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중 숨진 30대 택배노동자 유족 “과로 내몬 쿠팡의 잘못, 사죄하라”

 


“주 6일 12시간씩 일해, 사과하고 재발방지책 마련해야”…산재 신청 예고

  • 남소연 기자 nsy@v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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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 2025-11-14 14:24:18
    14일 제주도의회 도민카페에서 지난 10일 사망한 쿠팡 기사 고(故) 오승용 씨(향년 33세)의 유족이 기자회견을 갖고 "쿠팡은 제대로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2025.11.14 ⓒ뉴스1
     

제주에서 쿠팡 새벽배송을 하던 중 사고로 숨진 30대 택배노동자 오승용 씨의 유가족이 14일 첫 공식 입장을 내고 쿠팡의 사과와 재발 방지책을 촉구했다.

오 씨 유가족은 이날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제주지부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고는 최악의 과로 노동에 내몰아 왔던 쿠팡의 잘못”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쿠팡 제주1캠프에서 새벽배송을 해 온 오 씨는 지난 10일 오전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같은 날 오후 결국 사망했다. 경찰은 오 씨의 사고를 졸음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당시 오 씨는 부친의 장례를 막 치르고 난 뒤였다. 그는 5일 연속으로 새벽배송을 하던 중 부친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됐고, 이후에도 4시간가량 더 일해야 했다. 5일부터 7일까지 장례를 치른 뒤에도 쉴 수 있는 날은 단 하루에 불과했다. 장례 마지막 날인 7일 대리점 관계자는 “오늘까지 쉬고 내일 출근할 거야?”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오 씨는 “내일까지만 부탁드린다. 아버지상이라 힘드네요”라고 답했다. 유족에 따르면, 고인은 장례 후 이틀간 휴무를 요청했으나, 대리점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오 씨는 지난 4월에도 한 차례 휴무를 요청했지만, 이때도 거부당했다. 대리점 관계자는 “안 됩니다. 원하시는 대로 하시려면 다른 곳으로 이직하셔야 할 것 같네요”라고 말했다. 고인은 “아닙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답장을 보내야 했다.

택배노조가 유족과 동료들의 증언, 고인의 휴대전화에서 사용한 쿠팡 어플리케이션과 업무 카톡방 대화 내용을 확인해 자체 진상조사를 한 결과 고인은 일상적인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주 6일간 연속적, 고정적으로 새벽배송 업무를 해온 고인의 하루 노동시간은 11시 30분으로, 주 평균 노동시간은 69시간으로 조사됐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의 시간은 30%를 가산하는 법적 과로사 인정 기준으로 계산할 경우, 고인의 노동시간은 83.4시간으로 늘어난다.

고인이 속해 있던 대리점에는 주 6일 근무가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리점 관리자가 올리는 근무표를 보면, 대부분의 택배노동자들이 주 6일 연속 근무했으며 심지어는 다른 택배노동자의 경우에는 7일 연속으로 근무한 사례도 많았다.

쿠팡의 택배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는 그간 택배노동자의 휴무 보장을 위해 대리점과의 계약 단계에서부터 백업 인력을 확보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고 홍보해 왔지만, 이 대리점의 근무표를 보면 백업 기사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이 부친의 장례에도 단 하루만 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부족한 인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노조는 보고 있다.

오 씨 유가족은 “일주일에 6일을 계속 밤마다 12시간씩 일해야 했고, 아버지의 임종도 보지 못한 채 장례를 책임져야만 했다. 그리고 장례를 치르고 충분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일하러 나갔다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말았다”며 “지금이라도 쿠팡 대표는 과로로 숨진 승용이의 영정과 유가족 앞에 직접 와서 사죄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제2, 제3의 오승용이 나오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워 국민과 택배노동자 앞에 제시해 달라”고 촉구했다.

유가족은 “다시는 우리 사회에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가족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산재 신청을 진행할 것이고, 쿠팡의 책임 있는 태도가 나올 때까지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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