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쳤구나' 말이 절로... 제주 '파라다이스'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일

 

[제주 사름이 사는 법] 서귀포 '100년 솔숲' 지키는데 앞장선 여성학자 오한숙희씨

  • 사는이야기25.11.18 06:56최종 업데이트 25.11.18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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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질 위기의 ‘100년 솔숲’서귀포시 동홍동 1000여 평 솔숲에는 25m 정도의 소나무 100여 그루가 밀집해 있다. 교육기관과 빌라가 인접한 이 솔숲이 우회도로 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놓여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다.황의봉

    "5살, 3살, 백일, 세 아이의 독박 육아 맘입니다. 이 솔숲은 유모차를 밀고 바로 들어올 수 있어서 딱 좋은 놀이터예요. 이만한 공간을 달리 찾을 수 없어요. 왜 없애는 거지요? 우리 애들에게는 도로보다 숲이 필요한데요"(박초연)

    "중학생입니다. 숲 없어지면 슬플 거 같아요. 학생문화원과 외국어학습관에 공부하러 오면 숲이 있어서 조용하고 아늑해 좋았는데, 차가 쌩쌩 달리게 하는 일을 어른들은 왜 하는 거죠?"(현다원)

    "은퇴 후 도서관에서 책 빌려 읽는 낙으로 삽니다. 허리가 아파 오래 못 앉아 있는데 도서관 문 바로 앞에 솔숲이 있어서 정말 고맙습니다. 나무에 기대거나 걸으며 독서할 수 있거든요. 100년 자란 솔숲, 남들은 못 만들어 안달인데, 이걸 없애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어요."(이상구)

    "맨해튼에서 1년 살았는데 거기 센트럴 파크만 있는 게 아니에요. 동네마다 긴 숲들이 다 있어요. 그래서 살면서 행복했어요. 솔숲 없어진다는 말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애국가에도 나오는 귀한 소나무 숲을 너무 쉽게 없애다니 K컬처 자랑해도 내면은 후진국인 거 같아요."(구지슬)

    서귀포 동홍동의 '100년 솔숲'이 사라질 위기에 낙담하고, 분노하고, 하소연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다. 서귀포 우회도로사업으로 4차선 도로가 솔숲을 관통한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솔숲을 지키기 위한 모임을 만들고, 서명운동하고,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서귀포시장과 제주도지사를 만났고, 이제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직접 호소하기 위해 서귀포 타운홀 미팅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들의 거센 반대 여론과 제주 지역 언론의 잇따른 문제 지적에도 불구하고, 강정 해군기지와 성산 제2공항 사태에 이어 또 한차례의 공사강행과 저지투쟁이 벌어질 조짐이다.

    유명 방송인, 인기 강연자 그리고 베스트셀러 저자로 널리 알려진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도 서귀포 100년 솔숲 지키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서귀포 이주 11년, 이곳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모든 조건을 갖춘 파라다이스임을 실감했다는 그에게 솔숲이 사라진다는 소식은 푸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을 듯하다. 제주올레여행자센터에서 만난 오한숙희씨로부터 이른바 100년 솔숲이 어떤 곳인지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기가 파라다이스구나"... 이게 다 솔숲 덕분입니다

    오한숙희씨유명 방송인, 인기 강연자, 베스트 셀러 작가로 널리 알려진 여성학자 오한숙희씨는 11년 전 서귀포로 이주했다. 서귀포에서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그는 요즘 서귀포 우회도로사업으로 ‘100년 솔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적극적으로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황의봉

    "우리가 100년 솔숲이라고들 말하지만 어떤 나무는 200년이 넘었다고도 해요. 천여 평 정도 되는 땅에 높이가 25m는 됨직한 소나무 100여 그루가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는데, 100년이 더 되면 됐지 그 이하는 아닐 거라고 봅니다. 원래 이 지역 일대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연속적으로 숲을 이루고 있었는데 조금씩 베어나가는 바람에 지금은 이곳에만 남게 되었다고 해요.

    이 솔숲 주변은 7개의 교육기관들이 모여 있어 교육벨트로 불리는 곳입니다. 해성유치원, 서귀포중앙여중, 서귀포고등학교가 가까이 있고, 학생문화원과 외국문화학습관, 서귀포도서관, 유아교육진흥원이 이 솔숲과 마주하면서 나란히 붙어 있어요. 또 주변에는 서민들이 주로 사는 빌라가 밀집한 곳이어서 학생은 물론 남녀노소가 즐겨 찾는 보물 같은 장소입니다. 2020년도 KBS 보도에 따르면 연간 27만 명이 이용한다고 합니다.

    이곳은 휠체어나 유모차가 바로 들어올 수 있고,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나와서 읽을 수도 있는 그야말로 도시 생활숲이에요. 그리고 솔숲 옆으로는 잔디광장이 이어져 있어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고, 해마다 서귀포 어린이날 잔치가 열리는 아이들의 놀이터입니다. 빌라 주민들에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숨통 같은 곳이고요."

    100년 솔숲과 가까운 곳에 사는 오한숙희씨는 개인적으로도 이 숲에 좋은 기억들이 많을 것 같다.

    "제가 11년 전 서귀포로 이사를 올 때 어머니가 싫어하셨어요. 어머니가 황해도 해주에서 내려온 실향민입니다. 6.25 전쟁이 났을 때 처음엔 배를 타고 섬으로 피난을 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으셨어요. 그런데 중증 자폐가 있는 작은 딸애는 도시 생활이 힘들었거든요. 어머니가 결국 손녀를 위해 섬으로 오신 거죠.

    마침 세 얻은 집이 솔숲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어머니가 이 솔숲과 잔디광장을 보더니 '우리 여기 오길 잘했다, 여기가 파라다이스구나'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는 이 솔숲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셨어요. 딸아이도 할머니 옆에서 그림을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요.

    저는 이 솔숲을 '원주민 족집게 관광코스'라고 불러요. 육지에서 친구들이 오면 제가 개발한 나만의 관광코스로 안내합니다. 100년 솔숲과 천주교 피정센터로 알려진 면형의 집(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그리고 새섬과 새연교가 바라다보이는 아름다운 바닷가 산책로가 있는 한국SGI 제주연수원이 그곳입니다. 여길 데려가면 사람들이 '너 정말 파라다이스에서 사는구나!' 합니다."

    서귀포도서관 앞 솔숲‘100년 솔숲’ 바로 앞에는 서귀포도서관을 비롯해 학생문화원, 외국문화학습관, 유아교육진흥원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고, 해성유치원 서귀포중앙여중 서귀포고등학교가 가까이 있어 교육벨트로 불린다.황의봉

    100년 솔숲은 현재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다. 서귀포여자중학교부터 삼성여자고등학교까지 4.3㎞의 우회도로를 개설하면서 이미 잔디광장이 파헤쳐졌고, 솔숲에는 당장이라도 굴착기가 들이닥칠 기세다.

    우회도로는 교통이 혼잡한 도심을 피해 멀리 돌아가는 도로를 말한다. 서귀포시의 경우, 산록도로와 중산간도로가 이미 우회도로의 역할을 맡고 있다. 문제의 우회도로는 밀집한 교육기관과 주택가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오한숙희씨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이 우회도로란 게 실은 1965년에 고시된 도시계획에 따른 것이에요. 당시에는 1호 광장이라고 하는 중앙로터리 쪽에만 차도가 있었던 겁니다. 신호등도 없었고, 6개 방면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보니 정체현상이 빚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여기서 좀 떨어진 데에 직선으로 우회도로를 내자는 도시계획이 나온 겁니다.

    현재 서귀포에는 일주도로를 비롯해, 4차선 중산간도로, 2차선 산록도로 등 곳곳에 많은 도로가 개설돼 있습니다. 솔숲이 있는 지역은 도심이 되어 있는 상황이라 말만 우회도로이지, 실제는 도심 관통도로입니다. 교통난 해소가 목표라지만 오히려 교차로 정체를 일으키고 관통지점에 어린이 보호구역이 2곳이라 평균속도가 떨어진다는 게 2020년 도청의 용역결과 보고서에 나옵니다.

    이렇게 서귀포의 현실에 맞지도 않는 우회도로를 4차선으로 4.3㎞나 만든다는 것인데, 이를 3개 구간으로 나눴어요. 지금 문제가 되는 솔숲과 잔디광장은 가운데 구간 1.5㎞로 여기에 들어갈 예산만 445억 원이에요. 전체예산은 1131억 원이고요. 올해 제주도 여성·가족·보육·청소년 복지예산 2232억 원의 절반이 넘는 거액을 녹지대를 파괴하면서 4.3㎞ 도로에 쏟아 넣는다는 게 말이 되나요?"

    제주 사람들은 누구든 "미쳤구나" 하는 공사

    솔숲까지 밀어닥친 도로공사서귀포 우회도로는 서귀포여중에서 삼성여고까지 4.3㎞를 관통하게 된다. 모두 3개 구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제2구간이 교육벨트 앞의 100년 솔숲과 잔디광장을 훼손하고 지나가도록 돼있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다.황의봉

    100년 솔숲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서귀포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시민모임들이 만들어지고, 반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각종 집회를 통해 솔숲의 가치를 알리고, 우회도로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이를 전국적 이슈로 만들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오한숙희씨는 서미모(서귀포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의 회원이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5월에 어린이날 잔치가 끝나자마자 솔숲과 이어진 잔디광장에 펜스를 치고 나무를 뽑기 시작하는 걸 목격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제가 본격적으로 반대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저는 우회도로사업이 일몰제로 사라진 줄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 들었던 거죠.

    2022년 6월 오영훈 도지사가 당선인 시절 제주올레센터에서 열린 서귀포 시민과의 대화에서 우회도로사업을 백지화해달라는 요구에 '알았다, 검토하겠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송형록 서귀포신문사 사장과 서귀포시민연대 대표가 우회도로 백지화를 건의했던 겁니다. 당시 제가 사회를 봤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2020년에 우회도로 공사가 고시된 때부터 이 사업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아오고 있는데, 현재까지 무려 2만 명이 넘었어요. 이 도로 개설에 대해 저희가 설명하면 제주 사람은 누구든 첫마디가 '미쳤구나' 합니다. 육지 분들한테도 이 이야기를 하면 한결같이 '제주도가 웬일이냐'는 반응이에요.

    100년 솔숲을 살리기 위해서는 전국적인 여론을 조성해야 할 것 같아 환경부 등이 후원하고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한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지키자'에 응모도 했습니다. '보전 가치가 우수하지만 훼손 위기에 처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었는데, 100년 솔숲이 선정돼 지난달 25일 한국환경기자클럽상을 수상했어요. 100년 솔숲이 반드시 지켜야 할 숲으로 공인받은 셈입니다. 그런데도 제주도정은 아무 반응이 없습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선정 이유에서 '교통량이 감소하는 상황인데, 불필요한 도로 건설에 445억을 쏟아붓는 것은 예산 낭비이며, 기후위기 시대에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학습권과 건강과 정서적 안정의 공간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저급한 행정'이라고 밝혔어요. 당시 현장 심사를 나온 내셔널트러스트의 숲 전문가도 '수령 230년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도 있으니 반드시 원형 보존해야 한다'라고 강조했고요."

    내셔널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에 선정됐어도 제주도 당국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서미모는 11월 3일 기자회견을 갖고 환경영향평가 전에 불법 공사를 강행한다고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제주도청은 그날 오후 도청 건설과에서 '솔숲은 유산적 가치가 없다'라는 반박 보도자료를 내기도 하는 등 공방이 이어졌다.

    이처럼 반대 시민과 도청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도지사나 도의원 국회의원 등과 대화를 통해 해결을 모색할 수는 없었을까.

    "도청이 하는 사업이라 도지사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기만 하면 해결되리라 낙관했어요. 솔숲 지키기 문화제를 열고 관련 언론보도 내용을 첨부하여 도지사 면담을 요청했는데 답이 없더군요. 억지를 쓰다시피 한끝에 잠깐 반대운동 시민대표들과의 면담이 성사된 자리에서 당선자 시절 도지사가 했던 이야기를 리마인드 시켰어요. 그랬더니 '거기 반대하는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다'라며 건설국장한테 넘겨버리고는 소통비서관을 보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틀 후에 소통비서관이 솔숲 현장에 왔는데, 주민들이 50여 명 모여 있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듣지 않고 딴 데 가서 대표 한두 명만 만나고 가는 겁니다. 그때 '아, 도지사는 이 공사를 중단할 마음이 없구나!'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죠.

    서귀포시가 지역구인 위성곤 의원은 명색이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위원장인데 이 문제엔 관심이 없어요. 서미모 대표의 전화 연락이나 문자에 아무 응답이 없고 아예 소통을 안 합니다. 도의원들도 그렇고요. 정치인들은 다 표만 계산하는 것 같아요. 무슨 협의회 같은 관변단체와 지가 상승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 건설 관련 업자들이 조직된 표라고 보기 때문에 중립을 내세우면서 시민들의 반대 목소리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시민모임 기자회견서귀포 미래를 생각하는 시민모임(서미모)이 지난 11월 3일 기자회견을 갖고 “도시숲법에 따라 백년 소나무숲을 재평가하고, 처음부터 잘못된 환경영향평가를 재시행하라”고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미모는 또 이재명 대통령께 서귀포 타운홀 미팅을 요청한다고 밝혔다.오한숙희

    서귀포 우회도로사업과 솔숲 파괴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제주지역 언론에서도 지적이 끊이지 않아 왔다. <제주 KBS> <한라일보> <미디어 제주> 등 다수의 언론에서 솔숲 파괴에 대한 우려와 함께 '행정소송의 소지가 다분하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제주의 대표적 인터넷매체 중 하나인 <제주의 소리> 최근 관련 보도 제목만 일별해봐도 <4차선 도로로 베어낼 서귀포 '백년 솔숲'...숲 지켜야 문화제 개최>(2025.6.8), <천혜의 자연환경 제주? 전국적 훼손 우려지 9곳 가운데 2곳 선정 망신>(내셔널 트러스트 '이곳만은 지키자' 선정관련, 2025.9.23), <제주판 양평고속도로? 서귀포 우회도로 100억대 보상 노선변경 추진>(2025.10.30), <"서귀포 도심 '100년 숲' 밀어버리는 사업 수정돼야">(2025.11.3) 등 우회도로사업에 대한 우려와 비판적 시각을 전하고 있다.

    오한숙희씨는 100년 솔숲 지키기 운동에 발 벗고 나서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별자치도의 구조적 문제점, 정치인의 공약의 허실, 중립이라는 미명 하의 책임회피 등을 적나라하게 목격하게 됐다는 것이다.

    "특별자치도의 구조적 문제를 절감하고 있어요. 서귀포시는 자치시가 아닙니다. 행정시여서 선출직이 아닌 도지사가 임명한 사람이 시장으로 옵니다. 임명시장 체제에서 서귀포 시민들의 민의가 적극적으로 수렴되기 힘든 것이지요. 솔숲이 사라진다고 문제를 제기해도 환경부가 개입할 여지가 없어요. 특별자치도에서 셀프 승인하면 끝납니다. 자치권을 부여한 것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폐해가 돼버린 것입니다.

    오영훈 지사는 대표 선거공약으로 '15분 도시'를 내세웠습니다. 직장 학교 상점 공원 등이 가까이 있어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고 친환경적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민이 행복한 도시숲 만들기 5개년 계획에 660억을 투입한다는 겁니다. 기존의 훌륭한 도시숲을 파괴하면서 한편으로는 돈을 들여 숲을 만들겠다니 정말 이율배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국가적 과제와도 동떨어진 것이고요.

    고위공직자라는 분들은 시민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반대운동을 하면 찬반이 나뉘므로 '중립'이라는 식으로 모르는 체합니다. 과연 중립일까요? 올 6월 주소와 핸드폰 번호 같은 민감한 개인정보까지 공개하는 반대청원서에 사흘 만에 750명이 서명할 정도로 시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찬성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들어 중립이라고 발뺌하는 건 책임 회피일 뿐이에요."

    '딸에게도 100점'인 서귀포

    발달장애 청년작가 전시회오한숙희 <사단법인 누구나> 이사장이 전시회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년 4월. <누구나>는 발달장애 청소년을 비롯해 결혼이주 여성, 다문화청소년 등에게 미술 사진 등 예술지원을 함으로써 위로해 주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오한숙희

    잠시 화제를 돌려 오한숙희씨의 서귀포 생활을 들어보았다. 서귀포에서의 11년 삶이 어땠을까? 중증 자폐증세로 도시에서 살아가기 힘들어했던 딸은 잘 적응했을까?

    "한마디로 기대 이상입니다. 자연환경이 너무 좋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주도 특히 서귀포의 자연이 더욱 귀하고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곳엔 사람이 적고, 이동거리 2.5㎞ 반경 안에서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다 보니 하루가 길게 느껴집니다. 또 사람들을 오래 사귀면 아주 정다워요. 제주올레가 있어 이를 매개로 사람들도 만날 수 있고요. 오일장이라든가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은 아날로그 정서여서 저는 좋습니다.

    딸 희나한테도 이곳은 100점입니다. 여기에 굉장히 철학도 좋고 환경도 좋은 사회복지시설이 있어 딸이 거기 다니는데 너무 행복해합니다. 여름에는 바닷가에 놀러 가고, 겨울엔 숲속에 가고, 주말이면 함께 올레길을 걷고요. 또 100년 솔숲에 가서 그림도 그리고 하니까 안정감을 얻은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육지만큼 예민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인구밀도가 높고 신경과민 상태라서 다들 각박하지만, 이곳은 좀 널널한 편이니까요. 마치 제주도의 전설 설문대할망이 저를 딱 픽업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년여 전 오한숙희씨는 <우리, 희나>라는 책을 펴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딸, 희나와의 30년 동행기'다. 이 책에서는 딸 희나가 그림에 취미를 갖게 되다가, 매년 전시회를 여는 작가로 성장하는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서귀포에 와서 안정감을 찾았다는 희나는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

    "저희 집안에 미술 DNA가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도 그림을 하셨고, 제 큰딸도 미대를 나왔어요. 희나는 구상화를 하는 게 아니라 색을 배열하고 층을 쌓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밤새도록 색칠을 하곤 했거든요. TV에도 하고 장롱에도 하고 벽이며 온갖 곳에 색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 미술작가 선생님이 보시더니 이게 쌓기 작업이라고 하는 거예요. 레이어(층)를 쌓는 작업인데 보통 작가 중에 좀 불안감이 있거나 극도로 예민한 사람들이 이런 레이어 작업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색감이 굉장히 좋고 나름대로 구성력이 있다고 해요. 작가들이 보면 그림이라고 느낀다는 거예요."

    오한숙희씨는 제주도에 와서도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제주도 양성평등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가 100년 솔숲 문제에 대한 제주도정의 태도에 분노해 얼마 전 그만두었다. 서귀포 다문화센터 운영위원으로 자문을 해주고, 가끔 강연 요청이 오면 육지 나들이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요즘 심혈을 기울이는 건 사단법인 '누구나'를 키우는 일이다. 어떤 일일까?

    "제가 서귀포에 와서 살아보니까 육지와는 달리 생활에 여유가 생겼어요. 딸에게도 집중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그림 그리는 동아리를 운영하다가 2018년에 '누구나'라는 사단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이 지역에 사는 결혼이주 여성들이나 다문화 청소년들, 발달장애 청소년 그리고 노인들이 겪는 차별이나 외로움에 예술지원을 해줌으로써 위로해 주자는 취지입니다. 어머니가 늘그막에 그림 하시면서 삶의 질이 상당히 높아지는 것을 제가 생생하게 봤거든요.

    예술지원은 주로 그림을 많이 하고 사진도 합니다. 미술작업은 각자 직업에 따라 따로 또는 함께 할 수 있는 작업이고 음악과는 달리 소리가 나지 않으니까 조용히 할 수 있잖아요. 그동안 그림책도 몇 권 냈고, 발달장애 청년들을 기성작가로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그중 몇몇은 많이 알려져 초대전에 출품하기도 했고요. 서귀포에 있는 키위새 스테이션이라는 갤러리 공간을 빌려 거기서 주로 전시합니다.

    사단법인 '누구나'를 하면서 저는 아트팜을 만들겠다는 꿈이랄까, 목표를 갖게 됐습니다. 말 그대로 예술과 농장을 결합해 '누구나' 식구들이 생태적으로 자급자족하고 각자의 취미와 특기를 살리면서 생활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땅을 좀 사서 게르촌처럼 각자의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 그곳에서 생활도 하고 그림도 그리는 스튜디오로 삼자는 것입니다. 또 집단이 이용할 수 있는 커다란 게르를 하나 만들어 전시회도 하고, 굿즈도 팔아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타운홀 미팅' 요청했지만...

    도지사 면담 촉구집회서귀포 시민들은 100년 솔숲을 지키기 위해 문화제 개최, 도지사 면담 촉구, 반대서명운동 등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오한숙희

    서귀포로 이사 오기를 정말 잘했다며 이곳이야말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곳이라고 지인들에게 자랑하던 오한숙희씨는 요즘 100년 솔숲 지키기에 올인하면서 삶이 고달파졌다고 토로한다. 지난 추석 무렵에는 두 달이나 몸져누워 꼼짝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요지부동인 제주도정의 공사 강행 방침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물었다.

    "저는 100년 솔규정합니다. 결국은 여론전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촛불집회처럼 우리도 침낭 가지고 숲에 누워서 천막농성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용산 대통숲 지키기 운동은 기득권과 서민과의 싸움, 중앙지향의 정치와 지방 생활정치의 싸움이라고
    령실에도 서귀포 타운홀 미팅을 요구했는데 아직은 답이 없네요.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 문제를 인지하게 되면 어떻게든 숲을 보존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강구하라고 할 것 같아요. 100년 솔숲의 소나무들에게, 그리고 우리 후손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뜻을 같이하는 국민적 차원의 힘을 합쳐서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  
  • 황의봉(heb8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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