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입양 안 보내고 자체로 양육하는 북 고아 정책
NK투데이
기사입력: 2014/02/20 [00:16]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북한 애육원을 방문한 김정은 제1비서 © 자주민보
김정은 제1위원장이 지난 2월 4일 평양시 육아원과 애육원을 방문해 화제가 됐다. 육아원은 유치원 취학 전 고아를 키우는 기관이며, 애육원은 유치원 나이의 고아를 키우는 기관이다.
4일자 뉴스1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제1위원장은 “올해부터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매일 300g씩 먹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지난 1월 7일 전국의 육아원 및 양로원 등 취약계층에게 수산물을 공급하는 수산사업소를 군대에 건설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또 “애육원과 육아원의 아이들에게 영양가 높은 곶감도 정상적으로 먹여야 한다”며 감이 많이 나는 곳에 주둔한 군부대에 곶감을 마련하라는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겠다고도 하였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전국의 모든 육아원, 애육원들을 혁명가 유자녀들을 키우는 혁명학원 수준으로 꾸리자는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대동강 기슭에 애육원과 육아원을 새로 마련하고 각 도와 직할시들에도 애육원·육아원을 새로 꾸릴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육아원, 애육원 방문으로 북한의 고아 정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북한의 고아 정책은 항일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고아들에 대한 정책, 한국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고아들에 대한 정책, <고난의 행군> 시기 발생한 고아들에 대한 정책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혁명가 유자녀들을 우대한 정책
먼저 항일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고아들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교수는 자신의 저서 ≪유격대국가의 성립과 전개≫에서 “항일유격대원 중에는 소년 소녀들이 있었다. 일본군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유격대 속에서 교육받은 그들에게 유격대는 집이었고, 대원들은 형이요 누나였으며, 사령관은 아버지였다. 그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서술하였다. 고아들을 유격대에 받아들여 함께 생활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후에는 만경대혁명학원을 설립해 혁명가 유자녀들을 키웠다. 2013년 4월 24일 통일뉴스에 실린 <박종린-쌍무기수, 분단의 가시밭길을 헤치고>에 따르면 “북은 임시인민위원회가 안정되면서 1947년부터 만경대학원을 설립하고 국가시책으로 혁명가 유자녀 찾기에 나선다. 전국과 국공내전 중인 간도를 샅샅이 수소문해 머슴살이 종과 고아 등 뿔뿔이 흩어진 유자녀들을 학원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1947년 10월 평양혁명자유가족학원이란 이름으로 평양 대성군에 설립된 만경대혁명학원은 항일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유공자의 유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이다. 1차 학생은 335명이었으며 1948년 현재 위치인 만경대에 교사를 신축 이전했고 학생도 522명으로 늘었다. 현재는 1천여 명의 학생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과 분단, 정부 수립 등 어수선한 속에서도 북한은 학원창립준비위원회를 조직해 중국 동북지역 등 국내외에 사람들을 파견해 유자녀들을 모집했다. 만경대혁명학원 출신들은 후에 북한 각계에서 핵심 인물이 되었다. 만경대혁명학원은 이후 한국전쟁 전사자 유자녀, 빨치산 유자녀도 학생으로 받았다.
해외입양 대신 위탁교육을 선택한 북한
두 번째로 한국전쟁 과정에서 발생한 고아들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자.
북한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내각결정 제192호를 채택, 한국전쟁 중 희생된 인민군 장병, 빨치산, 애국열사들의 유자녀학원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남포혁명학원(현 강반석혁명유자녀학원), 해주혁명학원 등이 세워졌다. 두 혁명학원은 각각 7백여 명의 전쟁고아들을 입학시켰다고 한다.
사단법인 두리하나는 홈페이지에 올린 <북한의 고아들은 “부러운 존재?”>라는 글에서 북한이 전쟁고아들을 국가에서 맡아 키우다시피 했으며 국가의 배려가 컸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아원은 각 도마다 하나씩 있으며 준의(의사와 간호사 사이) 이상의 자격증이 있어야 원장직을 맡을 수 있고 보육원들도 간호사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또 애육원에는 분유나 식품들이 최우선으로 공급된다고 한다.
그러나 수많은 전쟁고아를 자체로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쟁고아의 수는 남북이 합쳐 10만여 명이라고 한다.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국가에 위탁교육을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2004년 6월 23일 KBS 수요기획에서 방영한 <미르초유, 나의 남편은 조정호입니다>에는 당시 루마니아로 간 전쟁고아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북한은 루마니아의 협조를 받아 <조선인민학교>를 세우고 3천여 명의 전쟁고아와 인솔교사를 보냈다. 루마니아 정부도 현지 교사를 파견하였다. 북한은 전후복구 사업을 통해 경제의 숨통을 튼 후 위탁교육을 보낸 전쟁고아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1956년 폴란드 뉴스는 김일성 주석의 자국 방문을 보도하였다. 당시 김일성 주석은 위탁교육을 받고 있는 2000여 전쟁고아들이 있는 고아원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폴란드에 맡겨진 고아들은 1959년에 북한으로 귀환했다. 당시 위탁교육을 받은 고아 중에는 후에 폴란드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일한 이들도 있다.
이 밖에도 1952년 몽골이 북한 고아 200명을 받아들여 7년 동안 교육시켜 돌려보냈다거나, 체코에서 북한 고아들이 위탁교육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다.
전쟁고아에 대한 북한의 정책은 개별 해외입양이 아닌 단체 위탁교육을 선택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고아원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있다
끝으로 <고난의 행군> 시기 발생한 고아들에 대한 정책을 살펴보자.
1990년대 중후반 극심한 경제위기로 인해 북한에는 많은 고아들이 발생했고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부랑아와 무의탁 노인들도 많았다. 이들을 흔히 <꽃제비>라 부르는데 이 말은 해방 직후 소련 군인들이 러시아어로 부랑자를 뜻하는 <코체브니크(КОЧЕВНИК)>라는 말을 쓰면서 북한 사람들 사이에 퍼진 말이다.
북한은 고아원과 구호소, 협동농장, 개인 입양 등 다양한 방법으로 꽃제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대북인권단체인 <좋은벗들>이 발행하는 <오늘의 북한소식> 2009년 3월 24일(271호)에는 함경북도 회령시가 꽃제비들을 농장에 배치해 <농장 청년독립분조>를 구성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합숙생활을 하며 식사는 간부들이 갹출해서 보장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좋은벗들> 이승용 사무국장은 ≪북한 입장에선 어차피 꽃제비를 구제해야 한다는 측면도 있고, 사회 전체적으로 인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차원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같은 소식지 2008년 5월 29일(134호)에는 111명의 고아를 키우는 북한 주민 소식이 실리기도 했다. 자강도 성간군 성간읍에 사는 우영일, 김영옥 부부가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2008년까지 111명의 아이들을 키워 9명은 군대에 보내고 50여 명은 청년분조로 조직해 농장일을 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신의주 신남동 기영옥 여성은 고아 12명을 데려다 기르는 등 개별적으로 고아들을 입양해 키우는 가정들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 차원에서는 고아원과 구호소 등을 통해 고아 문제, 꽃제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경제 전반이 어렵다보니 고아원과 구호소도 어렵긴 마찬가지여서 꽃제비들이 탈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데 최근 경제여건이 호전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특히 2012년 김정은 제1위원장 체제가 공식 출범한 후부터 주요 명절·기념일 등 계기가 있을 때마다 북한 전역의 고아원과 양로원에 많은 식료품 선물을 보내면서 고아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북한 언론들도 고아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 사례들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2013년 12월 26일자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2012년 한 해에만 검정닭, 꿀, 사탕과자, 빵, 과일 등의 식료품과 의약품, 운동복 등 다양한 선물들을 보냈다고 한다. 북한 고아지원 사업을 하는 한 재미동포는 ≪올해 6월께 황해도 지역의 고아원 서너 곳을 둘러봤는데 창고마다 통조림, 과일 등 식료품은 물론 의류도 가득 차 있었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으로 북한과 중국 내 북중 국경 인근에 있던 꽃제비들을 최근에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2014년 1월 22일 연합뉴스는 ≪요즘은 시장 주변에서나 가끔 볼 수 있고 시내 중심에서는 꽃제비를 찾아보기 어렵더라≫는 중국 조선족 사업가의 인터뷰를 실었다. 또 ≪꽃제비들이 고아원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물자를 우선으로 공급하라≫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가 있었다는 소식도 전했다.
북한 고아들에 대한 지원사업을 하는 사단법인 <푸른나무>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는 육아원, 애육원 외에도 고아들을 위한 초·중등학원들도 도와 직할시마다 존재한다. 2011년 기준으로 14개 육아원에는 총 2910명, 12개 애육원에는 총 1996명, 15개 초·중등학원에는 총 6557명의 어린이,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해외입양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은 요즘, 해외입양이 아닌 자체 해결을 원칙으로 하는 북한의 고아 정책이 경제 발전에 맞춰 더 힘을 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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