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록새록 단상 618] 한국정부의 작전권 무기한 이야을 보고
중국시민
기사입력: 2014/11/01 [19:17]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사진 2> 2014년 10월 23일 미국 워싱턴 디씨에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이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를 진행하였다. 그 회의에서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장악, 행사하는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군 합참의장에게 반환하는 시점을 무기한 연기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것은 무기연기가 아니라 영구위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군사주권 포기로 한국군은 작전통제권을 영영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너무나 좋아하는 미국 국방장관과 추레해 보이는 한국 국방장관의 얼굴을 보니...
10월의 최대화제를 꼽는다면 아마 24일에 터져나온 전작권환수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소식이 아닐까 싶다. 이 문제의 걸린 고리가 무엇일까? 자체로 사색도 해보고 질문에 대답도 하였는데 여기서 정리하여 단상답지 않은 꽨 긴 글을 쓴다.
돈 때문인가?
전작권 반환이 연기됐다는 소식이 나오기 무섭게, 한국이 스스로 방어능력을 갖추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본으로 17조원이 필요하고 체계를 갖추려면 50조원이 든다는 것이다. 반대로 풀이하면 전작권을 미군에 계속 맡기는 경우 그만한 돈이 절약된다는 소리다. 얼핏 보면 엄청난 숫자임이 틀림없다만 지난 정부시기 4대강을 살리는지 죽이는지 하는 사업에 22조원이 들어갔다니까 17조원도 50조원도 결코 한국이 부담할 수 없는 비용이 아님은 분명하다.
다시 찾아보니 요즘 한국의 연간국방예산은 36조원 정도란다. 그러면 초보적으로 방어능력을 갖추는데 필요한 돈은 연간예산의 절반 좀 못 미치고 체계구축에 필요한 돈은 1배반에 좀 못 미친다. 국방예산의 장성추세를 감안하면 역시 결코 넘볼 수 없는 금액이 아니다. 10년 정도에 갈라 넣는다면 더구나 별거 아니다. 한국은 늘 경제규모나 국방역량이 세계 의 앞자리임을 자랑하는데 그놈의 “천문학적 비용”이 공포된 한국경제규모에 비기면 얼마 되지 않거니와 또 그런 돈을 줄인대서 민생수준이 올라간다는 법은 없다. 아무래도 돈 때문인 것 같지는 않다.
한국군은 세계 12위라는 보도를 보았다. 36조원을 대충 환산하니 360억 달러가 나왔다. 그러면 이게 세계 국방비 비교에서 어느 위치를 차지하나 조사해보았다. 인터넷에 오른 중국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2014년 국방예산 1~10 순위와 금액은 다음과 같았다.
1. 미국, 5521억 달러
2. 중국 8082억 위안 인민폐, 약 1323억 달러
3. 영국 596억 달러
4. 프랑스 593억 달러
5. 러시아 587억 달러
6. 일본 545억 달러
7. 사우디아라비아 452억 달러
8. 도이췰란드(독일) 452억 달러
9. 인디아(인도) 413억 달러
10. 이탈리아 370억 달러
중국의 국방비는 지난해에 비해 12% 올랐는데 이후에도 오를 추세이다. 근년에 장성폭이 크기는 하다만, 개혁개방초기에 덩샤오핑이 군대는 참고 기다리라면서 국방예산을 줄였던 걸(실질적인 개혁개방조치들이 실효를 보기 전에 이런 돈돌려쓰기방식으로 백성생활의 향상이 이뤄졌고, 반면에 군대가 스스로 밀수나 장사를 하여 돈을 버는 바람에 이미지와 사기에 오랜 악영향을 끼쳤다)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된다. 더욱이 물가상승에 따라 군인월급을 많이 올린 상황이라 인건비가 엄청 나가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10위권을 잘 살펴보면 미국은 현격한 차이로 1위를 달리고, 중국은 미국보다는 적으나 다른 나라들보다는 훨씬 많은 액수로 2위를 차지했다. 외부에서는 예전부터 중국이 공개한 국방예산액수를 믿지 않으면서 감춰진 비용이 있다고 의심하는데, 아무리 숨겨진 비용을 부풀리더라도 미국을 앞지를 정도는 못될 것이다. 그리고 3위부터 10위까지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바, 인구숫자와 비교할 때 러시아나 인디아의 인구당 국방비용이 특별히 적은 게 특징이다. 한국의 국방비가 360억 달러에 상당하다면 이탈리아의 370억 달러와 어슷비슷하니까 11위나 12위 쯤 될 테니 세계 12위라는 국방력수준 명단과도 어울리는 셈이다.
연간국방비용 1~10위 권 국가들의 군대작전지휘권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자기 나라에 있다. 지금 200개 정도의 국가가 있으니까 순위가 한국보다 낮은 나라들이 많지만, 군대가 없는 나라들을 내놓고는 전작권이 남에게 있는 사례를 필자는 알지 못한다. 이 역시 돈이 결코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한국이 주적으로 삼는 조선(북한)의 연간 국방비용은 외부에서 1조원으로 추산한다. 북의 수십 배 되는 액수를 쓰면서도 북보다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질문이 나오면 단순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온단다. 북 국방비의 투명성여부, 토지의 국유화로 토지구입비용이 없는 점, 군인들의 인건비가 싼 점(어떤 이들은 단순하게 환산해서 대북삐라에 끼워보내는 1달러가 인민군 영급 장교의 월급보다 많다고 주장한다. 실지 구매력으로는 그런 계산이 맞지 않을 것이다) 등등이 이유로 나오는데, 그러루한 이유를 다 감안하더라도 1조원이 몇 십 조원으로 둔갑하지는 못한다. 그런데도 북은 자주국방을 실현해온다. 누군가는 한국이 미국과 서방에서 돈을 주고 무기들을 사와야하는데 비해, 북한은 중국과 소련에서 무상원조를 받았기에 국방비용이 적다고 풀이하던데, 소련이 해체된 지 20년 지난 오늘 그런 타령을 한다는 게 우습고, 조선인민군이 근년에 보여주는 수많은 무기들 가운데 중국이나 소련에서 거저 준 무기들을 몇 점이라도 꼽아서 내놓는다면 조금이나마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헌데 증거 없이 그저 덮어놓고 추론이다.
남이 북보다 수십 배 되는 비용을 쓰면서도 북보다 군사력이 약하다면 가능한 해석은 하나뿐이다. 필요한 데로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북의 장령들은 사격장에 엎드려 총을 곧잘 쏘는데 비해, 남의 장성들은 무슨 경계태세기간에도 골프를 치러 다녀 말썽을 일으키니, 군용 골프장이 너무 많음을 말해주지 않을까? 또 “통영”함에 장착한 무슨 미국장비가 1970년대 기술을 쓴 2억 원짜리건만 국방부가 46억 원을 주고 사다가 써먹지도 못하는 현상이 만에 하나 보편적이라면 36조원의 실질적 효과는 1.56조원에 맞먹게 된다. 이와 같이 거품을 빼고 인건비도 빼면 결국 북보다 훨씬 적은 돈이 장비들에 들어가는 셈이다. “군피아”를 청산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하더라도 장비의 불량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의 어떤 사람들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가 북에 퍼주기를 했기에 북이 살아남았고 핵무기와 미사일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아무리 많이 떠드는 금액도 몇 억 달러에 지나지 않던데 북이 고까짓 돈으로 핵과 미사일을 보유했다면, 투자수익률이 세계 최고가 아니겠는가. 그런 기적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누군가 알아내서 그런 사람을 “탈북”시켜 한국에 인입하면 2억 원을 갖고 46억 원 효과를 낼 수 있겠다만, 한국과 외국에서 활약하는 “탈북자”들은 왜 그처럼 수준이 떨어지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또 한국에서는 군인들도 백성들도 한두 가지 첨단무기 보유와 자랑에 급급해하던데, 실질적으로 전투력을 갖추는 건 첨단무기가 아니라 여러 가지 무기들의 제작이나 정비, 보급 등으로 이뤄진 시스템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조선은 좋던 궂던(대규모실전의 검열을 받지 못했으므로 조선의 군사력이 세계최첨단이고 미국을 까맣게 앞질렀다는 설에 물음표를 유지한다) 수십 년 째 그런 시스템을 운용해오고, 한국은 이렇다 할 시스템이 없이 돌려막기경향이 강하다. 예컨대 서해5도를 강화한다고 군사분계선에서 대포들을 빼내갔다는 식. 어제(10월 30일) 한국의 첫 국산전투기 FA50이 첫 출격을 하면서 대통령이 비행기에 올라 사진이랑 찍었고 어떤 기자는 그 비행기에 북한이 벌벌 떤다고 상상력을 발휘했던데, 북에서 그 비행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필자가 알 수 없다만, 미국이 자랑하고 실전경력도 쌓은 고성능전투기들에 떨지 않았던 조선사람들이 햇병아리 수준의 한국전투기에 겁을 먹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 중국의 군사애호자들은 한국이 일찍 소문낸 그런 전투기(그보다 앞서서는 훈련기)가 중국의 어느 국산비행기와 성능만 비기면 어떠어떤 장단점이 있다만,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결코 중국에 위협으로 되지는 못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결국에는 전쟁수행시스템으로 이야기가 번져가는 것이다. 한국이 무슨 외국산 비행기를 사다가 동아시아 최강이라는 식으로 자랑하는 걸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음을 여기서 지적하고 싶다.
의식 때문인가?
필자가 국방비용을 놓고 생각을 굴리면서 단상을 준비할 때, 전작권을 남의 나라에 맡기는 걸 중국에서는 보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중국은 헌법이 있는 국가이고 자주권을 강조해왔으니 만약 전작권환수의 무기한연기를 누가 결정한다면 당장 탄핵감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고민이 되었다. 완전히 가상으로 이뤄진 질문인데, 첫째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사람(공민과 미성년자들을 포함해서)들은 전작권을 남에게 맡긴다는 걸 이해하기 어려워하니 중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하리라 짐작하기 어렵고 둘째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탄핵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기 때문이었다. 전작권을 남에게 준다는 건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고 누가 그따위 소리를 꺼내면 정신병원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높겠다.
그러면 역사적으로는 어떠한가? 고대사는 젖혀놓고 필자가 비교적 익숙한 현대사를 돌이켜보니 한국과의 비교과 이뤄졌다. 조금 따분하더라도 중국현대사의 몇 대목을 설명해야겠다.
1911년 청나라가 망한 다음 중화민국이 생겨났으나 1950년대 초반까지 중국의 많은 지역들은 줄곧 전란에 휩싸였다. 수많은 군벌과 토비들이 일어났다가 망했고 수많은 당파들이 이데올리기나 이익을 갖고 다투다가 결국 중국공산당이 주도하여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면서 평화가 차차 깃들었는데, 3~40년 전란 기간에 작전지휘권이라는 걸 지금 한국처럼 평시작전지휘권과 전시작전지휘권으로 세분하지 않았다만, 지휘권이 완전히 남에게 넘어간 사례를 필자는 하나만 안다. 항일전쟁 중 일본의 중국본토침략기간(1937~19450에 여기저기 이른바 “자치정부”들을 세웠고 나중에는 중국국민당 부주석 왕징워이(汪精卫왕정위, 1883~1944)를 부추겨서 “중화민국”정부를 만들어냈는데, 그런 “자치정부”들과 “중화민국”정부가 명의상 소유한 군대들의 지휘권이 일본군에 있었다는 것. 현대중국사에서 그런 부대를 몰밀어 “워이쥔(伪军, 괴뢰군)”이라고 하니 우리말로는 “괴뢰군”에 맞먹는다. 그 내력은 굉장히 복잡하여 토비, 지주무장, 원 군벌부대, 원 국민당부대, 원 경찰 등등인데, 전투력이 보편적으로 약했고 또 일제의 패망과 세력을 잃었다가 국민당부대에 흡수된 경우가 많다.
괴뢰정부들은 일본의 덕에 먹고 살아갔으니까 전작권 따위에 신경 쓸 여지조차 없었다. 마찬가지로 항일전쟁시기에 중국의 동남부에서 서남부로 물러간 쟝제스(蒋介石장개석, 1887~1975)정권은 전작권을 놓고 미국과 마찰을 일으켰으니 1944년의 “스틸웰사건”으로 절정을 이루었다. 역사학계에서는 1937년 7월 7일 루거우챠오사변(卢沟桥事变)의 발발로 전면적인 항일전쟁이 벌어졌다고 이야기하는데, 굉장히 희한한 현상이지만 4년이 지나도록 쟝제스 정권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1900년 8국연합군의 베이징침공으로 맺어진 불평등조약에 따라 일본에 줄 배상금을 꼬박꼬박 저축하면서 그 형편을 일본에 알렸다. 처음부터 서방나라들의 조정이나 일본과의 강화조약체결에 환상을 품었던 쟝제스 정권은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이 정식으로 일본과 싸운 뒤에야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했다.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한 미국은 중국에 대한 지원을 늘렸고 중국에 군인들을 꽤나 파견했는데, 죠셉 스틸웰(Joseph Stilwell, 1883~1946)은 중국주둔 미군사령관 겸 중국전구 참모장으로 부임해서 형편을 알아본 다음 쟝제스가 미국의 군수물자를 전쟁에 쓰지 않고 쌓아두고, 수십 만 대군으로 중국공산당의 근거지인 옌안(延安)을 봉쇄하며 쟝제스와 기타 군벌들의 군대가 전투력이 약한 걸 발견했다. 그의 희망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으니 하나는 적극적으로 항일하는 중국공산당부대에 미국의 지원물자를 주는 것, 하나는 자신과 미국의 이념에 맞는 부대들을 만들어내어 지휘하여 실전에서 이기는 것이었다. 첫째는 일본은 피부병정도로 중국공산당을 내장질환으로 여기는 쟝제스의 정치이익과 모순되었고, 둘째는 군대를 명줄로 간주하는 쟝제스의 강렬한 소유욕망과 모순되었다. 둘의 모순은 중국군대의 미얀마 원정에서 폭발했는바, 쟝제스의 원격조종으로 스틸웰의 지휘가 엉망이 되었고 패배한 부대들은 숱한 손실을 입으면서 인디아(인도)로 물러갔다. 거기서 미국식 무기를 받고 미국식 급양을 먹으면서 미국식 훈련을 받았는데, 뒷날 1940년대 후반의 내전에서 그 미국장비부대들이 국민당의 주력군으로 되었던 것이다. 스틸웰의 이상과 쟝제스의 욕망이 자꾸만 모순과 충돌을 빚어내면서 둘은 앞다투어 미국대통령 루즈벨트에게 신소했고, 루즈벨트는 스틸웰이 중국전구를 지휘하면 군사적으로 유리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정치가의 판단에 따라 쟝제스의 손을 들어주어 1944년에 스틸웰을 중국에서 철수시키고 웨드마이(Albert Coady Wedemeyer, 1897~ 1989)를 후임자로 보냈다. 후자는 반도의 현대사에서도 나오는 인물이다.
군사가 안목으로는 스틸웰이 쟝세스보다 훨씬 위이고 스틸웰의 주장대로 작전을 펼쳤더라면 다른 고장들에서는 밀려나기만 하던 말기의 구일본군이 1944년에 중원부터 서남지대까지 쭉 밀고나가는 기현상은 피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점은 눈이 바로 박힌 사람들이라면 모두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그가 정말 중국군대를 전면적으로 지휘했더라면 중국현대사에는 오점이 남았을 것이다. 오랜 전란기간에 여러 당파나 군벌들이 소련고문, 도이췰란드(독일)고문, 일본고문, 미국고문들을 청하여 조언을 들은 경우는 많으나, 작전지휘권을 통째로 내준 경우는 없었다. 중국공산당의 군대인 홍군 가운데서 주력부대가 1930년대 1년 남짓이 국제공산당이 파견한 군사고문으로 알려진 오토 브라운(Otto Braun 중국식 이름은 리더李德리덕, 1900~ 1974)의 이른바 조언을 따르다가 많은 손실을 보았는데 그런 때에도 중국공산당의 군사위원회와 지휘자들의 이름으로 명령서들이 내려갔다. 그 자신이 뒷날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소련유학파 교조주의자들이 정치술어들을 곧잘 외우는 반면 군사지식은 깜깜이어서 이른바 정규전을 잘 안다는 오토 브라운의 주장을 당권으로 내리먹였던 것이 비극의 원인이었다. 오토 브라운과 같은 시기에 홍군을 토벌하던 쟝제스 부대는 도이췰란드 고문의 조언을 받아들여 걸음걸음 토치카를 쌓으면서 포위환을 좁히는 전술을 썼는데, 그런 작전에서 지휘권은 당연히 쟝제스나 그 수하의 사령들에게 있었다.
중국공산당이 모셨던 외국고문은 하나뿐이었고, 그 주장의 비현실성이 증명된 다음, 중국실정을 잘 아는 마오쩌둥(毛泽东모택동, 1893~1976)과 본토파들의 싸움방식이 주효하여 결국 정권을 잡았던 것이다. 그에 비해 쟝제스나 다른 군벌들은 많은 고문들을 썼는데 거개가 스스로 부대를 모아서 키운 사람들이라 부대를 개인소유물로 보는 소유의식이 굉장히 강했고 고문의 말을 듣지 않을지언정 자신의 부대를 제일선에서 빼내곤 했다. 쟝제스가 무슨 주권의식 때문에 중국전구의 지휘권을 내놓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만, 결과적으로는 그가 스틸웰과의 다툼에서 이긴 것이 가뜩이나 수치가 많은 중국근현대사에 새로운 수치를 늘이지 않은 셈이다.
대륙에서 참패하고 타이완으로 달아난 뒤에 쟝제스는 구일본군인들을 모셔다가 고문으로 삼았고, 타이완에는 미군이 오랫동안 주둔했었다. 그러나 필자가 알기로는 작전지휘권은 쟝제스가 죽을 때까지 갖고 있었고 남들이 넘보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이 흥미를 갖고 키우려던 쑨리런(孙立人손립인, 1900~1990)에게 정변음모누명을 씌워서 연금하는 방식마저 마다하지 않으면서 철저히 작전권을 확보했던 것이다.
쟝제스와 이승만은 나이가 비슷하고 1950년대의 지위도 비슷했는데, 왜 작전지휘권에 대해서 판판 다른 결정을 지었을까? 필자는 그 원인을 의식의 차이에서 찾는다. 쟝제스가 군대를 틀어쥐고 군관학교들을 만들면서 실력을 키워갔기에 전투경험을 자랑하면서 스스로 군사가로 자부하고 또 군대를 자신의 소유물로 명줄로 간주했던 것과 달리, 이승만은 오랜 기간의 망명세월을 끝내고 반도로 돌아와 군대와 정권을 상당히 쉽게 얻었다. 그 사이 명쟁암투가 꽤나 있었으니 공짜로 얻었다면 너무 과장일지도 모른다만, 맨 손으로 창업한 사람들과는 비길 나위가 없다. 때문의 이승만의 군대소유권의식은 쟝제스나 중국의 다른 군벌들보다 훨씬 약할 수밖에 없고 군사지식도 빈약했다. 조선에서 나온 책 《화선천리》에서 전 국회의원의 묘사에 의하면 전쟁이 일어난 뒤 “비상국회”가 부랴부랴 소집되었는데, 북에서 전차를 몰고 나온다는 말이 나오니까, 이승만이 “”북에서 전차를 타고 나온다는데 전쟁에서도 전차를 쓰는가?“고 물어 장내에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폭소가 터졌단다. 옆에서 누군가 손시늉을 해가면서 그 전차는 거리를 달리는 전차가 아니라 전쟁에서 쓰는 ”땡크“라고 영어로 말해주니 이승만의 얼굴이 실룩거리면서 경련이 일어났다는가.
그 일화의 진실성을 필자가 확인할 수는 없다만, 이승만의 경력과 전쟁기간의 표현을 보더라도 군사지식의 부족은 분명하다. 소유권의식이 약하고 군사지식이 부족하며 군사경험조차 없으니까 오랜 망명생활에서 남에게 얹혀살던 습성대로 지휘권을 통째로 맥아더에게 넘겨줘버리지 않았겠는가. 스틸웰이 쟝제스와 다투고 싸웠어도 얻지 못했던 작전지휘권을 앉은 자리에서 받게 된 맥아더나 그 위의 트루멘은 이게 웬 떡이냐고 얼마나 좋아했겠는가!
수십 년 지난 지금에 와서는 외부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괴상한 현상은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전작권환수를 강조하는 반면에 군사지식과 군대경험이 가장 많은 장성들이 환수를 반대하는 것이다. 필자는 반대의 뿌리를 역시 소유권과 소유의식의 부재에서 나오는 책임감의 부이해하기 어려운 괴상한 현상은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전작권환수를 강조하는 반면에 군사지식과 군대경험이 족에서 찾고 싶다. 한국군 장성들이 언론에 대고 하는 말들을 음미해보면 필자가 접촉해본 사람들 가운데서 회사중층간부들과 제일 비슷하다. 책임은 위로나 아래로 밀면 그만이라 현상유지가 장땅이라는 식이다. 글쎄 “천안함”이 북의 어뢰공격으로 격침되어 숱한 장병들이 죽고 다쳤다고 주장하면서도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승진하는 자들만 나타나니 그게 말이 되는가?
능력 때문인가?
자아개발과정에서 곧잘 거드는 이야기가 있다.
전날 태국(타일랜드)사람들이 코끼리를 부려먹거나 서커스단에 넣어 재주를 부리도록 길을 들일 때 새끼코끼리의 다리에 굵은 쇠밧줄을 매어서 굵은 기둥에 매어놓는단다. 새끼코끼리는 아무리 버둥거려도 벗어나지 못하고 차차 그런 밧줄에 습관되어 버둥거릴 념을 하지 않는다. 나중에는 가는 끈으로 묶어도 가만히 서서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실례가 있을 테고 일리도 있는 이야기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코끼리의 주인이 가는 끈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비상사태 예컨대 화재라도 일어나서 코끼리가 놀라 날뛰기만 하면 끈도 밧줄도 끊어져버릴 테니 코끼리가 자신의 힘을 깨닫게 되지 않겠는가.
헌데 한국군은 비상사태들을 여러 번 겪었고 사후에는 늘 “승전”이라고 주장하면서도 단독작전은 한사코 거부한다. 비상사태를 겪을수록 자신의 실력보다는 무기력함을 통감했으리라는 결론이 나온다. 음모론대로 추측하면 미국이 사후에 늘 한국군 장성들에게 전에 숨겼던 극비정보들을 조금씩 흘려보여서 한국군이 미군을 떠나서는 꼼짝 못한다는 좌절감을 안겨주지 않았나?
일부 한국현역 및 전역군인들이 작전권환수를 반대하고 심지어 전작권환수토의마저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근거들 가운데 하나가 한국군이 미군의 정보수집능력에 많이 의존하기에 전작권을 가지면 작전에 차질이 빚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평소에 미군이 수집한 정보들을 한국군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런데 전시에 미군이 정보를 제때에 한국군에 알려준다는 보증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미군에게 지휘권을 맡기는 게 제일 편하다는 논리다. 사실 정도는 전작권을 환수한 뒤 미군이 정보를 제때에 제대로 주지 않을 수 없도록 형세를 만드는 것이리라.
당신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때에 우리에게 주지 않으면 우리는 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지면 결과적으로 당신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
고로 당신들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때에 제공해야 한다.
가장 좋기는 우리들의 정보수집능력을 적당히 키워주는 것이니라.
이렇게 밀고 나가는 거야 말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역발상논리가 아닌가. 한국 기업인, 상공인들은 대외교섭에서 밀어붙이기를 너무 많이 너무 지나치게 해서 욕을 먹을 지경인데 한국 군인들은 약해빠진 꼴이다. 기대사는 게 편하니까 생각도 하기 싫다는 건지 다투기 싫다는 건지 원. 세계군사력 12위라고 자랑하면서도 단독작전불가론을 펼치는 장성과 전직 장성들에게 어울리는 말인즉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일갈. http://blog.naver.com/purgue0930/120126952138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전작권환수를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에는 대전제가 하나나 두개 있다. 미국이 군사, 경제적으로 영원히 우위를 차지하고 미군이 영원히 한국에 주둔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은 전반적 경제구조가 삐걱거린지 여러 해 잘 되고 미국 정치인들이 봉행하는 실용주의로 하여 미군은 언제든지 어느 나라나 지역을 떠날 가능성을 지닌다. 필자가 언젠가 썼다시피 베트남에서처럼 전쟁에서 참패하여 물러나거나 필리핀에서처럼 화산폭발로 기지가 오염되어 물러나거나 중국 타이완에서처럼 조약에 따라 물러나거나 형식들은 여러 가지고, 이밖에 근년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떠난 방식도 꼽을 수 있다. 철군 후에 한동안 지나 미군이 다시 기웃거리는 경우들도 있다만 전날과 같은 지위와 영향력을 갖지 못함은 역사와 현실이 증명해준다. 미군이 반도에 머무르느냐 떠나느냐를 우선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전략에 따라 정한다면 다음으로는 미군이 감수할 수 있는 손실정도에 따라 정해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조선이 미군철수를 대해온 태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게 무의미한 노릇이 아니리라.
“미군 나가라”의 변화
필자는 조선이 수십 년 내놓은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같은 소재를 다룬 같지 않은 시기의 같지 않은 표현과 묘사들에 주의를 돌리곤 한다. 개인적 취미성향 때문에 문학예술에 중점을 두지만 정치나 다른 부분들도 가끔 비교해본다.
1950년에는 “미군 나가라!”가 대개는 한에 맺힌 구호에 그쳤다.
뒷날 차차 변화가 생기면서 1980~90년대에는 “미군이 나가야 한다”는 법리적 해석에 치중했다. 휴전협정에 따르면 외국군대들은 반도에서 철수해야 한다. 중국인민지원군은 1958년에 이미 북반부에서 철수했는데 “유엔군”의 명의로 외국군대들이 남반부에 남아있는 건 협정위반이다. “유엔군”의 명맥을 그나마 유지해주던 어느 나라(태국이라고 기억되는데) 197*년에 철수했기에 “유엔군”의 허울마저 쓸 수 없게 됐다. 그러니까 미군은 빨리 나가야 한다. 대체로 이런 식이 많았다.
근년에는 주장들이 또 변화를 가져왔으니 특히 금년에는 일찌감치 보따리를 싸고 집으로 가는 게 좋을 것이라는 식으로 나왔다. 조선식표현으로 말하면 “점잖은 충고”이다.
변화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반도의 남북에 필자의 견해를 찬성하지 않을 이들이 나올 수도 있겠다만, 아무튼 필자의 생각을 그대로 적는다.
구호에 그칠 때에는 군사적으로 열세에 처해 미군몰아내기가 실질적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법리적 해석에 치중할 때에는 군사적으로 대체로 평형을 이루었고 또 당시는 냉전상태었으므로 자기편을 지지하는 국제사회에 호소하여 미국을 적당히 수세로 몰아넣는 게 최선까지는 몰라도 차선의 선택은 되었다. 사실 그 평형기간에 조선의 경제가 급성장한 것은 세상이 잘 아는 바이다.
여러 가지 타격수단을 늘여감으로써 미군이 군사분계선 일대로부터 차차 남으로 물러가서 주둔하게 만든 이제 와서는 모종의 상대적인 우위를 즐기면서 물러가지 않으면 미국 본토까지 공격하겠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실력의 장성에 따라 미군을 대하는 태도가 갈수록 느긋해졌다고 평해야겠다. 그런 실력을 갖추기까지 돈이 얼마 들었는지는 필자가 알지 못한다. 허나 일단 자주국방의식을 갖고 노력해왔기에 실력을 키웠으리라는 것은 내용이 많이 알려진 중국의 사례들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근년에 조선에 많은 투자를 하고 이탈리아 경제인들도 조선에 투자를 하고 싶다는 보도를 보면서 반도의 남반부 일부 사람들이 바라는 북의 붕괴가 얼마나 허황한 꿈인가를 느끼는 한편, 북이 얼마나 평화를 바라느냐도 다시금 느낀다.
하고 싶은 말들은 많으나 글이 워낙 너무 길어졌고 또 생각을 다 쓰다가는 무슨 법에 걸고 들 분들이 나타날 것 같아서 이쯤에서 그친다. [2014년 10월 31일]
评论
发表评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