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 중단해 달라"…'밀양 사건' 피해자의 간절한 호소

 성폭력상담소 "피해자의 평온할 권리는 국민의 알 권리에 우선하는 생존권"

박상혁 기자 | 기사입력 2024.06.14. 07:24:20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하겠습니다.(중략)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차 가해 논란에도 일부 유튜버들의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밀양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자매가 무분별한 추측으로 또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피해자 여동생의 입장문을 대독했다.

피해자 자매는 "20년 전(사건 당시) 이후로 영화나 TV 방송에 나왔을 때 늘 있었던 것처럼 잠깐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실 줄은 몰랐다"며 "우리를 잊지 않고 이렇게 많은 시민분들이 제 일같이 화내주고 분노하고 걱정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피해자 가족에게 동의를 구했다거나, 피해자가 먼저 공론화를 요청했다고 주장하며 가해자 신상 공개를 정당화한 일부 유튜버들에 대해 "피해자와의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이 맞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피해자 동의,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 달라"며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받게 하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피해자 자매는 "(이 사건이) 잠깐 반짝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란다. 경찰, 검찰에게 2차 가해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며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돼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13일 서울 마포구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입장을 대독했다.ⓒ프레시안(박상혁)

2004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자 수사를 담당한 경찰서는 출입 기자들에게 수사 내용, 피해자의 이름과 나이, 거주지가 모두 적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후 전국 언론사들은 보호자 동의 없이 수사 장면을 촬영하거나, 피해자의 육성을 변조하지 않고 방영하는 등의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 그럼에도 피해자 자매는 당시 중학생이었기에 사건이 어떻게 보도되는지, 피해자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피해자 자매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밀양'이 들어간 키워드만 보더라도 심장이 떨릴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영상과 보도, 댓글을 보고 있으니 (미디어는) 우리를 무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같은 피해자의 호소와 달리, 일부 유튜버들은 현재까지도 피해자의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음성 변조 없는 피해자의 목소리와 피해자가 겪은 폭력이 담긴 판결문을 전부 공개해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인 유튜버 '판슥'은 이날 새벽 피해자 여동생과의 통화 내역 및 피해자가 2005년 작성한 인터넷 게시물 전문을 공개했다. 피해자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18년간 가해자들에 대한 재조사와 처벌을 원했다고 생각해 사건 공론화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김 소장은 "지난해 11월 피해자가 판슥에게 전화한 것은 맞지만, 이는 사건 공론화가 아닌 판슥이 당시 진행하던 고민 상담을 받기 위했던 것"이라며 "피해자는 공론화를 원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적도 없고, 연락 도중 판결문을 비롯한 본인의 정보를 모두 지워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판슥이 피해자의 정보를 지우지 않다가 반년이 지난 현재 동의 없이 공개했다"고 반박했다.

또한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에서 평온할 권리는 국민의 알 권리에 우선하는 생존권"이라며 "피해자가 본인 언급을 원치 않으니 판슥은 즉시 (피해자 언급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며 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피해자 가족이 사건 재수사를 원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는 "논의해 보지 않았다"며 "입법부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고민할지, 수사기관이나 사법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제도적 가능성이 있는지 검토하고 모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밀양 사건에 대한 언급이 진지하게 피해자를 고려해서 나왔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며 "이 사건이 소모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한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현재까지도 심리적·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가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온라인 모금 운동을 펼친다고 밝혔다. 모금함에 담긴 후원금은 전액 피해자의 생계비에 쓰이며, 전달 내역은 모금이 종료된 후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상담소 측은 "목표 모금액은 3000만 원이지만, 목표액을 초과한 후원금도 전부 피해자에게 전달된다"며 "이러한 걸음이 사회적 우애와 연대의 힘으로 지속되는 단단한 기반이 되기를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모금 운동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바로가기)

박상혁 기자

프레시안 박상혁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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