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파도 사이에서도 쉬세요

새해엔 파도 사이에서도 쉬세요

이승연 2018.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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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는 자정을 기해 독일 전역의 밤하늘은 현란한 빛깔과 다양한 모양의 폭죽으로 가득합니다. 동네 거리에서 공원에서 부두에서 어디서건 누구나 쏘아올리는 폭죽의 빛깔은 환상적이지만, ‘불꽃놀이’라는 예쁜 우리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은, 폭발하는 소리와 화약냄새, 자욱한 연기가 아마 전쟁터가 이럴 것이라는 연상을 일으키기 때문일겁니다. 어린이와 노인들, 특히 개들은 폭죽소리에 엄청난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모든 창문을 닫고, 안심시켜 주어야 합니다. 지나간 나쁜 일들은 폭죽에 날려 버리고, 새해에 끼어들 ‘액’은 폭죽소리에 겁이나 도망가기를 기원하는 것인데, 매해 그 짧은 순간을 위해 독일에서 공중에 쏘아올리는 돈은 수 십억에 달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살상의 전쟁 무기에 쏟아붓는 돈을 생각하면, 폭죽에 쓰는 돈은 새 발의 피 정도도 아니고, 아무도 죽지않고, 악귀를 쫓아내는 굿 같은 심리적인 효과도 잠시나마 있을 듯 합니다. 설날 아침, 거리는 아직도 매캐한 화약냄새와 폭죽의 쓰레기들로 환상적이던 전날의 불꽃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고, 파티로 늦게까지 술 마시고 춤 춘 도시는 늦잠을 자고 있지요.

아직 여섯 식구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살던 시절 우리 집의 설날 아침. 일찍 일어나 온 집안을 환기하신  어머니, 아버지는 맞절을 하셨고, 떡국을 먹기 전, 우리 삼 남매는 할머님과 부모님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맑은 공기와 햇빛, 온화한 안방의 장판지 색깔, 흥미진진하게 기다리던 세뱃돈, 애써 만든 만두를 드디어 먹는 기쁨. 그 당시 한국엔 야간 통행금지가 있었고, 성탄과 신년 전야에만 해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해를 맞는 자정엔 서울시내가 북적거렸고, 종각에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시장이 33번 종을 쳐 새 하늘을 조각조각 열었습니다. 서양의 종은 그 자체가 흔들리며 화려하고 연속적으로 울리는 반면, 한국의 종은 사람이 온 몸으로 직접 치고, 소리는 깊고 온화하며, 한 타종에서 다음 타종 사이에 쉼이 있습니다. 그 쉼 속에서 우리는 종소리의 여운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침묵합니다.

타종 사이의 쉼을 생각하며, 예술은 ‘한 파도와 다음 파도 사이’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릅니다. 달려가면서는 제대로 볼 수 없고 제대로 들을 수 없지만, 멈추어 쉬면서 우리는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촛불집회 때의 ‘파도타기’가 생각나는데,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이 참 부럽습니다. 거기에도 쉼이 있었습니다. 촛불의 파도가 끝을 알 수 없는 저 만큼 뒤에 있는 곳에 닿을 때 까지 먼저 일어난 파도들은 쉽니다. 기다려주면서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기준을 고수하기 위해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마음을 열어놓아 아주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촛불집회의 파도타기가 그렇게 감동적인 것은 그 많은 사람들이 각자이면서도 하나로서 깨어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폭죽의 화려함과 악귀추방의 기원이 우리의 밖에 있는 것을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라면, 파도타기는 우리 자신들의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소리없이 일렁이는 파도로 흘러나와 대양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감동은 순간으로 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올 한 해, 갓난아이처럼 모든 것이 아직 열려있는 한 해. 작고 큰 파도들 사이에서, 타종과 타종 사이에서 쉬실 수 있길 빕니다. 그리고 부디 옆사람들도 좀 쉬라고 격려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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