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층을 유인하려는 선거전략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2/07/22 [19:34] 최종편집: ⓒ 자주민보 [다음은 지난 5월 10일 구속되어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인 자주민보 한성 기자가 편지로 보내온 글임을 알려드립니다. _편집자] 「국가는 발전했다. 경제도 성장했다. 그러나 국민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7월 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에서 박근혜 의원이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하면서 한 발언이다. 「국정운영의 패러다임을 국가에서 국민으로, 개인의 삶과 행복중심으로 확 바꿔야 한다」고 박근혜는 매우 구체적으로 말한다. 발언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곧바로 읽히는 것은 반MB이다. MB가 2007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내놓은 국가 비전은 ‘선진국가론’이었다. 박세일 서울대교수가 이론적 기초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MB의 국가중시론에서 벗어나는 국민중시론이라고 할 만 했다. 박근혜의 출범선언문을 꼼꼼히 분석해보면 국민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횟수가 80차례라고 조선일보는 밝혔다. 박근혜의 국민중시론 혹은 국민행복론은 「5000만 국민행복플랜」이라는 개념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김종인의 「경제민주화」 박근혜의 반MB는 MB의 선진국가론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대기업 중심인 MB경제정책에 대해서 박근혜가 들이대는 메스는 언뜻 본다면 섬뜩할 정도이다.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거대담론에서 박근혜는 자신의 경제정책을 출발시켰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접근해서는 중소기업을 경제적 약자로 규정한 다음, 대기업들에게 사회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경제민주화」였다. 박근혜는 18대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가장 중요한 핵심쟁점 중의 하나로 부각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행복」을 위한 3대과제에서 「일자리창출」, 「한국형복지」를 제치고 맨 앞자리에 놓인 것이 「경제민주화」였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해소문제가 핵심내용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를 개선하고 재벌에 집중되어있는 경제력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진보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진영이 재벌해체담론을 꾸준히 제기했을 때도 민주당이 재벌개혁과 관련되는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을 때도 꿈틀대기만 하던 「경제민주화」문제가 거대한 이슈로 떠올랐던 것은 박근혜 캠프의 김종인 선대위원장이 캠프에 합류할 무렵 던진 한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이한구는 재벌 옹호론자이다」라는 말이 그것이었다. 이로인해 김종인과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이에 곧바로 대립구도가 형성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사람 사이에서 실제 내용있는 논쟁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종인이 말하는 경제민주화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 정도가 이한구가 했던 말의 핵심이었다. 김종인의 힘이었다. 김종인은 1987년 개헌 때 헌법 제119조에 「경제민주화」라는 표현을 만들어 넣었던 실력있는 경제관료이다. 김종인이 「경제민주화」의 원조라고 불리웠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김종인은 노태우 정부 때 경제수석을 하면서 대기업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각인시켰다. 업무용도가 아닌 부동산을 내놓으라고 김종인은 기업인들에게 점잖게 주문했다. 기업인들은 밍그적대며 다들 눈치를 살폈다. 이 때 김종인이 이승윤 부총리와 함께 만들어 기업인들에게 들이댄 것이 90년 5.8조치였다. 5.8조치는 비업무용 부동산 강제매각 조치였다. 5.8조치에 따라 기업인들은 부들부들 떨며 혹은 이를 박박 갈면서 부동산을 매각처리했다. 이때부터 김종인은 재벌개혁론자로 불리워지기 시작했다. 윤병세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지금까지 확인 된 박근혜의 정책 중에서 반MB의 최고정점을 찍고 있는 것은 대북정책이다. 박근혜는 「남북간의 불신과 대결, 불확실성의 악순환을 끊을 것」이라고 했다. 박근혜가 남북관의 악순환을 끊겠다고 한 것은 MB의 극한적인 대북대결정책과 결별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동안 남북간, 국제사회와 맺은 합의 등에 대해 우선,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박근혜는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선언, 10.4선언 등을 남북간 합의의 대표적인 것으로 들었다. 약간의 놀라움이 일었다. 어찌 보면 딱히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것이었지만 극단으로 치닫기만 했던 MB의 대결정책과 비교되면서 확인되는 일종의 신선함 같은 것일 터였다. 박근혜의 대북정책은 「신뢰와 평화의 한반도」였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고 정확히 명명했다. 박근혜의 대북정책관련 발언에는 곧바로 날랄 만한 것도 있었다.「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15공동성명, 10.4선언을 꿰뚫는 기본정신은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함께 평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 지난 2월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 기념학술회의에서 했던 발언이다. 발언의 요지는 보수진영이 「종북세력」이라고 일컫는 자주통일진영이 북에 대해 갖고 있는 일반적인 견해와 입장에 정확히 일치한다. 7.4공동성명에 명시되어 있는 「민족대단결」이라는 관점에서 갖는 대북관의 핵심내용인 것이다. 아이러니이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박근혜는 자주통일진영의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해 국가관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박근혜의 발언은 약간만 왜곡시키고 여기에 박근혜가 지난시기 방북과정에서 보여 준 행보를 연동, 결부시키게 되면 「종북」으로 공격받을 수 있는 충분한 소재가 될 수도 있다. 박근혜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보수 일각으로부터 즉각적으로 문제제기를 받았다. 북에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으며 「안보포퓰리즘」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용갑 전의원은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6.15공동선언의 2항은 한국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고 10.4선언은 현실적으로 이행하기 힘든 합의라고」일찌감치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다. 박근혜의 대북정책은 박캠프에서 외교, 안보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윤병세 정책위원이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병세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수석을 지낸 인물이다.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선거 전략일 뿐이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등은 그러나 새삼스러운 것이 전혀 아니다. 대강만 훑어봐도 이는 쉽게 확인된다. 민주당이나 진보당에 가면 기본에 속하는 그저 상식 범주에 불과한 것들이다. 박근혜의 정책들이 약간이나마 도드라져 보일 때란 오직 가진 자들을 위한 것이 경제정책의 다였고 오직 반북만이 대북정책의 전부였던 MB정치와 비교했을 때뿐이다. 박근혜의 정책들이 갖고 있는 가치가 지체에서 나오는 고유한 것이 아니라 오직 반MB성에서 매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MB성과 관련해서 지난 총선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지난 총선은 반MB정서를 이용하여 승리를 그저 주워가려고 했던 야권연대의 MB심판론은 패배했고 MB와 박근혜는 다르다는 MB차별론은 박근혜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다. 반MB가 야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박근혜에게 유리한 정치기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총선이었다.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반MB성은 박근혜가 대선에서까지도 반MB를 여전히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케 하고 있다. 17대 대선때 MB가 승리할 수 있었던 데에, 정동영 후보를 노무현과 다를 것이 없다면서 ‘반노무현’에 가두어두고 노무현의 실정을 심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것은 MB밖에 없다는, 반노무현 프레임이 주효했다는 것을 박근혜는 잘 알고 있다. 박근혜가 알고 있는 것은 다시 말한다면, 반MB가 보수진영이나 민주개혁진영의 중심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지만 그 양 진영에 포함되지 않은 중간층에는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정책들이 반MB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박근혜 정책이 갖고 있는 본질적 속성하나를 그대로 드러내 준다. 박근혜의 정책들이 반MB만을 담고 있다고 하는 것이 의미해주는 것은 박근혜의 정책들이 선거 전략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총선 때 오직 반MB에서 승리의 결정적 조건을 마련하려고 했던 야권연대의 오류를 답습하는 것일 수도 있다. 박근혜의 정책이 선거 전략으로서 겨냥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부동층을 포함한 중간층이다.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은 정통경제학에는 없는 개념이다. 사회정치학자들이나 쓰는 말이라고 이한구가 김종인에게 반발하면서 썼던 말은 따라서 옳다. 김종인과 이한구의 대립이 격화되면 김종인은 ‘좌파’라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판은 상당히 시끌벅적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김종인은 말할 것도 없고 이한구도 바라는 것이다. 종국적으로는 박근혜가 원하는 그림이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슈를 선점하고 있는 조건에서 경제민주화가 대선판에서 핵심쟁점으로 부각하는 것은 박근혜에게 정치공학적으로 유리한 작동이다. 무엇보다도 재벌개혁 심지어는 재벌해체까지도 주창하는 야권의 공세를 무력화시켜 놓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치공학적으로 박근혜의 보수 이미지를 희석시켜 중간층을 박근혜쪽으로 유인하는 선거 전략으로 결국 가능하게 될 것이다. 김종인은 박근혜에게 단순히 경제브레인이 더 이상 아니다. 김종인이 보여 왔던 그동안의 행보들은 김종인이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고도의 지략을 겸비한 능란한 정치인’임을 증거해 주고 있다. 한나라당이 좌초해 새누리당으로 바꿔질 무렵 당 비대위원으로 김종인이 보여 주었던 정치력에서도 그것은 또렷이 확인된다. 김종인은 당헌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당내는 물론 보수진영에서 몰아친 반발은 만만찮았다. 김종인은 눈 하나 꿈뻑하지 않았다. 총선 결과는 박근혜가 중도층으로까지 영토를 확장시켜내는 중도이미지 확장에 성공했음을 보여주었다. 박근혜 캠프는 박근혜 이미지를 민주개혁진영으로까지 넓혀 낼 수 있는 또 하나의 정치기재를 보유하고 있다. 이상돈 위원이다. 이상돈 위원은 MB의 4대강 사업에 대한 공세적인 비판은 물론 천안함사건 까지도 과학의 영역에서 공격적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역량이다. 4대강문제, 천안함문제 등 진보적 의제를 박근혜가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지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윤병세가 준비하고 있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역시 대북화해 제스처를 내보임으로써 중간층에 위치하고 있는 대선 표들을 유인할 수 있는 그럴 듯한 정치기재이다.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는 시대정신도 국가비전도 없다.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그러나 선거 전략일 뿐 정책으로서는 뚜렷한 문제나 한계를 갖고 있는 것들이다. 꼼꼼히 살펴보면 그 내용이 빈약하기 이를 데가 없으며 온갖 허점투성이이거나 추상적이기까지 하다. 대표적으로 「경제민주화」가 그렇다. 박근혜는 재벌들의 이후 신규 순환출자에 대해서만 규제하겠다고 했을 뿐 기존의 순환출자에 대해서는 눈을 감겠다고 했다. 출자총액제한제나 재벌세 등에 대해서도 실효성을 문제 삼아 반대했다. 경제민주화는 특히 재벌위주로 짜여 져 있는 지금의 경제시스템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재벌의 지배구조에서 잘못된 것을 개선하고 독점적 탐욕성에 대해서는 규제하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다. 기존의 순환출자를 놔두고 신규출자를 막는 것만으로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꽁꽁 언 발에 오줌을 누어주고서는 ‘동상은 안 걸릴 것이야’라고 말하는 격이다.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가 재벌들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종인이 들고 있는 조준경 안에는 정작, 재벌은 없는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이 없는데다가 그 전망까지도 전혀 안 보이는 것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런저런 말의 성찬이거나 아니면 단촐 할 듯이 보이는 추상은 언제라도 완벽한 허구일 뿐이다. 박근혜가 출마하면서 행사장에 나온 사람들과 노래 「행복을 주는 사람」을 불렀지만 「경제민주화」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이렇듯, 그 어떤 시대정신도 국가비전도 담지 못할 정도로 빈약한 것이었다. 일부 보수 언론에서 「신보수주의비전」이라는 그럴듯한 표현을 동원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정책의 빈약성을 감추고 겉만이라도 화려한 포장지로 둘러싸는 것에 다름 아니다. 야권의 대권주자들이 ‘사이비’, ‘짝퉁’, ‘화장’ 등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쏟아 내놓는 것이 단순히 정치공세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이다.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유력한 정치인이 출마하면서 시대정신과 국가비전을 담은 집권전략이 아니라 선거를 맞아 어떻게 해서든지 선거에만 이기면 된다는 선거 전략을 내놓은 것은 국민 개기인의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서 한국 정치의 불행이다. 새정치를 열망하는 자주적 대중들은 정치의 불행을 거세하게 될 것이다. (2012. 7. 18 청계산에서 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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