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미국 도청 항의는 고사하고 개인폰 쓴다 고백"
[이영광의 '언론을 묻다'] 최승호 뉴스타파 PD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지난해 4월 미국의 기밀문서가 유출돼 미국이 한국의 국가안보실 고위 관계자들을 도청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터졌다. 국민은 분노했지만 당사자인 대통령실은 미국에 항의는커녕 도청 의혹을 부정하고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당시 제기된 의혹은 어디까지 규명되었을까.
지난 10월 30일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뉴스타파가 <2023 미국의 한국 도청, 무엇이 사실인가?>라는 제목의 시사 다큐(☞ 뉴스타파 보도 바로가기)를 공개했다.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만나는 장면에서 시작한 다큐에서는 도청 의혹과 재판 결과, 미국 도청에 대한 독일의 대응 등을 살펴봤다. 취재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3일 서울 충무로역 근처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다큐를 연출한 최승호 PD를 만났다. 다음은 최 PD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오랜만에 연출하신 시사 다큐에서 미국 도청 문제 다루셨네요.
“도청 문제는 국가의 주권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인데 작년에 이 문제가 발생하고 난 뒤 지금까지 전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는 꼭 다뤄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시기를 선택한 이유는?
“언론이 어떤 질문을 해도 윤석열 대통령실은 답변을 안 하잖아요. 11월 1일이 대통령실 국정감사일인데,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들이 물어보면 답변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서 거기에 맞춰 계획한 거예요.”
아이템 결정하고 어떤 작업부터 했나요?
“자료 조사를 했죠. 이 사건이 드러난 후 지금까지 시간이 꽤 지났잖아요. 기밀문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위조된 거다’라고 주장했단 말이에요. 기밀 유출도 범죄지만 위조나 변조를 해서 올렸다면 더 큰 범죄거든요. 그러니까 수사라든지 재판 과정에서 위조나 변조 혐의가 다뤄졌을 거고요.
미국 검찰이 어떤 혐의로 기소했는지, 미국 법원에서는 어떻게 판단했는지, 그다음에 잭 테셰이라(Jack Teixeira) 측에서는 어떤 식으로 변론을 했는지 그 재판 전 과정을 조사했어요. 조사 해보니, 위변조 혐의가 있었으면 미국 검찰에서 당연히 기소했을 텐데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위변조가 없었다는 거죠?
“없었다는 걸 말해주는 거죠. 그리고 미국 검찰이 기소하면서 잭 테셰이라가 유출한 문서의 유형을 6개로 나눴거든요. 근데 그중에 다섯 번째로 한국에 대해 ‘도청해서 만든 문서’라고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한국을 도청한 그 를 유출한 혐의도 기소가 됐다는 걸 짐작할 수가 있었죠.
그리고 변호인이 문서를 유출한 테셰이라가 ‘진실을 얘기했다’고 계속 일관되게 주장하거든요. 최종 판결을 내리는 재판에서도, 변호인이 마지막까지 잭 테셰이라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했던 변론 내용이 ‘테셰이라는 국가의 이익을 해치려는 의도가 없었고, 단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잘못된 정보에 현혹되지 않도록 자기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진실된 정보를 제공했다. 진실에 집착했다’는 거예요.”
수십 년 동안 미국이 한국 정부를 도청한 의혹은 있지만 제대로 밝혀진 적은 없다고 하던데 ‘저자세 외교’ 때문일까요?
“저자세 외교라는 것도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해요. 물론 기본적으로 미국은 적대세력과 동맹을 가리지 않고 도청하는 관행을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것이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미국이 도청했단 사실이 드러났을 때 강하게 항의하는 나라와, 전혀 항의하지 않고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는 나라가 있다면 앞으로 도청할 때 어느 나라에 대해 신경쓰고 조심하겠어요? 그건 상식적인 문제거든요.
독일 같은 경우는 메르켈 총리의 휴대폰을 도청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메르켈 총리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항의하고, 독일 의회에서 미국 NSA에 대한 초당적인 조사위원회를 꾸려서 3년 동안 조사했어요. 그런 정도의 강한 반응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 독일 총리 휴대폰을 다시 도청한다면 외교 관계가 상당히 훼손될 각오까지 해야 하는 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 더 조심할 수밖에 없죠.”
한국 정부 도청 의혹은 작년에만 나온 게 아니고 몇 번 있었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했나요?
“비슷했어요. 박근혜 정부 때 2013년에 NSA가 세계 지도자들을 도청했던 사실에 대해 스노든이 기밀문서를 공개해서 많은 언론이 보도했는데 그 당시에도 한국 정부는 미국에 크게 항의하지 않았어요. 다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오히려 좀 강한 반응을 보였던 셈이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관변 단체를 이용해 항의하지만, 뒤로는 미국에 도청 사실을 부인해 달라고 통사정했다고 나오는데.
“맞아요. 부인해 달라 했다는 것이 본질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한국 언론은 정부에 완전히 장악된 상태였거든요. 검열 체제여서 정부가 허가를 안 해주면 기사가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기사들이 크게 실렸어요.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미군 철수 문제로 미국과 관계가 굉장히 안 좋았고 안 그래도 열받아 있는 상태였는데 자기를 도청했다니까 화가 많이 난 거예요. 말하자면 일종의 ‘쇼’ 같은 그런 의도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
그러면 왜 뒤로는 부인해 달라고 한 걸까요?
“왜냐하면 계속 그렇게 갈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미국이 ‘우리가 도청했으니까 미안하다’라고 하지도 않을 것인데 문제를 오래 끌고 갈 수는 없으니까,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부인해주면 이 문제를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면 국민들한테는 자기 위신이 선다는 거죠.”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을 만나는 장면으로 다큐가 시작됐는데 이렇게 구성한 이유가 있을까요?
“미국이 도청했는지 안 했는지를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사람은 도청당한 사람입니다. 그 문서에 나와 있는 내용이 본인이 한 말인지 아닌지 김성한 씨는 알 거거든요. 그런데 김성한 전 실장은 자기가 도청당한 건지 아닌지에 대해 지금까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갔던 거죠.”
그때 상황이 어땠나요?
“그때 문화일보에서 주최한 ‘문화 미래 리포트’ 행사가 있었는데 김성한 전 실장이 토론 사회를 보고 끝나서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행사가 있기 전에 제가 김성한 전 실장에게 이메일을 두 번 보냈는데 답변이 없었거든요.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 한 번 만나서 물어보려고 찾아갔던 거죠.”
그런데 아무 답도 못 얻었잖아요.
“김성한 전 실장이 ‘그런 것을 내가 어떻게 말하느냐’라고 얘기했잖아요. 그게 답변이에요. 거기서 알 수 있는 게 있거든요. 그 사람이 만약 도청이 아니라고 정확하게 판단했으면 ‘내가 생각할 때는 도청이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 같아요. 도청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은 미국에 대해서 의심하는 걸 풀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죠.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얘기를 한 바가 전혀 없는 데다 우리가 찾아가서 물어봤을 때 ‘어떻게 그런 걸 얘기하느냐’라고 하는 건 그만큼 그 문제에 대해 말하기 곤란하다는 의미인 거예요. ‘그러면 도청을 당했나?’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죠.”
미국의 보안이 허술한 것 같던데.
“미국의 보안이 허술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미국은 한국에 비해 보안이 훨씬 더 철저한 나라예요. 한국이야말로 보안이 허술해요. 미국은 자기네가 일상적으로 도청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도청에 대한 방비도 굉장히 철저하게 하는데 한국은 그런 감각이 없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 기자회견 하면서 자기 휴대폰으로 전화 통화한다고 고백했잖아요. 휴대폰으로 전화하는 것을 도청해달라고 하는 것과 비슷해요.”
기밀문서 유출 사건이 있었으니 미국도 보안 체계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거죠.
“한국 정부와는 비교할 수 없이 미국은 철저하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고, 허술한 구석도 있으니 기밀문건이 유출된 것이죠. 허술했던 부분은 뭐냐 하면, 미국은 도청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 세계의 정보를 획득하잖아요. 그 정보의 양이 엄청나게 많으니 그걸 처리하기 위해서 관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문서를 유출한 것은 잭 테셰이라는 미국 주 방위군의 사병이란 말이에요. 일등병 정도 되는 친구예요. 근데 이 친구가 비밀 취급 인가를 받아서 그 기밀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부분들은 이번에 지적이 됐어요. 앞으로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해서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겠다고 했습니다.”
정상회담 때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본다고 했죠. 미국이 가해국인데 가해국의 조사 결과를 지켜보겠다니요?
“그게 바로 어처구니없는 얘기죠. 미국이 도청한 나라인데 미국이 ‘우리가 도청했다’고 통보해야 도청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건 최소한의 국가적인 자존심도 없는 얘기죠. 만약 미국 정부가 ‘우리는 도청 안 한 걸로 밝혀졌습니다’라고 얘기하면 안 한 걸로 믿겠다는 얘기 아니에요?
그 얘기는 정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는 얘기를 한 겁니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최소한의 국가적인 자존심, 주권에 대한 인식이 없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요.”
외교부가 “미국에서 기밀문서 유출 용의자에 대한 사법 절차가 아직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답변했다고 다큐에 나오던데, 우리가 문제제기해야 할 건 문건이 왜 유출되었는지가 아니라 도청을 왜 했는지 아닌가요?
“기밀문서 유출에 대한 재판이지만 범인의 행위에 대한 재판이기 때문에 만약 범인이 한국 정부 말대로 위변조했으면 그 혐의도 재판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재판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이 사건의 실체적인 진실에서 중요한 것은 맞아요.
문제는 뭐냐 하면, 그건 이미 결판났다는 점이거든요. 사실 미국 법무부에서 잭 테셰이라를 기소했을 때 다 끝난 얘기였어요. 위조나 변조를 했다면 당연히 기소 내용에 위변조 혐의가 들어가야 했거든요. 근데 위변조 혐의가 안 들어갔잖아요. 그리고 기소 항목 중에 한국을 도청에서 만든 문서의 내용이 들어갔어요. 미국 검찰이 작년 6월에 기소했을 때 이미 이 사건의 본질은 확실해진 겁니다.
근데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지난 상황에서도 한국 외교부는 ‘미국의 사법 절차가 진행 중이라서 우리는 모른다. 사법 절차가 끝나고 미국에서 통보해주거나 하면 알지 말지’란 답변인 거죠. 오늘(11월 13일) 선고가 났으니 이제 재판이 끝났단 말이에요. 이번에는 외교부가 뭐라고 할지, 또 무슨 핑계를 댈지 모르죠.”
어떻게 도청됐을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미국이 어떤 식으로 도청하는지 전문가에게 물어봤는데 알 수 없대요. 또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육군 대장 출신인데, 한국에서 도청 방지하는 것을 가장 잘하는 곳이 방첩사령부인데 그곳의 최고 전문가를 불러서 물어봐도 미국이 어떻게 도청하는지 모른다고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은 알 수 없다는 얘기죠.”
독일 사례에서 우리가 얻을 점이 있을 것 같아요.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2013년에 휴대폰 도청당했다는 보도가 터졌을 때 오바마 대통령에게 강하게 항의했어요.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도 메르켈 총리의 항의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요. 그 정도면 아마도 한국 정부에서는 감지덕지하고 끝냈을지 모르는데, 독일 의회는 그러지 않고 NSA에 대해 초당적으로 조사하는 특별위원회를 만들었어요. 거기서 무려 3년 동안조사했단 말이에요. 메르켈 총리도 조사위원회에 출석해서 증언하고요.
그렇게까지 하는 건 결국 이 문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걸 말해주는 거예요. 독일 정부는 그 사건 이후에 도청 방지나 보안 등의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발전했을 거예요. 그리고 미국도 ‘독일이 저렇게까지 하는데 우리가 또 도청하면은 큰일 나겠구나’하는 생각을 안 하겠어요? 훨씬 조심하겠지요. 그 사건 이후에는 독일을 도청했다는 얘기가 나온 적은 없어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결국 국가적인 자존심, 국가적인 정체성 이런 것을 확립해 나가는 거거든요.
근데 우리나라는 그런 점이 현저하게 부족해요. 언론도 외국 언론이 ‘도청했다’ 그러면 보도하고 그다음에는 금방 잊어버리죠. 오늘(13일) 같은 날도 문서 유출범에 대해서 15년형 선고가 이루어졌고, 사실상 ‘미국의 도청 문건이 진본이다’라는 것을 미국 법원이 확실하게 인정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재판이었는데 MBC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한국 언론이 제대로 보도를 안 했어요.
마치 해외 토픽 보도하듯 한국 도청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점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곳이 많았고, 아예 보도하지 않은 매체는 훨씬 많았죠. 한국 언론들은 진짜 문제라고 생각해요.”
취재하며 느낀 점이 있을까요?
“윤석열 정부에 대해 문제점을 많이 느꼈지만, 언론이 심각하게 문제라고 느낄 때가 많았어요. 미국이 도청한 것이 분명한데도 도청했다는 말을 못 하는 것이 우리 언론이에요. ‘도청을 도청이라 말하지 않는 언론’은 국민으로 하여금 주권 문제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들고, 나아가 주권 침해 상황을 당연시하도록 만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어요. 주권을 일상적으로 침해당하면서도 국민이 그것을 당연하게 느낀다면 그 나라는 존재할 수 있을까요? 언론의 책임이 크죠.”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아무래도 모든 정보가 미국에 있으니까 미국 정부의 얘기를 제대로 취재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다만 우리나라하고 또 다른 면인데, 미국은 최소한의 정보는 공개해요. 오늘도 재판에서 선고가 나왔는데, 선고가 나오면 미국 법무부에서 기자회견도 하고 보도자료도 꽤 길게 작성해서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그걸 보면 재판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충분히 알 수가 있어요. 또 미국의 시민단체에서 중요 재판의 문서를 올려놓는 인터넷 페이지가 있더라고요. 거기 있는 잭 테셰이라의 재판 문서들을 우리 데이터 전문기자가 찾아내기도 해서 같이 연구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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