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마드, 7세
호르코스/로스케. 잠조차 자유로운 곳이 아니다. 잠이 들면 공포가 다시 재생된다. 아흐마드는 이들리브의 집이 폭격 당했을 때 집에 있었다. 머리에 파편을 맞았지만 살아남았다. 아흐마드의 남동생은 죽었다. 이 가족은 전쟁을 이웃으로 두고 몇 년을 살았지만, 집이 없어지고 나자 떠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아흐마드는 봉쇄된 헝가리 국경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아스팔트에서 다른 난민들 수천 명과 함께 누워 있다. 이들이 집을 떠난 지 16일 째다. 아흐마드의 가족들은 버스 정류장, 길, 숲 등에서 잤다고 아흐마드의 아버지가 설명한다.
타맘, 5세
요르단 아즈라크. 다섯 살 박이 타맘은 자기 베개가 무섭다. 잘 때가 되면 매일 밤 운다. 타맘의 고향 홈스에서는 보통 밤에 폭격이 있었고, 집을 떠난 지 거의 2년이 되어가지만 타맘은 아직 베개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있다.
셰흐드, 7세
셰흐드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요즘 셰흐드가 그린 그림들의 주제는 단 하나, 무기다. “무기는 어디에나 있고, 셰흐드는 언제나 무기를 보았다.” 셰흐드가 봉쇄된 헝가리 국경 옆 땅에서 잠든 동안 셰흐드의 어머니가 설명한다. 이제 셰흐드는 그림을 아예 그리지 않는다. 가족들은 피난 오며 종이나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다. 셰흐드는 이제 놀지도 않는다. 탈출 이후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야 했고, 앞으로 한 시간 후 또는 내일 일어날 일을 어른들과 함께 걱정하게 되었다. 셰흐드의 가족은 피난 후 음식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길 가의 나무에서 딴 사과만 먹어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들은 여정이 얼마나 힘들지 알았더라면 목숨을 걸고 시리아에 남았을 거라 한다.
파티마, 9세
스웨덴 노르베리. 매일 밤 파티마는 배에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 시리아 정규군이 이들리브에서 민간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해서 파티마는 어머니 말라키와 두 남매와 함께 피난을 떠났다. 레바논의 난민 캠프에서 2년을 지내다 견디기 힘들어지자 그들은 과적 선박을 타고 리비아로 갔다. 배 갑판에서 한 여성이 뜨거운 태양 아래 12시간 동안 진통을 겪다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죽은 채 태어났고 갑판 밖으로 던져졌다. 파티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보았다. 배에 물이 차기 시작하자 이탈리아 해안 경비대가 구조했다.
쉬라즈, 9세
터키 수루치. 쉬라즈는 태어난 지 3개월 후 심한 열병을 알았다. 의사는 소아마비 진단을 내리며 ‘가능성이 없는’ 아이에게 약값을 너무 많이 쓰지 말라고 부모에게 충고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 쉬라즈의 어머니 레일라는 쉬라즈를 담요에 싸서 코바네에서 국경을 넘어 터키로 간 이야기를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말을 할 수 없는 쉬라즈는 난민 캠프에서 나무 요람을 받았다. 쉬라즈는 밤낮 요람에 누워만 있는다.
모함메드, 13세
터키 니집. 모함메드는 집을 좋아한다. 고향 알레포에서는 걸어다니며 집들을 구경하기를 즐겼다. 이제 그가 좋아하던 건물들은 대부분 산산조각이 났다. 병원 침대에 누운 그는 자신의 꿈인 건축가가 과연 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전쟁의 가장 이상한 점은 겁먹은 느낌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될 거라고는 믿지 않았을 것 같다, 라고 모함메드는 말한다.
랄리아, 7세. 라하프, 13세
레바논 베이루트. 랄리아와 라하프는 베이루트의 길에 산다. 그들의 어머니와 형은 고향 다마스커스에서 수류탄이 터져 죽었다. 그들은 1년 째 아버지와 함께 길에서 잔다. 마분지 박스 위에서 몸을 꼭 붙이고 잔다. 라하프는 자기는 ‘나쁜 남자애들’이 무섭다고 하고, 랄리아는 그 말을 듣자 울음을 터뜨린다.
굴리스탄, 6세
터키 수루치. 눈을 감는 것과 자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여섯 살 난 굴리스탄도 안다. 굴리스탄은 눈을 감고 자는 척하는 걸 더 좋아한다. 정말로 잠이 들면 늘 악몽을 꾸기 때문이다. 굴리스탄은 나는 여기서 자기 싫다, 집에서 자고 싶다고 말한다. 코바니에서 쓰던 베개가 그립다. 가끔은 어머니를 베개처럼 베고 잔다.
모야드, 5세
요르단 암만. 모야드와 어머니는 시금치 파이를 만들 밀가루가 필요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시리아 다라의 시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누군가 폭탄을 달아 둔 택시 옆을 지나갔다. 모야드의 어머니는 즉사했다. 비행기로 요르단으로 옮겨진 모야드는 머리, 등, 골반에 파편이 박혔다.
샴, 1세
로스케/호르고스. 세르비아와 헝가리 사이의 4미터 높이 철문 앞에서 샴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다. 불과 몇 십 센티미터 앞에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유럽이 있다. 바로 하루 전 마지막 난민들이 국경을 통과해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차에 탔다. 하지만 샴과 어머니는 너무 늦게 도착했다. 이제 그들은 봉쇄된 헝가리 국경 앞에서 다른 난민 수천 명과 함께 기다리고 있다.
아미르, 20개월
젤라 파이다. 20개월 된 아미르는 태어날 때부터 난민이었다. 아미르의 어머니는 아들이 자궁에서 트라우마를 입었다고 믿는다. “아미르는 아직 단 한 마디도 한 적이 없다.” 32세 샤하나의 말이다. 지금 가족이 살고 있는 비닐 텐트에는 아미르의 장난감은 없지만, 땅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지고 논다. “말은 안 하지만 많이 웃어요.” 어머니의 말이다.
라마르, 5세
세르비아 호르고스. 고향 바그다드에 인형, 장난감 기차, 공을 두고 왔다. 라마르가 집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입에 올리는 세 가지다. 폭탄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가족들이 먹을 것을 사러 가는데 집 근처에 폭탄이 떨어졌다. 라마르의 할머니 사라는 더 이상 거기에 살 수 없었다고 말한다. 터키에서 작은 고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려 두 번 시도한 끝에 그들은 헝가리의 봉쇄된 국경까지 오는데 성공했다. 이제 겁먹고 슬픈 라마르는 숲의 담요 위에서 추위에 떨며 잔다.
압둘 카림, 17세
그리스 아테네. 압둘 카림 아도는 돈이 떨어졌다. 마지막 남은 유로로 아테네에 오는 배 표를 샀다. 이제 그는 매일 수백 명의 난민들이 도착하는 오모니아 광장에서 밤을 보낸다. 난민들에게 버스 표, 비행기 표, 가짜 여권들을 파는 사람들이 큰 돈을 번다. 하지만 압둘 카림은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전화를 빌려 시리아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는 말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걱정하며 우시는데, 더 걱정하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광장 복판에 담요를 펴고 태아 같은 자세로 웅크린다. “나는 두 가지 꿈을 꿔요. 다시 침대에서 자는 것, 내 여동생을 껴안는 것.”
왈라, 5세
레바논 마르 엘리아스. 왈라는 집에 가고 싶다. 알레포의 집에는 자기 방이 있었다고 한다. 집에서는 잠자리에 들 때 운 적이 없었다. 난민 캠프에 있는 지금은 매일 밤 운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눕는 게 끔찍하다고 한다. 밤이 끔찍하기 때문이다. 밤에 공격이 있었다. 낮에는 왈라의 어머니는 무서워할 게 없다는 걸 가르쳐주려고 베개로 작은 집을 만들어준다.
이만, 2세
요르단 아즈라크. 이만은 폐렴과 흉부 전염을 앓는다. 입원한 지 사흘 째다. 이젠 거의 언제나 잔다. 평소 이만은 쾌활한 소녀지만 지금은 지쳤다. 건강할 때면 어디든 뛰어다니고, 모래밭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고 이만의 어머니 19세 올라는 말한다.
압둘라, 5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압둘라는 혈액 질환이 있다. 최근 이틀 동안 베오그라드 중앙역 밖에서 잤다. 압둘라는 다라의 집에서 여동생이 죽는 것을 보았다. “압둘라는 아직 충격을 받은 상태이고 매일 밤 악몽을 꿔요.” 그의 어머니의 말이다. 압둘라는 지쳤고 건강하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약을 사줄 돈이 없다.
에스라, 11세. 에스마, 8세. 시드라, 6세.
레바논, 마즈달 안자르. 37세의 셀람은 에스라, 에스마, 시드라를 잠자리에 눕힐 때면 아이들이 안전하고 밤에 공격이 없을 거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녀를 슬프게 하는 것은 아이들이 납치되어 사라진 아버지 꿈을 계속 꾸고, 심란한 상태로 잠에서 깬다는 것이다. 시드라는 ‘나는 아빠가 사탕을 가져다 주는 꿈을 자주 꿔요’라고 말한다.
파라, 2세
요르단 아즈라크. 파라는 축구를 좋아한다. 아버지는 찾을 수 있는 것들을 무엇이든 뭉쳐서 공을 만들어 주려 했지만 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매일 밤 그는 파라와 파라의 언니 9세 티삼에게 다음 날엔 갖고 놀 수 있는 진짜 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바라며 잘 자라고 인사한다. 다른 모든 꿈은 그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 같지만, 그는 이 꿈은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줄리아나, 2세
세르비아 호르고스. 34도다. 파리들이 줄리아나의 얼굴 위를 걸어다니고, 잠든 줄리아나는 불편한지 뒤척인다. 줄리아나의 가족은 이틀 동안 세르비아를 걸었다. 3개월 전 떠난 피난의 마지막 단계다. 어머니는 땅에 누운 줄리아나에게 얇은 숄을 덮어준다. 파티마는 차분해진다. 그들이 쉴 곳이 몇 미터 앞에 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간다. 때는 8월 말이고 헝가리는 난민들의 물결을 막으려고 가시철조망 벽을 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며칠은 더 국경 앞 도시 호르고스를 지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저녁이 되면 줄리아나의 가족은 국경을 넘으려 시도할 것이다.
마람, 8세
마람이 학교에 다녀왔을 때 집에 폭탄이 떨어졌다. 지붕 일부가 마람 바로 위로 떨어졌다. 어머니는 마람을 데리고 야전 병원으로 갔고, 병원에서 비행기로 국경을 넘어 요르단으로 갔다. 머리를 다쳐 뇌출혈이 일어났다. 사고 후 11일 동안 마람은 혼수 상태였다. 이제 의식은 있지만, 턱이 부러져 말을 할 수가 없다.
마흐디, 1.5세
호르고스/로스케. 마흐디가 태어나서 1년 반 동안 경험한 것은 전쟁과 피난 뿐이다. 난민 수백 명이 주위에서 돌아다녀도 깊이 잠든다. 그들은 헝가리 국경을 넘지 못하는 것에 대해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국경 반대쪽에는 경찰 수백 명이 서 있다.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경찰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국경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상황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고, 이 사진을 찍은 다음 날 경찰은 난민들에게 최루 가스와 물 대포를 쏘았다.
아흐메드, 6세
세르비아 호르고스. 아흐메드는 자정이 넘어 잔디 위에서 잠이 들었다. 어른들은 아직 둘러앉아 당국에 등록하지 않고 헝가리를 빠져나갈 계획을 짜고 있다. 아흐메드는 6살이고 가족들과 함께 걸어서 먼 거리를 이동하며 자기 가방을 직접 멘다. “아흐메드는 용감하고 저녁에 가끔씩만 운다.” 시리아 북부의 고향 다이르 앗 자우르에서 아흐메드의 아버지가 죽은 후 아흐메드를 돌보고 있는 삼촌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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