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말 ‘을사보호조약’과 ‘창씨개명’
우리말 산책
1905년 11월17일, 일본은 대한제국을 강압해 협정 하나를 맺었다. 이 협정의 목적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와 이사청(통감부의 지방 조직)을 두어 대한제국의 내정(內政)을 장악하는 데 있었다. 통감부는 병력 동원권과 시정 감독권 등을 가진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일본은 이 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 식민지배의 음모를 구체화해갔다.
이 협정을 가리켜 ‘을사보호조약’이나 ‘을사조약’으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30여년 전만 해도 중고교 교과서에 을사보호조약으로 실려 있었고,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을사조약이 마치 바른말인 것처럼 올라 있는 탓일 듯하다.
그러나 이들은 바른말로 보기 어렵다. 조약(條約)이 “국가 간의 권리와 의무를 ‘국가 간의 합의’에 따라 법적 구속을 받도록 규정하는 행위 또는 그런 조문”을 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05년의 협정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이뤄졌다. 이에 격분해 민영환과 조병세 등 여러 열사가 죽음으로 항거를 하고, 최익현과 신돌석 등은 일본에 저항해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합의가 아니라 “억지로 맺은 조약”을 뜻하는 말은 늑약(勒約)이다.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이나 을사보호조약으로 쓰는 것은 일본이 자신들의 무도함을 왜곡하기 위해 붙인 ‘한국보호조약(韓國保護條約)’을 끌어다 쓴 친일사관의 잔재다. 이와 관련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을사보호조약이 사라진 것은 반가운 일이나, ‘을사늑약’과 ‘을사조약’이 함께 올라 있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루빨리 고쳐 써야 할 말에는 ‘창씨개명(創氏改名)’도 있다.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성(姓)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것이 창씨이고, 부모가 지어주신 이름까지 바꾸는 것이 개명이다.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려고 일본이 만들고 그렇게 하도록 강요한 것이 창씨개명이다. 그러기에 국립국어원은 일본의 만행이 드러나도록 오래전부터 ‘창씨개명’을 ‘일본식 성명 강요’로 쓰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일제가 만든 말 ‘창씨개명’을 쓰고 있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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