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전 총리의 ‘신 동양평화론’

하토야마 전 총리의 ‘신 동양평화론’
정운현 
기사입력: 2014/11/28 [08:43]  최종편집: ⓒ 자주민보

최근 부산에서 의미 있는 심포지엄이 하나 열렸다. 지난 19~20일 부산시와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공동으로 개최한 제10회 부산·한겨레 국제심포지엄이 그것이다. 심포지엄에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 등 한·중·일·러 학자와 전문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참여해 ‘아시아가 주도하는 새로운 아시아는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 심포지엄에서 단연 주목을 끈 사람은 특별연설을 한 하토야마 전 일본총리였다. 요미우리, 아사히, NHK, 도쿄TV 등 일본 유수의 언론이 부산을 찾았는데 이는 하토야마 전 총리의 발언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평소 아베 총리의 극우 역사관 등을 정면으로 비판해온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일본 정부로부터 ‘국적’으로까지 불리고 있다.
 하토야마 전 일본총리
일본의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1984년 정계에 입문한 하토야마는 2009년 8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그가 대표로 있던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총리에 올랐다. 총리에 취임한 이듬해 그는 동북아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공동체론’을 내놓았다. 골자는 무역이나 투자, 금융을 비롯해 에너지, 환경보존 및 대테러대책과 같은 분야에서 기능공동체를 지향하다가 장차 가치공동체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한중일 3국은 물론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까지 포함시키자고 했다.
하토야마의 이같은 구상에 찬물을 끼얹는 집단은 다름 아닌 일본. 그는 지난 6월 중국 베이징 칭화대에서 개막한 제3차 세계평화포럼 강연에서 “아시아지역사회를 구축하려면 한·중·일 협력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3자간 신뢰가 가장 중요한데 가장 먼저 일본 지도자가 역사적 사실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며 아베 정권을 겨냥했다. 또 지난달 16일 서울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 “한·중·일 3국간 관계가 최근 악화된 데에는 일본에 좀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중일 3국은 과거 일본의 식민지 침략전쟁의 후유증을 아직도 앓고 있다. 지금도 3국간에는 야스쿠니 신사참배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독도 및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 등으로 ‘역사·영토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대해 하토야마는 “동아시아공동체를 구축하는 데 가장 큰 장애는 악화되고 있는 일-한, 일-중 관계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역사문제 해결이 필요하다.”며 일본이 3국간 협력에 결정적인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부산·한겨레 국제심포지엄에서 “한중일 간에 단일통화가 아니라 통화바스켓을 구성해 자국통화와 공동화폐를 함께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며 “매년 3개국의 도시 하나씩을 선정해 왕래하는 동아시아 문화도시 사업, 캠퍼스아시아 비전, 아시아슈퍼그리드 사업 등 정치현안을 떠나 3개국 간에 협력할 경제사회 분야는 많다”고 역설했다. 그가 주장해온 ‘동아시아공동체론’의 실현방안인 셈이다.
대의명분이 충분함에도 그의 구상은 주변국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중화(中華)사상에 입각한 중국의 입장에서는 ‘동아시아공동체론’은 일본과 미국의 입김이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또 동남아, 한국, 미국 같은 나라들 역시 거부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제국주의가 내걸었던 ‘대동아공영권’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극우세력은 그 시절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하토야마의 ‘동아시아공동체론’은 안중근 의사가 뤼순감옥에서 순국에 앞서 미완으로 남긴 ‘동양평화론’을 연상시킨다.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간의 상설기구인 동양평화회의를 뤼순에 조직해 기타 아시아 국가가 참여하는 회의로 발전시키고, 나아가 동북아 3국 공동은행 설립, 동북아 3국 공동평화군 창설 등을 담고 있다.
100년 전에 나온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단순히 이상론이 아니라 유럽연합(EU) 형태로 한중일 평화체제 구축이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들어 동북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 간의 세력판도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그럴수록 한중일이 중심에 서야하며 3국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 하토야마 같은 정치인이 더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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