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아시아의 성장 패러다임 전환

<칼럼> 김병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김병권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09.30 15:25:06 왜 성장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가? 박근혜 정부가 지난 9월 26일, 2014년도 정부 예산안을 발표했다. 정부예산에 대한 국회 심의와 의결과정이 연말까지 지속되면서 매우 다양한 논쟁이 예상된다. 특히 올해는 증세와 복지예산 감소 문제 등 논란거리가 유독 많기도 하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안을 내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사실 ‘경제 성장’이다. 예산지출 계획에서 ‘경제 활력 회복과 성장 잠재력 확충’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에 놓았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침체되어 있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국가재정을 동원하려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경제는 3년째 4%를 밑돌고 있고 내년에도 비슷할 것이며 이로 인해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침체된 경제를 어떻게 회복시켜낼 것인가 하는 점이 핵심인 것이다. 왜냐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했고 이제 과거와 같은 성장방식이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들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누적되어 온 심각한 불평등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불평등이 아예 성장 자체를 억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한 점점 더 심화되어 가는 기후 온난화와 환경파괴는 생태와 환경을 무시한 성장이 더 이상 불가능해지고 있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말해주고 있다. 사실 이런 취지에서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산업화 시대의 성장 패러다임, 민주화 시대의 분배 패러다임을 넘어서”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중국이 소비주도 성장 전략으로 전환한 이유 사실 기존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의 전환은 우리나라만의 과제가 아니라 대체적으로 아시아 신흥국들 전체가 공동으로 직면한 과제다. 특히 이웃나라 중국이 그러하다. 중국은 세계 제일의 무역대국이며 전형적으로 저임금을 기반으로 수출에 의존해서 고속성장을 이룬 나라다. 동시에 막대한 국유재원을 기초로 거대한 공공투자를 지속시킨 점이 고속성장을 뒷받침했던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수출을 위해 전반적인 저임금구조를 지속시켰고 소득격차도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도록 방치했다. 그 결과 민간소비가 중국 경제 성장에서 기여하는 정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이미 중국은 국내총생산 규모가 8조 달러가 넘는, 미국 다음으로 거대한 경제규모를 가지고 있다. 또한 13억의 엄청난 인구로 인해 중국의 민간소비 규모는 약 2.5조 달러에 달하고 세계 5위 규모라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의 이러한 성장전략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계에 도달했다. 한편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해 중국의 막대한 수출물량을 받아줄 국가들이 존재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동안 중국 수출을 흡수해왔던 미국은 이제 오히려 자신이 수출국가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과 환율전쟁, 무역전쟁도 불사할 태세다. 중국 수출을 받아주었던 또 다른 경제권인 유럽은 수년째 계속되는 위기에서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중국의 대외조건만 변한 것이 아니다. 중국 국민들도 이제 더 이상 저임금과 빈부격차 확대를 용인하면서 인내할 한계점에 왔기 때문이다.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은 이처럼 안과 밖에서 모두 요청되었다. 중국은 12차 5개년 계획(2011년~2015년)을 발표하면서 기존의 수출주도, 투자주도 경제에서 벗어나 국민의 구매력 증대에 기반한 소비주도 경제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민간소비 규모를 2011년에 국내총생산 대비 33.8%에서 2015년에 45%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환에는 강력한 난관이 가로 놓여있다. 수출경쟁력을 떠받치기 위해 억제했던 저임금 구조를 혁파하고 해안과 내륙, 도시에 농촌 사이에 심각하게 악화된 소득격차를 완화시켜야 한다. 중국의 지니계수는 2010년 기준 0.5를 넘어섰을 것으로 예상할 정도다. 우리나라가 0.3 전후이니 얼마나 심각한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중국 국민들의 소득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강력한 분배구조 개선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중국정부는 2020년까지 사회보장 시스템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확대하기로 계획하고 있다. 2015년까지 매년 15%씩 임금을 인상하여 12차 5개년 계획 기간 안에 두 배의 임금인상을 달성한다는 목표도 실행하고 있는 중이다. 이외에 저가의 주택공급을 포함하여 각종 보조금 지급 확대 등의 소득정책을 실시하거나 계획 중에 있다. 내년 예산안에 표현된 박근혜 정부의 성장전략 그렇다면 과연 박근혜 정부는 내년 예산을 짜면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을 담아내고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러한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로, ‘투자 촉진, 수출 역량 강화’라는 이름아래 여전히 수출의존형 성장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의 지나친 수출편중 성장모델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무역의존도가 100%전후를 오갈 정도로 더욱 커졌고, 2011년부터는 역사상 처음으로 수출규모가 민간소비 규모를 추월했다. 일본이 무역의존도가 높다고 하지만 20%를 약간 웃도는 수준이고 중국마저 60%에 이르지 못한다. 한국경제의 무역의존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 소득기반을 확대하여 구매력을 끌어올림으로써 내수에 힘을 싣는 방향의 전환이 절실한 이유다. 이는 소득 재분배를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를 얻게 해주면서, 동시에 내수 성장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성장과 분배의 이분법을 넘어 효율과 형평성을 동시에 달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성장 패러다임의 전환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방식이 바로 고용의 양과 질을 제고하면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수출 진흥정책과 외국인 투자 유치정책이라고 하는 과거식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여 내년 정책의 최 우선순위에 배치했다. 전환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이번 예산안에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고려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 역시 패러다임의 전환을 발견할 수 없다. 21세기 경제성장은 단선적인 물질적 성장을 극대화시켜왔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받고 있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이 한계점에 도달했고 지구의 환경과 생태가 점점 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속 가능한 성장’이 G20을 포함한 세계적인 주요 회의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안을 보면 ‘창조경제 기반 확충’이나 ‘미래 먹거리 창출’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고려가 없다. 에너지체제 전환을 위한 계획이나 저탄소, 친환경 산업 구조를 위한 계획이 전혀 없다. 아예 환경예산으로 독립된 항목은 올해 추경예산대비 절대 금액이 감소하기도 했다. 지속 가능성이 고려되지 않은 창조경제나 미래 성장 산업은 앞으로 점점 더 정당성과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는 점을 현 정부는 거의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내수기반 경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세계경제는 지금도 여전히 커다란 격변기 한 가운데 있다. 미국과 일본, 유럽 등 주요 선진국이 모두 양적완화라고 하는 이례적인 통화팽창정책에 의해 겨우 현재의 모습을 유지해 가고 있는 것만 봐도 이는 명확하다. 양적완화를 축소하면 차후에 아시아에서 어떤 위험이 닥칠지도 예견하기 쉽지 않다. 최근 미국의 양적완화 움직임 축소에 따른 인도네시아와 인도에서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급격히 높아진 사례도 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외부환경이 불투명한 것이다. 환경 변화를 맞아 이웃나라 중국은 이미 내수기반 경제로의 이행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7%의 낮은 성장률도 받아들일 태세다. 또 다른 이웃나라인 일본은 20년 장기불황을 타개하고자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양적환화와 인플레정책을 쓰고 있다. 이 역시 뭔가 기존 성장전략으로는 난국을 타개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암시한다.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 역시 유사한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 우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의 소득기반을 강화하여 내수 구매력을 확충한다면 경제의 변동도 줄이면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길로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외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 국민의 내핍과 불평등을 희생양으로 성장하는 경제, 환경과 생태에 대한 고려가 무시된 경제로는 더 이상 성장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김병권 (새사연 부원장) 전 <통일뉴스> 기자 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 연구센터장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저서 : 『리셋 코리아』(공저, 2012), 『신자유주의 이후의 한국경제』(공저, 2009)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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