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조 개의 미세플라스틱, 바다를 떠돌며 인간을 노린다

[안종주의 안전사회] 플라스틱의 위협, 작을수록 위험하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이 말을 모르면서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실천적 경제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 유명한 독일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1977)의 역작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서구의 대량생산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이 물질적인 풍요를 약속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인간성 파괴라는 결과를 낳는다고 경고했다. 그는 성장지상주의가 맹목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성찰과 반성의 대상이라고 지적한다.

대형과 대량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보내는 경고 메시지인 이 경구는 역설적이게도 생태계와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구성원들에게는 '작은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위험하다'로 바뀌어야 한다.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나노물질 등 작은 크기일수록 인체에 잘 흡수돼 건강과 생명에 악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잠잘 때나 깨어서도 만나는 플라스틱 사회 

미세먼지는 지금 당장의 위험이라면 미세플라스틱은 잠재적 위험, 다시 말해 미래 위험일 수 있다. 아니 실제로 미세플라스틱도 이미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데 아직 인간의 과학으로 이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현대 문명과 경제는 석유와 플라스틱 문명과 경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플라스틱은 도처에 있으며 우리를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플라스틱 캠페인 측은 "날마다 세계 곳곳의 공장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생산량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생산된 양이 이전 100년간 만들어진 플라스틱을 모두 더한 양보다 많을 정도이다. 대부분의 플라스틱 물질은 생분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생산된 거의 모든 플라스틱이 분해되지 않고 땅 밑에, 그리고 바닷속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바다에는 1억5000만 톤의 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으며 매년 전 세계 바다로 유입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약 800만 톤에 이른다.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들은 분해되지 않고 물결에 쓸려 더 잘게 부서진다.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인간에게 더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백령도 해변에서 만난 스티로폼 미세알갱이 

지난 8월 태어나 처음 백령도를 여행 다녀왔다. 1박 2일 여행 중 해변을 산책하는 일정이 있었다. 가이드가 안내한 해변에서 유심히 살펴보니 자갈 속에 하얀 스티로폼 조각들이 무수히 있었다. 이것이 앞으로 몇 년 뒤가 되면 더 잘게 쪼개져 미세플라스틱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난 22일 오스트리아환경청(EAA)이 유럽과 일본, 러시아 국적자 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8명 전원의 대변에서 10그램당 50~500마이크로미터(0.05~0.5mm)의 미세 플라스틱이 평균 20개가량 검출되면서 전 세계가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크기가 5밀리미터 미만인 플라스틱을 말한다. 사람의 머리카락 두께는 0.1mm 가량이다. 최근 바닷물, 해산물, 소금 등에서 미세플라스틱이 잇달아 검출되었다고 보도됐다. 사람은 주로 음식 섭취와 먼지 흡입을 통해 미세플라스틱에 노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조사 참가자들은 33~65세의 남성 3명과 여성 5명이었다. 이들 가운데 2명은 매일 껌을 씹었으며 6명은 해산물을 먹었다고 한다. 또 모든 참가자들은 비닐 랩으로 싼 포장식품을 먹었으며, 페트병 생수를 마셨다. 그러나 어떤 식품이 얼마만큼의 미세플라스틱을 대변에 남겼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51조 개의 미세플라스틱 조각 해수면을 떠다녀 

바다 위에는 얼마나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떠다니고 있을까? 정확하게 추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한 연구는 약 51조 개의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해수면을 떠다니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수면뿐 아니라 해수층, 해저 퇴적물, 심지어는 북극의 해빙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해양 생태계에 만연해 있다. 

이렇다보니 물고기를 비롯한 각종 바다 생물들이 이를 먹이로 착각해 먹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해양 생태학자들은 플랑크톤에서부터 어류, 해양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먹이사슬의 모든 단계에 있는 생물이 미세플라스틱을 먹을 수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식탁에 흔히 오르는 해산물에 미세플라스틱이 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 여러분들의 몸에 이미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들락거렸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미세플라스틱을 삼킨 해양 동물은 때론 플라스틱 조각에 의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장폐색부터, 산화 스트레스, 섭식 행동 장애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작용을 겪고 있다. 게, 갯지렁이, 굴 등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이들의 성장과 번식에도 장애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체 악영향, 과학이 파악 못하고 있을 수도 

이 때문에 해양생물에서처럼 사람에게도 미세플라스틱이 악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사람에게서 미세플라스틱 섭취로 인한 건강 이상 사례가 보고된 적은 없다. 과학은 불확실성이 있고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플라스틱 중 일부는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제품에서 비롯한 것이다. 매일 사용하는 치약이나 바디 스크럽, 화장품, 세제 등에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됐을 수 있다. 이런 제품에 넣기 위해 생산된 미세플라스틱을 마이크로비즈(microbeads)라고 부른다. 이는 대부분의 하수 처리 시설에서 걸러지지 않고 바다로까지 직행한다.

우리나라도 최근 55개 화장품 기업이 제품에 마이크로비즈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도 관련 법령을 고쳐 지난해부터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나름대로 미세플라스틱 문제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자율적인 노력과 정부의 제도 일부 개선만으로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현대사회는 플라스틱 사회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플라스틱은 이미 우리와 떼려야 뗄 수 없을 만큼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미세플라스틱은 제2의 환경호르몬, 사전주의 원칙 발동해야

전 세계 곳곳에서 최근 잇달아 강력한 미세알갱이(마이크로비즈) 규제법을 만들어 시행에 들어갔다. 미국은 지난 2015년 12월 마이크로비즈 청정 해역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물로 씻겨 나가는 모든 제품에서 마이크로비즈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스웨덴도 유럽 최초로 미세플라스틱 함유 화장품의 생산·수입·판매를 전면금지하는 법을 지난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독일도 조만간 미세플라스틱 함유 화장품 금지법을 제정해 시행할 예정이다.

미세플라스틱은 해양뿐만 아니라 담수 생물을 포함한 담수 생태계, 토양, 공기 등도 오염시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즉각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강화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도 않고 매우 더디게 진행되는 만성적인 위험에 대해서는 경계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1996년 테오 콜본(Theo Colborn) 등이 쓴 역작 <도둑맞은 미래(Our Stolen Future)>가 우리에게 환경호르몬의 위험성을 경고했을 때만 해도 일각에서는 "설마 그 정도까지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환경호르몬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의 위험이 되었다.

미세플라스틱도 환경호르몬이 걸었던 그 길을 갈 가능성이 크다. 지금 당장 사전주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을 발동해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고 우리 몸에 밴 습관을 바꾸게 하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안 그러면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 미세플라스틱, 마이크로 비즈.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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