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이적행위
[이기명 칼럼]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이기명 | 2013-07-08 09:54:22
손자병법에 모든 전략의 기본을 天.地.人(천지인)이라 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며 귀결은 사람이다. 머리 위에 하늘이 있고 발아래 땅이 있으니 그 중심에 인간이 존재한다. 사람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어디 있으랴.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의 중심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이 아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일합방, 6.25 전쟁, 외침을 당할 때 마다. 변변히 한 번 싸워보지도 못하고 도망치기에 바빴던 눈물나는 역사를 살아 온 백성이 바로 우리다. 침략을 당하면 우선 보따리 싸기에 정신없던 이 나라의 임금들이다. 병자호란 때는 왕이 청나라 왕에게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을 했고 수많은 이 땅의 여성들이 끌려가 환양녀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국치의 중심에는 정치가 있었고 정치를 망친 것은 부패권력이었다. 율곡의 10만 양병을 반대한 것도 정치권력들의 싸움질 때문이고 한일합병도 친일매국노 때문이었다. 정상배들의 부패와 권력투쟁을 보는 국민의 눈은 어떤가. 국민의 가슴속에 무슨 애국심을 기대하는가.
6.25 남침 때 서울시민에게 서울사수라는 사기방송을 하고 도망친 이승만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정치는 국민과 사이좋게 가야 한다. 자유당 독재나 박정희 독재, 전두환 독재가 국민에게 남겨준 유산은 정치에 대한 냉소와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혐오다. 얼마나 더러운 유산인가.
지금 국민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국정원은 어떤가. 국정원의 임무는 무엇인가. 어느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막강한 권력과 조직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 헌신하는 조직이다. 명령과 비밀을 생명처럼 여기고 국민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안다.
정보기관이 망가지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 이조시대 목숨을 걸고 왕의 잘못이나 관리들의 비리를 밝혀내는 것이 사간원의 의무였다. 그들도 신뢰가 무너지면 모래성이다. 신뢰는 정치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오늘의 국정원은 어떤가. “국정원에 납치된 민주주의를 찾습니다.” 7월 6일 시청광장에 모인 1만여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외친 구호다. ‘국정원을 해체하라’는 구호가 가장 크게 들린 것은 귀가 잘못되어서일까. 현장에 있었을 국정원 요원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은 국정원장에게 뭐라고 보고 했을까.
국정원에 대한 기억은 어떤가. 국정원의 뿌리인 ‘중앙정보부’에 대한 악몽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을 수가 없다. 이 나라에는 ‘중정’이라 불리는 중앙정보부 이외에는 사람이 마음놓고 사는 곳이 없었다.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가 간첩누명을 쓰고 잡혀가 고문으로 죽자 양심의 가책으로 투신해 죽었다는 멀쩡한 거짓말을 한 중앙정보부다. 전두환이 뒤를 이었다.
못된 버릇을 왜 못 버리는 것일까. 오늘의 <국정원게이트>가 무엇인가. 원세훈이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는 4년 동안 국정원의 정예요원 수십 명과 그들의 민간협력자들이 인터넷상에서 야당의 대통령 후보인 문재인과 야당 정치인과 정부를 비판하는 지식인, 시민사회단체 등을 그들의 전매특허인 ‘종북’,과 ‘빨갱이’로 매도해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글을 지속적으로 게시했다.
우익 논객과 네티즌들이 이를 반복해서 전파함으로서 여론을 조작하고 국론을 분열시켰다. 메카시즘이 별것인가. 국정원 게이트가 바로 메카시즘인 것이다. 이 피해는 회복할 수 없는 국론분열을 가져 왔다. 국민정신이 거덜이 났다. 오죽하면 표창원 교수는 ‘남재준의 기밀누설’을 군사반란과 동격의 쿠데타로 비유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의 정당성 마져 의심을 받는다.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 온 남재준이 국정원장이다. 남재준은 군 재직 시에 강직한 군인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참여정부에 파견 나왔던 육사출신 보좌관 역시 남재준을 군인의 표상으로 칭찬하는데 입에 침이 말랐다. 그러기에 육군참모총장이 됐고 국정원장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겠는가.
이제 남재준의 국정원은 어떤가. 회복불능의 만신창이가 됐다. 오죽하면 국회의석 과반이 넘은 새누리당이 국정원 국정조사에 찬성을 하고 국정원 개혁을 위해 나섰겠는가. 국정원 개혁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이 되어 있다. 국정원 개혁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분열된 국론은 다시 하나로 될 수 없으며 바람 앞에 등불과 같다.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국정원을 권력장악과 정권연장에 이용해 먹으려는 ‘매국노’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정상배들과 추종세력 때문이다. 불법과 부도덕을 한곳에 모은 그들은 온갖 정보를 장악한 국정원의 협력 없이는 정권연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그러기에 김형욱 같은 반민주적 인간과 원세훈 같은 비도덕적인 인물을 국정원장으로 발탁해 정권을 유지하는 지렛대로 삼았다. 그러나 기대를 모은 남재준이 그들과 동격으로 추락할 운명에 처할 줄 누가 알았겟는가.
다시 7월6일 시청광장의 집회시위 현장이다. 가수가 등장해 ‘가사 바꿔 부르기’를 했다. 그 중에 한 가지다. ‘미친 소고기 수입반대’ 집회 때 국민가요로 떠 오른 노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어떻게 개사가 되었는지 아는가.
“대한민국은 정보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정원으로부터 나온다.” 참담하지 않은가.
국정원 개혁 없이는 정치개혁도.
독재정권은 그들의 독재를 영구유지하기 위해 중앙정보부가 필요했다. 이들은 정권이 위기에 처할 때 마다 힘을 발휘했다.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날조했고 그 예는 일일이 들 수가 없다.
동백림 사건을 비롯해서 남민전 사건 민청학련 등등 간첩조작 사건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심지여 법원은 세계 사법사상 유래가 없는 인혁당 사법살인 까지 저질렀다. 결국 그들이 저지른 만인공노할 사건은 영구집권으로 귀결이 됐는가. 아니다. 하늘이 그렇게 놔두질 않는다. 천벌이 내린다. 바로 독재자들의 말로다.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을 덮기 위한 어떤 사건을 획책하고 있을까. 국민의 의혹과 불안한 눈으로 보지만 설마 그 짓이야 못할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영원한 독재가 없음을 역사가 증명함에도 어리석은 인간은 여전히 독재를 획책한다. 거기에 이용되는 것이 바로 정보기관이다. 권력의 주구가 되어 충성을 다 했으나 역시 개처럼 버림받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며 김형욱의 경우가 생생하게 증명한다.
국정원에게 너희들이 왜 바뀌지 않느냐고 아무리 질책을 해도 소용이 없다. 원세훈이 국정원을 바꿀 수 있는가. 국정원의 해체를 소리높이 외쳐도 모두가 허공에 날리는 헛소리다. 최고정치 지도자의 확고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에 국정원장과의 독대를 금지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원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했다. 그것이 지금 물거품이 되어 버렸다.
“국정원의 명예를 위해 국가기밀을 누설”한 국정원장의 치기가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국정원 법 어디에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명예가 손상됐다고 판단될 경우 법률로 금지된 비밀서류를 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는가. 통탄할 일이다. 이런 자의적 판단이 자행되고 용납되는 정권에서 국정원의 정치개입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결국 최고 권력자의 강력한 의지만이 국정원을 개혁하던 해체하던 가능한 것이다.
국정원의 저항이 얼마나 강력할 것인가. 잘못된 생각이다. 존경받는 국정원이 되고 싶지 않은가. 솔직하자. 지금 이 땅에서 국정원을 존경하는 국민이 몇이나 될는지 상상해 보라. 그 총명하고 영특한 머리들이 땅을 칠 일이다. 700대 1이란 경쟁률을 뚫고 국정원에 들어갔다는 영재들이 야당대통령 후보 흠집 내는 댓글 작업에 동원했다면 웃지 않는 사람이 군자다.
국민의 신뢰없이는 보안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의 국정원 요원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밤잠을 못자고 의무에 충실할 것이다. 정치 권력화 된 세력들이 항상 국민을 절망시킨다. 집권세력에 줄을대고 출세를 보장받으려는 세력이 있음을 국민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권 핵심에도 국회에도 그들은 있다.
정상간에 대화를 발설 함으로써 전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한 대한민국의 국정원장. 짜깁기 대화록을 선거전에 이용한 새누리당 간부들. 이런 인물들이 지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제 경쟁력은 어느 정도일까. 누가 대한민국을 신뢰할 것인가. 외국의 정상이 한국의 대통령과 속 깊은 예기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국정원장과 국정원이 저지른 이런 행위가 바로 이적행위자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말 할 자신이 있는가. 국정원의 적들은 이런 국정원의 행위로 한국의 국격을 추락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적행위가 별 것인가.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국정원 선거개입 규탄시위 집회가 열리고 시국선언은 촛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조선일보와 세계일보가 ‘촛불의 불씨가 꺼져간다.’고 강변했지만 자신들만의 소망이다. 언론이기를 포기한 썩은 언론의 상투적 보도다.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분노의 촛불은 바로 썩은 언론을 향해서도 타오른다는 사실을.
국정원 개혁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루가 늦으면 그 만큼 어려워진다. 국민은 떠나간다. 국민의 마음이 떠나간 빈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와 함께 정치를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기명(팩트TV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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