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국가정보원입니다

<작은책> 7월호에 실린 글 이병진 교수 기사입력: 2012/09/30 [11:29] 최종편집: ⓒ 자주민보 [2009년 9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 구금된 이병진 교수는 지난 6월부터 월간 <작은책>에 살아온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공부하던 중 이북의 형제들을 만나고, 이북을 더 알고 싶어 평양을 방문하게 된 이야기, 국내로 돌아와 강의 활동을 하던 중 체포된 과정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병진 교수의 글을 통하여 민족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을 열망하는 일이 과연 국가보안법으로 탄압받을 일인지 짚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병진 교수와 월간 <작은책>의 양해를 얻어 전재합니다._ 편집자] 내일이 막내 동생 결혼식이다. 오전 일찍 자동차의 앞 유리를 교체하려고 자동차를 공업사에 맡겼다.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들이 준비를 하다 보니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자동차를 찾으러 갔다. 반짝반짝 새 유리창이 빛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흘러 나온 이 전선은 무엇이죠?” 나는 운전석 햇볕 가리개를 비집고 흘러내린 전선을 가리켰다. “글쎄요. 앞 유리창을 때어 내니 나오던데 안테나 선 아닙니까?”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나도 별일 아니라 생각했다. 대전 집에 조금이라도 일찍 가려 하니 마음만 분주하다. 아이들은 소풍 가는 것처럼 신나서 야단이다. 다행히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아서 늦지 않게 도착했다. 나는 자동차를 점검하려고 이웃에 있는 외사촌 동생의 카센터에 갔다. 이곳에 오면 늘 엔진 오일, 브레이크 오일, 타이어, 냉각수 등을 점검한다. 외사촌 동생은 자동차공학과를 졸업한 자동차 전문가이다. “형, 지원이와 인규도 컸고 가족들의 안전을 생각해서 자동차를 바꾸지 그래?” “그래야겠어. 영민아! 오늘 오전에 앞 유리창을 교체했는데 전선이 있었어. 급히 오느라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는데 네가 확인 좀 해 봐.” 그렇게 외사촌 동생에게 부탁하고 결혼식 일정을 챙기고 있었다. 잠시 후 외사촌 동생이 다급히 부른다. “형! 이거 이상한데. 전선을 따라가 보니까 오디오 뒤쪽에서 이런 게 나왔어.” 외사촌 동생이 담뱃갑 크기의 도청 장치를 건넨다. ‘Roland’사의 최고급 녹음기였다. “왜 형의 자동차에서 도청 장치가 나오지?”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제대로 답도 못 했다. “누군가 형을 감시하거나 도청하려는 것 같은데 주변에 그럴 만한 사람 없어?” “동양건설산업을 상대로 590억 원 사기 및 배임으로 형사 고발을 했거든. 건설사에서 했나?” “그렇게 큰 금액이면 그럴 수도 있겠네. 아무튼 형 조심해야겠어.” “그래, 경찰서에 신고하고 누가 이런 못된 짓을 했는지 범인을 꼭 잡아야겠다.” 동양건설산업은 동탄 신도시 파라곤 주상복합 아파트 시공사다. 2008년 시행사와 2490억 원 도급 계약을 맺고는 계약자들 몰래 계약서를 1900억 원으로 바꾸었다. 자그마치 590억 원이라는 눈먼 돈이 발생했다. 이런 사실이 동양건설산업이 주식시장에 공시한 내용에 의해 드러났다. 이를 사기와 배임으로 형사 고발을 했고, 입주자 대표회 법무팀장인 내가 재판을 책임지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 화성 동부 경찰서에서 정년퇴임하고 오산대에 강의 나오는 서장님께 전화를 했다. 자초지종을 들으신 서장님도 놀란다. 2009년 8월 16일, 나는 서장님의 소개로 과학수사팀의 표상렬 팀장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서장님께 전화 받았습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게 자동차에서 나온 도청 장치입니다. 복잡해서 정확히 무슨 장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진공팩에 담긴 도청장치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표 팀장은 내 차를 공업사로 가지고 갔다. 기다리고 있던 공장장이 자동차를 조심스럽게 해체했다. 그리고는 오디오 배선을 끌어다 전원으로 사용했고 차량 깊숙이 장치를 설치한 것으로 보아 굉장한 전문가의 소행이라고 단정했다. 아쉽게도 지문이나 참고할 만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 경찰서로 돌아와 표 팀장과 앞으로 일을 의논하는데 그가 말했다. “교수님, 혹시 아파트 감시 카메라(CCTV) 살펴보셨나요? 혹시 모르니까 확인해 보세요. 외국 출장 가시면서 차를 오랫동안 세워 두었던 시기를 중심으로 살펴 보시죠.”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에게 사건을 설명하고 협조를 받았다. 자료의 양이 너무나 방대하여 하루 종일 살펴보았는데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다음 날에 갔더니 직원이 간단한 조작법을 알려 주고는 직접 찾아보라고 한다. 수십 대의 모니터를 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스스로도 범인을 꼭 잡겠다는 의지가 점점 약해진다. 그래도 하는 데까지 해 보겠노라 다짐했다. 녹화 내용을 살펴보는 3일째 되는 날이다. 2009년 5월 27일 오전 11시경에 자동차에서 무슨 물체가 ‘휙’하고 지나가는 장면이 잡혔다. 급히 관리사무소 직원을 찾았다.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던 그도 뭔가 있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와 함께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가서 카메라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감시 카메라 설치 설계 도면을 펴 놓고 그 시간대의 녹화된 내용을 샅샅이 뒤졌다. 주차장의 실제 모습과 설계도에 표시된 카메라 촬영 위치와 방향을 수십 번을 보고 나니 차량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었다. 카메라에는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는데 움직임을 감지할 때 녹화가 되고 1분 정도 움직임이 없으면 정지된다. 범인은 이런 카메라의 특성과 촬영 방향을 계산하여 우리 동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를 피할 수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자동차에 들어가는 장면이 녹화한 것은 멀리 있던 카메라였다. 그 앞을 청소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우연히 찍힌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멀어서 그것만으로는 용의자를 알 수 없었다. 나는 카메라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사람이 아닌 차량의 이동 경로를 추적했다. 5월 27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지하 주차장을 드나든 차량의 이동 경로를 확인했다. 그랬더니 필요 이상으로 왔다갔다 하며 복잡하게 주차하는 차량들과 내 차가 세워진 곳을 지나치며 그냥 나가는 차량들을 찾았다. 이 차량의 동선을 집중적으로 추적하여 당시 상황을 잡아 냈다. 그대로 자동차를 이동하니 카메라에 찍힌 장면과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이렇게 며칠 동안 감시 카메라를 분석하여 은색 소나타 차량의 자동차 번호, 그리고 모두 세 사람의 얼굴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다. 표 팀장은 차종과 번호를 확보했고, 용의자들의 사진까지 있으니 수사가 빠르게 될 거라고 좋아했다. 수사 결과가 나오면 알려 달라고 부탁을 드리고 입주자협의회에서 선임한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 그런데 그가 흥신소의 소행치고는 너무나 치밀하다며 국정원에서 했을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교수님, 혹시 국정원에서 관심 가질 만한 일 하신 것 없으세요?” 그의 질문에 인도에서 유학 시절에 이북을 두 차례 다녀왔고, 지난 3월에 캄보디아에서 북쪽 사람을 만났던 일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방북은 오래 전 일이고 북쪽 사람을 만난 것은 이명박 정부와 대화를 하라고 권유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6월에도 국정원 대구지부의 직원이 해외 지역 연구 프로젝트 사업이 궁금하다고 도와주고 싶다고 만나자고 한 일이 있었다. 생각을 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진다. 며칠이 지난 후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내 사건은 과학수사팀에서 수사2팀으로 옮겨졌단다. 아주 의욕적이고 젊은 담당 형사가 차량 조회 결과 차량 소유주는 ‘세기문화사’라고 알려 주었다. 2009년 9월 1일 아침 9시, 담당 형사와 함께 화성경찰서의 9인승 승합차를 타고 주소지로 향했다. “변호사는 국정원일 수도 있다고 하는데 세기문화사를 모르시나요?” “저도 언뜻 그런 말은 들었지만 확실한 건 모릅니다. 직접 가서 보면 알게 되겠지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1시간 정도 이동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곳은 국정원 정문 근처다. 내비게이션은 국정원 안을 가리키고 있다. 잠시 후 담당 형사는 팀장과 통화를 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용의 차량이 국정원 소속인지, 사진의 인물들이 국정원 직원들이 맞는지 확인해 보라고 했단다. 차량을 정문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누군가 차량을 세운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직원입니다.” 차량의 내부를 살펴보더니 들어가라는 손짓을 한다. 우리는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갔다. 마침내 도착한 최종 목적지는 거대한 온실 화원이었다. 우리는 차량의 실제 소유자를 찾기 위해 온 길을 되돌아가서 자동차들이 많은 사무실에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저는 화성동부경찰서 형사입니다. 차량을 확인하기 위해서 방문했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사무실 직원들이 모두 놀라 우리를 주목했다. 어디선가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왔고, 전화하고 무전하며 분주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우리는 그쪽 직원의 안내에 따라 민원실로 갔다. 민원실은 공사 중이라 무척 어수선했다. 담당 형사는 나보고 이곳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후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왔다. “여기는 국가정보원입니다. 알고 오셨나요?” “아니오! 저희는 내비게이션의 주소를 보고 왔는데요.” 나는 세기문화사가 국가정보원이라는 사실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 다음 호에 이어집니다. 출처 : [작은책 http://www.s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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