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답게 사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내가 지금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맞는 것일까?
박한표  | 등록:2024-06-14 09:26:47 | 최종:2024-06-14 09:29:58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나 답게 사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인문 운동가의 인문 일지
(2024년 6월 13일)

“내가 지금 이런 식으로 사는 게 맞는 것일까?” 우리들의 삶 속에서 좀처럼 길을 찾지 못할 때, 사람들은 흔히 묻곤 한다. 그러나 <<나로 존재하는 법>>(뜨인돌 펴냄)에서 헤르만 헤세는 이런 질문엔 답이 없다고 말한다. 틀린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생길은 제각각 최적의 경로를 품고 있다. 좋은 삶을 살려면 우리에겐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나는 나다. 나는 본래 이렇게 생겨 먹었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가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 답게 사는 일,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노자도 <<도덕경>>에서, 사는 것이란  “정답은 없다(無正)”고 말하였다. 다음은 제58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正復爲奇(정복위기) 善復爲妖(선복위요): 올바름이 변하여 그른 것이 되고, 선한 것이 변하여 요망한 것이 된다.
人之迷(인지미) 其日固久(기일고구): 사람의 미혹됨이  참으로 오래되었다.”

그러니까 지금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오답이 되고, 지금 좋다고 하는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 된다는 거다. 사람들은 이 원리를 모르고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거다.  게다가 그 길을 잃고 헤맨 시간이 오래되었다는 거다. 혼돈의 세상이 질서의 세상으로 변하자, 세상은 정답을 만들기 시작했다. 노자는 이런 질서의 세계가 얼마나 한 개인의 삶을 짓밟고 무너뜨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노자는 정답이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자신의 정답을 갖고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랬다.

<<도덕경>> 마지막 장인 제81장에서 그런 유토피아를 말했다. 내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옷이고, 내가 사는 이곳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곳이고, 내가 즐기는 오늘의 일상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세상이라는 거다. <<도덕경>>의 원문을 공유한다.

“甘其食(감기식) : 음식을 맛있게 먹고
美其服(미기복) : 옷을 잘 입고
安其居(안기거) : 편안하게 거하고
樂其俗(락기속) : 풍속을 즐긴다.”

내가 먹는 음식이 가장 맛있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가장 예쁘고, 내가 사는 집이 제일 편하고, 내가 누리는 문화가 가장 즐거운 세상이고, 나 자신도 영위하고 싶은 일상이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 이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결정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내가 먹는 것이 달고, 내가 입고 있는 옷이 예쁘고, 내가 살고 있는 편안하고, 내가 즐기는 풍속이 즐거우면 되는 거다. 이 태도는,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감미(甘美)롭고 안락(安樂)한 삶을 사는 것, 그 심미적 삶의 느낌을 갖는 거다. 그리고 그 느낌을 정치적으로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며, 또 그 보장을 위해 철학적으로 의식의 변화를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건 비록 단순한 음식이지만 맛있게 먹고, 초라한 옷이지만 단아하게 차려 입고, 오두막집이지만 안온한 보금자리로 여기며 살아 가고, 순박한 그들의 풍속에 따라 명절을 즐기며 사는 사회, 아옹다옹하는 일도 없고, 잘났다고 뽐내거나 잘나 보겠다고 겨루는 일도 없고, 귀한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는 일도 없고, 남을 헤치려고 머리를 짜는 일도 없고, 쓸데없이 부산하게 오가는 일도 없고, 누가 왕인지 다스리는 자가 있는지 없는 지도 모를 정도로 정치와 무관한 사회를 말한다고 본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된다는 거다.

박재희 교수는 자신의 <<도덕경 강독>>의 부제를 ‘노자가 전하는 나 답게 사는 길’이라 붙였다. 그러면서, 저자의 말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정답은 없다. 그러니 타인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거나, 간섭하지 마라.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른 것일 수 있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함부로 지적하거나 훈계하지 마라. 사랑한다면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간섭하지 않을 때 오히려 세상은 저절로 돌아간다.” 정답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선 말이지만, 노자의 생각이 옳다고 본다.

슬픈 만큼 웃어봐 / 홍수희

견디고 싶을 땐 슬픈 만큼 웃어봐
이겨내고 싶을 땐 슬픈 만큼 웃어봐
네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
햇살이 와서 머금고 가게

앞에서 말한 헤르만 헤세의 이야기로 되돌아 온다. 그는 “자기 답게 사는 것 말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다”고 말하였다. 외부에서 삶의 형식(돈·권력·성공 등)을 받아들이는 자는 거기에 굴복 당해 끌려갈 뿐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 되는 일에 만족하는 사람, 즉 ‘자아주의자’가 되면 개성을 최고조로 발휘하면서 세상을 더 풍요롭고, 생동감 넘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자아주의자’는 진정한 개인주의자라 말할 수 있다. 그는 오직 자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타고난 자기 재능을 무르익게 하며, 이를 완성하는 일에 의미를 둔다. 그러나 나 답게 사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세상은 온갖 형태로 순응을 강요한다. 이 때문에 자기 목소리를 믿고 삶을 밀어붙이는 이들은 자주 마찰과 반발, 갈등과 투쟁에 부닥친다. 가족과 사회의 관습, 도덕과 법률의 제약, 공동체와 국가의 요구가 수시로 그 앞을 가로막는다. ‘자아주의자’의 삶은 순탄하거나 수월하지 않고, 반발과 반항의 형식을 띤다.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처럼.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나 답게 사는 일’은 인습적 세계를 부수는 데 필요한 고통의 학교를 졸업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세상의 억압과 금기에 짓눌려 비루해지는 대신 스스로 자기 편이 되어 살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무기가 필요하다. 용기와 고집과 인내다. 헤세는 말한다. “용기는 자신을 강하게 해주고, 고집은 인생을 재미있게 해주며, 인내는 평안을 허락한다.” 여기서 고집은 자기 감각에 따라 살고, 행동하고, 느끼는 일을 뜻한다. 그런데 자아주의자는 이기주의자가 아니다. 나 답게 산다는 건 육신의 안락과 세속적 성공을 위해서 이기적 욕심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타고난 소질을 깨우고 가꾸어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 일이다. 나 답게 사는 사람은 ’헌신, 무욕, 자발적 협동’의 행복을 통해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내적 영성을 꽃피우며, 거룩함에 이르는 기술을 갖고 있다. 나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 속의 신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편집문화실험실 장은수 대표의 글에서 얻은 생각이다.

박한표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박사를 받고 국내에 들어와 대전 알리앙스 프랑세즈, 프랑스문화원장을 하다가 와인을 공부하였습니다. 경희대 관광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며, 또한 와인 및 글로벌 매너에 관심을 갖고 전국 여러 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인문운동가를 꿈꿉니다. 그리고 NGO단체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지금은 인문운동에 매진한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마을 활동가로 변신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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