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서명했다”...굴욕적 ‘미일합의’ 한국에 들이미는 트럼프
미일, 양해각서 서명...“미국이 투자처 지목하면 45일 안에 입금”
미 상무장관 “한국, 일본이 어떻게 하는지 봤을 것” 압박
- 김백겸 기자 kbg@vop.co.kr
- 발행 2025-09-12 18:22:41
- 수정 2025-09-12 18:36:0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오른쪽) ⓒ뉴시스(AP) 한미 무역합의의 세부 내용을 정리하는 후속 협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통상 요구를 수용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앞서 미국과 일본은 미국이 투자처를 지목하면 일본이 즉각 투자금을 입금하는 등 일본 측으로선 굴욕적인 내용을 합의했는데, 이를 한국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국의 부당한 압박을 절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트럼프 지시하면 일본은 45일 내 입금'...트럼프의 '현금지급기'된 일본
12일 일본 정부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아카자와 료세이 일본 경제재생상은 지난 4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양국의 무역합의에 대한 공동성명과 대미투자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지난 7월 22일 양국이 구두로 합의했던 무역합의가 한달 반 만에 공식적으로 문서화된 것이다.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이 미일 무역합의를 이행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품목 관세는 기존 27%에서 15%로 인하된다.
그러나 양국 간 협상의 쟁점이었던 대미투자 분야는 그동안 일본이 밝혀왔던 것과는 상당히 차이를 보이며, 일본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미 투자, 수익 배분 구조, 시장 개방 조항에서 일본 정부의 설명과 실제 문서 간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며, 일본 내에서는 “굴욕적 외교”라는 비판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 내각관방(한국의 대통령비서실)이 공개한 '미일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를 보면 일본은 미국에 5,500억달러(약 765조원)를 투자하기로 했으며, 이 자금의 사용처는 미국 대통령이 직접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지정 후 45일 이내에 일본은 지정된 계좌에 즉시 사용 가능한 달러화로 입금해야 한다.
일본은 미국과의 사전협의를 통해 투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고 하고 있으나, 이 경우 '미국 대통령이 정하는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투자 방식이나 시기, 대상에 대한 일본의 자율권은 사실상 배제된 구조다.
이는 앞서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금융지원' 형식이 될 것이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당시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5,500억달러가 전부 현금으로 가는 건 아니고 대출·보증·출자가 포함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서명한 양해각서에는 이 같은 금융지원 방식에 대한 표현은 없고, 오히려 '즉시 사용가능한 달러화'라고 현금을 제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대미투자의 수익에 대한 배분 구조 역시 일본 정부의 설명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양해각서에 따르면, 투자금이 회수되기 전까지는 양국은 투자 수익을 50%씩 나누지만, 회수 이후에는 미국이 전체 수익의 90%를 가져가기로 했다.
여기에 양해각서에는 투자액과 금리 수준을 통해 장래의 수익(현금 흐름)을 추정하는 추정배분액이라는 개념을 정의하기도 했다. 이익이 실현되기 전 미리 배당액을 지급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를 통해 일본이 투자금을 넣는 즉시 트럼프 행정부가 배분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일본 정부는 투자 수익 배분에 대해 수익 90%를 미국이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출자 비율에 따라 달라지며, 그 수익을 얻는 것도 미국 정부가 아니라 '민간'을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문서에서는 투자원금 복구 이후 90% 대 10% 비율이 명시돼 있으며, 배분을 받는 주체는 미국 정부 혹은 민간의 구분을 두지 않았다.
일본에 유리한 조항으로는 이번 대미투자를 받는 사업에 대해 일본 공급업체를 선정할 것을 명시했지만, '가능한 경우'라는 단서 조항을 달아놓았다.
그동안 대미투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자율적이고 전략적인 투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지만, 실제 문서에서는 미국의 지시에 따라 자금을 신속히 집행해야 하는 강제적 구조가 드러난 셈이다.
이에 일본 내에서도 불리한 합의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우치 다카히데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이번 대미투자 양해각서에 대해 "전체적으로 일본의 정부계 금융기관의 자금을 미국의 경제·산업을 위해 사용하는 미국 주도의 투자"라며 "미일간에 명확하게 불평등한 협정"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양국이 서명한 미일 대미투자 양해각서는 법적 강제성이 없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까지 버티겠다는 복안일 것이라고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이를 무효화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한 협정을 차기 미국 정부가 순순히 포기할지는 미지수다.

"한국, 일본 어떻게 하는지 봤을 것"...'일본 기준' 들이미는 트럼프
이러한 일본 사례는 현재 미국과 후속 협의를 진행 중인 한국에도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한미 무역합의에서 이보다 앞서 타결된 미일 무역합의가 기준이 된 것처럼, 한미 간 후속 협의에서도 일본과의 협의 내용을 기준이 되는 셈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일본이 어떻게 했는지 봤을 것이고, 융통성은 더는 없다"며 "한국은 무역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미국에 이익이 되도록 투자하기 위해 우리에게 5,500억 달러를 주기로 했다"며 일본의 대미투자 규모와 수익 배분 구조까지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이 일본과의 협정 내용을 기준점으로 삼고 있으며, 한국도 유사한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한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한국은 지난 7월말 미국과의 무역합의에서 상호관세와 자동차 및 부품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달러(약 48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약 138조원) 상당의 미국산 에너지 구매 등을 약속했다.
한국이 일본처럼 미국에 투자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의 약속한 대미투자 규모 3,500억달러는 한국의 외환보유액 4,162억달러(8월 기준)과 맞먹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를 모두 미국에 투자금으로 지급할 경우, 한국은 또 한번의 외환위기를 맞을 수 있다. 한편,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8월 기준 1조3,044억달러로 세계 2위 수준이다.
이재명 정부 "우리에게 이익 없는데 서명 왜 하나"...강경 입장 밝혀
이재명 정부는 "국익에 반하는 결정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합리성과 공정성을 벗어난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겠다"며 "협상의 표면은 거칠고 과격하고 과하며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최종 결론은 합리적으로 귀결될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합의문에) 사인을 왜 하느냐"고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실도 이날 "합리성이나 공정성을 벗어난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교착 상태에 빠진 한미 후속 협의를 풀기 위해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지난 11일 급거 미국을 방문했다. 김 장관은 워싱턴D.C.에서 러트닉 장관 등 당국을 만나 협의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부당한 압박을 들어줘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립외교원장 출신인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럴 바에야 관세를 주는 것과 뭐가 다른가"라며 "결국 관세는 월부로 미국에 내는 거고, 대미투자는 일시금으로 내는 셈"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부가 미국의 부당한 요구를 공개해 반대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도 제안했다. 김 의원은 "심각하게 저항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국민들도 지금 이번 미국과의 협상을 보면서 되게 충격을 받았는데 미국의 부당한 압박을 국민들한테 다 낱낱이 공개해야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서두르지 말고, 지금은 미국의 공세를 방어할 때라고 말했다. 김 의원은 "우리가 무역합의를 타결하면서 미국의 비합리적인 요구를 일단 막은 것"이라며 "그럼 거기에 계속 저항하는 게 맞는 것이지 그냥 사인하는 건 성공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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