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이스라엘을 배워라
[단번도약, 북조선] 텔아비브 : 월드 와이드 웨이브 이병한 EARTH+ 대표 | 기사입력 2021.02.26. 14:37:03 최종수정 2021.02.26. 14:47:54 1. 봄의 언덕 오아시스 같은 도시이다. 푸른 바다로 가라앉는 붉은 일몰이 일품이다. 하얀 모래사막을 지나면 파란 지중해가 펼쳐진다. 지중해성 기후, 겨울도 포근한 도시였다. 총천연색 수영복을 입고 서핑을 즐기는 노인도 여럿이었다. 평온한 안식처 같은 장소이다. 본디부터 늘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부서진 배를 탄 66가구의 유대인 가족이 이곳에 당도한 날이 1909년 4월 11일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히브리 도시를 건설하자는 다짐으로 농가 운동을 발족시켰다. 텔아비브가 출발한 것이다. '텔'(tel)은 언덕을 뜻한다. 아비브(avia)는 봄이라는 뜻이다. 텔아비브는 유대인이 소망하는 '봄의 언덕'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도 30년 전 ‘봄의 언덕’에서 시작된 것이다. 보금자리가 생기자 유럽에서 박해받은 유대인들의 이주가 줄을 이었다. 홀로코스트를 피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지중해의 새로운 고향, 텔아비브를 찾았다. 그들이 가진 재능과 기술, 지혜도 결집되었다. 공동의 선을 위하여 세계 최고의 도시를 만들자는 뜻으로 한마음 한 몸이 되었다. 그 가운데는 바우하우스 운동에 가담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1919년 독일 바이마르에서 처음 설립된 이후 데사우, 베를린까지 세 도시에 거쳐 14년간 이어진 디자인 교육기관이 바우하우스이다. 1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솟아난 예술과 기술의 통합운동, 소셜 디자인 운동이기도 했다.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에서 바우하우스의 비전은 만개하지 못했다. 대신에일군의 유대인 건축가과 공학자들이 1930년대 집단적으로 텔아비브로 이주하여, 전통의 중력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실험해볼 수 있는 백사장, 백지를 얻은 것이다. 모래 언덕 위에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