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창작물, 성적이면 모두 범죄인가
[김홍열의 디지털 콘서트]
- 김홍열 덕성여대 겸임교수/정보사회학 박사
- firrenze@daum.net
- 입력 2025.10.08 09:47
[미디어스=김홍열 칼럼] 더불어민주당 허영 의원이 지난달 11일 대표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개정안은 AI를 이용해 실제 인물로 인식될 수 있는 가상의 인물이나 표현물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제작·편집·합성하거나 가공한 사람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해당 영상물이나 복제물을 반포·판매하거나 전시한 경우에도 동일한 형량을 적용하며, 단순 소지나 시청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미지가 생성·유포되고, 그 과정에서 성적 혐오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게 발의 배경이다.
허 의원의 개정안은 실제 한 법원 판결을 계기로 나왔다. 최근 법원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여성의 노출 이미지를 만들어 인터넷에 게시한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문제의 이미지가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한 합성물인지 확인할 수 없었고, 원본 사진의 출처나 합성 과정에 대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점을 들어 피해자가 실존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실존 인물이 아니면 현행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리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허 의원은 이런 결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고, 실존 인물 여부와 상관없이 AI가 생성한 성적 영상물 자체를 범죄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딥페이크 (PG) (연합뉴스) 하지만 개정안을 둘러싼 사회적 반응은 첨예하게 갈린다. 찬성 측은 AI 기술이 악용되면 성적 착취의 새로운 형태가 된다며, 가상이라 하더라도 사회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은 실제 피해 못지않다고 말한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 유포되는 가짜 여성 이미지들이 여성을 대상화하고 성적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를 방치하면 결국 성폭력 문화를 강화시킨다는 주장이다. 반면 반대 측은 실존 인물이 없는 가상의 창작물까지 범죄로 취급하면 표현의 자유가 근본적으로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성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이 예술이나 창작의 일부일 수 있음에도, 그것이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된다면 창작의 경계가 지나치게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라는 문구의 모호함에 있다. 무엇이 성적이고, 무엇이 수치심을 유발하는가의 기준은 시대와 문화, 개인의 감수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불명확한 개념을 형사처벌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 적용 범위는 사실상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 실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불쾌하다”고 느끼면 처벌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는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뿐 아니라, 창작자가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드는 ‘심리적 사전 검열’로 이어진다. 예술, 풍자, 문화 콘텐츠는 물론, AI가 그려낸 상상 속 인물조차 ‘성적’이라는 이유로 불법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기술이 아닌 감정으로 법을 만들게 되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번 입법 시도가 법원의 판단을 입법으로 대체하려는 발상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사법부는 구체적인 사건과 증거를 토대로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입법부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기준을 세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특정 사건의 판결 결과가 불편하다고 해서 그것을 막기 위한 ‘보복 입법’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무죄 판결이 곧 법의 공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법원은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판단을 내렸을 뿐, 그 자체가 성적 표현을 허용한 것은 아니다. 입법이 판례의 한계를 보완할 수는 있지만, 사법의 논리를 정치적으로 대체하는 순간, 법의 일관성과 객관성은 무너진다.
인공지능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기술의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인쇄술은 지식의 독점을 깨뜨렸고, 영화는 인간의 상상력을 시각화했으며, 인터넷은 누구나 발언할 수 있는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이제 AI는 창작의 방식 자체를 새롭게 바꾸고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술이 악용될 위험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위험을 이유로 표현의 자유 전체를 제약하는 것은 예술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예술과 민주주의는 언제나 ‘표현의 자유’ 위에서 진화해 왔고, 그 자유가 사회의 다양성과 문화적 생명력을 지탱해 왔다. 규제는 언제나 최소화되어야 하며, 표현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이것이 민주사회가 기술 변화를 다루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다.
한번 제정된 법은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일단 금지의 법이 만들어지면, 그 적용 범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처벌은 강화되며 그 속도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 현재, 이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만약 그대로 통과된다면 AI 시대의 창작 환경은 급속히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사회는 기술에 대한 불안 대신, 기술을 어떻게 책임 있게 활용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처벌의 확대가 아니라, AI 시대의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숙의다. 기술과 기술의 구성물을 법적 제재로 다스리는 사회는 결국 상상력의 가능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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