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 PC방 살인사건으로 본 ‘심신미약 범죄’의 오해들
강서 PC방 살인사건으로 본 ‘심신미약 범죄’의 오해들
“정신 질환이 살인 보험이냐”
지난 14일 서울 강서구 한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 청년이 살해됐다. 해당 사건 피의자 측은 10년간 우울증약을 복용했다며 심신미약을 주장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살인 사건 피의자가 우울증약 복용을 이유로 감형받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심신미약 감형 반대 여론이 형성됐다.
언론은 여론을 부추겼다. 피의자가 아직 심신미약 판정을 받지 않았음에도 언론은 이를 전제로 감형 여부에만 초점을 맞춰 기사를 쏟아냈다. 이에 더해 희생자 담당의가 자신의 SNS에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여론의 불씨를 잡아당겼다.
역대 최다 동의를 얻은 국민청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강서구 피시방 살인 사건. 또 심신미약 피의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청원자는 “언제까지 우울증, 정신질환, 심신미약 이런 단어들로 처벌이 약해져야 하느냐”며 “나쁜 마음 먹으면 우울증약 처방받고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신과 의사들은 우려를 표명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이하 봉직의협회)는 지난 20일 성명서를 통해 “현재 가해자는 심신미약의 여부는 물론, 정신감정을 통한 정확한 진단조차 내려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가해자의 범죄행위가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라거나, 우울증과 심신미약을 혼동해 마치 감형의 수단처럼 비춰지는 것은 정신질환을 앓는 많은 이들에 대한 또 하나의 낙인으로 작용할 수 있어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심신미약이 뭐 길래
심신미약은 정신의학이 아닌 법률상의 개념이다. 형법 제10조 제1항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 변별 능력이 없거나, 의사 결정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이어 제2항은 이 같은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형한다고 규정한다.
형법이 규정한 심신장애는 범행 당시 사물 변별 능력, 의사 결정 능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느냐에 따라 심신상실과 심신미약으로 나뉜다. 해당 능력이 아예 없는 심신상실 상태가 인정되면 무죄가 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애완견에게 있던 악귀가 옮겨갔다며 딸을 살해한 어머니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 그 예다. 당시 재판부는 어머니가 환각, 피해망상, 조울증 등 심각한 정신질환을 겪어 심신상실 상태라고 판단했다.
심신미약은 어느 정도 사물 변별 능력, 의사 결정 능력을 할 수 있는 상태다. 주로 환청, 망상이 심해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조현병 환자, 정신지체 장애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지민 봉직의협회 회장은 “주로 심신미약이 정신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들이 쉽게 혼동한다”면서도 “우울증을 포함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과 심신미약 상태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심신미약 상태는 단순 정신질환의 유무가 아니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진단과 심도 있는 정신감정을 거쳐 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리는 매우 전문적이고 특수한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피의자의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법원은 국립법무병원 등에 정신감정을 의뢰한다. 국립법무병원 등은 피의자를 2주~4주 동안 입원시키고 의료진과 면담 등을 통해 심신장애 여부를 판단한다.
피의자가 정신 질환에 걸렸다고 주장하거나 정신 질환에 걸린 척 연기한다고 심신장애 판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과의 면담 이외에도 피의자가 병원에서 생활하면서 다른 환자들이나 간호사 등과 지내며 보이는 태도 역시 판단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대다수 정신과 의사들은 “(심신미약) 감형을 악용하기 위해 모두를 속이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심신장애 상태를 인정받은 피의자들이 무죄 또는 감형 선고를 받아도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치료감호시설에 수용돼 치료받아야 한다. 심신장애는 15년, 약물‧알코올 중독은 2년까지 수용될 수 있다. 실형과 치료감호가 동시에 선고되면 치료감호가 먼저 진행된다. 치료감호 기간은 형 집행 기간에 포함되며 추가 치료가 인정되면 2년씩 3번 연장될 수 있다.
“정신질환과 심신미약은 다르다”
김 회장은 심신미약과 정신질환이 동일시되면서 “정신질환자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신질환이 강력 범죄의 원인처럼 비치면서 사건과 관계없는 선량한 정신질환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김 회장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이 감형을 위한 수단으로 비치면 실제 중증 정신질환자들의 심신미약 상태가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신미약 감형 자체가 안 좋은 것이 아니고 이를 악용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며 “정신질환은 그 자체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며 범죄를 정당화하는 수단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황도수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 교수는 형법에 심신미약 감형이 들어간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 교수는 “기계에 책임을 안 지우는 이유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라며 “인간은 자유에 따라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잘못된 것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심신미약 감형 제도를 둔 이유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하지 않은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국민들이 심신미약 감형 규정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실과 제도의 괴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신미약 감경의 취지는 인간의 자유와 책임에 적합하다”면서도 “심신미약 입증이 애매해 변호사의 능력에 따라 입증 여부가 갈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심신미약을 입증하는 것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돈을 많이 들여 능력 있는 변호사를 선임하면 결과적으로 법정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 방지 위해 ‘치료 유지’돼야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력 처벌이 아니라 치료 유지라고 말한다. 김 회장은 “중증 정신질환자는 스스로 치료받으러 오기 어렵다”며 “중증 정신질환자가 범죄를 저질러 법적 책임을 다한 뒤 치료가 계속 유지되지 않아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중증 정신질환자라는 자체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며 “치료가 잘 안되면 병이 악화하고, 병이 악화하면 판단 능력이 더 떨어져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법적 책임을 다한 후에도 치료를 유지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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