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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인, 당선자 '당선자'가 낮춰 부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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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인, 당선자 '당선자'가 낮춰 부르는 말? 2022년 03월 30일 오전 02시 44분   쏙쏙 뉴스말 돋보기 YTN world 글자크기 조정하기   공유하기 ■ 방송 : YTN, YTN WORLD, YTN KOREAN ■ 진행 : 개그맨 서승만 20대 대통령 당선인의 행보가 연일 큰 관심인데요. 언론에 따라 당선인이라고도 하고요. 당선자라고도 합니다. 한때 어떤 표현이 더 올바르냐,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당선인과 당선자! 어떤 차이일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당선인과 당선자 모두 선거나 심사 등을 통해 뽑힌 사람을 가리키는데요. 차이는 보다시피 마지막 한자에 있어요. 당선자는 '놈 자', 당선인은 '사람 인'을 쓰는데요.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라는 표현이 당선인에 비해 상대를 낮잡아 부르는 게 아니냐,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와 '-인'은 둘 다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고요. 말의 쓰임을 보면 '-자'를 썼을 때 격을 낮추는 경우도 있지만 '-인'과 대등하거나 격이 높은 표현으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범법자, 가해자 등은 좋은 의미가 아니지만 학자, 교육자, 성직자 등은 격의 높낮이와는 관계없이 자연스레 쓰이는 말입니다. 성자, 성인처럼 '-자'와 '-인'이 동격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둘 사이엔 미묘한 차이도 있습니다. 과학자, 기술자와 같이 '-자'는 '어디에 종사하는 사람'의 의미가 있어서 과학인, 기술인으로 쓰면 좀 어색하죠. 반면 방송인, 우주인, 연예인 등은 방송자, 우주자, 연예자 등으론 쓰지 않는데요. 이렇게 '-인'을 붙인 경우는 그 분야의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키기보다 같은 범주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뜻으로 무게가 실립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로 대통령직에 종사하는 특정인을 가리키는 대통령 당선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

우리 글『세종어제 훈민정음』과 『신지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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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글『세종어제 훈민정음』과 『신지비사』 [연재] 애서운동가 이양재의 ‘국혼의 재발견’ (8) 기자명  이양재     입력 2022.03.29 00:05    수정 2022.03.29 09:29    댓글 0     3. 우리 민족의 중요 사료 및 역사서   우리 말과 어순(語順)은 단군 조선 이전부터 변화하며 내려왔지만 한글은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부터 나왔다. 우리 말과 우리 글은 우리 민족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6) 『세종어제 훈민정음』과 『신지비사(神誌祕詞) 우리는 우리 말과 우리 글로 생각을 한다. 말과 글은 생각이고 정신이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은 생각과 정신을 자주적으로 표현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일제 식민지시대에 일제가 우리 말과 글을 금지한 것은 우리의 생각을 빼앗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개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조선어학회의 학자들은 사투를 벌이며 우리의 말과 글을 지켜냈다. 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세종 어제(世宗御製)이다 국보 『훈민정음』 해례본 첫 면, 1권1책(33장), 간송미술관 소장. Ⓒ문화재청. [사진제공 - 이양재]  간송본의 앞 두 장은 떨어져 나갔으므로, 필사하여 복원하였다. 이 부분은 세종대왕이 지은 어제 서문이다. 『세종어제훈민정음』 번역본(13장), 목판본,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 서두에 실려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 서문만을 번역 설명하였다. [사진제공 - 이양재] 간송미술관 소장의 국보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 초판본에서와는 달리 『월인석보』 권1에 실린 번역본에서는 『세종어제 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으로 적고 있다. ‘세종어제’라 부친 것은 “세종(世宗, 재위 1418~1450)이 친히 지었다”는 의미이다. 『세종실록』 102권, 세종 25년 12월 30일 경술 2번째 기사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 그 글...

외세가 갈라놓은 땅, 우리민족끼리 통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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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명  민병례 작가    승인 2022.03.28 10:57    댓글 0   몸벽보 할아버지 김영식의 소원 김영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연단 앞으로 나아갔다. 눈앞에는 광주교도소에서 당했던 고문이 또렷이 떠올랐다. 0.75평 방에 열다섯 명이 구겨 넣어져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아우성·슬픈 울음·신음소리...앉을 수도 없어 선 채로 밤을 지샜던 끔찍한 날들... 저는 서울에서 대전, 광주를 거쳐 전주교도소까지 26년이나 감방에서 살았습니다. 지난 1988년 가석방으로 출소했습니다. 첫말을 뗀 김영식의 어깨는 들썩거렸고 소같은 눈망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쏟아낼 듯 물기가 가득했다. 이미 국가보안법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데 다시 전향하라고 고문을 했습니다. 전향공작반은 우리들을 발가벗기고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거기에 밧줄까지 내리치니 살이 찢어지고 뼈마디가 끊어지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광주교도소의 인간 백정인 교무과장 강철형, 교회사 문승호, 간수 정화선과 백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름을 거명하던 김영식은 몸이 메어 잠시 말을 멈췄다. 그예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날 전주 고백교회에서 열린 '강제전향 양심선언 및 송환촉구' 기자회견에는 불교계의 수경·경신 스님, 천주교의 문규현·최종수 신부, 원불교의 이재정 교무장, 개신교의 한상렬·김경섭 목사, 천도교의 이두원 선생이 참여했다. 또 장명수 우석대 총장, 양순창 전북대 총장, 천승훈 원광대 총장 등 학계 인사와 이강실 전북연합의장 오경숙 전북 민가협 회장 그리고 전북 지역에 살고있는 10여 명의 출소 양심수까지 80여 명이 함께 했다. 모두 숨죽이고 김영식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62년 3월 울산 바닷가 야산에서 붙잡혀... “그들은 전향하라고 몰아세웠습니다. 저는 제 신념을 끝까지 지키고 싶었습니다. 거부하니 고문대 위에 눕혀 얼굴에 수건을 대고 주전자로 물을 부었습니다. 나중에는 고춧가루까지 섞었습니다. 숨이 막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