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 2025-11-07 14:36:59 전국택배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9월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택배노동자 과로 방지를 위한 제3차 사회적 합의 추진 선포 기자회견'에서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09.01 ⓒ민중의소리
새벽배송 확대로 인한 택배노동자 과로사를 막기 위한 논의가 새벽배송 찬반 논란으로만 흘러가면서 정작 중요한 논의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달 22일 ‘속도보다 생명,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사회적대화기구)’ 첫 회의에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가 초안 성격으로 제시한 ‘0~5시 새벽배송 제한’ 제안을 두고, 당장이라도 새벽배송이 없어질 것처럼 노동자와 노동자를 갈라치고 소비자의 불편을 의도적으로 부각해 과도한 공세가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현재 벌어지는 논쟁의 출발인, 죽음의 배송은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숱한 과로사 전조를 외면하고 이윤추구에 몰두한 기업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새벽배송 금지를 반대한다’는 주장을 펴는 쪽은 새벽배송을 담당하는 택배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새벽배송은 없어지면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정치권에서 이 같은 주장에 앞장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택배노조의 제안이 보도된 날 페이스북 글을 통해 “노동환경 개선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없애버리자’라고 하면 오히려 노동자도 피해 본다”고 주장했다. 지난 3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새벽배송 찬반을 두고 장혜영 정의당 전 의원과 벌인 토론에서는 “과로사를 방지하자는 면에 대해서는 100% 공감한다”고 말하면서도, 대안을 얘기해달라는 질문에 “근로자의 건강권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 점에 대한 대화는 계속해 나가야 한다”며 핵심을 비켜 가는 답변만 반복했다.
나아가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지난 5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등을 대상으로 이뤄진 국정감사에서 “건강권도 중요하지만 일하고 싶은 자유나 선택권과 충돌하는 것뿐 아니라 생존과 삶에 직결되는 문제”라며, 지난해 인권위가 야간노동 규율 및 보호 방안을 정부에 권고한 것을 재검토하라는 취지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에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사정변경 여하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겠다”며 사실상 후퇴하는 입장까지 내비쳤다.
언론 보도도 일방적인 수준이다. 보수·경제지는 야간 택배노동자의 과로사 문제가 아닌 ‘소비자 편익’과 ‘e커머스 시장 위협’이라는 관점에서 해당 사안을 다루고 있다. 죽음의 배송을 멈추기 위한 해법을 찾자는 택배노조의 제안은 ‘집단 이익’, ‘쿠팡 길들이기’로 매도되고 있다.
이와 함께 각종 단체에서 나오는 새벽배송 유지 촉구 입장을 무분별하게 인용 보도하면서 논의의 본질을 흐리게 하고 있다. 이번 사안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적어 보이는 전세버스 업계의 성명서나, 쿠팡 택배영업점 단체들이 모인 쿠팡파트너스연합회가 새벽배송 기사들에게 진행했다는 설문조사가 ‘쿠팡 택배기사 10명 중 9명이 새벽배송 제한 반대’라는 내용으로 대대적으로 보도되는 식이다. 이러한 보도들이 매일 같이 20~30여개씩 쏟아지는 상황에서 택배노조가 왜 이러한 제안을 하게 됐는지,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를 다루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택배노동자들과 물류노동자를 갈라치기 하는 주장이 나오는 가운데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소속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가 새벽배송 규제 필요성에 동참하는 목소리를 냈음에도, 이를 다룬 보도는 단 2건에 그치기도 했다.
택배 사회적대화는 왜 시작됐나 어느새 과로사 방지 목적도 사라진 논쟁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가 공개한 정 씨와 쿠팡CLS 관리자의 메신저 대화 내용 ⓒ전국택배노동조합
새벽배송 찬반을 둘러싼 논쟁이 반복되면서 사회적대화를 하게 된 근본적인 취지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번에 출범한 택배분야 사회적대화는 2021년에 이어 3번째다. 앞선 1, 2차 사회적대화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급격히 늘어난 배송량으로 인해 2020년 한해에만 22명의 택배노동자가 숨지는 일이 발생하자 이를 막기 위해 추진됐다. 당시 사회적 합의의 골자는 과로를 유발하는 분류 작업을 택배노동자들의 업무에서 제외하고 주 60시간을 넘는 업무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회적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쿠팡을 필두로 새벽배송이 점차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장시간 철야노동을 고정적으로 해야 하는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쿠팡의 택배 자회사 쿠팡로지스틱서비스(CLS) 남양주 2캠프서 새벽배송을 하다가 지난해 5월 숨진 고 정슬기 씨가 대표적이다. 택배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정 씨는 주 6일 새벽배송을 맡았으며, 평소 저녁 8시 30분 남양주 2캠프로 출근해, 최대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일했다. 근로복지공단의 조사 결과 정 씨가 고용노동부 과로사 고시 기준을 훨씬 넘겨 일했으며, 주 6일 고정 야간근무를 수행한 점,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를 수행한 점, 배송 마감 시간으로 인한 업무상 부담이 가중됐다는 점 등이 인정돼, 정 씨의 사망을 산업재해로 판단했다.
새벽배송을 하다 숨진 택배노동자는 정 씨만이 아니었다. 택배노조는 정 씨를 비롯해 지난해에만 3명의 택배노동자가 야간배송 중 숨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2023년에도 경기 군포시 한 빌라에서 새벽배송 중 택배노동자가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매년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새벽배송으로 인한 야간노동의 위험성이 꾸준히 지적됐다. 하지만 쿠팡CLS 측은 근본적인 노동 환경 개선 대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앞서 2023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온 홍용준 쿠팡CLS 대표는 “쿠팡 새벽배송에 종사하는 배송직의 근로 여건이 그렇게 열악하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변했다. 정슬기 씨가 숨진 지난해 또다시 국감에 불려 나온 홍 대표는 심야노동 규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요구에도 즉답을 피하다, 뒤늦게 사회적대화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대화 과정에서도 쿠팡CLS는 과로사를 방지하기 위한 자체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논란에도 쿠팡의 영향력은 점점 확대됐다. 지난해 기준 국내 택배 시장 점유율을 기준으로 쿠팡CLS는 37.6%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고, CJ대한통운은 27.6%로 2위로 밀려났다. 쿠팡의 분기 매출이 12조원을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소식도 지난 5일 전해졌다.
전 세계적으로도 야간노동‘만’ 이뤄지는 사례 극히 드물어 새벽배송, 편리성이라는 외피 쓰지만 결국은 기업의 이윤 목적
심야노동이 인체에 해롭다는 것은 의학계에서는 이미 정설로 자리 잡았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연암연구소는 야간노동을 발암 가능성이 있는 2군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경우에 교대제 방식의 야간근무를 제외하고는 심야노동을 최소화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은 심야노동에 대해 원칙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는 심야노동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규제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 임금노동자에게 1.5배의 가산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 외에는 없다.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노동자들에게는 이마저도 적용되지 않는다.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은 민중의소리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쿠팡의 야간 택배노동자들처럼) 심야노동‘만’ 하는 경우는 없다. 건강에 너무 좋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교대노동이 좋지 않다는 논문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가장 안 좋은 점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심장질환이나 뇌혈관 질환 등 대표적인 과로사 질환으로 사망하게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심야노동을 하는 업종이 새벽배송만 있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24시간 체제로 운영되는 편의점 등 다른 업종이 존재함에도 왜 새벽배송만 규제를 해야 하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택배노동자의 경우 쉴 새 없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 물건을 들고 오르내리는 작업을 반복하는 고강도 노동을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하고, 산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임 원장은 “편의점의 경우 손님이 밤에는 많지 않고, 노동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런 업종과 제한된 시간 안에 물량을 배송해야 하는 노동을 비교하는 건 맞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임 원장은 “택배노동자들이 새벽배송을 제한하자는 얘기는 충분히 타당하다. 다만, 다른 방법도 있는지 면밀히 검토하고 여러 가지 조건과 상황, 소비자들의 요구 등을 반영해 노동자를 보호하는 안이 나와야 한다”며 “심야노동이 문제가 많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인 합의를 해야 한다. 정부가 의지가 있다면 합의를 하는 데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동자의 과로 문제를 오랜 기간 연구해 온 한인임 정책연구소 ‘이음’ 이사장은 “새벽배송은 편리성이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 심야시간까지 노동자들을 갈아 넣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며 “기업의 목적은 결국 이윤이고, 그 과정에서 노동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졌다”고 진단했다.
한 이사장은 “소비자들은 출근 전에 음식이나 신선식품을 받아왔으니 (택배노조의 제안에 대해) 저항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새벽배송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의 몸부림이 있는 것”이라며 “하지만 소비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과거 배달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했던 ‘피자 업체 30분 배달제’를 폐지하자는 운동처럼, 나의 편리성 때문에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그건 절대 정의롭지 않다는 사회적 논의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이사장은 “노동자와 자본, 소비자 삼각구도 속에 ‘돈보다 생명’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규제할 것이냐와 같은 디테일은 나중에 정리하면 된다. 지금 필요한 논의는 ‘심야노동은 줄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첩적인 위험에 노출된 새벽배송 노동자들 이승윤 교수 “이것이 정말 택배노동자들의 ‘선택’인가 지금 필요한 건 지속 가능한 노동환경 위한 논의”
쿠팡 로켓배송 ⓒ쿠팡올 초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비롯한 다수의 연구진으로 구성된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 일의 변화와 사회안전망 연구팀’은 지난 한 해 동안 새벽노동자 1,021명의 건강권과 노동환경 등을 조사한 바 있다. 새벽배송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실태조사가 이뤄진 건 이 조사가 처음이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응답자 57.7%가 최근 한 달 동안 건강 이상을 경험했으며, 이들 중 93.5%가 아파도 일을 했다고 응답했다. 또한 일반 노동자보다 3.3배나 높은 수치인 응답자 34.8%가 수면 장애를 겪었으며, 이는 정신건강 악화로도 이어졌다.
이승윤 교수는 통화에서 당시 조사와 관련해 “새벽배송 노동자들은 위험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며 “암 유발 등 심야노동 자체에 대한 위험과 주된 일터인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위험, 물건을 들어 나르는 일을 하면서 근골격계 질환 위험, (특고노동자로서) 종사자 지위가 모호해 제도의 보호 밖에 놓여 있다는 점 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당히 중첩적인 불안정 요소들이 있는 상황에서 산재 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해당 업종에) 이미 적신호가 켜졌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새벽배송도 택배노동자들의 선택’이라는 논리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일축했다. 그는 “실질적인 선택이라면 좋은 일자리여야 하는데, 정말 (심야노동이) 누구나 원하는 일자리였나. 생존을 위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선택했던 것”이라며 “아무리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이 좁은 업종에서 산재가 발생하고 있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다면 같이 해결해 보자고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경우 과로사 문제가 발생해 배송비를 다르게 책정하면서 자동적으로 수요가 줄었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야간노동에 대한 규제가 상당히 도입돼 있어 (새벽배송이) 확대되기 어려운 초기 차단이 이뤄졌다”며 “반면, 한국은 규제 공백이 있는 가운데 임금노동자가 아닌 택배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에 포함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규제에 대한) 논의가 어려운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지금의 사회적대화는) 궁극적으로 어떻게 과로사를 방지할 것인지, 어떻게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노동 환경을 만들 것인지에 대한 논의인데 이것이 소비자 대 노동자, 소득 보장권과 소비자의 권리 등 두 가지 사안으로 대치되는 구도로 가면서 논의를 협소하게 만들고 있다”며 “어떻게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택배업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는 “택배노조가 제안한 0~5시 새벽배송 제한이 있을 수 있고, 일본과 같이 차등요금제를 도입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주는 방안, 노동 강도를 낮추기 위해 분류작업과 프레시백 회수 업무는 (택배노동자들로부터) 분리하는 방안 등 다양한 조합을 펼쳐놓고 논의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교대제 도입이나 야간 총 노동시간 제한, 주간 전환에 대한 선택권 보장 등도 있다”며 “0~5시 새벽배송 제한 제안은 이러한 논의를 확대하기 위해 쏘아 올린 공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를 반대할 것이면 다른 대안은 무엇이 있을지 여러 논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대화는 이제 막 첫발을 뗀 상황이다. 택배노조도 사회적대화 과정에서 과로사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을 열어 놓고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 몰아가듯 ‘0~5시 새벽배송 제한’이 아니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 아니란 의미다. 고용노동부는 심야배송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 대안 등을 모색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해, 이달 내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결과를 토대로 합리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사회적대화기구는 택배노조 외에도 택배업계, 소비자 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 접점을 찾기 위한 논의를 이어간다는 점이다. 강민욱 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은 “초반에 택배노조가 마치 사회적대화라는 형식을 무시하고 오늘내일 중으로 (새벽배송 중단이) 결정될 것처럼 보도가 나오다보니 (소비자들의) 불안을 자극하고 갈등을 부각시키고 있지만, 택배노조의 주장은 그게 아니다”라며 “쿠팡도 앞서 이뤄진 사회적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고, 이번 사회적 합의를 통해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는 안을 논의하면 충분히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리말 바루기] 들렀다, 들렸다?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머무르는 일을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이 ‘들렀다’고 말하기도 하고, ‘들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들렀다’와 ‘들렸다’ 둘 중 어떤 것이 바른 표현일까. ‘들렀다’와 ‘들렸다’를 혼동해 쓰는 이유는 기본형을 정확히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나가다 어딘가에 잠시 머무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들르다’이다. ‘들르다’는 ‘들르고, 들르며’ 등과 같이 활용되는데, ‘-아/-어’ 앞에서는 매개모음인 ‘으’가 탈락한다. 따라서 ‘들르-’에 ‘-어’가 결합하면 ‘으’가 탈락하면서 ‘들러’가 되고, 과거형은 ‘들렀다’가 된다. ‘들렀다’를 ‘들렸다’고 틀리게 쓰는 이유는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기본형으로 잘못 알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들려’는 ‘들리+어’가 줄어든 형태로, ‘들르다’가 아닌 ‘들리다’를 활용한 표현이다. ‘들리다’는 ‘듣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나, ‘들다’의 사동사와 피동사로 사용하는 단어다. 그러므로 “부모님 댁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켓에 들렀다”는 바르게 쓰인 표현이므로 고치지 않아도 된다. “귀가길에 항구에 들려 바닷바람을 쐬고 왔다”는 ‘들려’를 ‘들러’로 고쳐 써야 바르다. # 우리말 바루기
[우리말 바루기] ‘결실’은 ‘맺지’ 말고 ‘거두자’ 중앙일보 입력 2024.02.08 00:11 지면보기 새해에 세운 계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중간 점검해 보자. 작심삼일로 끝난 이들도 있겠지만, 서서히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의 결과가 잘 맺어지거나 또는 그런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많은 이가 이처럼 “결실을 맺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복된 표현이 숨어 있다. ‘결실’은 ‘맺을 결(結)’ 자와 ‘열매 실(實)’ 자로 이루어진 낱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풀어 보면 ‘결실’은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이미 단어를 이루는 한자에 ‘맺다(結)’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따라서 “결실을 맺다”는 ‘맺다’를 두 번 연달아 쓴 중복된 표현이 된다. 그렇다면 ‘결실’을 쓸 때 어떤 낱말을 덧붙이는 게 좋을까. “결실을 맺다” 대신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고 쓰는 게 더 적절하다. 우리말 바루기 다른 기사 이전 [우리말 바루기] ‘물렀거라’ ‘물럿거라’? 실생활에서 ‘살아생전’ ‘처갓집’과 같이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기도 하고, 표준국어대사전에 “평생을 성실하게 생활하신 부모님의 덕분으로 자식이 모두 성공의 결실을 맺게 되었다”는 예문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듯 중복된 표현이 꼭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볼 순 없다. 하지만 의미가 중복된 표현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쓴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굳이 중복된 표현을 쓰기보다 “결실을 거두다” “결실을 보다”라고 쓰는 게 더 바람직한 언어생활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왕이면 명료하고 간결한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힘 있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법이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더 중앙 플러스 이상언의 오늘+ 온난화 해법 ‘우주 차양막’ “우리는 길을 찾을 것이다” 유료 전문공개 민주 공관위원장에 “유퀴즈!” 尹정권 탄생 공신 누구입니까 ...
[박세열 칼럼] '서초동 권력'이 접수한 한국사회 세계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8. 04:09:34 한국은 '삼권분립'으로 설명될 수 없는 독특한 권력 지형을 갖고 있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의 틈새에 제 4부라 할 수 있는 '검찰 권력'이 존재한다. 검찰은 행정부 소속이지만 스스로를 '준사법기관'으로 여긴다. 한국 검찰은 행정부이면서 행정부 포함 3부의 권력을 모두 견제하는데, 이 '검찰 권력'의 핵심은 수사와 소추의 독점 권한이다. 단순하게 말하면 범죄가 되는지 안되는지 1차적으로 판단하는 권력이다. 원래 검찰은 법을 집행하는 행정권의 '절제'와 '인권 보호' 등을 위해 도입된 제도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식 원님 재판을 막기 위해 사법권을 행사하는 판사와 동등한 수준의 법률전문가를 국가에서 고용해 '형사 절차'의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기소독점권'과 같은 막강한 권한으로 '수사와 소추'의 독립성을 보장받는 한국 검찰은 3권의 사각지대에서 독특한 포지션에 자리를 비집고 들어앉아 한국 사회를 호령해왔다. 그리하여 한국에서는 3권 분립이 아니라 독특한 권력 분류법이 구전을 통해 존재한다. 이른바 '한국사회 세계관'이다. 여기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여의도 권력(정치)과 서초동 권력(검찰), 그리고 강남 권력(재벌)의 '삼권분점'으로 이뤄진다. 서울의 유명 지명들을 딴 이 권력 분류법은 '삼권분립'과 같은 따분한 학술적 규정보다 훨씬 직관적으로 한국사회를 설명해준다. 비유하자면, '삼권분립'이 낮의 권력 지형도라면, '삼권분점'은 밤의 권력 지형도다. 교과서와 필드매뉴얼의 관계라고 할까? 이 '구전설화'의 세계관에서 '행정부'를 따로 뺀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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