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대령 최후 진술 “진실은 언제까지 숨길 수 없다”···검찰 징역 3년 구형

 박명훈 기자 | 기사입력 2024/11/21 [23:42]

박정훈 해병대 대령의 결심공판이 21일 오후 1시 36분께 서울 용산구 중앙군사법원에서 열렸다. 고 채수근 해병의 순직 사건 수사를 이끌어 온 박 대령은 항명,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여러 차례 수사와 재판을 받아왔다.

▲ 왼쪽부터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박정훈 대령,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 박명훈 기자

채해병 사건이란 2023년 7월 19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소속이던 채수근 해병이 불어난 하천을 수색하다가 순직한 사건이다. 박 대령은 채해병이 순직한 뒤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사건의 수사를 맡아왔다.

그런데 채해병이 속한 사단의 책임자인 임성근 전 사단장을 윤석열 대통령이 감싸고 돈 이른바 ‘VIP 격노’ 사건이 있었다. 그 뒤 박 대령은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됐고 채해병 사건 수사도 흐지부지됐다.

이후 국방부 검찰단(이하 군검찰)은 박 대령을 수사하며 구속영장까지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박 대령은 불구속 상태로 관련 재판을 받아왔다. 이날 공판은 박 대령의 선고를 앞두고 열린 마지막 재판이었다.

법정 출석에 앞서 박 대령은 군사법원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을 통해 “채상병 사건에 관한 실체적 진실은 다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이 진실이 승리로 이어지고 우리 사회에 정의로움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자회견에는 해병대예비역연대가 함께하며 “박정훈 대령은 무죄다!”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 해병대예비역연대. © 박명훈 기자

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등도 발언으로 박 대령을 응원했다.

이번 공판의 쟁점은 채해병 사건을 수사한 박 대령의 ‘수사 행위’가 적법한 것인지를 다투는 것이었다.

박 대령과 변호인단은 채해병 사건 수사는 군사경찰의 수사 범위를 규정한 군사법원법에 따른 적법하고 정당한 수사였으며, 이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대통령실 등 ‘윗선’이 개입해 무력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반면 군검찰은 채해병 수사 과정에서 박 대령이 경북경찰청에 수사 이첩을 보류하라는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명령을 어겼으므로 수사 절차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박 대령에게 항명죄와 상관 명예훼손죄가 적용된다고 주장했다.

박 대령의 진술이 이어졌다.

박 대령은 군사법원법을 두고 “일반적인 지휘, 공정한 수사 엄정한 수사 그리고 수사관들의 태도, 언행 이런 부분들에 대한 지휘 감독에 대한 권한”이라며 “특정한 사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휘관이 직접 관여하거나 감독하거나 이래서는 안 된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군에서 사고가 나면 기본적으로 변사 사고 원인이 뭔지 기초적 수사를 군사경찰이 하게 되고 그 상황에 범죄 개입, 그렇지 않은 경우를 구분해서 처리하게 된다. 본 건은 채수근 상병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 고의는 아니라 할지라도 업무상 과실이 개입돼 있다. 즉 안전 장비 하나 없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종자 수색을 하도록 지시한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과실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라며 “해당 과실이 업무상 과실치사라는 범죄가 인지됐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민간 경찰로 이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박 대령은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사건 이첩을 보류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실이 없다”라면서 “당시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채해병 사건의 수사 기록을 다시 회수하라고 한) 국방부 지시는 수사를 축소, 은폐하라는 불법적인 지시였기 때문에 그 불법적인 지시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해병대 사령관과) 논의가 있었다”라고 진술했다.

또 “군대는 상명하복 조직체”라면서 “결단코 해병대 사령관은 수사단장에게 명시적,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라도 이첩 보류를 명령한 사실이 없고 이 부분에 대해서 국방부의 불법적인 지시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를 했을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대령 변호인단은 군검찰에 “군사법원법에 따르면 범죄 행위가 있을 경우에는 수사를 해야 한다고 돼 있다. 관할이 없는 사망 사건, 성폭력이 발견되면 민간 수사기관으로 이첩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라면서 “이것은 군사법원법의 규정이다. 군검찰 측이 제시한 건 수사 절차 지침인데 군사법원법과 수사 절차 지침 중 어떤 것이 우선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군검찰이 “군사법원법이 상위...”라고 답하며 말문이 막히는 순간도 있었다. 수사 절차 지침을 어겼다며 박 대령의 유죄를 주장한 군검찰의 논리에 맹점이 드러난 것이다.

박 대령은 “내가 항명을 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 더구나 해병대는 충성을 목숨같이 생각하는데 내가 해병대 사령관의 이첩 보류 명령을 어겨서 개인적으로 얻는 이익이 뭐겠나? 해병대 사령관이 명령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날 재판부는 박 대령에게 채해병 사건이 이첩되고 박 대령의 수사단장 보직이 해임된 기간인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2박 3일 동안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의 대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개정된 군사법원법의 취지를 알고 있는지 등을 자세히 물었다.

재판부는 군검찰에도 박 대령의 범죄 혐의를 더 소명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으나, 군검찰은 더 이상의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군검찰은 박 대령을 향해 “국방부장관의 명예를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군 조직 질서의 심각한 해를 끼쳤다”, “해병대 사령관의 지시에 불복, 불복종할 의사를 명확히 했다”라면서 “피고인에 대한 엄벌의 필요성이 있다”라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박 대령 변호인단은 최후 변론에서 “(2023년) 8월 2일 8시 피고인이 이첩 공문을 발송하고 10시 피고인과 김계환 사령관이 회의를 진행했으며, 10시 30분 이첩이 진행됐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대통령실 관계자, 국방부 관계자, 김계환 사령관 사이에 수십 통의 전화 문자가 쏟아졌다. 12시 34분 피고인의 보직이 해임됐고 17시 20분에는 (수사) 기록이 회수됐다”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격노했고 장관은 (채해병 수사 이첩을) 번복했다. 사령관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고 수사단장은 예정대로 (채해병 사건을) 이첩했다. 대통령은 또 한 번 격노했고 군검찰은 권력의 개가 돼 수사 기록을 탈취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모자라 무고한 사단장을 항명으로 구속하려다 실패하고 기소한 것이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윤석열 정권의) 불법적인 외압은 실재했으며 김계환 사령관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김계환 사령관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이첩 보류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면 항명의 대상이 없는 것”이라며 “백번을 양보해서 명령이 있었다고 해도 그 명령은 외압에 의한 것이라 명백히 정당한 명령이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은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박 대령은 최후 진술에서 “한 병사가 죽었다. 그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 있는 자를 처벌하는 것이 왜 잘못됐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이번 재판은 단순히 나 한 사람의 항명죄를 다루는 재판이 아니다. 본 사건은 이미 국가적인 사안이 됐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 진실을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다. 거짓은 절대 진실을 이길 수 없는 법”이라며 재판부를 향해 “우리 군에 (정부가) 불법적인 명령을 해서는 안 된다, 불법적인 명령에 복종해서도 안 된다고 (판결)해 달라”라고 호소했다.

공판은 박 대령의 최후 진술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공판이 열린 법정은 자리가 꽉 차서 바닥에 앉은 방청객도 있었다. 공판이 마무리된 뒤에도 박 대령을 격려하며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방청객들이 많았다.

박 대령의 1심 선고는 해를 넘겨 내년 1월 9일 내려진다.

▲ 박 대령이 몰상식, 불공정이라는 글귀를 붙인 도토리묵을 칼로 썰고 있다. 이 상징의식은 박 대령의 해병대 후배들이 준비했다. © 박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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