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호석의 진보담론 <150>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02/23 [11:24]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1> 필리핀 바탄반도에 고립되어 혹심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던 미국-필리핀연합군 76,000명은 1942년 4월 9일 일본군에게 집단투항하였다. 미국극동군총사령관 맥아더가 오스트레일리아로 도망친 뒤로 마지막 지탱점인 커리지도어 지하기지에 남아서 승산 없는 전투를 지휘하던 미국-필리핀연합군 사령관 조너던 웨인롸이트도 1942년 5월 6일 휘하병력 13,000명과 함께 일본군에게 집단투항하였다. 필리핀에 주둔하던 미군군은 '세계 최강'이 아니라 오합지졸이었다. © 자주민보 오합지졸로 전락한 미육군 제5, 제13극동공군과 미해군 아시아함대 미국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욕스런 역사 가운데는 1941년 12월부터 1942년 5월까지 필리핀과 하와이에서 일본과 격돌하며 겪었던 패전경험도 있다. <사진 1> 당시 일본군은 필리핀과 하와이를 선제공격하여 그 두 지역에 주둔하던 미국군을 거의 궤멸시켰다. 당시 일본은 선제공격으로 대승을 거두었으나, 군사전략적 한계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는 바람에 미국으로부터 반격을 받고 결국 패망하였다. 1941년 12월부터 1945년 8월까지 지속된 태평양전쟁은 미국의 반격을 받은 일본이 3년 9개월 만에 미국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끝났던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격돌한 미국과 일본은 명실상부한 제국주의국가들이었다. 한국에서는 일본만 제국주의국가였다고 생각하고, 당시 미국은 제국주의국가가 아니었던 것처럼 생각하는데, 그것은 착오다. 명백하게도, 태평양전쟁은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영토확장을 위한 무력침공을 노리던 두 제국주의국가들이 충돌한 식민지쟁탈전이었다. 태평양전쟁의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조선을 침공하여 갑오농민전쟁(1894년)과 항일의병전쟁(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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