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본격적인 개혁.개방에로의 행보
<칼럼>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2012년 08월 20일 (월) 14:09:08 백학순 tongil@tongilnews.com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난 8개월 여 동안 김정은 조선로동당 제1비서가 보여준 행적과 정책이 그렇다. 북한은 시간이 흐를수록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또렷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내적으로 ‘6.28방침’의 내용이 그렇고, 선군정치 하에서 과도하게 힘이 커진 군부의 수장 리영호의 철직을 통해 군이 장악했던 광산, 무역회사 등을 당과 내각으로 관할권을 옮겼다고 하는 것이 그렇고, 대외적으로 라선 경제무역지대와 황금평.위화도 경제지대 공동개발 및 공동관리를 위한 북중 공동지도위원회 제3차 회의 차 중국을 방문한 장성택이 양 지대에 대해 중국 측과 합의한 내용이 그렇다. 장성택이 해주와 남포를 새로운 경제특구로 지정해 운영하는 방안을 중국 측에 설명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고 하는 보도까지 나와 있는 바, 이것이 사실이라면 개혁.개방의 폭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김정은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여러 난제는 ‘새로운 문제’가 아니고 모두 ‘오래된 문제들’이다. 경제문제가 그렇고, 남한과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 문제가 그렇고,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문제, 북핵문제와 북한미사일문제가 그렇다. 이 문제들은 김일성과 김정일이 해결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다. 이는 김정은이 앞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면 선대 지도자들처럼 그도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바로 김정은이 새 지도자로서 경제문제, 주변국들과의 문제,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문제, 북핵문제 등 ‘오래된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든지 일정한 해결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지금 남한과 미국은 대통령선거 과정에 있기 때문에 한미 양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특별한 협력조치나 혹은 대결조치를 취할 처지에 있지 않다.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대남관계나 대미관계는 현재 나름대로 안정화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으로서는 한미 양국의 협력은 기대하지 않지만, 양국으로부터 당장 어떤 위협이 오지 않는 것은 상대적으로 대외환경이 유리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북한은 남한과 미국에 대해 어떤 특별한 새로운 조치 없이 한미 양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선거과정에 있지 않은 일본과는 벌써 대화가 시작되어 북한에 있는 일본인 유골문제를 놓고 정부 간 협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북한은 중국과는 빠른 속도로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이번에 장성택을 만나 “양국이 각자 우위를 충분하게 이용하고 발휘해 새 협력 방식을 적극적으로 탐구해가자”고 했다고 하며, 한 대북소식통은 “장성택이 협동농장 개혁, 6.28 조치 등 전체적인 북한의 경제개선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중국은 아주 만족을 표시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중국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China Daily)의 8월 18일자 보도를 보면, 기사 제목 자체가 “중국과 북한은 경제지대를 개발하기로 맹세하다”("China, DPRK vow to develop economic zones")이다. 여기서 vow라는 단어는 매우 강력한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양 경제지대를 개발하기로 확고한 결정 내지 약속(determined decision or promise)을 했다는 뜻이다. 이 보도에 의하면, 장성택을 만난 원자바오 중국총리는 ‘조중공동지도위원회에서의 합의를 이행할 뿐만 아니라 양국은 양 지대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며, 시장이 자신의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택은 ‘양 지대의 개발이 실질적인 단계에 들어섰고 북한은 (개발)과정을 가속화하기 위해 중국과 기꺼이 함께 일할 것’이라고 화답했다. 원자바오는 또 ‘중국정부는 양국 간의 유대가 계속 진전되도록 할 것이고, 북한이 자신의 경제와 인민복지를 증진시키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장성택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이 양국의 우호관계가 대를 이어 지속되도록 북중 양국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이처럼 대외관계가 안정화된 상황에서 북한의 새 지도자는 국내적으로는 ‘인민생활의 향상’을 위한 6.28조치를 결정하고,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양 지대의 공동개발을 가속화시킴으로써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최근 8월 초순 북중 국경지방 전체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신의주의 압록강 강안에서는 사람들이 트럭으로부터 하얀 곡물부대로 보이는 짐을 하역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단동의 한인무역상들은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선 이후 북한의 달라진 분위기를 전해주었다. 혜산에는 일반 가정은 물론 밤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무산광산은 많은 트럭들이 운행하고 있는 때문인지 멀리 뿌연 먼지가 또렷이 보였고, 중국은 중국과 무산광산을 연결하는 철도를 새로 놓았다. 연길의 경제학자와 나선지구와의 협력을 담당하고 있는 훈춘시 당 관계자는 북한 측 관리들의 개혁.개방 의지가 의심할 것 없이 강력하며, 북한의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회복의 전망을 밝게 보았다. 중국 측 당 관리는 북한의 최근 개혁.개방정책 의지를 중국의 초기 개혁.개방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 정책의 성과가 중국을 능가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중국 측 취안허(圈河)(맞은 편 북한 측은 ‘원정’)의 양국 연결 철도 부근에 있는 북중관계의 설명 광고판에는 북한이 최근에 ‘대내적으로 개혁, 대외적으로 개방’ 정책을 해왔다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를 적극 돕기 위한 중국의 정책을 설명해 놓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김정은은 북한을 본격적인 개혁.개방에로 이끌어 나가려는 의지가 확실해 보인다. 그렇데 되면 그의 행보와 정책은 선대 지도자들과는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지도자는 새로운 정책’을 의미하는 법이지만, 물론 북한의 ‘새 지도자’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가속화하여 이름그대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지는 앞으로 시간이 증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상을 타파하는 새로운 개혁·개방을 해나가는 데는 지도자의 의지 외에도 국내외 정책주체와 환경구조 차원에서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올 11월과 12월에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면, 김정은은 결국 한미양국과의 주요 현안 해결을 위해 협력적인 방향으로 대화와 협상을 모색할 것으로 예측한다. 김정은으로서는 자신의 시대를 열기 위한 ‘21세기 생존과 발전 전략’ 하에 개혁.개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남한, 미국, 일본 등 국제사회의 협력을 받아 경제회복,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 문제, 북핵문제 등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미양국에 들어서는 새 정부가 대북 협력정책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대북 대결정책을 지속할 것인지 여부이다. 북한의 새 지도자가 개혁.개방에로 본격적으로 나오고 있는 지금, 내년에 한미 양국에 들어설 새 정부는 이를 적극 도와주면서 한반도에서 전쟁과 평화의 문제, 북핵문제 등 북한과의 주요 현안을 해결해 내야하며, 과거 경험을 되돌아볼 때, 그러한 기회가 흔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미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통일부 자체평가위원장, 외교통상부 정책자문위원, 국회 외교.통상 및 통일분과 상임위원회 정책자문위원, 서울-워싱턴포럼 사무총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통일부 남북관계발전위원회 민간위원, 민화협 정책위원장, 김대중평화센터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북한 권력의 역사: 사상.정체성.구조』 (2010) 등의 단행본과 “북한정치에서의 군대: 성격.위상.역할” (2011)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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