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가 사법부 시계 40년 뒤로 되돌렸다"
▲ 지난 2016년 2월, 국회 본회의장에서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고 있는 서기호 변호사. | |
ⓒ 남소연 |
서기호 변호사는 지난 2012년 재임용에 탈락해 법복을 벗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임명한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에서 그는 가장 먼저 찍힌 판사였다. 이후 '국민 판사'로 불리던 그는 국회의원이 됐고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으로 4년 동안 사법부를 지켜봤다. 때문에 최근 밝혀진 양승태 대법원의 법관 사찰, 박근혜 청와대의 재판 개입 의혹은 변호사가 된 지금도 그에게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서 변호사는 26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최근 추가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로 밝혀진 일련의 사건에 "참담했고 충격적이었다"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추진하면서 원세훈 재판 결론이 자신들 입맛에 맞게 나오도록 하려는 청와대와 양 전 대법원장 사이에 서로 교감이 이뤄졌다고 봐야 한다"라며 이번 사건을 명백한 권력의 사법부 개입 사건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어 "일상적이고 조직적인 법관 감시와 통제, 원세훈 재판에 대한 청와대와의 교감 등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접 지시나 묵인 없이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라며 "상고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최대 역점 사업이었고, 원세훈 재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대법원장이 관여돼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이번 사건에 무한책임이 있다고 본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두고 "'7080년대'에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생활했던 법원 고위관료들이 예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라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그들이 사법부의 시계를 40년 뒤로 되돌렸다"라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이들의 성향을 분류해 기록한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고 공개했다. 나아가 법원행정처는 이들의 주장을 무력화할 구체적 대응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관련한 재판을 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교감한 문건도 공개됐다. 이 문건에 따르면 원세훈 재판의 2심 선고를 앞둔 시기에 청와대는 재판 결과 전망을 문의했다. 원 전 원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공직선거법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자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달라고 희망하기도 했다.
다음은 서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양승태, 박근혜 힘으로 상고법원 추진하려 했을 것"
앞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지난 2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이들의 성향을 분류해 기록한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고 공개했다. 나아가 법원행정처는 이들의 주장을 무력화할 구체적 대응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댓글 사건 관련한 재판을 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이 교감한 문건도 공개됐다. 이 문건에 따르면 원세훈 재판의 2심 선고를 앞둔 시기에 청와대는 재판 결과 전망을 문의했다. 원 전 원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던 공직선거법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자 우병우 당시 민정수석은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달라고 희망하기도 했다.
다음은 서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양승태, 박근혜 힘으로 상고법원 추진하려 했을 것"
▲ 서기호 판사가 판사임기 마지막날인 지난 2012년 2월 17일 낮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 정문에서 트위터 모임 '국민의 눈' 회원들이 주최한 '국민법관 재임용장 및 국민법복 수여식'에서 '국민법복'을 입고 있다. | |
ⓒ 권우성 |
- 광범위한 법관 사찰 보고서가 공개됐다. 이번 사건을 보는 심정이 어땠나?
"지난 2012년 내가 재임용에 탈락한 사건부터, 아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사태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 결국 터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는 노무현이 임명한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법원행정처가 광범위하게 조직적으로 법관들을 사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2011년 9월에 이명박이 대법원장을 임명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법관들에 대한 조직적 통제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또한 2014년부터 양승태 대법원장이 상고법원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청와대와 교감이나 거래가 있을 가능성이 보여 국회에서 여러 차례 문제제기를 했었다. 결국 그때의 우려가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에 참담했고 충격적이었다."
- 당시 국회의원으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상고법원 추진에 문제를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법원과 청와대와의 교감이나 거래 가능성은 어떻게 감지했던 건가? 당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국회 쪽으로도 움직임이 있었나?
"2014년 9월경부터 상고법원 추진이 본격화 됐다. 그 무렵에 160여 명 의원 동의로 법안이 발의됐는데, 민주당 의원도 상당수 있었다. 그 중에 다수 의원들은 상고법원 내용을 잘 모르고 서명했다.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야당 의원과 친분이 있는, 그러니까 노무현 정부 시절에 행정처 근무자들을 통해서 서명을 받았다. 행정처뿐 아니라 각급 법원장들이 광범위하게 의원들을 접촉해서 설득작업을 했었다."
- 법원행정처가 청와대를 상대로도 그런 활동을 했을 거라고 보는가?
"주요법안이 통과 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여야 의원 대부분이 동의하는 경우, 그리고 대통령이 적극 추진하는 경우다. 여야 의원이 대부분 동의하려면 찬성 여론이 높아야 한다. 정치인은 여론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상고법원은 그런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대법원은 후자의 방법을 고민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대법원은 청와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 부분을 김기춘이나 김영환 민정수석을 통해 들었을 거다. 김영환 민정수석 비망록을 토대로 보면 당시 청와대는 세월호 참사로 정치적 위기를 맞으면서 각급 일선 법원에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상황이었다. 원세훈에 대한 선고도 앞둔 시점이었다. 일상적인 판사 통제, 그리고 원세훈 재판 결론이 자신들 입맛에 맞게 나오도록 하는 것. 이러한 청와대의 관심사와 상고법원을 추진하던 대법원의 이해가 서로 교감이 이뤄졌다고 봐야한다."
"만약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았다면..."
▲ 지난해 9월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 |
ⓒ 이희훈 |
- 사법부를 책임지는 대법원이 어떻게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후임은 2017년 9월에 결정될 예정이었다. 대법원장이 교체되지만 저런 일에 가담한 고위법관들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았다면 신임 대법원장은 박근혜가 임명하게 돼있다. 당연히 양승태 대법원장과 같은 기조를 가진 사람이 될 거라 예상한 거다. 그러니 그런 법관 사찰 문서를 작성해도 문제가 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령 (2017년 12월 대선에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그 대법관 아래서 6년(대법원장 임기)은 보장되리라고 생각한 거다. 그렇게 머리가 좋다는 판사들도 설마 박근혜가 탄핵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 당시 대법원과 청와대가 '원세훈 재판만 두고 교감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김영환 비망록을 보면, 김일성 시신 참배 관련 무죄를 선고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 언급돼 있다. 또 군산지법에 판사가 영장을 기각하면서 '세월호 참사의 축소판 같다'라는 이유를 제시해 언론에 이슈가 됐다는 걸 언급한 내용도 있다. 청와대가 이런 판결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논의를 한 것으로 보이고, 원세훈 재판처럼 법원행정처 쪽에 항의나 주의를 촉구하는 주문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이번에 공개된 문건을 보면 우병우가 원세훈 재판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길 희망한다고 돼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 당시 대법관의 구성은 보수 성향이 절대 다수였다. 또 전원합의체로 가게 되면 양승태 대법원장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병우가 전원합의체를 요구했다고 본다. 또 전원합의체에서 무죄로 결정이 나면 확실한 결론이라고 쐐기를 박고 싶었을 것이다."
- 실제 우병우의 희망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대법원에 알아봤지만 누가, 어떤 이유로 해당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는지 확인할 수가 없었다.
"대법원이 명확하게 해명해야 한다. 당시 원세훈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통상적으로 소부(대법관 3명 이상으로 구성)에서 의견이 첨예하게 갈리거나 판례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소부 주심이 전원합의체로 보내게 된다.
하지만 원세훈 재판은 판단이 엇갈리거나(전원합의체 결과 13명 모두 같은 의견을 냄) 판례를 뒤집어야 하는 경우라고 보기 어렵다. 결국 이 같은 통상적인 과정이 아니라 양승태 대법원장이 직접 요구했거나, 아니면 당시 주심이었던 민일영 대법관(현재 퇴임)을 통해 요구하는 방식으로 양승태 대법원장의 의중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결과적으로 이번 사건이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지시 또는 묵인 아래 이뤄졌을 거라는 것에 무게가 실린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상적이고 조직적인 법관 감시와 통제, 원세훈 재판에 대한 청와대와의 교감 등이 양승태 대법원장의 직접 지시나 묵인 없이 진행됐다고 보기 어렵다. 법원행정처라는 조직은 양승태 대법원장을 최정점으로 맨 아래 실무라인까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지휘명령체계다. 개별 법원에서 법원장과 일반 판사와의 관계와는 완전 다르다. 재판을 하지 않고 행정만 하는 곳이기 때문에 명령권자의 지시 없이 움직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상고법원 문제와 원세훈 재판이 연결되는 지점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관여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상고법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최대 역점 사업이었고, 원세훈 재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대법원장이 관여돼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이번 사건에 무한책임이 있다고 본다."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블랙리스트 맞다"
- 법원 일각에서, 그리고 일부 보수 언론은 이번 추가조사위 결과를 두고 '실제로 불이익을 받은 경우는 없기 때문에 블랙리스트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법관 사찰 의혹을 제기한)이탄희 판사가 처음부터 '블랙리스트가 있다'라고 말한 게 아니다. '판사들을 뒷조사한 파일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실제로 뒷조사 파일이 밝혀진 거다. 그 과정에서 언론에 보도되면서 시민들 귀에 잘 들어오는 '블랙리스트'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문건도 블랙리스트가 맞다.
블랙리스트의 개념은 불이익이 따라야만 되는 것은 아니다. 위험인물에 대한 감시 목적으로 작성된 문서도 블랙리스트라고 볼 수 있다. 또 사람의 연명이 나열돼 있지 않더라도 개별 인물에 대한 조사가 있었다면 그 사람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제목이 블랙리스트가 아니라고 '블랙리스트가 없다'라고 말하는 건 잘못 됐다."
-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 사건에 대해 국민께 사과하고 후속조치를 약속했다. 하지만 그에 앞서 대법관들은 "사법부 독립과 재판 공정성에 불필요한 의심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보도에 깊은 우려와 유감을 표명"했다. 청와대와 대법원의 교감이 이뤄진 문건이 공개됐음에도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적절한 태도였다고 생각하나?
"이번 추가조사위 보고서에 나와 있는 내용만으로도 충격이고 법원의 신뢰가 추락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당연히 먼저 사과를 했어야 한다. 법원이 국민들에게 의심을 살만한, 국민들이 의혹을 가질만한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사과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런 발표를 한 것은 여전히 개개인의 명예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 김명수 대법원장의 입장발표 이후에도 이번 사안에 강제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여전히 사법부의 자정작용에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보나?
"김명수 대법원장은 아직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최대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 법원 내부에 아직 태도를 분명히 하지 못한 중간적 성향 판사들의 지지를 받기 위한 목적이라고 본다. 사법부가 강제수사를 받게 될 경우 사법부 독립이 무너지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렇게 판단하는 판사가 대다수인 상황에서 즉각적인 강제수사는 김 대법원장에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또 곧바로 행정처장을 교체하면서 그동안 조사되지 않은 문건에 대해서도 강제 조사를 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법원 내부에서 대법원장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해보려는 것으로 이해한다."
- 그럼에도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으로 사법적 처분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들이 볼 때 답답할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의 특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사법적 처벌이 이뤄지려면 결국 검사가 기소해서 판사가 판단해야 한다. 법원 내부에서 벌어진 일을 내부인이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주 특수한 상황이다. 더더욱 확실한 증거가 확보된 후에 수사와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 만약 그것이 애매한 상황이 되서 증거부족으로 판사가 무죄 판결을 한다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조금 더 면밀한 진상 파악 후에 강제수사가 이뤄져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법원에 새로운 흐름 거스를 수 없다"
- 종합적으로 이번 사태가 사법부 역사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 '7080년대'에 권위주의 정권 아래서 생활했던 법원 고위관료들이 예전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저지른 일이다. 그들이 사법부의 시계를 40년 뒤로 되돌렸다. 그들은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건이 터졌을 때도 '7080년대에는 더 심한 것도 있었다'라며 별일 아닌 것처럼 취급했다. 그때 뿌리를 뽑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들이 그대로 고위법관이 돼 옛날 생각을 하고 앉아 있으니 이런 일이 벌어졌다."
-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후배 법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그럼에도 사법부의 시계는 다시 앞으로 가고 있다. 고위법관들을 시계를 40년 전으로 돌려놨지만, 지금의 사법부는 이미 민주정부를 경험한, 재판의 독립을 충분히 누린 소장 판사들이 주축이 돼 가고 있다. 이제 법원도 새로운 인물과, 새로운 흐름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 흐름을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특히 판사회의가 강화되는 모습을 주목해야 한다. 판사회의가 시작된 것이 지난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 사건 때부터다. 그때의 주축멤버들이 지금은 부장판사가 됐다. 전국법관회의가 열리고 그들이 이번 사건에 추가조사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결국 그들이 법원을 바꿔낼 거라고 믿는다."
- 판사에서 국회의원으로,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계획이 있나?
"변호사로 돌아와 내게 사건을 맡겨준 의뢰인들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다. 나 역시 억울한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분들을 변호하려 애쓰고 있다. 당분간, 아니 상당기간 동안 정치권 복귀는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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