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10살 딸 앞에서 싸운 부부, 진짜 피해자는 누구일까

 가정폭력 신고로 출동한 현장에서 벌어진 일... "애 앞에서 싸운 게 죄가 된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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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경찰관아이들에게 범죄 예방에 대해 경찰관들이 설명하고 있다. ⓒ 박승일

"서울경찰청 긴급 신고 112입니다."

"남편이 폭력적으로 욕을 하면서 때릴 듯이 위협을 해서 신고하려고요."

"주소를 말씀해 주시겠어요."

"여기는 ○○○구 모 아파트 101동 101호입니다."

"지금 남편분과 함께 있는 건가요?"

"아니요. 지금 아이와 함께 방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습니다."

"지금 순찰차가 출동하고 있습니다. 경찰관이 도착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와 주세요."

"경찰관이 곧 도착할 겁니다. 남편의 직접적인 폭행도 있었나요?"

"조금 어깨 부위를 밀치긴 했는데 때리지는 않았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경찰관들이 거의 도착했네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명절 연휴에 죄송합니다."

지난 4일 밤. 그날은 추석 연휴가 시작된 둘째 날이기도 했다. 지구대 창밖으로는 명절 특유의 정적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지구대 실내는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 경찰관들은 평소보다 더욱 긴장하고 있다.

야간 근무를 시작하고 서너 시간이 흐른 뒤였다. '코드 0' 신고음이 지구대 소내 안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가정폭력' 신고다. 가장 민감하고 신경 써야 하는 신고 유형이다.

연휴 첫날 밤에 뜬, 코드 0

서울경찰청 112 치안 종합상황실에서 신고를 접수하면서 지구대에서 출동도 동시에 이뤄졌다. 그만큼 긴급하다는 뜻이다. 신고자가 접수하는 경찰관과 통화 중에도 지구대까지 실시간으로 내용이 전달되는 시스템이 있다. 그때를 '선 지령'이라고 부른다. 이번 신고도 그랬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순찰차가 출동했다. 나는 신고자의 녹취 내용을 들으며 추가로 인근에 있는 순찰차가 지원할 수 있도록 무전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경찰관들이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있던 남편과 방 안에서 문을 잠근 채 딸과 함께 있던 아내를 분리해 진술을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119구급대의 응급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무전이 흘러나왔다. 다행이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

잠시 후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상황을 보고해 주는 전화였다. 상황은 이랬다.

결혼한 지는 14년이 됐고, 10살 된 딸이 현장에 있었다. 싸움의 발단은 추석 연휴를 맞아 고향에 내려갈 때 반려견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정말 사소한 문제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경찰에 신고까지 하게 된 것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양측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었다. 서로 욕을 한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남편의 위협적인 행동이 있었지만, 아내는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상호 간에 분리 조치가 필요하다는 경찰관의 경고에 남편이 근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것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장에 있던 10살 된 딸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모습을 찍게 했다

사소한 문제가 부부싸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료사진) ⓒ Unsplash

경찰관은 딸아이의 심리 상태를 걱정해야 했다. 아이는 누가 봐도 놀란 표정이었다. 현장에 있던 김모 경사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앉았다.

"엄마, 아빠가 싸워서 무서웠지?"

부부의 싸움은 단순한 다툼이 아니라, 아동의 정서적 학대의 순간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남편과 말다툼 하는 과정을 자신의 휴대전화로 딸에게 직접 촬영하도록 했다. 그리고 아이 아빠는 아이가 있는 현장에서 아내를 때릴 듯이 위협하며 욕을 여러 차례 했다. 그것 말고도 아이의 당시 상황에 대해 고려해야 할 점들은 서너 가지 더 있었다. 사적인 문제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아동복지법은 18세 미만인 사람을 의미한다. 법에서 '아동복지'란 아동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정서적 지원이라고 규정한다. 또한 아동은 차별 없이 자라야 하며, 안정된 환경에서 조화롭게 성장해야 한다. 아울러 아동은 모든 활동에서 이익이 최우선 고려되어야 하며, 보호와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는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아동의 정신건강과 정상적인 발달을 저해하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 또는 가능성이 발생한 경우라도 정서적 학대 행위라고 말한다. 정서적 학대 행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될 수 있다. 절대 가볍지 않은 범죄행위인 것이다. 이처럼 아동복지법상 정서적 학대 행위는 매우 폭넓게 해석되며,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아동의 정서적 학대 행위에 대해 언급한 이유가 있다. 가정폭력으로 현장에 출동했지만, 부부의 행위 또한 아동학대에 해당하였기 때문이다.

"애 앞에서 싸운 건 잘못했지만 그게 죄가 된다는 건가요?"

최근 법원 판결 사례를 보자. 피고인은 12살인 아들의 아버지다. 평일에 일을 하러 가야 한다는 이유로 피해자인 아들을 주거지에 혼자 남겨두고 주말에만 함께 지냈다. 물론 장기간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이 혼자 스스로 일어나 학교에 다니게 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되었다. 자신의 보호, 감독을 받는 아동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 양육 및 교육을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했다는 판결이었다. 그만큼 아동복지법은 엄격하다.

피고인인 아버지는 징역형에 해당하는 집행유예 2년을 처분받았다. 또한 40시간의 아동학대 재범 예방 강의도 수강하도록 명했다. 아동 관련기관에는 2년간 취업도 제한되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아동의 방임 정도가 가볍지 않고 죄책이 무겁다고 양형의 판결 이유를 밝혔다. 아동의 직접적인 신체 위해나 학대가 아니더라도 이 사례와 같이 혼자 두는 것도 아동학대에 포함한다. 어느 부모라도 법원의 판결 사례가 아동학대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할 듯싶다.

그렇다면 이번 신고 현장은 어떨까? 일단 현장에 있던 부부 모두 아동학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다.

"아이 앞에서 욕하고 위협적인 행동을 하면 딸아이가 정서적으로 무섭지 않을까요?"

"그래서요?"

"그래서라뇨. 아동복지법은 신체적 폭력뿐만 아니라 정서적 학대 행위도 해당합니다."

"아니, 애 앞에서 싸운 건 잘못했지만 그게 죄가 된다는 건가요?"

"아내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분과 다툼이 있다고 해서 그걸 아이에게 직접 촬영하라고 시키는 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가 놀랄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고 두 분의 진술도 인정하는 부분이라 아동학대에 대해서는 추가로 조사가 이뤄질 것입니다."

"정말 그게 죄가 되는지는 몰랐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 하겠습니다."

부부의 행동이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진짜로 몰랐을 수 있다. 그렇다고 처벌을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에 대해서는 아동복지법 위반으로 앞으로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경찰관들은 놀란 아이를 안정시켜주는 데에도 충분한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 중에 그 또래의 아이를 둔 김모 경사가 더욱 신경을 썼다. 다행이었다.

가정폭력의 진짜 피해자

▲지구대를 방문한 아이들함께 근무하는 후배 경찰관이 아이들과 대화하고 있다(이번 112 신고와는 관련이 없다) ⓒ 박승일

대부분 가정은 추석 연휴 집안에 웃음과 온기가 흐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집에서는 아이가 문틈 사이로 어른들의 언성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관으로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가정폭력의 진짜 피해자는 '대화의 대상이 아닌 아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가 많다. 어른들의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아이의 마음은 조금씩 닫혀가는 듯싶다.

가정폭력의 진짜 피해자는 단지 맞은 사람이 아니다. 그 옆에서 두려움에 눈을 감은 아이가 진짜 피해자다. 부부의 말다툼 한 번이 아이의 정서에 남긴 상처는 법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깊게 남을 수도 있다.

가정은 아이가 세상을 배우는 첫 교실이라고 말한다. 아이 앞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말을 배우게 하는 것은 부모의 가장 큰 책임이다. 부부의 싸움보다 더 아픈 건, 그 싸움을 바라보는 아이의 두려움이다. 부모가 잠시 멈추어 "우리 아이가 이 장면을 기억한다면?"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한다. 그럼 또 다른 신고까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그날 밤은 여느 날보다 길었다. 가정폭력 신고는 그 뒤로도 2건 더 있었고, 교제(데이트) 폭력 신고도 1건 있었다. 그리고 추석 연휴의 셋째 날이 밝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박승일의 경찰관이 바라본세상에서) 금요일 연재에도 실립니다.추석 연휴기간에도 현장에서 자신의 일처럼 최선을 다한 김모 경사와 정모 경장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박승일#송파경찰서#경찰관#추석#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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