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포격사건과 흡수통일구상, 시계추 외교행보와 ‘작계 5015’


한호석의 개벽예감 <178>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5/10/26 [10:31]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주한미국군이 단독 조사한 8.20포격사건의 진상 
2. 긴장감 느끼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군 지휘부
3. 평화통일 간판 아래서 추구하는 체제흡수통일구상
4. 박근혜 대통령의 ‘시계추 외교행보’에 숨겨진 사연
5. ‘작계 5015’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적인 믿음 
6. 조선인민군의 제3전선 구축과 미일동맹군의 한반도전선 출병 

▲ <사진 1> 한국군 합참본부는 조선인민군이 2015년 8월 20일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14.5mm 고사총 1발을 쏘았다고 주장하였지만,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14.5mm 고사총은 4열의 총신에서 총탄 4발이 한꺼번에 계속 발사되는 반항공무기이므로 1발만 쏠 수 없게 되어 있다.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이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주장이어서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자, 스캐퍼로티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에게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라고 명령하였다.     © 자주시보


1. 주한미국군이 단독 조사한 8.20포격사건의 진상

<경향신문> 2015년 10월 19일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그 기사에 따르면,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2015년 8월 20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발생한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단독으로 조사하였다는 것이다.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유엔군사령관을 겸직하고 있으므로,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조사하였다는 말은 주한미국군사령부가 조사하였다는 뜻이다. 주한미국군사령부 공보관의 말에 따르면, 커티스 스캐퍼로티(Curtis M. Scaparrotti) 주한미국군사령관은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이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도록 직접 명령하였다고 한다. 주한미국군이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사태를 조사하면서 한국군을 배제한 것은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62년 동안 처음 보는 놀라운 사건이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왜 미국군이 단독으로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렸을까? 그 까닭은 2015년 8월 20일 조선인민군이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19분 시차를 두고 14.5mm 고사총 1발과 76.2mm 견인포 3발을 각각 쏘았다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14.5mm 고사총은 4열의 총신에서 한꺼번에 총탄 4발이 계속 발사되는 반항공무기이므로 1발만 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런 4열 고사총을 1발만 쏘았다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억지주장이어서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이 진상을 조사하였더니, 의혹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위에 인용한 보도기사에 따르면,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한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은 조선인민군이 발사했다는 포격증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포격증거가 없다는 말은 한국군 합참본부가 탄착점으로 지목한 곳에 76.2mm 포탄이 떨어진 흔적이 없다는 뜻이다.
조선인민군이 14.5mm 고사총으로 사격하는 총탄은 소구경이기 때문에 사격한 이후 탄착흔적을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76.2mm 포탄이 떨어진 탄착흔적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당시 14.5mm 고사총 1발과 76.2mm 견인포 3발을 쏘지 않은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은 조선인민군이 14.5mm 고사총과 76.2mm 견인포를 쏘지 않았다는 두 가지 증거를 더 찾아냈는데, 한국군 합참본부가 포탄탄착점이라고 지목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경계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한국군 병사가 사건 당시 “폭음을 듣지 못했다”고 증언한 것과 한국군 합참본부가 한국군의 열영상관측장비(TOD)에 촬영되었다고 주장한 포연이 연기인지 포연인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진상조사결과는 한국군 합참본부의 발표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런 까닭에, 주한미국군사령부는 자기들의 조사결과를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나도록 발표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해왔던 것이다.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진상조사결과를 보면, 당시 조선인민군이 14.5mm 고사총 1발과 76.2mm 견인포 3발을 남쪽으로 발사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조선인민군이 남쪽으로 고사총 1발과 포탄 3발을 발사한 것으로 오인한 한국군은 조선인민군의 고사총 1발이 발사되었다고 오인한 시각으로부터 1시간 11분이 지난 뒤에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공터를 향해 155mm 자주포 29발을 조준사격하였다. 한국군 포병부대가 자주포 29발을 북쪽으로 사격한 것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아야 할 한국군 합참본부가 그의 작전통제도 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저지른 매우 위험천만한 모험행동이었다. <사진 2>

▲ <사진 2> 주한미국군 특별조사반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5년 8월 20일 조선인민군은 군사분계선 남쪽으로 사격을 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상황을 오인한 한국군은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500m 떨어진 비무장지대 공터를 향해 위의 사진에 보이는 155mm 자주포 29발을 조준사격하였다. 그들의 오인사격은 조선인민군을 자극하였고, 전쟁위험을 일촉즉발상태로 격화시켰다. 아직은 반미통일전쟁의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조선인민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고 무력시위로 대응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조선인민군이 평소에 예고해온 '불소나기 집중사격'으로 대응하였더라면 그 이후 전개될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 자주시보

조선인민군은 당시 사격을 하지 않았으므로, 한국군이 갑자기 자기들을 향해 선제사격을 감행한 것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당시 조선인민군은 8월 22일 오후 5시까지 확성기를 사용하는 대북심리전방송을 중단하라는 최후통첩을 한국군에게 보낸 바 있었고, 조선의 전방작전구역에 준전시상태가 선포되어 그 지역의 군대와 인민들이 전투동원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조선인민군이 최후통첩에서 통보한 시각을 약 48시간 앞둔 초긴장된 시각에 한국군은 전투동원태세에 있는 조선인민군을 향해 155mm 자주포 29발로 오인사격을 감행한 것이다.

2013년 3월 7일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은 서해 전방작전구역에 있는 장재도와 무도의 방어대들을 시찰하면서,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멸적의 불줄기를 날릴 수 있게 경상적인 전투동원태세를 더욱 빈틈없이 갖추고 있다가 적들이 우리의 령해, 령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호되게 답새기고 다시는 움쩍하지 못하게 적진을 아예 벌초해버리라”고 지시한 바 있다. 그런데 한국군이 155mm 자주포를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에 29발이나 쏘았으니, 조선인민군은 선제사격도발을 감행한 한국군에게 그들이 이전부터 예고해온 ‘불소나기 집중사격’을 퍼부었어야 하였다. 그러나 조선인민군은 ‘불소나기 집중사격’은커녕 1발의 대응사격도 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일까?    

첫째, 당시 조선인민군은 한국군의 29발 포사격이 오인사격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한국군이 어떤 작전의도에 따라 선제사격을 감행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조선인민군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군이 조선인민군의 초소나 진지를 향해 사격하지 않고, 비무장지대 북측 지역의 공터를 향해 사격한 것은, 조선인민군의 대응사격을 유도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들이 더 심각하게 생각한 것은, 한국군이 선제오인사격을 감행한 8월 20일은 한국군 5만 명과 미국군 3만 명이 출동한 대규모 대북전쟁연습이 나흘째로 접어든 날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인민군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군이 대규모 대북전쟁연습 중에 선제사격을 감행한 것은 자기들의 대응사격을 유도하여 전쟁을 도발하려는 유인전술로 보였을 것이다.

둘째, 조선에서 말하는 반미통일전쟁은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의 유인전술에 말려들어 시작되는 국지전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결정적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는 어느 시점에 시작되는 전면전이다. 조선인민군이 한국군의 선제오인사격을 받은 8월 20일은 조선인민군에게 반미통일전쟁을 개시할 결정적인 날이 아니었고, 되레 한미연합군의 대규모 대북전쟁연습으로 조선인민군에게 불리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조선인민군은 섣불리 대응사격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인민군은 대응사격을 하지 않은 대신, 잠수함연합부대, 공격헬기부대, 무인정찰기를 각각 출동시킨 강력한 무력시위를 전개하면서 한미연합군을 전방위로 위협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2015년 9월 7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알려지지 않은 8월위기사태의 급박했던 3일’에서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한편,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자신의 작전통제를 벗어나 자칫 대규모 무력충돌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오인사격을 감행한 한국군의 위험천만한 행동을 보고 노하였을 것이고, 그래서 주한미국군에게 한국군을 배제하고 8.20포격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라는 매우 이례적인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2. 긴장감 느끼는 박근혜 대통령과 한국군 지휘부

주목하는 것은, 한국군이 상황을 오인하고 위험천만한 선제사격을 감행한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준 것은 <동아일보> 2015년 5월 17일부에 실린 보도기사다. 그 보도기사에 따르면, 2014년 하반기 이후 군사분계선에서 5건의 총격사건이 있었는데, 그 총격사건의 대부분이 한국군의 선제사격으로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한국군의 선제사격으로 총격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있는 위험한 사태와 관련하여 주한미국군은 “실무조사작업을 진행해 보고서를 작성한 뒤 이를 근거로 한국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에 지속적으로 우려를 제기하고 있”으며, 스캐퍼로티 사령관은 한국군 합참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군의 대응태세가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지적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엄청난 무력충돌사태를 불러올 뻔한 8.20포격사건은 2014년 후반기부터 일어난 일련의 총격사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군의 경직된 태도가 촉발한 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국군의 그런 경직된 태도는 그들이 극도로 긴장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군을 상황오인으로 이끌어가고, 위험천만한 선제사격을 감행하게 만든 원인은 그들이 느끼고 있는 긴장감인 것이다. 2014년 하반기 이후 한국군은 왜 그처럼 긴장감을 느끼는 것일까? <사진 3>

▲ <사진 3> 위의 사진은 우리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240km의 군사분계선 일부구간을 촬영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구축해놓은 콘크리트 분단장벽이 보이고, 그 앞에 이중 철책이 보이고, 멀리 경계초소가 보인다. 2014년 하반기 이후 군사분계선에서는 한국군의 선제사격으로 5건의 총격사건이 발생하였다. 스캐퍼로티 사령관마저도 한국군의 대응태세가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지적할 만큼 한국군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 자주시보

첫째, <국방일보> 2013년 12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현 상황의 엄중함과 예측불가능성을 감안할 때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민관군이 함께 항시적으로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였고, 같은 날 진행된 외교안보장관회의에서도 “현재 한반도 정세와 우리의 안보상황이 매우 엄중하다”고 하면서 “강력한 대응체제가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것처럼, 위의 보도기사에 서술된 박근혜 대통령의 상황인식은 급박해 보인다. 당시 그는 2014년에 전쟁위험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하면서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 4>

▲ <사진 4> 2013년 12월 1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급박한 상황인식을 드러내 보였다. 그 무렵 그는 2014년에 전쟁위험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한 국정원의 보고를 받고 그처럼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자주시보

박근혜 대통령의 그런 예상은 국가정보원의 2013년도 대북정보평가에 근거한 것이었다.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국정원의 2013년도 대북정보평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이 2014년 중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2013년 10월 8일 남재준 당시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대북정보보고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3년 안에 무력통일을 하겠다고 수시로 공언하고 있다”고 말했고,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2013년 12월 31일에 발표한 정세전망보고서에서 2014년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끝난 뒤 “(한미연합군의) 대북경계태세가 이완된 시점에 (조선인민군이) 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적시하였던 것이다. 국정원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위와 같은 대북정보평가는 2014년 3월 이후 어느 시점에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고 예고한 것이었다. 
국정원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2014년 전쟁위기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이후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통령이 그처럼 바짝 긴장하는 판이었으니, 전쟁문제를 전담하는 한국군 지휘부가 긴장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그런 긴장상태가 2014년에 끝난 게 아니라 2015년 10월 하순을 지나고 있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 <사진 5> 2015년 7월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위원장이 되고 각계각층 인사 149명이 참가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박근혜 대통령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하면서 '통일대박론'을 주장하고,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현상이다.     © 자주시보
▲ <사진 5> 2015년 3월 10일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통일준비위원회가 체제흡수통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고 연구하고 있다는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 발언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키자 그는 용어선택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변명으로 자기의 비밀누설행위를 덮어버리려고 했다. 위의 사진은 체제흡수통일발언으로 궁지에 몰린 그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변명하는 현장을 촬영한 것이다. 그의 발언에서 드러난 것처럼,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앞에서는 평화통일을 말하면서 뒤에서는 체제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그들이 추구하는 체제흡수통일은 체제흡수무력통일이다.     © 자주시보


3. 평화통일 간판 아래서 추구하는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통일이라는 말을 가장 많이 꺼내놓은 특이한 대통령이다. 6.15공동선언이나 10.4선언이 발표되어 한반도 전역이 조국통일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때에도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통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 박근혜 대통령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통일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통일대박론’도 그의 창작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입으로만 통일을 외우는 게 아니라 실제행동으로 나아갔다. 그는 2014년 7월 15일 자신이 위원장으로 되고 각계각층 인사 149명이 참가한 통일준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통일준비위원회를 창성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진 5>

<한겨레> 2014년 12월 29일 보도에 따르면, 통일준비위원회는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1월 중에 남북당국회담을 개최하자고 북측에 공식 제안하였는데, 이런 대북제안은 “청와대의 뜻에 따라 서둘러” 나온 것이라고 한다. 청와대의 뜻에 따라 남북당국회담 개최문제를 서둘러 제안하였다는 말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당국회담 개최를 서둘렀다는 뜻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월 2일 정부요인들, 여야지도부, 장관급 각료들, 청와대 비서진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청와대 신년인사회에서 “정부는 통일이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구현될 수 있도록 실질적인 준비와 실천에 최선을 다해 나가겠다”는 자신의 결심을 드러냈다.
대통령이 그처럼 통일의지를 드러내는 판이니, 정부기관들도 덩달아 통일의지를 표명하였다. 이를테면, 2015년 1월 1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남북국회의장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발언한 것이나, 국방부가 2015년 1월 5일 ‘통일준비 워크숍(토론회라는 뜻의 외국어-옮긴이)’을 개최한 것이나, 범정부차원에서 ‘평화통일기반구축법(가칭)’을 2015년 안에 제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나, 한국은행이 한반도경제통합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 등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말하는 통일은 조선의 사회주의체제를 와해시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단일화하는 체제흡수통일 이외에 다른 게 아니다. 아니나 다를까, 2015년 3월 10일 서울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은 “합의가 아닌 다른 형태의 통일도 준비하고 있다. 통일과정에는 여러 가지 로드맵(추진경로라는 뜻의 외국어-옮긴이)이 있으며, 비합의통일이나 체제통일에 대한 팀(실무반이라는 뜻의 외국어-옮긴이)이 우리 조직에 있다. 통일준비위는 평화통일을 전제로 한 조직이지만 밖으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 내 다른 조직에서도 체제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체제흡수통일은 우리가 하기 싫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문제 관련 발언들 가운데서 가장 자극적인 발언은 2015년 7월 10일 비공개로 진행된 통일준비위원회 집중토론회에서 나왔다. 그는 “독일경험 등에 비춰보면 며칠 또는 몇 달 뒤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명백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체제흡수통일이 임박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인식이 아니라 믿음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주목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체제흡수통일론을 꺼내놓기 시작한 시점이다. 위에 열거한 사실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2014년 중반부터 체제흡수통일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그러한 행동은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이 2014년 3월 이후 어느 시점에 일어날 것이라고 2013년에 예고했던 국정원과 국가안보전략연구소의 대북정보평가내용과 일치한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조선의 반미통일전쟁에 맞서는 방책으로 체제흡수통일구상을 가다듬으며 통일준비위원회를 가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추구하는 통일은 평화통일이 아니라 체제흡수무력통일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체제흡수무력통일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전시에 10개 향토사단을 민사작전부대로 전환시켜 점령지역 주민들을 “대한민국 국민화”하는 “수복지역 민사작전”을 “안정화 작전”이라는 명칭으로 준비하였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4. 박근혜 대통령의 ‘시계추 외교행보’에 숨겨진 사연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이상한 외교행보로 국제사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시각각 침몰하는 한국 경제를 살려내기 위해서, 또는 조선의 ‘핵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국과 중국 사이를 오락가락한다고 볼 수 있으나, 그의 ‘시계추 외교행보’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다. 다시 말해서,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의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오락가락하는 그의 특이한 외교행보에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은 아래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첫째, 2015년 9월 4일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방문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전용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긴장상태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이런 모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그 귀결점은 평화통일이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해서 중국과 같이 협력해 나가기로 그렇게 이야기가 된 것이고, 그래서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한반도 평화통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 건가에 대해서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 사이에서)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평화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나, 그의 진짜 속셈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자기의 체제흡수통일구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려고 하였던 것이다. 

둘째, 2015년 10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 직후 열린 백악관 공동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향후 한반도 상황전개와 평화통일과정에서 상호조율된 대북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평화통일여건조성을 위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심화키로 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서도 평화통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그가 언급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라는 것은 평화통일에 전적으로 배치되는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와 한미억제전략위원회(DSC)를 뜻한다. <사진 6>

▲ <사진 6> 미국과 중국을 번갈아 오가는 박근혜 대통령의 '오락가락 외교행보'가 국제사회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위의 사진은 2015년 10월 16일 박근혜-오바마 정상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건에서 두 정상이 두 손을 맞잡고 정답게 인사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작계 5015'에 관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뜻을 담은 발언을 꺼내놓았다.     ©자주시보

구체적으로 말하면, 2015년 4월 한미통합국방협의체는 확장억제정책위원회(RDPC)와 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CMCC)를 통합하여 한미억제전략위원회를 결성하였는데, 이 위원회에서는 방어(Defense), 탐지(Detect), 교란(Disrupt), 파괴(Destroy)를 뜻하는 이른바 4D작전개념을 대북전쟁계획으로 가다듬고 있다. 이런 정황은 최윤희 당시 합참의장과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2015년 6월에 서명한 새로운 대북전쟁계획인 ‘작계 5015’의 내용이 4D작전개념을 들고 나온 한미억제전략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보완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런 사정을 살펴보면, 2015년 10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에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평화통일여건조성을 위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심화키로 했다”고 말한 것은,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작계 5015’에 관한 한미고위급전략협의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위에 서술한 두 가지 사실을 살펴보면, 자신의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그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작계 5015’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시계추 외교행보’에 숨겨진 사연이라고 결론할 수 있다.


5. ‘작계 5015’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절대적인 믿음

체제흡수무력통일을 목표로 하는 공격형 전쟁계획인 ‘작계 5015’를 처음으로 적용한 한미연합군의 ‘을지프리덤가디언’ 대북전쟁연습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던 2015년 8월 20일, 상황을 오인한 한국군은 155mm 자주포를 동원한 29발의 선제오인사격으로 조선인민군을 심하게 자극하였고 전쟁위험을 일촉즉발상태로 격화시켰다. 아직은 반미통일전쟁의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조선인민군이 대응사격을 하지 않고 무력시위로 대응하였기에 망정이지, 만일 조선인민군이 평소에 예고해온 ‘불소나기 집중사격’으로 대응하였더라면 한국군 전방부대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이고, 그 이후에 전개될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이처럼 위태로운 상황에서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에 집착하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이 절대적으로 믿는 대상은 미국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그들의 눈에 체제흡수통일구상을 실현해줄 것으로 보이는 미국군의 작전능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믿는 대상은 전시에 동서횡단 249km의 전선을 한국군과 함께 방어해줄 주한미국군, 그리고 일본자위대와 함께 한반도전선에 긴급히 투입될 주일미국군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한미연합군과 미일동맹군이 합세한 북진공격으로 전쟁에서 이겨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미국군이 작성한 ‘작계 5015’는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게 그런 전쟁승리의 믿음을 안겨주었다. 그런 믿음을 가졌기에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7월 10일 비공개로 진행된 통일준비위원회 집중토론회에서 “며칠 또는 몇 달 뒤에라도 통일이 될 수 있으니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7>

▲ <사진 7>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인 '작계 5015'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미일동맹군이 한반도전선에 투입되어 방어를 공격으로 역전시키고 북진하여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일본은 요즈음 미일동맹군의 전투력을 급속히 강화시키고 있으니, 그것을 본 박근혜 대통령이 '작계 5015'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위의 사진은 2015년 4월 29일 백악관에서 진행된 미일정상회담 직후 오바마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모습이다.     © 자주시보

전시에 ‘작계 5015’에 따라 작전하게 될 미국군에게 전쟁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요인은 미일동맹군을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한반도전선에 투입하여 방어를 공격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미일동맹군이 한반도전선에 투입되면 한미연합군의 방어전이 북진공격전으로 전환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작계 5015’가 가리키는 대북전쟁의 기본방침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미일동맹군 투입으로 전세역전이 일어나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에서 줄줄이 패전해온 군대를 과연 믿을 수 있으며, 그런 군대가 작성했다는 전쟁계획 ‘작계 5015’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6. 조선인민군의 제3전선 구축과 미일동맹군의 한반도전선 출병 

미국군에게 ‘작계 5015’가 있는 것처럼, 조선인민군에게도 반미통일전쟁 작전계획이 있을 텐데, 반미통일전쟁 작전계획은 존재 자체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반미통일전쟁에서 조선인민군이 미일동맹군을 격파하기 위해 자기의 전투력을 일본에 긴급히 투입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것은 전시에 조선인민군이 한미연합군 후방지역에 제2전선을 구축하는 동시에 일본에 제3전선을 구축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자위대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이 바다를 건너와 자기들을 공격하리라고 오래 전부터 예상해왔다. 이를테면, 일본 시사월간지 <분게이슌주(文藝春秋)> 2003년 2월호가 보도한, 일본자위대의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 그런 예상이 반영되어 있다. 일본은 그 전쟁계획을 1994년에 작성하였다고 하는데, 21년 전에 작성된 전쟁계획이므로, 오늘날 전체적으로 변모된 작전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전쟁계획의 내용을 수정, 보충하면서 서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조선인민군이 일본 공격에 많은 전투역량을 투입하지 못하게 될 것이므로 일본에서 비정규전을 전개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 예상에 따라, 일본자위대는 조선인민군이 1개 특수전여단 10,000명 병력으로 일본육상자위대 150,000명과 싸우는 전법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고 한다. 조선인민군이 일본에서 15 대 1일의 전투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일본자위대가 언급한 조선인민군 특수전여단은 전시에 지상, 지하, 해상, 공중, 수중을 포괄하는 5차원 특수전을 입체적으로 전개할 ‘폭풍군단’에 배속된 여러 여단들 가운데 하나다.
<데일리NK> 2009년 3월 26일부 기사에 따르면, 원래 ‘폭풍군단’은 총 12개 여단으로 편성되었는데, 그 중 2개 여단이 1999년에 항공군으로 이전되어 ‘폭풍군단’이 10개 여단으로 되었다고 한다. 1999년에 항공군으로 이전된 2개 여단이 전시에 각종 수송기를 타고 제2전선과 제3전선에 공수투입될 항공륙전려단들이다. 항공군으로 이전된 1개 여단에는 6,000명 병력이 배속되었으므로, 전시에 항공륙전병 12,000명이 제2전선과 제3전선에 각각 공수투입되는 것이다. 이들 전원은 육탄자폭정신으로 무장한 최정예 특수전병력이다. 그러니 일본자위대를 상대로 15 대 1의 전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 8>

▲ <사진 8>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60주년 열병식에 참가한 항공륙전병들이 수송차량을 타고 주석단 앞을 지나고 있다. 이들은 육탄자폭정신으로 무장한 최정예 특수전병력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한번에 항공륙전병 2,600명을 일본에 구축될 제3전선에 투입하여 미일동맹군을 공격할 수 있는데, 그들 가운데는 핵배낭특전병들도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그런데 전시에 일본에 구축될 제3전선에 조선인민군 항공륙전병을 공수투입하려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선, 항공륙전병을 실어 나르는 수송기들이 일본 영공에 진입할 수 있도록 일본의 방공망부터 무력화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조선인민군이 일본의 방공망을 선제공격으로 파괴해야 하는데, 조선인민군에게는 그런 선제공격전을 수행할 강력한 미사일부대가 있다. 21년 전에 작성된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서는 전시에 일본에 대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공격이 스커드미사일이나 몇 발 쏘는 것으로 아주 과소평가되어 있지만, 오늘 조선인민군의 미사일공격력은 21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강되었다. 미사일의 파괴력, 타격정밀도, 발사방식, 보유수량 등이 전체적으로 수 십 배 증강된 것이다.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미사일로 일본의 방공망을 공격한 뒤에 공습을 시작할 것이다. 조선인민군에게는 일본을 타격할 공습능력이 있다. 일본이 21년 전에 작성한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을 보더라도, 조선인민군은 경폭격기 약 65대, 전투기 약 125대를 동원하여 일본을 공격할 것으로 일본자위대는 예상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조선인민군의 공습능력은 21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강되었으므로, 미사일공격에서 살아남은 일본의 방공망을 공습으로 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전투기들이 주일미국군기지를 공격하는 공습훈련에 열중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2015년 4월 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다음으로, 조선에서 일본까지 항공륙전병을 공수할 중거리 수송능력을 가진 수송기들이 필요하다. 현재 조선인민군이 전시에 제3전선에 투입할, 중거리 수송능력을 가진 수송기는 21대인데, 그것을 모두 동원하면 한 번에 항공륙전병 2,600명을 제3전선에 공수투입할 수 있다.
제3전선에 공수투입되는 병력 가운데는 극소형 전술핵탄을 원격조종으로 폭발시켜 주일미국군기지들과 일본자위대기지들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릴 조선인민군 핵배낭특전병들도 포함될 것이다. 조선인민군 핵배낭특전병에 대해서는 2013년 8월 4일 <자주민보>에 실린 나의 글 ‘전설 속의 핵배낭이 나타난 사연’에서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셋째, ‘조선반도사태 대처계획’에 따르면, 조선인민군은 잠수함 약 10척과 소수의 소형함정으로 일본을 공격할 것으로 일본자위대는 예상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21년 전에나 들을 수 있었던 ‘옛날이야기’다. 오늘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는 일본의 주요항만을 모조리 봉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었다.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에 대해서는 2014년 6월 23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세계가 놀랄 북의 잠수함련합부대의 위력’에서, 그리고 2015년 8월 31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8월위기사태는 어떻게 평정되었는가?’에서 각각 서술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사진 9>

▲ <사진 9> 오늘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는 일본의 주요항만을 모조리 봉쇄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공격력을 갖추었다. 전시에 조선이 제3전선에 잠수함연합부대를 투입하면, 그 부대는 수중매복구역에서 매복하였다가 미일동맹군이 한반도 출병에 이용할 해상수송로를 봉쇄할 수 있다. 위의 사진은 2015년 5월 9일 김정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지도 밑에 진행된 탄도탄수중시험발사에 참가한 전략잠수함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그 날 이 전략잠수함에서는 다발각개조준식 핵탄을 장착하는 최첨단 잠대지미사일 북극성-1호 2발이 수중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일본해상자위대도 잠수함 전력이 강하다고 하지만, 잠수함 50여 척으로 편성되는 조선인민군 잠수함연합부대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할 것이다.     © 자주시보

위에 열거한 사실들을 종합해보면, 전시에 조선인민군은 미일동맹군이 한반도전선으로 출발하기 전에 그들의 기지들을 맹렬한 동시다발식 공격으로 파괴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미일동맹군을 한반도전선에 긴급히 투입하고, 한국에 체류하는 미국인들과 일본인들을 일본으로 긴급히 대피시키려는 ‘작계 5015’는 실현될 수 없는 전쟁계획인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정권은 전시에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이 제대로 작동되어 체제흡수무력통일구상이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다. 그들은 미국군이 외우는 ‘작계 5015’라는 이름의 주술에 홀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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