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은 더 성장해야 한다

 

한글은 더 성장해야 한다

최삼경 작가
최삼경 작가

‘한글은 더 성장해야 한다’는 말은 한글이 미숙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인류 최초로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과학적 언어가 아직 전 세계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함을 안타까이 여겨서 하는 말이다.

희랍어나 라틴어 그보다 더 오래됐다는 수메르어 등은 어떤 체계 없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언어들인데 반해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그리고 창제의 세계관을 밝히며 동시에 제작된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언어가 한글인 것이다.

관련해서 오늘은 독후감에 준하는 글을 써보기로 한다. 소설가 주수자 작가가 쓴 ‘소설 해례본을 찾아서’는 한글창제의 원리를 정리해놓은 훈민정음해례본의 중요성을 작품화했다. 이 해례본은 집현전의 성삼문, 박팽년 등이 주축이 돼 쓴 것으로 한글이 세종대 만들어진 글자임을 명백히 밝혀놓은 것이다.

이 해례본이 왜 중요한가 하면 일제가 무엇보다 우리말과 글을 말살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8세기 실학 연구자들이 정리한 훈민정음 언해본을 당대 만들어진 위작이라고 했고, 한글의 기원을 고전(古篆)이나 범자(梵字)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문창살 모양의 ㄱ,ㄴ 기원설 등을 악의적으로 퍼뜨렸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이 해례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면 세종조의 한글 창제는 거짓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 정신을 담은 한글은 신화가 될 뻔 했다.

이런 면에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우리의 전통예술품 등을 수집했던 간송 전형필과 끈질기게 이 ‘해례본’을 찾는데 필생을 바쳤던 국문학자 김태준의 수고와 헌신은 훨씬 더 많은 조명을 받아야 한다.

그러고 보면 한글도 약소국의 언어로 참으로 지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1444년 1월 15일 반포된 이래 450여년이 지난 1895년 5월 8일,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겨우 한글이 나라의 글자로 공식화한 것이다. 양반들은 한글을 쓰면서도 한문을 우위에 두었다. 무엇보다 한글은 우리말이다. 이 말은 한글 창제가 있기 전부터 우리는 우리말을 독자적으로 사용했던 것이고, 한글이 비로소 우리말을 문자화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글은 우리말이고 우리글인 것이다.

한글의 문자배열방식은 서양이나 일본처럼 수평으로 음소가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모양을 쌓고 세우는 방식이어서 기존 글자들과 달랐지만 그것이 컴퓨터 자판시대를 만나 스스로 조합하는 능력이 발휘되면서 오히려 효율성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제 한글은 한국인들의 편리함을 넘어서서 세계 문명사적인 자랑거리가 된 것이다.

훈민정음이란 문자의 창제가 이처럼 21세기까지 이어져 미래 인류의 공동 표기방식이 될 수도 있는 대단한 발명인 것이다. 여기에 주수자 작가는 ‘한글의 컨텐츠’를 높여야 한다며 한글을 사용하는 예술가와 작가의 분발을 촉구한다.

셰익스피어가 2000여 개의 신조어를 작품에 실으며 영어의 볼륨을 넓혔듯이 이제 한국의 작가들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공교롭게 소설 출간과 때를 같이 하여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은 무언가 어떤 운명적 느낌을 갖게 한다. 이제 우리도 기죽지 말자. 디지털 시대의 가장 효율적인 기호체계를 갖춘 한글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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