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가장... 명상 한 달 만에 이렇게 달라졌다

18.10.23 07:42l최종 업데이트 18.10.23 07:42l





앞만 보고 살았는데 어느덧 중년입니다. 기대했던 40대, 50대의 모습과 전혀 다른 지금 내 모습이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불안하니까 중년'이라는 말조차 위로가 되지 않는 시대, 중년들의 불안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나는 X세대다.

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나 X세대로 분류된 나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기업인을 롤모델로 삼으며 자랐다. 마지막 학력고사를 치르고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었다. 물론 이제는 주윤발 성냥개비 물던 시절의 설화 같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가족과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면 X세대들은 자아실현, 자기계발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  베이비붐 세대가 가족과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면 X세대들은 자아실현, 자기계발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 Pixabay
   
X세대들은 멋진 회사원을 꿈꾸며 청춘을 불살랐다. 아무리 야근을 많이 해도 카페인 음료 한 병 마시고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면 다시 열정이 치솟는, 그런 신화 속의 회사원 말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가족과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면, X세대들은 자아실현과 자기계발을 위해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운명도 모른 채 불구덩이를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들처럼 말이다

나 역시 청춘을 하얗게 불태웠다. 그 후 자연스럽게 한 집안의 가장이 됐다. 지금은 운동을 하면 운동을 한 곳이 아프고, 운동을 안 하면 운동을 안 한 부위가 아픈 '저질 체력'이 됐다. 그래서 살기 위한 '생존운동'으로 연명하고 있다.

43살이 되던 새해 첫 출근날 좌천 통보를 받았다. 말이 좌천이지 회사를 나가라는 통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절을 떠날 수 없어 눈칫밥을 먹는 스님처럼 살았다. 너무나 허탈했다.

초보 직장인 시절을 돌아보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에 우유 한 잔 못 마시고 새벽 6시 영어 수업을 듣는 도시인으로 살았다. 저녁은 월세를 아끼기 위해 500원짜리 햄버거 네 개로 때웠다. 정크푸드로 내 위장을 해친 후에는 다시 영어 숙제를 하며 오직 더 좋은 회사원이 되기 위해 살아왔다.

내일도 오늘과 똑같은 하루가 이어지겠지만 '언젠가는 나도 샐러리맨 출신 재벌이 될 수 있겠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차라리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무언가가 되기를 갈망했더라면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살진 않았을 텐데... 이렇게 살아온 나를 회사는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안도, 대책도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이었다.

도인을 만나다

그렇게 6개월을 버티자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안면홍조 현상이 하루 종일 지속됐다. 극장에서 호흡곤란 증세가 나타나더니, 지하철에서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길로 한의원을 찾아갔다. 공황장애 판정을 받고 한 달에 60만 원 하는 한약을 4개월 이상 복용했다. 차도가 있었으나 더 이상 약값을 감당할 수 없었다. 현대인은 스트레스와 생각과다로 인해 안면홍조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동영상을 봤다. 약 없이도 치료가 가능하다는 영상 속 한의사의 말을 믿고 싶었다. 뭔가 다른 대책이 시급했다.

이전부터 관심 있던 명상을 해 보기로 했다. 우선 관련 서적을 읽어봤다. 혼자서는 하기 힘들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한적한 지방에 용하다는(?) 곳들이 있었으나, 회사에 다니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다.

고민 끝에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가 운영하는 명상 수련원으로 결정했다. 2달 코스였고, 수강료가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한 달 치 약값보다는 적은 금액이었다. 이번 기회에 반드시 건강한 정신과 몸을 회복해야만 했다.

"귀한 시간 내신 것도 모자라 비싼 수강료 내고 오셨는데 잠드시면 안 됩니다."

명상 첫 시간, 도인님은 명상 도중 잠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수강료를 걱정해주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 도인은 저러다 쓰러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수업에 임했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지수를 확인할 수 있는 설문지를 나누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 현대인들은 20점대 후반에서 30점대 초반이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 40점이 넘어가시는 분들은 스트레스 위험 수치입니다. 또한 20점 이하이신 분들은 열반의 경지에 오르신 분들이니 명상이 필요 없으십니다. 여기서 당장 나가시면 됩니다."

도인의 농담에도 수강생들은 웃지 못하고 자기의 점수를 확인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나는 예상보다 낮은(?) 32점을 받아 들고 집으로 향했다.

나와 아내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나는 여행을 갈 때도 30분 단위로 일정을 계획하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당장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일 분 일 초를 다투며 살아야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는다고 믿어왔다. 반면 아내는 곧잘 혼자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일을 급하게 처리하는 법이 없다. 이런 아내를 나는 때때로 답답하다고 느끼기도 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아내에게 설문지를 내밀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할래."

다음 날 점심시간이 지나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는 몇 점이 나온 거야? 나는 18점이 나왔는데?"

아! 나는 열반의 경지에 다다른 아내와 살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속도가 아닌 방향
 
 명상 4주 차가 지나면서 안면 홍조 현상이 90% 이상 사라졌다.
▲  명상 4주 차가 지나면서 안면 홍조 현상이 90% 이상 사라졌다.
ⓒ unsplash

명상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느끼는 바가 많았다. 내가 아내처럼 되기 위해 명상을 하고 있다는 깨달음에 도달했다. 조금 멀리 돌아왔지만 이제부터라도 나의 뇌에 휴식을 줘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세상 걱정의 90%는 해결되지 않는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생각을 떨쳐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인생이 계획한 대로 다 이루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나의 속도가 아닌 세상의 속도에 맞추며 살아오다 마음의 건강을 잃고 말았다.

명상을 할 때마다 다른 생각이 떠올랐지만, 도인님이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차츰차츰 명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외에도 명상에 대한 관련 자료를 찾아 봤고, 유도명상이라는 것이 나에게 적합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목소리 좋은 안내자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니 명상에 좀 더 쉽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도인님이 내준 숙제에 따라 아침에는 호흡 명상을, 잠들기 전에는 이완 명상을 꾸준히 해나갔다. 다른 생각이 떠오를 때는 TV 리모콘을 돌리듯이 전환하라는 말과 수강료를 떠올렸다.

명상 4주 차가 지나면서 안면 홍조 현상이 90% 이상 사라졌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 얼굴에 열이 오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럴 때는 10분 정도 짬을 내서 휴게실에서 호흡명상을 했다. 몰라 보게 호전된 증상을 보고 아내가 안타까워했다.

"처음부터 명상을 했으면 좋았을 걸."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조금 느리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속도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동안 속도에만 포커스를 맞추다 이 꼴이 났다. 이제는 조금은 느리게 나아가려고 한다. 물론 세상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돌아가겠지만 천천히 가다 보면 방향 전환이 쉬운 장점도 있지 않을까?

스트레스 지수 18점을 향해서 아저씨는 오늘도 명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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