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를 살리고 문재인은 죽인다? '동물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검찰
[박세열 칼럼] 김건희 도이치 사건, 검찰의 '마지막 숙제'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9.14. 05:01:07
'살아 있는 권력' 수사로 정권을 잡은 검찰 세력이 '죽은 권력'을 뒤적이고 있다. 흔히 검찰이 정무적 감각이 좋다고 하는데, 이 정부 들어서는 그 감각을 완전히 잃은 것 같다.
일단 시점이 최악이다. 300만 원 상당의 명품백을 받은 김건희 영부인을 온 국민이 영상으로 목격했는데도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린 직후,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뇌물죄 피의자로 적시하고, 독립 생계를 꾸린 전(前) 사위가 받은 월급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간주하고 있다며 수사 과정에서 확보한 세세한 정보들을 살라미처럼 잘라 언론에 흘리고 있다.
과문해서인지 오묘한 법의 세계를 이해하긴 어려우나, 일반 사람들의 '보통 상식(커먼센스)에 비춰봤을 때 뭔가 이상한 것만은 틀림 없어 보인다. 검찰이 갑자기 전직 대통령을 뇌물죄로 엮어 수사하는데 여론이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한 걸 과거에 본 적이 없다. 사안의 중대성과 대중의 인식 간 괴리가 너무 벌어져 있는 건 아닐까. 여론의 비약(飛躍)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데, 검찰 내부에선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따져 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이쯤에서 한동훈 전 검사의 명언을 떠올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사회가 완벽하고 공정할 순 없어. 그런 사회는 없다고. 중요한 건 국민들이 볼 때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라도 해야 돼. 그 뜻이 뭐냐? 일단 걸리면 가야 된다는 말이야. 적어도 걸렸을 때, '아니 그럴 수도 있지'하고 성내는 식으로 나오면 안 되거든. 그렇게 되면 이게 정글의 법칙으로 가요. 힘의 크기에 따라서 내가 받을 위험성이 아주 현격하게 (작아지는 게) 공식화되면 안 되는 거거든. 일단 걸리면 속으로는 안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미안하다 하거나 잠깐 빠져야 돼."(한동훈 검사장과 채널A 전 기자의 대화 녹취록 중에서 한동훈 검사장의 발언)
정무적 판단의 달인이라는 '조선 제일검'의 이 말은 자의적 검찰 수사의 장단점과 한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일단 걸리면 가야" 되는 사람이 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4년 묵힌 전직 대통령 수사 카드가 대통령의 임기 반환점을 눈앞에 두고 들이밀어졌다. "힘의 크기에 따라서" 영부인이 받을 위험성이 현격하게 "공식화되면 안되는" 것이지만, 이미 그런 상황은 공식화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되면 '법치'가 아니라 "정글의 법칙"으로 간다. 더이상 범죄 수사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으로 빨려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지금 상황이 꼭 그렇다. 알면서도 불빛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같은 게 지금 검찰의 모습이다.
검찰은 '살불살조'(殺佛殺祖,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달마)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할 뿐, 좌고우면 없이 범죄 혐의를 단죄하는 거라 생각할 지 모르겠으나, 검사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그렇게 믿을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미 우린 검찰 수사가 정치적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권력자를 단죄할 때보다, 권력자가 법망을 빠져 나간다고 느낄 때 국민의 불신은 두 배가 된다. 전두환을 처벌할 때 느끼는 '정의감'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검찰의 발표에 더욱 격노하는 게 여론이다.
4월 총선 이후 상황을 찬찬히 돌이켜보면 모든 게 현 상황을 위한 '빌드업'처럼 진행된 것 같다. 검찰의 속성을 잘 아는 대통령은 총선 참패로 드러난 여론과 상관없이 무리수를 둬서라도 자신과 부인의 안위를 앞에 세기 위한 조치들을 차근차근 정교하게, 그러면서도 최소한의 눈치조차 살피지 않고 만들어 왔다.
총선 참패 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민정수석실 부활이다. '민심을 청취하겠다'는 목적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민정수석이 내정된 후 공교롭게도 검찰 인사가 뒤따랐다. 김건희 영부인 디올백 수수 사건을 담당하던 서울중앙지검 1차장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담당하는 4차장이 튕겨나갔고, '윤석열 라인'이라던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이 날아간 자리에 문재인 전 대통령 전 사위 사건을 수사하던 전주지검장 이창수가 돌연 부임했다. 대통령은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총선에서 승리한 것처럼 행동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마치 과거의 윤석열 검찰총장처럼 인사 패싱으로 체면을 완전히 구겼지만 단말마조차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퇴임 날짜만 세고 있을 뿐이다. 이후 검사들은 휴대폰을 반납한 채 지휘부와 연락 두절 상태에서 대통령 경호처 건물에 갇혀 영부인을 도둑처럼 조사했다. 흡사 영부인이 검사들을 불러세워 사정을 설명하는 자리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무혐의'를 받은 김건희 영부인은 족쇄를 풀기라도 한양 대통령처럼 현장을 시찰하고 공무원들에게 이런 저런 지시들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대통령실은 영부인의 현장 시찰 사진을 화보처럼 게시한다. 다른 한편에서 검찰은 2020년 국민의힘이 고발해 시작된 문재인의 '전 사위' 사건을 4년 묵혔다가 지금 꺼내들었다. 지금 이 정권은 그만큼 절박하다. "공정한 척이라도 하고 공정해 보이게 라도" 하는 걸 포기할 정도로.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는 '조국 사태' 수사 때처럼 수많은 곁가지 수사들로 이어질 것이다. 특수부 검사들이 잘 하는 게 그런 것이다. 변수는 대통령이 직접 수사 지휘를 하지 않는다는 데 있는데, 지금 특수부 검사들이 윤석열 검사처럼 '난도질 수사'에 익숙한지는 잘 모르겠다.
검찰의 '정무적 감각'이란 건 단순하게 표현하면 생존의 유불리를 계산하는 전략적 사고방식이다. 검찰이 지금까지 정무적 판단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건 두 가지의 핵심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도덕적 우위와 당위성이다. 둘째, 검찰만이 갖고 있는 '은밀한 정보'들이다. 대개 그들은 두 개를 적절히 섞어 이겨야 할 상대(권력)가 치명적 선택을 하도록 유도한다. '은밀한 정보'로 정치권을 교란시켜 필요한 것을 얻는 능력이란 게 그 '정무적 감각'이다.
이런 방식은 곧잘 성공해 온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문제는 권력과 검찰이 지금처럼 한 몸이 된 상황을 여태 겪어본 적이 없다는 데 있다. 대통령이 곧 검찰이고, 검찰이 곧 대통령인 상황에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그림은 명료해졌다. 김건희를 살리고 문재인을 죽인다. 이제 이 강을 건너면 세상은 비참해지지만, 강을 건너지 않으면 검찰이 파멸한다. 대통령과 그 부인이 부도덕하다고? 그렇다면 전 정권이 얼마나 부도덕한지 보여줄 차례라는 것이다. 이게 지금 검찰 정권의 '정무적 감각'이고, 검찰의 실질적 목표다.
한동훈 검사가 여당 대표가 되고 난 후에 급격히 여론의 지지를 잃고, 대통령실에 힘 없이 당하고 있는 상황이 그걸 잘 보여준다. 검찰은 검찰로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때 여론의 힘을 받는다. 권력 자체가 된 검찰은 도덕적 우위와 당위성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만지작거리는 '은밀한 정보'는 오히려 여론에 부정적인 효과로 작용하고 있다. 영부인에 면죄부를 주고 전직 대통령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는 검찰이 어떤 행동을 해도 진정성을 의심받게 돼 있다. 정권과 한몸이란 걸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물릴 수도 없다.
'살아있는 권력'을 보위하고 '죽은 권력'을 난도질했던 일은 익숙한 일이다. 그런데 검찰 정권이 들어서고 '검찰=정권' 프레임이 가동되면서 '익숙한 일'은 원하는 효과를 불러오지 못하게 됐다. 지금껏 검찰이 권력을 단죄해 올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의 정무적 감각이 좋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권력'과 거리두기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지금 검찰청 내에 몇명이나 깨닫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면 검찰은 몰락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동물의 왕국'은 이제 시작이다. 김건희 영부인을 봐주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하면서 친문과 친명은 '동병상련'의 정으로 결집하고 있다. '문재인 사태'는 '김건희 사태'로 더 크게 번지게 될 것이다. 검찰은 문재인 전 대통령 수사도 성공적으로 만들 수는 있을 테지만, 그 이후엔 우리가 알던 검찰 제도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검찰은 새로운 시험지를 받았다. '전주'가 유죄 판결을 받은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에서 또다른 '전주' 김건희 영부인을 검찰이 어떻게 다루는지 지켜볼 차례다. 만약 '불기소'로 귀결된다면 '공정한 척'이라도 하지 않는 검찰이 스스로 불러온 "동물의 왕국"에서 어떻게 버텨나갈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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