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떠난 이태원 참사 분향소, ‘기억·소통공간’으로 새출발
499일간 위로와 연대의 공간 역할…“끝 아닌 새로운 시작”
- 조한무 기자 chm@vop.co.kr
- 발행 2024-06-16 18:29:47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16일 서울광장에서 이태원 참사 분향소 운영 종료식을 진행했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참으로 정말 오랜 시간을 잘 버텼다”며 “때로는 분노하고 울고 웃으면서 항상 이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 때마다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오늘까지 잘 버텼다”고 지난 시간을 곱씹었다.
이 위원장은 “오늘은 내일은 준비하는 시간이고, 끝은 시작을 알리는 메시지”라며 “우리는 이 분향소를 끝을 내면서 새로운 시작을 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오늘 이 자리까지 버티게 해 주셨던 시민, 종교계, 정치계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청중을 향해 엎드려 절했다. 청중은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이 위원장의 “분향소를 오늘로 마무리하고 새로운 길로 가도록 공식 선포하겠다”는 발언으로 분향소 운영은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그간 분향소는 유가족 간 위로의 공간, 유가족과 시민 간 연대의 공간으로 역할 했다. 고 문효균 씨 어머니 이기자 씨는 “아이들의 영정을 눈물로 올리려 가슴을 때리고,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하고, 슬픔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다스리던 이 자리를 결코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한없이 울고, 아이들 이야기를 맘껏 하며 웃을 수 있고, 과거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치유와 연대의 현장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에게 분향소가 없었다면 지금쯤 집에서 몸은 살아있지만 영혼은 죽은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 씨는 “이제 분향소는 사라지고 새로운 공간으로 이전하지만, 유가족들 마음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유가족들과 지금까지 응원해 주신 시민분들, 종교계 분들께 감사드리며, 진실규명 끝나는 날까지 곁에 계셔주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서울광장 분향소는 지난해 2월 4일부터 499일간 운영됐다. 당시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진상규명 가능성이 명확해질 때까지 분향소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5월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공포되고 현재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 단계에 들어서면서, 진상규명 과정에 보다 집중하고자 분향소 이전을 결정했다.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재발 대책 과제 남아…“제2단계 실천 투쟁으로”
이태원 참사를 둘러싼 과제가 산적하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어느 하나 완결된 게 없다. 분향소 이전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어야 하는 이유다.
박석운 시민대책회의 공동대표는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안전관리 대책 실종으로 예비됐고, 재난 대응 실패로 발생됐으며, 재난 수습 실패로 확대됐다”며 “그러나 1년 8개월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라고 짚었다. 그는 “책임자 처벌은 꼬리 자르기 수준으로 진행되다가 그나마도 흐지부지될 위험에 처해 있다”며 “재발방지책 마련도 입으로만 외칠 뿐,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 대책은 여전히 실천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다시는 이런 사회적 참사가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고 입 모아 말했지만, 실효성 있는 사회적 재난 방지 대책이 실천되지 않고 안전 사회 실현이 안 되는 사이 이태원 참사가 눈앞에 나타났다”며 “또 그 뒤에도 오송 참사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성역 없는 책임자 처벌과 재발방지책 마련이 실종돼 버린다면, 또다시 제3의 세월호 참사, 제4의 이태원 참사가 우리 사회를 엄습하게 될 것”이라며 “이번에야말로 악순환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법이 제정되고 특조위 설치를 앞두고 있지만, 남은 과제의 완결을 담보하기에는 부족하다.
박 대표는 “지금부터라도 특조위에서 성역 없는 진상규명이 제대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면서 “특히 형사적 책임 묻는 측면만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평온하게 길거리를 걷던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저토록 황망하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 등이 성역 없이 집중적으로, 입체적으로 조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실사구시적 조사 결과에 터 잡아 사회적 참사를 예방하고 안전 사회를 이루기 위한 실효성 있는 개선 대책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특별법에는 부족한 점도 많아서 사실 걱정되는 점도 있다”며 “이런 점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관계기관의 비협조나 입체적 방해 공작에 대한 실효성 있는 사회적 감시가 유지 강화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분향소 이전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이태원 참사 추모 투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제2단계 실천 투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특조위 적기 시작 지원”…시민사회 “계속 함께 할 것”
이날 행사에는 정치권 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제대로 진실을 밝혀낼 독립적인 특조위 설립을 위해 국회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며 “특조위 활동이 적기에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의장은 특별법을 넘어선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의지를 밝혔다. 그는 “특별법이 아니라 기본법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유가족들이 참담한 과정을 거치지 않도록, 생명안전기본법이 22대 국회에서는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오늘 우리는 새로운 공간으로 향해 가게 됐다”며 “그 발걸음이 더 큰 싸움을 향한 다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들도 끊임없이 정부와 여당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책임을 다하도록 함께 힘 모아달라”며 “진보당도 항상 유가족들, 시민들의 뜻과 함께 싸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권영국 정의당 상임대표도 “분향소 이전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며 “여전히 부족하지만 특별법을 근거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향한 발걸음을 새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권이 자신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할 때까지 시민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다.
시민단체는 지속적인 연대를 약속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유가족분들 마음이 어떨까 생각을 해봤다”며 “아마도 장기간 농성을 하다가 농성 투쟁을 중단하는 노동자들 마음하고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농성을 정리한다는 것은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고, 그 변화가 조금이나마 긍정적이기 때문에 농성을 중단할 수 있다는 안도감도 있다”면서 “분향소가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건물로 이전하면서 잊히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도 한켠에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기억 공간으로 간다는 것은 이제 추모를 넘어서 온전한 진상규명을 만들어내고 우리 사회의 안전을 생명을 지켜내는 새로운 단계로의 전환이라 생각하고 힘냈으면 좋겠다”며 “새로운 공간으로 가더라도 민주노총 120만 조합원들은 늘 곁에서 든든한 우군으로 싸워나갈 것을 약속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특조위 그 결과가 부족하면 2번이든 5번이든 10번이든 특별법을 만들어서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내고 책임 있는 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복남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은 “시청 앞 분향소가 특조위가 띄워지고 그 속에서 진상 규명이 되고 제대로 된 책임 규명을 이룰 때까지 그대로 있을 줄 알았는데, 아쉽지만 이전한다”면서 “그냥 아쉬움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진상 규명을 끝까지 이루는 게 저희의 목표다. 잊지 말자”고 말했다. 그는 “특조위는 유가족들이 힘 있게 지켜보고 응원하고 또 잘못하면 채찍질도 하면서 나아가야 될 일”이라며 “그 진상규명의 긴 길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송성영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는 “특조위가 제대로 가동이 돼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고 책임자들이 합당한 책임을 질 수 있게 최선을 다해 함께 하겠다”면서 “우리 사회가 다른 어떤 것보다 국민의 생명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정민 위원장의 분향소 운영 종료 선포 이후, 새로운 기억·소통공간으로의 이전이 이뤄졌다. 종교인들이 내린 영정 사진을 유가족들이 받아 들었다. 유가족이 참석하지 않은 고인들의 영정 사진은 시민단체와 종교계 대표들이 품에 안았다. 영정 사진이 모두 내려가고, 분향소는 문을 받았다. 영정 사진을 든 행렬은 서울광장을 한 바퀴 돌아, 인근 건물 1층에 마련된 기억·소통공간으로 이어졌다.
새 공간으로 옮겨진 영정 사진은 하나하나 흰 천으로 포장돼 보관함에 담겼다. 영정 사진을 건네는 유가족들은 내내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기억·소통공간은 ‘별들의집’으로 명명했다. ‘별들의집’에는 영정 사진 대신 일상의 행복을 담은 사진이 걸렸다. 권은비 기억·소통공간 총괄작가는 “별이 된 슬픈 모습 또는 경직된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 속에서 기억했던 모습 그대로 이 공간에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유가족들에게) 가급적이면 일상 속에서 가장 밝은 그리고 기억했을 때 우리 가족, 우리 아이가 가장 사랑스러운 모습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공간에서만큼은 마음껏 울고 웃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건물 로비에는 문화예술인들이 고인과 유가족이 함께하는 모습을 그린 ‘기억그림’들이 전시됐다.
‘별들의집’은 오는 11월 2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며, 서울시와 협의해 새로운 공간을 마련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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