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에버랜드 해고 노동자, 검정색 SUV 추격했더니...

[삼성과 노조③] “원하는 연봉 말해 달라”더니 노조 설립 직후 해고.. “해고 후에도 차량까지 동원해 미행·감시” 삼성의 ‘무노조’ 역사는 곧 ‘노동조합 설립 실패’의 역사이기도 하다. 1950년대 삼성 계열사인 제일제당 노동자들의 농성투쟁을 시작으로 1987년 창원 삼성중공업, 1988년 거제조선소, 1991년 삼성전관 수원사업장 등 수많은 노조설립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2011년이 돼서야 애버랜드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삼성지회가 설립됐다. 지난해 7월에는 금속노조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출범했다. 노조가 없었던 73년. 삼성은 무노조 전략을 고수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회유했다. 감시와 미행, 납치까지 했다는 의혹도 종종 제기됐다. 최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에는 무노조 경영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담겨있다. 삼성그룹은 “임원용 교육 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문건 내용이 실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계열사에서 근무했거나 근무 중인 노동자들은 실제 문건 내용이 진행됐다고 증언한다. 일부는 “(회사가) 조심스럽지만 현재도 진행중”이라고 말한다.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문건의 내용이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또 실행되고 있는지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주> 대낮의 추격전…도착한 곳은 ‘삼성본관’ 2011년 9월. 조장희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은 노조 사무실 원룸 건물에서 ‘의심차량’인 검정 베라크루즈를 발견했다. 아내가 집 근처에서 종종 목격했다는 차와 일치했다. 조 부지회장은 지난달 27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집 사람이 매일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데 집 근처 골목에 주차된 까만 SUV차량이 의심된다고 말했다. 차 종과 넘버, 색깔을 확인해 검정 베라크루즈라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조 부지회장 집과 노조 사무실 원룸 건물은 같은 주차지역으로 볼 수 없을 정도의 거리다. “집 앞에 왔다 갔다 하는 차가 원룸 건물에 있었다. 차 넘버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뒤에 두 자리는 일치하는 것 같았다. 차 안에 사람이 타고 있어서 창문 내리게 하고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바로 도주했다. (감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부터 추격전이 벌어졌다. 검정 베라크루즈에 승용차 두 대가 따라 붙었다. 차에는 각각 조 부지회장과 김영태 지회 회계감사가 탔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이들은 베라크루즈 차체를 두들기며 소리를 높였다. 욕도 했다. “보통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 화를 내야 한다. 그런데 화를 내지 않았다. 신호가 멈출 때 수차례 왜 미행하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삼성 직원도 아니라고 했다”고 말했다. ▲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공개한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문건 일부. 조장희 삼성지회 부지회장의 사진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은 삼성전자 본관이었다. 이들은 끝까지 삼성직원이 아니며 미행도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지난해 재판에서 삼성 에버랜드 신문화팀(노사업무담당) 서아무개, 김아무개씨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에버랜드 측 변호인은 ‘업무차 삼성본관에 가는 길이었다’고 말했다. 에버랜드 측은 살지도 않는 원룸 건물 주차장에서 나온 이유에 대해 ‘근처 식당에 갔다’고 답했다. 하지만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 문건을 보면 에버랜드는 그 건물이 노조 준비 사무실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건 11쪽에는 ‘문제인력들은 D-Day(노조설립)를 7월로 정하고 은밀히 준비. 에버랜드 인근 원룸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외부세력과 관계사 문제인력을 지속 접속, 노조설립 모의’라고 쓰여 있다. 문제인력은 지회 조합원들을 의미한다. 조 부지회장은 “식사 시간도 아니었고, 식당 주차장을 사용하지 않고 왜 굳이 원룸 주차장을 사용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노조설립 필증 나온 날, 노조 부지회장 해고 이외에도 문건 내용대로 실행된 것은 또 있다. 에버랜드 노조 설립 후 조합원들에게 가해진 해고와 징계, 노조 무력화 과정 등이 모두 문건의 내용대로 실행됐다. 해당 문건은 ‘주동자는 위법사실 채증 후 해고·정직 등 격리’하도록 하며 ‘노조설립 주동자를 즉각 징계하기 위해서는 평소 문제인력들의 사규 위반사항을 채증, 필요시 활용 할 수 있도록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함’이라고 쓰여 있다. 에버랜드는 조 부지회장이 20분가량 에버랜드 내 사우나를 이용한 것(무단외출), 대포차를 6차례 운행한 것(품위손상), 구두로 휴가신청을 한 것(무단결근), 사내컴퓨터통신망을 비업무용으로 이용한 것, 상사에게 ‘애쓰십니다. 이 은혜 평생 갚아드리겠습니다’ ‘씨X 돼지XX’ 등의 문자를 보낸 것 등 8가지 사유로 2011년 7월 18일 조 부지회장을 해고했다. 같은 날 노조설립 필증이 나왔다. 동시에 노조 무력화도 진행됐다. 문건 11쪽은 ‘시나리오에 따른 신속한 선제 대응. 2011년 6월 20일 親社노조(친사·어용노조) 설립 및 6월 29일 단체협약 체결’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또 ‘후순위로 설립된 삼성노조는 개정 노동법에 따라 향후 2년간 단체교섭 요구 불가’라고 쓰여 있다. 모두 삼성지회에 일어났던 일이다. 2011년 6월 20일에 설립된 친사노조는 ‘에버랜드노동조합’으로 총 4명이 가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설립 며칠 전에는 모든 사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 공공연한 ‘협박’도 있었다. 김아무개 인사팀 차장은 2011년 7월 6일 교육에서 “최근에 언론에서도 삼성 에버랜드에 뭐 노조가 어쩌고저쩌고 이런 이야기들 들어보신 분들 있을 거예요. 특정 어느 단체가 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교육을 마무리했다. 그날 교육에 참석했던 조 부지회장은 “우리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고 말했다. 그 날 교육에는 민주노총, 김소연 기륭전자 전 분회장 등을 비하하는 내용도 담겼다. 지회가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 차장은 “김소연 분회장 이라고. 저 사람이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심습니다. 말 그대로 위장취업. 너 기륭전자에 가서 한건 제대로 해. 내가 앞으로 넌 챙겨줄게. 왜? 당에서 시키는 모든 것을 합니다. 당에서 시켰으니까. 무슨 당? 민주노동당”이라고 말 한 것으로 나온다. 금속노조와 삼성지회 등은 지난해 12월 노조가입 방해, 허위사실 유포로 사측을 검찰에 고소했다. 이에 대해 삼성 에버랜드 홍보팀 차장은 “강사가 강의하는 스타일이 그랬던 것이지. 회사에서 지시를 했다거나 관리감독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무노조 교육 역시 해당 문건에 나오는 내용이다. ▲ 삼성그룹의 노조파괴 전략을 규탄하는 노동시민사회법률단체 참가자들이 지난해 10월 2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 두번째가 조장희 삼성지회 부지회장. 사진=이하늬 기자 “원하는 원봉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회사가 처음부터 ‘강수’를 둔 것은 아니었다. 앞서 회유와 설득시도도 꾸준했다. 해당 문건 42쪽, 문제인력 중 활용가능자는 ‘승격, 보직변경, 전환배치 등 우군화’ 한다는 내용이다. 조 부지회장은 “2010년, 게시판과 전체메일로 ‘노조를 만듭시다’라고 보내고 일찍 퇴근했다. 휴대전화도 꺼버렸다. 휴대전화를 켜니 캐치콜(전원이 꺼져 있거나 통화 중에 걸려온 전화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이 70몇 통. 문자가 엄청나게 왔다”고 전했다. 그는 노조설립을 제안한 다음날 오전, 사용하지 않는 건물 지하에서 인사팀장, 차장, 대리 등과 회유를 위한 면담이 진행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녹음 때문에 직접적으로 묻지 않는다. ‘그거’ 하실거에요? 이런 식으로 묻는다. ‘궁금하면 지켜보라’고 했더니 ‘노사위원을 10년 가까이 하시면서 진급도 못하고 그동안 회사에서 대우를 잘 못 해준 것에 대해 이제라도 대우를 해주고 싶은데. 원하는 부서나 원하는 연봉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화를 냈다” 해고되고 2년이 지났지만 회유는 계속되고 있다. 그는 자신을 휴대전화에 온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며 “소주 한 잔 하자, 차 마시자고 연락이 온다. 찔러보는 거지. 얘네가 지쳤나 안 지쳤나”라고 말했다. 문자 메시지엔 ‘기흥 영독동1003-4번지 장수한우프라자. 김아무개로 6시 예약했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문자를 보낸 날짜는 2012년 10월 29일. 문자는 문건이 폭로되기 직전인 지난해 9월까지 계속됐다. 조 부지회장은 “문건 터진 이후로는 관계가 끝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에버랜드 홍보팀 차장은 “회사를 그만뒀어도 같은 직원이면 연락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두 분이 연락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차장은 감시나 미행 등에 대해서는 “회사에서 감시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무노조 교육도, 문제인력 관리 등도 모두 ‘개인적으로 한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3일 서울행정법원 12부(부장판사 이승한)는 문건대로 조 부지회장이 해고됐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그룹이 2012. 1. 작성한 ‘2012년 S그룹 노사 전략’에 의하면 참가인은 원고 노조를 소멸시키기 위하여 원고 조장희를 해고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하면, 참가인의 부당노동행위 의사가 추단”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조 부지회장의 해고 역시 ’부당해고‘로 판단했다. 이하늬 기자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세요. @ haneeloo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