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진보의 새로운 해답

 

진보정책 2.0 : 공공서비스의 ‘소유권’을 바꿔야 한다

  • 장진숙 진보당 공동대표·정책위의장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역대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 중 하나는 2002년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2002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7%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회복과 성장의 위대한 기록을 달성한 해였다. 그럼에도 외환위기 극복을 앞세운 구조조정 과정에서 대량실업의 상처는 국민의 삶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살림살이’, 이 한마디는 성장제일주의에 가려진 서민의 삶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였다. 이후 ‘친환경 무상급식’, ‘부유세’ 등은 진보정당의 대표 정책 브랜드가 되었다.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보편복지, 부유세로 대표되는 정의로운 조세정책은 진보정책의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서울 중구 정동길에서 한 어르신이 폐지 담은 리어카 끌고 이동하는 길에 은행나무 낙엽이 바람에 날리고 있다. ⓒ민중의소리

    민주노동당이 쏘아 올린 진보정책은 보수정치와 격렬한 쟁투의 과정을 겪었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조례를 반대하는 주민투표에서 패배하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는 기초연금, 무상보육, 4대 중증질환 무상화 등 복지정책을 쏟아냈다. 오세훈의 주민투표 실패, 박근혜의 당선은 복지가 정치주류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4년 보건복지 예산은 총 122조 3,779억원으로, 20년 전과 비교해 약 100조 가량이 늘었다. 한국의 복지 지출은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하지만, 복지의 종류와 보편적 지원은 확대돼 왔다.

    줄어들지 않는 불평등, K-민주주의는 불평등과 양립할 수 있나?

    오늘날 불평등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복지의 확대는 진보, 보수할 것 없이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산과 소득 격차는 심화되었고, 계층 이동 사다리는 끊어졌다. 노인빈곤율은 OECD 부동의 1위이며 한창 일해야 할 시기의 청년층에서 기초생활수급자 비중이 급격히 늘고 있다. 지난 3년간 실질임금은 연속 감소했고, 상대적 빈곤율은 매해 악화되고 있다. 많은 서민들이 월급날에도 카드값이며 공과금을 내고 나면 통장이 텅 비는 상황에 처해 있다. 대출이자는 줄어들 줄 모르는데, 기본적인 생활 자체에 드는 돈은 점점 더 늘어났다. 전 세계적 기후위기로 전기‧가스비, 교통비가 오르고, 무더위‧폭우‧폭설의 재난은 불평등에 처한 하위층을 더욱 아프게 공격한다.

    불평등은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계엄의 밤을 밝혀 민주주의를 지켜낸 시민들이 다시금 마주할 일상이 불평등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몰락과 함께 극우의 바람이 미국, 서유럽을 휩쓸고 있다. 특권과 불공정에 분노한 Z세대 시위를 무심코 넘기지 말아야 한다. 그 모든 싹들을 품어 키워내는 민주주의는 결코 공고할 수 없다. 하기에 정권교체 이후 우리가 풀어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불평등이다. 또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진보의 의제를 급진화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활개 치는 세상

    우리에게 익숙한 불평등 해소 방안은 주로 고소득자로부터 징수한 조세로 마련한 재원을 취약계층에게 복지정책 등을 통해 이전하는 방식, 즉 ‘조세-이전’ 모델이다. 증세와 복지를 핵심으로 한 재분배 구조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더 많은 복지 급여’와 ‘더 높은 세율’만으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증세와 복지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는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초래하는 생산 양식을 그대로 둔 채 거기서 발생한 이윤의 일부를 조세를 통해 사후보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다시, ‘살림살이’를 좀 더 나아지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서민들이 조금이라도 숨 쉴 틈을 가지려면, 실질소득이 늘어야 하고 기본적인 생활에 드는 비용이 줄어야 한다. 누구나 부담가능한 선에서 기본적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으려면, 생활의 필수재인 공공서비스가 무료로, 또는 부담 가능한 선에서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공공서비스는 거대자본의 손쉬운 수익원이 되었다. 거대자본은 정부로부터 인허가받은 공공서비스의 독점력에 근거해 서민들로부터 요금과 세금의 형태로 돈을 벌어들인다. 상식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렵지만, 자원, 자연력마저도 사적 소유, 독점적 소유권이 행사되고 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들이 활개 치는 세상인 것이다.

    진보정책 2.0 : 공공서비스 공영화와 지역공공자산

    진보당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진보의 새로운 대안으로 ‘공공서비스의 공영화’를 제안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요한 공공서비스 공급을 책임지자는 것이다. 1948년 제헌헌법에는 자원과 자연력은 국유로 하며, 운수, 통신, 금융, 전기, 수도, 가스 등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는 공영으로 할 것을 적시하고 있다. 현재 국유의 원칙은 삭제되었지만, 대한민국 헌법정신은 사회와 국민의 필요를 보장하는 사회국가의 원리를 견지하고 있다. 사회공동체의 것이어야 할 자산이 봉이 김선달의 수중에 있다면, 되돌려 놓는 것이 마땅하다.

    진보당은 9월 10일 전국 20여 명의 정책담당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지역공공버스 운동을 주제로 한 워크숍을 진행했다. ⓒ진보당 제공

    공공서비스가 시민의 필요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공급되고 운영되자면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시민의 참여 없이는 관료제의 피해와 시민 불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민의 필요와 참여가 활발하려면,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공급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가장 시급한 분야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재생에너지 전환과 탄소배출이 높은 교통분야의 전환이다. 나아가 의료, 주거, 돌봄 등 공영화의 범위는 계속 넓어져야 한다. 지자체의 공공서비스 공영화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지역공공은행 설립이 필요하다. 지역공공은행은 예대금리 장사로 수익을 올리는 시중은행과 달리, 공공자산을 위한 투자,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서민금융을 지원하는 공공성이 담보된 은행이다.

    진보정책에 늘 따라다니는 질문들이 있다. “그게 가능해?” “돈이 너무 들지 않아?” “사회주의 하자는 거냐?” 민주노동당의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도 마찬가지였다. 증가하고 있는 필요와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 맞추어 사회제도를 개혁하는 일이 진보정치의 일이라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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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25-10-10 0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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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0-10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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