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를 보기위한 수고

진짜를 보기위한 수고

원철 스님 2018. 01. 22
조회수 262 추천수 0

11원철11-.JPG 

해가 바뀐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신년이 주는 새로움은 간 곳이 없고 무덤덤한 그저 그런 일상의 연속이다새해첫날 큰맘먹고 북한산에 올랐던 그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향한 다짐을 다시금 되새긴다.
11일 새벽 해맞이 산행을 위해 430분에 자명종을 맞추었다따르릉 소리에 잠을 깼다시계를 보니 자정이다꿈과 현실이 둘이 아니라더니 꿈속에서 알람소리를 들은 것이다그렇게 설랠 일도 아니고 설랠 나이도 아닌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다시 잠을 청했다이번에는 전화벨이 울린다같이 오르기로 한 일행의 연락이었다. 430분이다세수를 하고 옷을 주섬주섬 챙기니 그제서야 숙소의 자명종이 울린다.

밖은 깜깜했지만 춥지 않았고 날씨는 맑은지라 별빛이 초롱초롱하다북한산 구기동 입구에는 일출 산행팀 수십명을 세워놓고 안내판 앞에서 유경험자가 열심히 브리핑을 하고 있다이미 잘 아는 길이라 굳이 설명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지라 그냥 지나갔다얼마 후 등산화가 군화같은 저벅걸음 소리를 내며 불빛의 행렬과 함께 뒤따라온다뒷팀을 의식한 채 발걸음을 빨리 했더니 금새 지친다겨우내 웅크리고 지낸 까닭에 운동부족 탓이리라코끝에서 느껴지는 냉기도 만만찮다할 수없이 차가운 바위에 기댄 채 휴식을 취했다뒷팀이 지나간다추월 당한 것이다기운을 차린 뒤 천천히 일상걸음으로 쉬엄쉬엄 따라갔다얼마나 걸었을까앞팀의 낙오자가 한 두명 보인다금방 앞팀 후미가 나타났다경쟁적으로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선후를 다투지 말고 각자 자기능력에 맞추어 자기 길을 걸어가면 될 일이다.

눈이 쌓인 곳은 음지길이고 녹은 곳은 양명한 곳이다서쪽 달이 보이면 등성이 길이고 별만 보이면 골짜기 길이다손전등이 비추는 한평 불빛에 의지한 길이지만 올라갈수록 뒤돌아보는 서울 시가지의 불빛면적은 기하급수적으로 넓어진다서산에 걸린 새해 첫달을 만났다카메라로 겨우 잡고보니 화면상으로 일출인지 월몰인지 구별이 불가능하다올해는 11일이 음력1115일인지라 보름달을 전송하는 기쁨을 덤으로 누렸다이제부터 온통 눈밭이 펼쳐진다여기가 빙점인 모양이다이내 옅은 아침안개 속에서 내남문이 성벽과 함께 떡하니 버티고 서있다다왔구나!

문수봉에서 해맞이를 했다예전에는 첫일출을 향해 두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한해의 소원을 빌었다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일출을 찍으려고 두 손을 바닷게 두 발가락처럼 모운다핸드폰의 대중화가 일출풍속까지 변화시킨 것이다일출도 찍었지만 일출산행객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기도하는 새로운 모습도 함께 찍었다합장은 합장인데 두 손바닥이 닿는 것이 아니라 양손의 두 손가락을 스마트폰이 이어주고 있다태양신 혹은 일광(日光)보살을 찬탄하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인가 보다누구누구 할 것없이 덕담과 함께 여기저기 일출사진을 보내며 새해인사에 바쁘다.

11원철1-.JPG 

가상과 실상이 구별되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집에 누워 TV를 통해 전국의 일출풍광을 모두 볼 수 있는 쉬운 방법도 있다그럼에도 가상은 가상일 뿐이다나만의 실상을 보기위해 새벽부터 산에 오른 것이다.  실상을 보려면 노고와 땀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실상을 가까운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선 가상을 빌려야 한다실상은 내것이지만 공유하면 가상이 된다또 실상은 순간포착 후 사라지지만 가상은 영원히 보관할 수 있다각각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어쨋거나 나를 통해 실상과 가상이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욱 좋은 일이다.

인근 문수사 법당으로 갔다고개를 숙이며 새해소원을 기원한 뒤 부엌방으로 가서 떡국을 먹었다일출순례객을 위해 떡국을 끓이는 자원봉사자 10여명과 함께 새해인사를 나누었다작년에 이어 두 번째 먹는 떡국이다누구는 나이 먹기 싫어 떡국이 아니라 만둣국을 먹는다는 말이 생각났다여긴 일반식당이 아닌지라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하긴 만둣국을 먹는다고 나이를 피해갈 수 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절집의 옛시인은 해와 달이 함께 뜨고 지는 날을 이렇게 노래했다.
일월재수미산요(日月在須彌山腰)
해와 달이 수미산 허리에 걸려 있도다.

评论

此博客中的热门博文

[인터뷰] 강위원 “250만 당원이 소수 팬덤? 대통령은 뭐하러 국민이 뽑나”

윤석열의 '서초동 권력'이 빚어낸 '대혼돈의 멀티버스'

‘영일만 유전’ 기자회견, 3대 의혹 커지는데 설명은 ‘허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