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밭 그물, 새들에겐 ‘죽음의 덫’

김봉균 2018. 01. 02
조회수 390 추천수 0
새매, 물까치 등 걸려 서서히 죽어가
제구실 못해도 방치, 주인·당국 무관심

b8.JPG» 법정 보호종 새매가 밭 그물에 몸이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고 있다.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길을 방해하는 것은 무수히 많다. 갑자기 눈앞을 가로막는 회색빛 건물과 유리창이 즐비하고, 눈부신 빛과 굉음을 내뿜으며 내달리는 자동차와 도로 역시 곳곳을 누비고 있다. 녀석들은 가던 길을 갔을 뿐인데, 무언가에 의해 이동에 방해를 받고 심하면 목숨을 잃는 큰 사고를 겪기도 한다. 위험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한 밭 그물도 그 하나이다.

b1.JPG»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는 밭 그물.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가 보니 저 멀리 밭 그물에 무언가가 얽힌 채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천연기념물 제323-4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에 지정된 법정 보호종 맹금류인 새매였다. 녀석은 거꾸로 매달린 채 입을 벌리고 거칠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b2.JPG» 밭 그물에 얽힌 새매는 사람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서서히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몸부림칠 수 없도록 포획한 뒤 자세히 살펴보았다. 얇고 날카로운 줄이 발과 날개, 몸통에까지 어지럽게 감겨있었다. 녀석이 스스로 줄을 풀어내고 탈출하기란 불가능했다. 누군가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서히 목숨을 잃어갔을 녀석이지만, 이 모습을 가볍게 지나치지 않은 신고자 덕분에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녀석을 구조한 뒤 주변을 살펴보았다. 밭 그물은 약 100m가 조금 넘는 길이로 과수원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짧은 길이의 그물에 법정 보호종 맹금류 3구, 까치·물까치를 비롯한 참새목 조류 6구 등 총 9구의 사체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고작 100m의 밭 그물을 딱 한 번 관찰했을 뿐인데, 살아있는 새매까지 총 10마리의 새가 걸려 있는 거로 보아 잠재적으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이와 같은 피해를 겪을지 예상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로 밭 그물은 너무 얇아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그물을 처음 겪는 새들에겐 몸이 엉키고 나서야 장애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b3.jpg» 또 다른 새매는 이미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물에 걸린 채 죽은 새들의 모습을 보면서 바닷속에 버려진 폐그물에 끝없이 생물이 걸려드는 ‘죽음의 덫’이 떠올랐다. 이미 명을 다한 새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넘어 사체를 먹기 위해 접근할지 모를 또 다른 야생동물이 걱정스러웠다. 

실제로 그랬을 수 있다. 과수를 먹기 위해 접근한 참새목 조류가 먼저 그물에 걸려 피해를 보고, 이후 이 새들을 먹이로 삼는 상위 포식자가 접근했다가 미처 그물을 알아채지 못하고 엉켜버렸을 수 있다는 합리적 추측도 가능하다. 사체가 소비되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발생할지 모를 질병의 전파까지도 우려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b5.JPG

b4.JPG» 어지럽게 널려있는 사체는 자칫 또 다른 2차 사고를 야기할지 모른다. 그물에 걸린 물까치(위)와 까치.
 
밭 그물은 애초 야생동물로부터 농작물이나 과수 피해를 막기 위해 설치한다. 하지만 이 과수원에 설치된 밭 그물은 사실상 그 목적을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오랜 시간 방치된 듯 그물 곳곳이 찢어지거나 말려 올라 있어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오히려 폐그물처럼 너저분하게 널려있어 불특정 다수의 야생동물에게 피해를 끼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과수 피해를 우려하는 농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겠지만, 법정보호종인 야생동물을 포함한 불특정 다수의 생물이 무차별적 피해를 겪고 있다면 그런 밭 그물은 제거함이 마땅하다. 당국은 더는 운영하고 있지 않은 과수원 등의 그물이 애초 설치목적과 어긋난다면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

b6.jpg» 아랫부분이 거의 말려 올라가 야생동물을 막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는 상태인 밭 그물.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농작물 피해를 우려해 설치한 시설물에 대해 철거나 보수, 교체를 지도·감독할 권한이 없다는 게 몇몇 관련 부서의 입장이다. 사실상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폐그물이지만, 그마저도 철거를 권고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물의 사용 및 선택에 부분적 제한을 하거나, 지자체에서 주기적으로 점검 혹은 신고에 따라 적어도 버려진 밭 그물을 수거할 수 있으면 좋겠다. 농민에게 관련 내용을 주기적으로 교육해 권고할 수 있다면 불필요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현재로써는 농민들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물의 두께를 굵은 것으로 사용해 야생동물이 쉽게 그물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도록 하거나, 부드러운 재질을 이용해 신체가 걸리더라도 조금은 더 쉽게 빠져나가고 신체 손상이 덜 입도록 배려할 수는 없을까. 또 더는 필요치 않은 밭 그물을 깨끗하게 철거한다면 야생동물의 불필요한 희생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밭 그물 설치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야생동물로 인해 직접 피해를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우리는 충분히 헤아려야 한다. 자금과 노동력을 들여 정성껏 재배하고 키워 낸 농작물이 하룻밤 사이에 망가지는 것을 보는 농민들의 마음도 야생동물의 이동권과 생존권만큼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밭 그물을 설치한 농민을 탓하기보다는 동물의 접근을 적절히 예방하고 차단함과 동시에 서로에게 경제적, 감정적, 생명의 소모를 일으키는 갈등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밭 그물의 설치가 야생동물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지, 자신의 농작물과 과수에 피해를 끼치는 야생동물을 죽여 없애고 분풀이를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피해를 겪는 농민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b7.JPG» 구조한 새매의 몸 구석구석에서 그물을 어렵게 풀어낼 수 있었다.

이런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노력을 피해 당사자들에게만 떠넘기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농작물의 생산자와 야생동물 사이의 갈등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농작물을 소비하는 우리와도 결코 뗄 수 없는 문제다. 피해를 겪는 농장에 대한 예방책 지원, 피해 정도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이에 걸맞은 투명한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먹을 농작물의 가격이 다소 오를 수밖에 없다면, 이를 너그러이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심을 갖춰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 인간의 거주지 확대와 농토 확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면서 자연 생태계가 속수무책으로 훼손됐다. 서식지가 줄어들고 먹을 것을 찾기 어려워진 동물은 자연히 농작물을 재배하는 곳에 이끌린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싶어서 혹은 그들이 행한 것이 우리에게 피해가 된다는 것을 알고서 하는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사람들이 산에 올라 임산물을 채취하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야생동물이 사람 거주지 부근으로 내려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 인식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불공평하다.

단지, 야생동물도 삶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사진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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