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광해'로 본 NLL 해법

김상일 (전 한신대 교수) 김상일(전 한신대 교수) 기사입력: 2012/11/01 [10:01] 최종편집: ⓒ 자주민보 ‘광해’와 ‘도둑들’은 탈현대의 영화 ‘광해’를 정치적으로 보기, 광해와 하선, 그리고 노무현과 “노무현 정신”. 과연 이런 표현 적절한가. 아니다. 아직 우리 지식사회와 국민들이 영화 ‘광해’를 보고 이 정도 평 밖에 안 나온다는 것은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아직 우리의 의식 구조가 한참 뒤쳐져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닦는 장면은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무지해 보이기도 했다. 안철수도 이 영화를 본 이유는 광해를 자기와 동일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을 광해로 보지 말고 허균으로 두고 보면 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영화가 막 시작되면서 뜨는 첫 자막은 ‘닮은 것을 찾아라’이다. 15일 간 사라진 광해를 대신할 광해와 닮은 인간을 찾으라는 것이다. 저자거리에서 허균이 찾은 인물이 하선이다. 하선은 그래서 ‘가짜’ 광해이다. 허균이 하선을 왕 노릇 시키기 위해 훈련을 강행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하선이 진짜 광해로 되어져 간다. 신하들도 감쪽같이 속고 가짜를 진짜로 여기고 왕 대우를 한다. 이럴수록 가짜는 자기가 진짜가 아닌가 하고 착각까지 하게 이른다. 가짜인 것을 안 이후에도 도부장과 조내관은 “남들은 왕이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 그는 진정한 왕이다”라고 하면서 마지막 도망치는 하선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다. 조내관은 하선이 광해군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마음속의 왕으로 삼았고 하선을 향한 충심으로 자신의 목숨까지 버렸다. 허균 역시 결과적으로는 광해군의 신하가 아니라 하선의 신하가 되었다. 이 정도가 되면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우리는 버티고(vertigo, 현기증) 현상을 요상하게 넘길 수 없게 된다. “가짜를 가짜라 하면 진짜이다”는 고대 그리스의 작은 섬 크레타 사람들을 두고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하면 참말이다”라는 소위 거짓말쟁이 역설이 그대로 영화에 적용된 것이다. 이 논리는 전형적인 탈현대시대의 논리이다. 할리우드에서 나오는 최신 영화들을 볼 때에 이 논리적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감상하기가 힘들다. ‘게임’, ‘메트릭스’, ‘마이노리티 리포트’ 등이 모두 그런 류의 영화들이다. 한국에서 ‘광해’와 거의 같은 시기에 개봉된 ‘도둑들’도 마찬가지이다. ‘도둑들’이란 복수를 사용했다. 작은 도둑과 큰 도둑 둘이 나오기 때문이다. 작은 도둑이 훔친 물건을 다시 큰 도둑이 도둑질한다면 그것은 정의인가, 불의인가? 당장 대답할 수 없게 되고 비결정과 불확실성에 빠지고 만다. 도둑의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역설이 지금 탈현대의 의식 구조를 지배하고 있고 영화 ‘광해’와 ‘도둑들’이 모두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도둑과 경찰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놓고 도둑을 경찰들이 일망타진하고 정의를 세운다는 시각으로는 탈현대 영화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정의가 승리했다는, 그리고 약자를 탄압하던 강자들이 제압되었다는, 그래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이런 시대감각을 읽지 못하는 야권 대통령 후보들이 지금 대선에 임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한심한가. 문재인은 하선을 노무현으로 읽고 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심 무인지경이다. 박근혜를 보라. 빤히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거짓말의 확신범이 된 박근혜와 얼마나 대조가 되는가를 보란 말이다. 과연 이번 대선에서 어떤 논리를 가지고 있는 후보가 이길 것인지 두고 보자. 야권 후보들이 시대에 뒤져 있다는 것만 우선 지적해 두자. 서해를 넘어 ‘광해’로 서해 바다에 그어진 북방한계선은 거짓으로 그어진 것이다. 이것이 정당하려면 동해에도 같은 위도 상에 그러한 선이 있어야 한다. 북방한계선(NLL) 안에 있는 섬들은 남쪽보다 북쪽에 더 가깝다. 그런데도 지금 남한 보수들은 그것이 진짜 남북의 경계선이라 우기고 있다. 서재정 교수(Johns Hopkins대)가 찾아서 쓴 자료의 글을 여기서 소개한다. 서 교수의 글은 진짜 NLL이 무엇인지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진짜를 안다면 가짜 주장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서 교수가 찾은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1974년 1월 작성한 비밀문서에 의하면, 북방한계선이 1953년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설정이 됐다는 통설은 근거가 없다. "북방한계선이 1960년 이전에 설정됐음을 보여주는 문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명확히 말하고 있다. 이 문서에 의하면 북방한계선은 1965년 설정되었고, 당시 한국 해군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던 유엔사령부 해군구성군 사령관이 선포한 것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더욱이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상 법적인 근거를 갖지 않고 있으며, 일부분에서는 영해의 분리에 관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밝혔을 뿐만 아니라 "한국 해군사령관 (유엔사 해군구성군 사령관)의 지휘권 및 작전통제권 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적용"되는 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상은 서 교수의 글을 요약한 것이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나자 가짜가 진짜 같이 되어 버렸다. 하선이 15일 정도 왕 노릇을 한 후 가짜로 들통이 나도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신하들이 있다. 영화 ‘광해’와 서해 바다에 그어진 NLL을 읽는 방법은 이렇게 대차대조표가 만들어진다. 이 대차대조표를 통해 NLL을 바로 이해하는 방법을, 서해를 넘어 광해에서 찾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광해를 보면 서해를 알 수 있고 그 해법도 나온다는 말이다. 남한 보수들이 가짜인 NLL을 진짜로 믿는 확신범이 되어 가는 과정은 조내관과 도부장이 그러했던 것과 너무 유사하다. 보수들에게 아무리 NLL이 가짜라고 해도 생각을 고치기에는 불가능하고 때는 늦었다. 아니 대선 후보 박근혜마저 그렇게 되어 가고 있으며 이것이 얼마나 위험천만인가를 보자. NLL은 순수 논리적 싸움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목숨 바쳐 수호하자고 하면서 연평도를 방문했다. 진보들은 가짜라고 해 보았자 영화 광해에서 보았다면 불가항력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짜로 그어진 것이지만 50여 년이란 세월이 진짜로 만들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광해를 보고 성찰하라는 것이다. 단 15일 간의 시간도 가짜를 진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는 사실, 이 사실만은 진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믿는 확신이 생명과도 맞바꿀 정도의 위력임을 진보도 알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NLL이 진짜냐 가짜냐를 인정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순수 논리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광해’로 본 NLL 해법은? 그러면 해법은 없는가? 있다. 다시 영화 광해로 돌아와서 찾을 수 있다. 서해를 넘어 광해로 보아야 한단 말이다. 하선이 아무리 진짜 광해 노릇을 하려 해도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단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중전(한효주 역)과의 관계이다. 만약에 하선이 중전의 손 하나라도 잡았다 하는 순간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고 가짜를 꾸민 허균의 목숨이 열 개라고 붙어 남아날 수 없는 사건이다. 중전과 잠자리에 들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영화에 의하면 진짜로 착각해 가는 가짜가 어여쁜 중전에 호기심 차원을 넘어서 혹시나 손이라고 한 번 잡을 수 있을까, 아니 잠자리도 할 수 있지나 않을까 최면에 걸려들기 시작한다. 중전을 북방한계선 안에 있는 섬들이라고 하자. 가짜 선을 그어 놓고 그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자기 것이라고 고집을 강행할 경우 이는 중전을 범하고 싶어하는 가짜의 심경과 같은 것이다. 어전에 나갈 수도 있고 왕으로서 국정, 특히 명과 청에 관한 외교권도 행사할 수 있지만 중전에 정도 이상의 접근은 할 수 없다. 중전의 몸을 범할 수 있는 것은 반드시 진짜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한 보수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이것이다. 그렇다. 얼마든지 NLL을 진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가운에 반드시 단 하나만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이다. 진짜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 단 하나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광해로 본 NLL의 구체적인 해법은 나왔다. 하선이 왕으로서 모든 기능을 다 할 수 있어도 한 가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은 중전과의 관계이다. 가짜 광해가 진짜 중전의 몸 어디에도 손을 대어서는 안 되는 가짜 광해의 타부와 금기에서 NLL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이 금기의 선을 넘는 순간 가짜도 죽고 중전도 당장 폐위되고 만다. 아마도 왕비가 왕 아닌 다른 남자와 정을 통했다고 하면 당시 유교 윤리로 볼 때에 상대 남자는 물론 왕비 자신도 생명부지가 힘들다. ‘맹자’에 보면 물에 빠진 형수의 손을 잡아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논쟁하는 부분이 나온다. 지금 같으면 논쟁의 여지없이 손을 잡아서라도 구해야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교 윤리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마도 형수 자신이 목숨을 부지하려고 자기 손목을 잘라도 그것이 가능할지 말지이다. 아마도 형수는 가문의 명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려야 하도록 강요당할 것이다. 당시 윤리 기준으로는 그러할 것이다. 그렇다. 남한 보수들이 아무리 NLL을 진짜라고 믿고 우겨도 범하지 못할 선이 있다는 것이다. 그 선을 넘는 순간 보수도 진보도 다 공멸의 순간이 오고 만다. 그것은 NLL 자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짜 광해가 진짜로 믿는 확신범이 되는 순간부터 온다. 자기가 중전의 몸을 범할 수 있을 경지에까지 이르도록 자기가 진짜 왕이란 확신범이 되는 순간 말이다. 바로 그 순간이 가짜 광해도, 중전도 다 죽음이라는 사 선을 넘는 순간이 되고 만다. 남한 보수들은 이미 중전의 몸을 범했는가? 지금 남한 보수들은 전쟁을 해서라도 NLL을 사수해야 한다고 가짜 광해 같이 확신범이 되어 가고 있다. 이때에 영화 광해에서는 눈치 빠른 중전이 하선의 손등을 보고 가짜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러자 신하들도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진짜 광해의 가슴에 있는 화살 맞는 자국을 확인하는 지경까지 간다. 그러나 허균은 여기서도 소설을 쓴다. 신하들이 광해의 몸에 난 화살자국을 확인하고자 왔을 때 15일 만에 진짜 광해는 되돌아 와 있었다. 철저한 허균의 작품이다. 드디어 가짜 광해는 가고 그 가짜를 따라가다 도부장은 죽고. 허균의 절묘한 정치술은 이 가짜가 판치는 기간 동안 하선이 중전을 범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막아야 하는데 있었다. 다시 말해서 남한 보수들의 가짜 확신이 중전을 범하는 지경까지는 가지 말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허균이 그것을 해 내었다. 과연 한국 야당이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박근혜가 저렇게 가짜 확신범이 되어 국민들을 속이고 있는 데도 과연 한국 야당이 가짜의 가짜인 진짜를, 진짜의 진짜로 둔갑시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근혜의 확신이 서해를 사해(死海)로 만들 것 한국 보수들은 루비콘강을 건너 버린 것 같다. 다시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리고 말았다. 대선 후보 가운데 박근혜도 확신범이 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즉, 가장 심각한 것은 여권 유력한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0월 2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 참석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의혹을 제기하면서 "NLL은 정치가 아니라 국가 안위에 대한 문제"라면서 "(대선에서) 우리가 만약 이기지 못하면 국가 안위 등 우리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는 사회에 속수무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 후보는 의원들을 향해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럴 때 목소리를 막 내달라"며 "정쟁을 하는 것에 대해 침묵하지 말고, 네거티브나 정치공세에 휘말리지 않아야 국민을 뵐 낯이 있다"고 강조했다. 또 "이번 대선은 나라의 운명이 걸린 선거이자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선거"라면서 "혼신의 힘을 바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50일이 지나면 노력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2등이란 것은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건 완전히 가짜가 중전의 몸을 범하겠다는 확신에 찬 발언이다. 전쟁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다. 과연 그 순간 보수는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남북이 다 죽는다. 서해는 그야말로 사해(死海)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허균 같은 인물은 과연 없는 것인가? 문재인아! 당신이 과연 허균 같았는지 알고나 울었나. 광해 같이 되려 하지 말고 허균 같이 한 번 되려고 해 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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