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관계’와의 친절한 접촉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느슨한 관계’와의 친절한 접촉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박한표  | 등록:2024-06-18 09:28:54 | 최종:2024-06-18 10:13:20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느슨한 관계’와의 친절한 접촉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17일)

어제 마티아스 뇔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이야기를 마친다고 했는데, 할 말이 남았다. 오늘 더 이어간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모든 관계가 다 깊은 우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느슨한 관계’와의 친절한 접촉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흥미롭게도 새로운 직장을 얻거나 집을 구할 때, 취미와 관련해 조언이 필요할 때 내게 유용한 도움을 주는 정보는 아주 친한 친구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끔 만나는 느슨한 관계의 사람들로부터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강력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들은 내게 전혀 새롭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느슨한 관계의 사람은 나와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며 나와는 다른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새로운 영감이나 기회, 판단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친구의 수가 많든 적든, 참여하는 모임이 얼마 든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관계의 성격이 다 다른 것일 뿐 관계의 수준을 평가하거나 순서를 메기는 일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관계 사이에서 휘둘리거나 휩쓸리면서 내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관계는 천천히 자라는 식물 같은 것이다. 관계가 발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미지 관리 전문가들은 “첫인상을 대신해 줄 두 번째 기회는 없다”라는 말로, 첫인상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많다.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만났을 때야 본모습이 드러나는 사람들이 있다.  친구들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발견하는 일은 쾌 흥미롭다. 관계가 깊어 지려면 상대의 좋은 측면만이 아니라 그의 약점, 실수, 한계까지도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지낼 수 있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관계의 기술이 부족하다.  좋은 관계는 제대로 꽃을 피우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파르헤지아(Parrhesia)”라는 개념이 있었다. 이는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하는 충고는,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기분 좋게 들릴 리 없다. 충고와 의견을 현명하게 다루는 법을 알아야 한다. 솔직함과 정직함은 차이가 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정직함’이고, ‘솔직함’은 내 마음 속의 판단이기 때문에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은 평화를 깨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말해서’ 라는 발언은 관계를 망가뜨리기 쉬운 말이다. 그냥 말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나는 가끔 내 솔직한 마음을 말하여 대화 분위기를 ‘뻘쭘’하게 만들곤 한다. 이젠 솔직한 말은 가급적 안 할 예정이다. 그리고 아무리 가치 있는 말이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가슴 속에 들어가 화학작용을 일으키지 않으면 의미가 퇴색된다. 그러나 가치 있다고 상대에게 함부로 충고하거나 ‘지적 질’하는 것은 좋지 않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충고는 위에서 명령하고 아래에서 수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하되 상대에게 내 생각대로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 겸손한 충고의 자세가 필요하다. 만일 상대가 나와 생각이 다르다면 그때는 뒤로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다. 상대의 선택을 존중해 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의 의견 차이가 드러났을 때는 자신의 입장을 견지하더라도 상대의 말을 제대로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왜 저렇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으로 중간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설명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 또한 섣불리 판단을 내려서도 안 된다.

어떠한 사안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입장이 다를 때도 있다.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정도가 달라서 서운함과 오해가 쌓이는 경우다. 이때 자신이 느낀 바를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해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나의 경우는 내가 존경할 수 없는 사람과는 친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이를 곁에 두지 않겠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상대를 존중할 수 없다면 따로 관계를 돈독히 하지 않을 생각이다. 자신과 이야기를 하는 듯한 사람을 알고 지내는 것보다 더 행복한 관계는 없다.

때때로 자신의 모습을 과장되게 연출하고, 감정을 극적으로 표출하며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신뢰할 수 없다. 겸손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은 장담하는 법이 없다. 믿음이 가는 겸손함은 미세한 말투와 표정, 몸짓으로도 느낄 수 있어서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세심한 사람들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좋은 친구 사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브라이언 헤어·버네사 우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에서) SNS에 떠다니는 “네 종류의 친구”도  다시 한 번 더 공유한다. 첫째는 꽃과 같은 친구(花友, 화우)로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이,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는 바로 꽃과 같은 친구이다. 둘째는 저울과 같은 친구(秤友, 칭우)로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운다. 그와 같이 자신에게 이익이 있는지 없는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이다. 셋째는 산과 같은 친구(산우, 山友)로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준다. 그처럼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이다. 넷째는 땅과 같은 친구(지우, 地友)로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준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이다. 친구가 많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깊이가 중요하다. 산과 같은, 땅과 같은 친구가 진정한 친구이다.

사랑하려 거든 / 류인순
 
고슴도치같이 사랑하라
서로 소유하려 들지 말고
너무 가까이 가려 하지 말고
욕심에 가시 털 세우지 말고
서로 찔려 상처 생기지 않게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보며
가슴으로 사랑하라

영원한 평행선으로
쉬어 가는 간이역에 앉아
함께 숨 고르며
손잡으면 닿을 수 있는
그만큼의 거리에서

바라보는 눈빛만으로
주고받는 속삭임만으로
서로의 온기를 잃지 않는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박한표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문화원장을 하다가 와인을 공부하였습니다. 경희대 관광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또한 와인 및 글로벌 매너에 관심을 갖고 전국 여러 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운동가를 꿈꿉니다. 그리고 NGO단체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인문운동에 매진한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마을 활동가로 변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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