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에게 역사 공부가 필요한 이유

72만명의 올림픽 난민이 발생했던 1988년
임병도 | 2018-01-18 08:36:18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1월 17일 매일경제는 1면에 평창행 KTX 열차가 지나가는 용산역 일대의 낙후된 모습이 국가이미지를 훼손한다며 임시 가림막을 설치해야 한다는 기사를 배치했다.

1월 17일 <매일경제> 1면에는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배치됐다. 평창행 KTX 열차가 지나는 용산역 인근의 낙후된 모습을 올림픽을 위해 방문한 외국인이 볼까 부끄럽다는 내용이다.
“열차 창문 밖으로 무너져가는 노후 주택과 녹슨 철제지붕, 폐타이어와 쪼개진 기왓장이 그대로 보인다. 멀리 보이는 한강트럼프월드 등 고층 빌딩들과 겹쳐지면 서울은 엄청난 빈부 격차를 지닌 도시로 보일 수밖에 없다. 외국에 국격을 높일 올림픽이 되레 국가 이미지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국격을 높여야 할 올림픽 개최가 철저하지 못한 준비로 자칫 국가 이미지만 떨어뜨릴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2017년 매일경제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기자는 빈부의 격차를 드러내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으니, 임시 가림막이라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사를 읽으면서 기자가 ‘올림픽 난민’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72만명의 올림픽 난민이 발생했던 1988년’
▲1987년 서울 상계동 철거 현장 사진 ⓒ경향신문

대한민국은 평창올림픽 이전에 88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다. 1987년 박종철, 이한열의 죽음이 잊힐 만큼 온 나라가 기쁨과 환호로 가득 차 있었다. 대다수 국민이 올림픽으로 들떠 있었지만, 무려 72만 명의 ‘올림픽 난민’이 한국에서 발생했다.
1981년 서독 바덴바덴에서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이 확정되자, 전두환 정권은 그 이듬해인 1983년부터 ‘전면 철거 후 주거지 개발’이라는 도시 재개발사업을 시행한다. 1983년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93개 지구(42만6490㎡)에서 사업이 강제로 추진됐고, 72만 명의 시민이 서울을 떠나야 했다.
전두환 정권은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면서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웠다. 싼값에 아파트를 지어 올림픽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것과 도시 영세민과 무주택자의 주거 환경 개선이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의 수익은 대부분 건설회사와 독재자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지역에 살던 도시 영세민들은 정든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단 몇 분의 성화 봉송을 위해 땅굴 생활을…’
▲상계동 주민들의 철거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 ⓒ김동원

당시 김포공항에서 강동 올림픽촌까지 가는 강변도로에서 보이는 판자촌은 대부분 철거됐다. 비행기 항로 상에 위치했던 신림동이나 봉천동도 철거됐다. 올림픽을 찾는 외국인이 비행기나 차에서 볼까 창피하다는 이유였다.
도시 영세민들이 아무리 철거를 반대해도 전두환 정권은 ‘올림픽’을 내세워 묵살했다. 가난한 한국의 모습은 절대 보여 줄 수 없다는 암묵적 여론은 폭력과 진압이 동반된 ‘강제 철거’를 정당화했다.
1987년 4월 4일 상계동에는 천 명이 넘는 용역과 전경들이 진입해 주민들을 강제로 쫓아냈다. 상계동 주민들은 명동성당 앞에 두 개의 대형 천막을 짓고 무려 300여일을 보냈다.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주민들은 부천 고강동 고속도로변 주변을 매입해 집을 짓기로 했고 부천시도 이를 허가했다.
부천에 도착한 주민들은 드디어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다며 임시 가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며칠 뒤 들이닥친 용역들은 가건물을 철거했다. 88올림픽 성화 봉송이 지나가는데 가건물이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움막을 짓고 땅굴을 파서 겨우 생존했다. 단 몇 분의 성화 봉송을 위해 주민 수백 명이 무려 10개월간 땅굴 생활을 했다. 부천시는 이마저도 보기 싫다면 대로변에 높은 담을 설치했다. 철거 투쟁에 동참했던 고은태 교수는 “‘외국인들에게 너희는 보여서는 안 될 존재야’라고 국가가 말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행위였다”라고 말했다.
▲1986년 매일경제 10면. 상계동 재개발사업을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화면 캡처

우연인지 몰라도 1986년 5월 15일 <매일경제>에는 <우리동네 새모습>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도봉구 상계동 일대에 고층아파트가 신축되면서 신시가지가 조성된다는 내용이다. 상계동 주민들이 철거로 계속 쫓겨나던 시기였다.
“평창동계올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에 달라진 서울과 대한민국의 위상을 지구촌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관계기관들이 이동 경로 등을 고려해 좀 더 능동적으로 거주민들 이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환경 개선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허송세월한 것이 안타깝다” (2017년 매일경제 ‘평창가는 첫 길목 ‘부끄러운 민낯’)
용산역 일대가 개발 사업 지연으로 슬럼화된 것은 분명 문제이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을 찾는 외국인이 본다고 해서 창피할 일은 아니다.
<매일경제> 기자가 주장하는 가림막 설치는 88올림픽 강제 철거의 명분과 비슷하다. 독재자는 국민의 삶보다는 외부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으로 포장되길 원한다. 독재자에게 올림픽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다. 그 과정에서 국민의 희생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강요한다. 하지만 지금은 1988년이 아니라 201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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