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주택’이라더니... 근심덩어리 된 오세훈표 ‘청년안심주택’
“허술한 사업자 검증·사후 관리 부재 등이 겹친 결과”
- 윤정헌 기자 yjh@vop.co.kr
- 발행 2025-10-06 16:27:40
- 수정 2025-10-06 16:29:30
청년안심주택 방문한 오세훈 시장 ⓒ뉴시스
서울시 대표 주거 정책사업 중 하나인 ‘청년안심주택’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청년안심주택 일부에서 입주자들이 임대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공공이 지원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거지를 공급하는 청년안심주택이 입주자들의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무늬만 ‘공공’인 서울시 ‘청년안심주택’의 민낯
우선 ‘임대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발생한 원인을 이해하려면 ‘청년안심주택’이 어떤 정책사업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청년안심주택은 서울시가 무주택 청년들의 주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내놓은 임대주택이다. 2016년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시작해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인 2023년 4월 현재의 청년안심주택으로 개편됐다. 만 19~39세 청년·신혼부부 무주택자에게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거지를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서울시도 청년안심주택이 임대료 부담을 낮추고 공공성을 강화해 청년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주거 대안’이 될 것이라고 홍보해 왔다.
이처럼 공공이 지원하는 주거 정책사업에서 ‘전세사기’와 같은 피해가 발생한 건 청년안심주택이 ‘무늬만 공공’일 뿐 대다수가 민간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청년안심주택은 ‘공공임대’와 ‘공공지원 민간임대’로 나뉜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운영하는 ‘공공임대’형 청년안심주택과 민간 임대사업자가 운영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형 청년안심주택이 혼합돼 있다는 뜻이다. 전체 청년안심주택의 30% 남짓만 SH가 공공임대로 운영하고, 나머지는 민간 임대사업자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는 식이다.
민간사업자들이 정책사업인 청년안심주택에 뛰어드는 건 공공의 지원 때문이다. 서울시는 청년안심주택에 참여하는 민간사업자에게 용도지역 변경(종 상향), 용적률·건폐율 완화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여기에 임대기간까지 고려해 주택금융공사(HF)로부터 10년간 보증을 받아 저리대출도 가능하다.
공공지원을 받은 민간사업자는 최소 8년 동안 청년안심주택을 운영해야 한다. 대신 8년 이후부턴 청년안심주택을 분양전환하거나 매각할 수 있다. 용적률 등의 인센티브를 챙긴 민간사업자는 8년 동안 임대사업을 진행한 뒤 분양이나 매각을 통해 발생할 이익을 기대하고 사업에 뛰어든다.
논란이 되고 있는 ‘임대보증금 미반환 사태’도 민간 임대업자가 운영하는 청년안심주택에서 벌어졌다. 공공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면서도 입주자들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상황이 속출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시행사인 민간 임대 사업자가 시공사에 공사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서다. 금융기관에 근저당이 잡힌 상태에서 경매가 진행되면 세입자들은 절차가 끝날 때까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최근 임대보증금 미지급 사태가 발생한 잠실 센트럴파크 단지도 이 같은 이유로 134채, 238억원의 보증금이 묶여 있는 상태다.
보증금 사고는 잠실만의 일이 아니다. 도봉구 ‘에드가쌍문’ 단지에서는 2023년 말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벌어져 세입자 일부는 여전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동작구 단지도 임대 사업자의 채무 문제로 집이 가압류되며 불안이 커지고 있다.
입주자들은 청년안심주택을 ‘서울시가 보증해 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민간 책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셈이다.강제경매 사태가 발생한 청년안심주택인 잠실센트럴파크 세입자 등이 서울시의 늑장 대응 비판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민달팽이유니온 제공 각종 인센티브 지원했는데... “서울시, 민간 사업자 검증 소홀”
서울시는 ‘임대보증금 미반환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청년안심주택은 ‘청년 주거 안정’을 내세웠던 서울시의 공공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보증보험 미가입, 허술한 사업자 검증, 사후 관리 부재 등이 겹치면서 수백억원대 보증금 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발생한 원인 중 하나는 민간사업자의 ‘임대보증금 반환보증(보증보험)’ 미가입이다. 보증보험은 임대 사업자가 채무불이행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대신 보증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서울시는 청년안심주택 민간임대 물량에 대해 보증보험 가입을 의무화했으면서도 현장에서 이를 철저히 점검하지 않았다.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민간임대주택법)에 따르면 모든 임대 사업자는 의무적으로 임대보증금 보증에 가입해야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잠실, 동작을 포함해 총 4개 사업장 287가구가 이런 이유로 보증금 미반환 우려에 놓였다. 또 강서구 내발산동, 강남구 도곡동 등 4개 사업장(총 944가구)도 보증 보험 미가입한 곳이다. 해당 지역은 대주단 동의하에 보증금 인출이 가능한 별도 계좌를 관리하고 있어 아직 큰 문제로 이어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더 나아가 서울시가 파악한 보증보험 미가입 가구 수는 무려 1,200여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에 가입된 것처럼 속았다”는 세입자들의 증언까지 나왔지만, 서울시는 이를 사전에 걸러내지 못했다.
또 서울시는 청년안심주택 물량 확보를 위해 민간사업자 참여를 적극 독려했지만, 사업자의 재무 건전성과 채무 관계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뒷전이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실제로 일부 사업자는 건설자금 대출과 근저당 설정이 다수 얽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년안심주택으로 지정돼 입주가 진행됐다. 그 결과 세입자들의 보증금은 선순위 채권자에 밀려 반환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입주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임대보증금 반환 능력이 의심되는 사업장에 대해 서울시는 실질적인 관리·감독을 하지 않았고, 사후 점검 시스템도 유명무실했다. 가압류·경매 절차에 들어간 사업장이 적지 않았지만, 피해가 가시화되기 전까지 서울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전문가들도 서울시의 관리 소홀이 보증금 사고를 불러왔다고 보고 있다. 박효주 참여연대 주거조세팀장은 “민간 임대 사업자의 재정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부분, 기본적으로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가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임차인을 모집했다는 사실 등은 서울시의 책임이 굉장히 크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그런데도 서울시는 이런 부분에 대해 아무런 조치 없이, 실태 조사 정도만 진행했다. 제대로 대응하지 않고 문제를 키워왔다는 점만으로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서동규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도 “서울시는 민간 개발에 기댄 방식으로 청년 주거정책을 추진하면서도, 거기에 대한 충분한 관리 감독을 하지 않았다”며 “공공이 지원하는 각종 인센티브를 챙겨 수익을 올리려는 민간사업자들을 제대로 검증조차 없이 선정한 건 굉장히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반면 서울시는 한동안 “민간임대에 개입할 법적 관리·감독 권한이 없다”라는 식으로 보증금 사고 책임에 대해 선을 그어왔다. 하지만 보증금 미지급 사태가 확산하자, 뒤늦게 세입자 구제 방안을 내놨다. 최진석 서울시 주택실장은 지난 8월 20일 서울시청 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선순위 피해자들의 경우 주택진흥기금(내년 도입 예정)을 통해 보증금을 지원하고 그전에 퇴거를 희망하는 경우 시 예산을 일부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서울시가 선지급하고 경매를 통해 그 금액을 회수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송파구 청년안심주택 잠실센트럴파크 세입자들이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한 기자회견 ⓒ잠실센트럴파크 청년주택 비상대책위원회 제공 보증보험 미가입 사업장 더 늘어날 수도... “공공임대 비중 늘려가야”
문제는 추후 보증보험 미가입 사업장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최근 청년임대주택 사업장 1곳(공공지원 민간임대)이 보증보험을 연장(갱신)하지 못했다. 현재 감정평가액이 과거 제출한 감정평가액보다 낮아져 가입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같은 이유로 올해 하반기 보증보험을 연장하지 못할 가능성이 큰 사업장이 8곳이 더 있다는 게 서울시 측의 설명이다.
보증보험 연장이 어려워진 데는 올해 6월 국토교통부의 민간임대주택법 시행령 개정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전까지는 보증보험 가입을 위한 공시가격 감정을 사업자가 선정한 감정평가 기관이 하도록 했는데, 시행령 개정으로 보증기관이 정한 곳에서 감정평가를 받게 된 것이다. 사업자가 감정평가기관을 선정할 때는 사업자가 영향력을 행사해 주택 가치를 부풀려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등 부작용이 많았던데 따른 조치다.
실제 그동안 보증기관이 사업자를 대신해 변제한 임대보증금도 점점 증가해 왔다. HUG가 지난해 대신 갚은 임대보증금은 1조6,093억원으로 전년 대비 53%나 급증했다.
전문가들은 ‘공공지원 민간임대’ 방식의 청년안심주택이 한계를 드러낸 만큼 공공임대 비중을 늘려가는 방식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짚었다. 민간임대의 경우 8년 후 분양 전환할 수 있어 결국은 공공의 지원이 사유화된다는 점도 지적했다.
서동규 위원장은 “보증금 미반환 사고는 민간사업자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지원해 주면 해주는 만큼 거기에 맞춘 위험한 재무구조가 세팅돼 같은 잘못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결국 다 사유화될 공공지원 민간임대를 유지하기보다 공공임대처럼 공공성을 확대하고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해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효주 주거조세팀장도 “공공에서 지원하고 민간이 공급하는 현재의 청년안심주택은 이미 여러 가지 한계나 문제점이 드러났다”면서 “이런 방식보다는 차라리 SH의 공공임대를 늘려 공공성을 강화한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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