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경협의 확대는 남북관계에 득일까?
<칼럼> ‘지속가능한 대북정책’과 ‘신 한반도평화 프로세스’가 필요한 시점- 정창현
2012년 11월 05일 (월) 02:08:53 정창현 tongil@tongilnews.com
정창현 (<민족21> 대표, 국민대 겸임교수)
지난 8월 13~18일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중국을 방문했다. 당시 장성택 부장의 방중은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뒤 중국을 방문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장 부장의 방중을 계기로 북한은 중국과 황금평.위화도, 나선특구의 공동 개발을 위한 2개의 관리위원회를 출범하기로 합의했지만, 국내언론과 전문가들은 장 부장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부정적 평가로 일관했다. 일부에서는 장 부장이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폄하했다. 그러나 그 후 양국의 협력사업이 하나 둘씩 가시화되면서 이러한 평가는 반전됐다.
무엇보다 북한의 경제특구에 대한 중국의 투자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 나선과 황금평 경제특구 관리위원회의 청사 착공식이 열렸고, 지린(吉林)성의 창춘(長春), 푸젠(福建)성 샤먼(廈門), 베이징(北京),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 등지에서 황금평.나진 투자설명회 또는 무역박람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특히 10월 중순 중국 단둥시에서 열린 북중 경제.무역.문화박람회에서는 북중 경제무역프로젝트 체결식이 열려 모두 72개 건에 대한 협력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체결금액은 12억 6천만 달러에 달했다.
북중은 북한에 대한 사회기반시설 투자를 위해 투자기금도 조성하기로 했다. 북중은 지난 9월 7일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열린 제8회 지린.동북아투자무역박람회의 ‘조선(북한)의 날 및 중.조무역투자프로젝트상담회’에서 이같은 사실을 처음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발표자료에 따르면 북중은 북한의 기반설비 건설과 중대 합작항목의 투자 및 융자를 담당할 ‘쌍방공동성립개발투자집단’(조선투자전문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 2주 후에 중국언론은 중국 기업들이 30억 위안(한화 5,314억원) 규모의 대북투자기금을 조성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북중 양측은 30억 위안을 목표로 하되 1단계로 10억 위안(1,771억원)을 조성해 광업, 부동산, 항만, 민생 등 북한이 당장 필요로 하는 분야에 우선 투자하기로 했다.
중국과 북한은 경제특구만 아니라 농업, 관광, 언론, 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협력의 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10월 4일 평양에서 ‘농업부문 협조에 관한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북중무역 규모도 지난해에 비해 15%정도 늘었고, 올해 중국의 북한관광객도 15만명을 넘어섰다.
장성택 부장의 방중 때 합의한대로 “(북중) 정부가 지방정부들과 기업들을 지지하고 밀어주며” 대북투자와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고 있고 있는 것이다. ‘기업 주도’ 원칙을 강조하면서 중국 정부가 소극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관측과는 다른 양상이다. 이와 관련 중국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김철 교수는 “북중이 경제무역지대를 공동 개발하는 것을 넘어 한 차원 높은 새로운 협력관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북중경협 확대를 기반으로 북한은 평양시를 중심으로 대규모 건설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내부 경제관리개선과 대외개방을 점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김철 교수는 “현재의 북한은 자립민족경제를 목표로 최첨단 기술과 지식경제강국을 이루기 위해 대외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며 “수입과 내수 중심의 산업구조를 수출 위주로 전환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양적,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 북중경협은 지난 4년 넘게 중단된 남북관계를 빠르게 복원하려는 차기 한국 정부에 큰 고민거리를 안겨줄 것으로 예상된다. 유력한 대선 후보 모두가 집권하면 남북 경제협력에 나서고,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은 녹녹치 않다. 북중경협은 북한이 대외개방으로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요인이지만, 북한의 남북경협에 대한 수요를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북중경협의 확대, 김정은 정권의 안착, 북한의 이명박 정부 5년 경험 등 남북관계의 변화된 조건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대북정책을 모색해야 할 것을 우리 정부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북한을 대화에 나오도록 할 수 있는 지렛대가 마땅치 않다. 금강산관광 재개, 대규모 쌀과 비료 지원 제안에 북한이 호응해올지 불투명해졌다. 북중경협의 확대로 한국 정부의 경제적 유인책은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4월 15일 첫 공개연설에서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고 나갈 것이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하여 책임적이고도 인내성 있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지만,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전면 이행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진 NLL공방에서 알 수 있듯이 10.4선언의 핵심 합의사항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구상은 단기간에 추진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정부 차원이든, 기업차원이든 대규모 대북투자에 선뜻 나서기도 어렵다. 과거와 달리 ‘경제’를 앞세워 남북대화를 이끌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도 새롭게 대남라인을 정비하고, 내부 논의를 거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북중경협과 교류가 확대되는 반면 남북관계가 파탄나면서 북한의 대남인력도 해외부문으로 대거 이동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까지 남북대화를 주도했던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주요 간부들은 일선에서 물러났다. 2010년 김정은 후계자 등장이후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대남라인도 젊은 세대로 물갈이가 이뤄졌다. 남북간에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식, 비공식라인은 모두 무너졌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한국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대화복원을 위해서는 준비기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셋째, 미국과 한국의 정권교체이후 한미간에 조율된 대북정책이 어느 시점에, 어떤 내용으로 나올지도 남북대화에 큰 영향을 미칠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2009년 7월이후 북한문제와 북핵문제를 분리해 대응한다는 방침이 확고하게 서 있지만 한국과 미국은 북핵문제가 다시 현안으로 등장할 경우 내부 사정으로 대북정책에서 혼선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도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때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게 남북대화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를 무력화시켰기 때문에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경우 수용하기 쉽지 않은 제안을 통해 미국과 한국을 시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한국의 차기 정부는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대북정책’과 새로운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정착시키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2013년은 중국을 축으로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정세 속에서 평화번영의 남북관계와 ‘통일지향적 평화체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확고한 철학과 비전을 가진 지도력과 초당적 노력, 그리고 국민적 합의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차기 정부는 빠른 시일 안에 대북특사를 공식적으로 파견해 금강산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 손쉬운 사안부터 해결하고, 안정적인 남북대화의 틀을 복원해야 한다. 또한 북중경협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해 남북경협 활성화와 함께 남과 북, 중국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3자 경제협력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언제든지 남북관계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북핵와 미사일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클린턴 행정부에서 추진된 ‘페리 프로세스’와 유사한 포괄적인 대북접근법을 빠른 시일 내에 미국과 협의해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창현 (국민대 겸임교수)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한신대, 방송대, 상명대 등에서 강의했다. 1994년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통일문화연구소)에 전문기자로 입사해 10년간 주로 남북 현대사, 남북관계 분야 기획연재를 담당했다.
KBS "현대사 다큐멘터리 극장",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등의 방송프로그램에 자문으로 활동했으며, 통일부.국가기록원 자문위원과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역사연구회에서 활동하며 『한국현대사』(1~4),『한국역사』,『한국역사입문』등의 집필작업에 참여했다.
저서로 『곁에서 본 김정일』,『인물로 본 북한현대사』,『변화하는 북한 변하지 않는 북한』,『북한사회 깊이 읽기』,『북녁의 사회와 생활』,『CEO of DPRK 김정일』,『KIM JONG IL of NORTH KOREA』,『남북현대사의 쟁점과 시각』 등을 출간했다.
공저로 『발굴자료로 쓴 한국현대사』,『실록 박정희』,『WWW.한국현대사.com』,『남북정상회담600일』,『朝鮮半島のいちばん長い日』, 『박병엽증언록1-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박병엽증언록2-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등이 있다.
현재 (주)이제이컨설팅 대표, 국민대 교양과정부 겸임교수,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집행위원, 경실련 통일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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