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군인들, 시위와 무관한 여성 성폭력 17명 아직도 신음

5·18 군인들, 시위와 무관한 여성 성폭력 17명 아직도 신음

등록 :2018-10-30 12:03수정 :2018-10-30 12:22


정부 공동조사단, 5·18 계엄군 등에 의한 범죄 확인
10대 여고생과 여대생·주부 등 가리지 않고 범행
“광주를 전쟁터로 인식”…전쟁범죄 닮은 국가 폭력
자유한국당 진상조사위 위원 추천 안해 출범 못해 
1980년 5월 5·18민주화운동 때 시위에 적극 나섰던 광주 오월 여성들. 차명숙씨 제공
1980년 5월 5·18민주화운동 때 시위에 적극 나섰던 광주 오월 여성들. 차명숙씨 제공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계엄군·수사관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은 희생자가 1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광주에 투입된 군인들이 시위와 무관한 주부와 10대 여고생, 20대 직장인 등을 집단 성폭행했다는 의혹(<한겨레>5월8·10일치 1면)도 사실로 드러났다. 당시 군인들은 광주 상황을 사실상의 내전 상태로 간주하고 무고한 여성들에게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던 것으로 보인다.
30일 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가 참여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이하 공동 조사단)의 말을 종합하면, 5·18 당시 계엄군·수사관 등이 저지른 성폭행 범죄가 지금까지 파악된 것만해도 17건이다. 이 가운데 공동조사단에 신고가 접수된 뒤 상담 과정에서 파악된 사례가 8건이고, 5·18 당시 구술자료와 유공자 보상 심의 서류, 각종 문헌 등을 통해 파악된 사례가 9건이다. 상담과 구술 조사를 통해 파악된 8건 중 3건은 <한겨레> 보도 등을 통해서 알려진 사례지만, 5건은 새로 접수된 피해 사례다. 여성 성폭력 피해는 광주에 공수부대가 증파된 시점과 맞물리는 5월 19~21일에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왼쪽부터),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노수철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현판식에 참여해 현판을 걸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이숙진 여성가족부 차관(왼쪽부터), 조영선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노수철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지난 6월 8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 현판식에 참여해 현판을 걸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5·18 성폭력 희생자들 중엔 30대 주부(5월20일) 뿐 아니라 17살 여고생(5월23일), 여대생, 시내버스 회사 직원(20살·5월20일) 등이 포함됐다.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성폭력 피해 이후 충격을 받고 지금도 여전히 정신병원에서 투병 중이다. 특히 4명은 5·18민주화운동 보상 신청 기간 중 광주시 등에 피해 사실을 신고했는데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군 영창(상무대) 등지서 저질러진 성추행·성가혹 행위 등도 45건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공동조사단의 진상 규명 과정에선 5·18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찾지 못했다. 공동조사단 쪽은 “가해자 추정까지는 가능하지만 조사권이 없어 입증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공동조사단은 희생자들이 이번 조사를 통해 상처(2차 가해)를 받지 않도록 트라우마 치유 전문가 등과 함께 진상 조사를 실시했다. 특히 5·18 보상 신청을 했던 여성 603명의 서류를 일일히 확인한 뒤 성폭행·추행 등 희생자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동조사단 쪽은 “여성 생존자들이 성범죄 피해를 수치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신고하는 것을 꺼렸다. 5·18 성폭력 희생자들의 인권과 2차 피해를 우려해 구체적으로 계엄군 등의 범죄 사실을 밝힐 수는 없다”고 말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공동조사단은 31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여성가족부와 국가인권위원회, 국방부 등 3개 기관에서 모두 12명이 참여해 지난 6월부터 5개월동안 진상규명 활동을 벌였다. 공동조사단은 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시행에 따라 출범하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조사 결과를 넘겨 종합적 진상규명이 이뤄지도록 협력할 계획이다. 하지만 진상조사위는 자유한국당이 위원 추천을 미루면서 한 달이 지나도록 출범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동조사단 쪽은 “앞으로 5·18 성폭력 범죄의 진상이 밝혀지려면 가해자의 양심고백이 나올 수 있게 하는 등의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18일 정부 공동조사단을 꾸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군이 저지른 성폭력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한겨레>는 ‘5·18 그날의 진실’ 시리즈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국군보안사령부 수사관들이 여성들을 상대로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4차례에 걸쳐 연속보도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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