사이트로 도피했다는 점, 국내외 사업자간 역차별 문제가 발생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공익을 달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또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고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인터넷 게시판 이용을 어렵게 한다는 점, 게시판 정보의 외부 유출 가능성이 증가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이익이 공익보다 작다고 할 수 없어 법익의 균형성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인터넷 실명제가 사생활의 자유와 언론·출판의 자유, 평등권 등을 현저하게 침해한 것으로 판단한 셈이다.
폐지 사유는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그 효용성이 현저히 약화된 점도 없지 않다. 2010년 4월 <블로터닷넷>은 자사 매체에 댓글달기를 폐쇄한 후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의 이른바 ‘소셜 댓글’을 도입하였다. 합법적으로 인터넷 실명제는 거부한 셈이다. 이후 ‘소셜 댓글’이 널리 확산되면서 인터넷 실명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돼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헌재의 위헌 판결로 지난 2007년 7월 악성댓글 등에 따른 사회적 폐해 방지를 명목으로 포털 게시판 등을 중심으로 도입된 인터넷 실명제는 5년여 만에 폐지될 전망이다. 인터넷 실명제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악법으로 지적돼 왔다. 현재 지구상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도입을 검토한 바 있을 뿐이다.
<뉴욕타임즈>는 지난해 9월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를 소개하면서 “한국에서의 경험은 실명을 강요하는 정책이 멍청한(lousy) 아이디어라는 걸 입증했다”면서 “온라인에서의 익명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 정보 보호 차원이 아니라 아랍의 반정부 시위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반대 의견을 표명하거나 기업의 기밀을 폭로하려는 내부 고발자에게 필수적”이라고 주장한 바 있을 정도였다.
관련업계도 환영하고 나섰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 생태계를 왜곡시켰던 대표적인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국내 기업의 경쟁력을 저해하는 요인을 이제라도 폐지하게 돼 다행스럽다”고 밝혔다. 주무 부처인 방통위도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며,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혀 인터넷 실명제 폐지를 기정사실화 했다.
앞서 2010년 손 모씨 등은 인터넷 실명제 관련법 조항이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또 언론비평 전문지 ‘미디어오늘’도 방송통신위원회가 2010년부터 본인확인 조치의무 대상자로 공시하자 언론자유 등을 침해한다며 같은 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바도 있다.
评论
发表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