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장례식날 맥주 돌리고 어퍼컷... '암군' 되어가는 대통령
[안호덕의 암중모색] 현충일에도 딴소리만... 군은 위태롭고 국민은 불안하다
24.06.07 20:22ㅣ최종 업데이트 24.06.07 20:22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만찬을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연합뉴스
지난달 30일은 12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얼차려를 받다가 사망한 신병의 영결식이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충남 천안시 재능교육연수원에서는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이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자리에 참석해 의원들 테이블마다 맥주를 돌리고, 특유의 어퍼컷 세리머니까지 연출했다고 한다.
신병의 죽음에 대해 국군 통수권자로서의 사죄와 일벌백계의 '격노'가 필요한 날, 대통령은 활짝 웃으며 한 팔을 높이 들고 어퍼컷을 날렸다. 참석 의원들은 둘러서서 박수를 쳤다. '반성해야 할 때' '격노해야 할 때' ' 환호해야 할 때' 그런 자리조차도 구분하지 못하는 대통령. 옛말에는 그런 군왕을 암군(暗君: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어 국가에 큰 해악을 끼친 임금)이라 했다.
신병 장례식날 어퍼컷 세리머니 날린 국군통수권자
▲ 지난달 30일 오전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얼차려 중 쓰러졌다가 이틀만에 숨진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얼차려(군기훈련)는 규정에 의한 행위지만, 그것이 규정의 내용을 벗어나고 지휘자의 명령이 우선되면 폭력이고 가혹행위가 된다. 수십 kg 완전군장으로 뜀박질을 시켜 근육이 녹아내리는 패혈증 쇼크에 이르게 한 건, 과도한 군기훈련이 아니라 폭력이다. 때리고 굴려서라도 팡팡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는 오래된 군사문화의 폐습이 드러난 것이다. 여전히 이렇게 군대가 유지된다는 현실이 놀랍고 무섭다.
가혹행위를 지시한 중대장을 비롯해 일선 간부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당연히 엄격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초급 장교에 지나지 않는 이들에게만 책임을 물으면 끝날 일은 아닐 듯하다.
사단장과 고위급 장교들이 신병들의 인권과 안전을 우선하고 규정의 절대 준수를 지시했다면, 초급 간부가 신병을 상대로 패혈증이 올 정도의 완전 군장 체벌을 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12사단 신병 죽음의 가해자는 중대장이나 초급 간부만이라고 할 수 없다. 더 높은 직위에 있는 이들에게도 반드시 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야 이거 수변을 어떻게 내려가냐?" "못합니다 선배님 이거 하면 안 됩니다. 위험합니다(...) 그 장화 신고 들어가면 지금 못하고 물이 더 빠져야지"(포11대대장-포7대대장 2023년 7월 18일 통화 녹취)
임 전 사단장은 들어가란 지시도, 그런 권한도 없었다고 부인해 왔지만, 속속 드러나는 사건의 정황에 따라 그가 가장 먼저 지목되어야 할 사건의 책임자임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상병 사망 사건을 재검토한 뒤 내놓은 첫 보고서에 따르면 임성근 전 사단장은 위험성 평가를 하던 부하에게 "병력 투입 안 시키고 뭐 하냐, 병력들 빨리 데리고 와"라고 투입을 다그쳤다. 지휘자의 단순한 판단 잘못이라고도 볼 수 없다. 현장 지휘관의 위험성 평가 여건을 보장하지 않았고, 사고 후에도 장병들의 안위보다는 언론의 노출을 걱정했다.
"얘들 언론 이런 데 접촉이 되면 안 되는데(...)하여튼 저 트라우마 이런 부분은 나중 문제고 애들 관리가 돼야 하거든." (임 사단장-포7대대장 2023년 7월 19일 통화 녹취록 중)
사고 보고를 하는 대대장에게 임 사단장은 함께 있던 병사의 트라우마보다 언론 접촉을 차단하라고 지시한다. 채상병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사고가 아니다. 임 전 사단장이 구명조끼나 안전 장비보다는 해병대를 상징하는 적색 티 입는 것을 강조하고, 부하들의 고언조차 귀담아듣지 않았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시스템과 규정보다는 지휘관의 명령이 우선되고, 굴리고 윽박질러서라도 군이 재빠르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낡은 군사문화가 채상병과 12사단 신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7월 31일 대통령실로 보고된 '채상병 사망 사건' 조사 결과에 대해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일명 '격노설'을 두고 사실인가 아닌가 오랜 공방이 있었다. 국민의힘 신동욱 의원은 지난달 23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서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느냐"며 "국가를 운영하면서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을 두고 다 격노설이라고 포장해서 심각한 직권남용을 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본질에 벗어간 공방이고 대통령이 화내면 안 되는냐는 신동욱 의원의 주장은 치졸한 말장난이다.
국민이 군을 걱정하고 지켜야 할 지경
▲ 2023년 9월 12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른쪽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 연합뉴스
대통령이 화낼 수 있다. 어떤 경우는 대통령의 격노가 복지부동하는 공직자들에게 채찍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채상병 사망 사건에서 대통령이 화를 낸 이유는 '어떻게 안전 장비도 갖추지 않고 위험 현장에 투입했나?'가 아니라,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되겠느냐'는 수사 결과에 대한 질책이었다.
박정훈 수사단장의 보직해임과 국방부 조사본부의 사건 재검토, 임성근 사단장 등이 빠지고 대대장 2명의 혐의만 경찰로 넘긴 조사본부의 재검토 결과...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대통령의 격노에서 비롯되었다.
"도전과 혁신으로 도약하는 나라, 민생이 풍요롭고 국민이 행복한 나라, 청년의 꿈과 희망이 넘치는 나라, 온 국민이 하나 되어 함께 미래로 나가는 더 강한 대한민국을 건설하겠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을 제대로 기억하고, 그 큰 뜻에 보답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현충일 추념사 일부)
윤석열 대통령은 제69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불길로 뒤어들었던 두 소방관과 해상 훈련 중 순직한 해군에게 애도와 감사를 올렸다. 그러나 사단장의 잘못된 지시에 의해 죽어간 채상병. 가혹행위로 죽어간 12사단 신병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서글프고 어이없는 죽음들에 대해 국군통수권자로서 사과하고 낡은 군의 악습을 끊겠다는 약속이, 국민들 입장에선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협력으로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지키겠다는 각오보다 더 듣고 싶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다짐은 없었다.
12사단 신병의 장례식 날, 대통령은 국민의힘 의원 워크숍에서 "오늘 저녁은 맥주도 놓지 않아야 된다고 했는데 제가 욕 좀 먹겠다(...) 테이블마다 다니면서 의원님들에게 맥주로 축하주를 한 잔씩 다 드리겠다"라며 흥을 돋우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연출했다. 채상병 사망 사건, 수류탄 폭발 사망 사건, 신병 가혹행위 사망 사건 등 연이은 군 사망 사건에 대해 어떤 반성이나 다짐도 하지 않았다.
화를 내야 할 때 정작 다른 이유로 화를 내고, 국군통수권자로서 반성하고 사죄해야 되는 날, 보란 듯 술잔을 돌리는 대통령. 국민들이 이해할 거라 생각하나, 아니면 그런 비난쯤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나? 대통령을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어 국가에 큰 해악을 끼친 임금', 암군(暗君)에 비유하는 게 타당할지는 모르지만 군은 위태롭고 국민은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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