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소 놓고 주민충돌, 긴장 고조되는 영덕


[10만인리포트-영덕대게를 부탁해요!⑨] 영덕 5일장 민심 르포
김종술 기자 쪽지보내기 | 15.10.28 20:21

'대게의 고장' 영덕에 대게가 사라진다면? 정부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으로 영덕에 핵발전소 2~4기가 신설되면 방사능 오염과 온배수 배출로 서식환경이 악화되고, 상표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주민들은 11월 11일을 목표로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과 녹색당은 '영덕대게를 부탁해요!'라는 제목으로 '탈핵 응원글 보내기' 공동 캠페인을 진행한다. 또 영덕 핵발전소 계획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나아가 우리나라 핵발전 사업의 거짓과 진실을 알리고 대안도 제시하는 현장-기획 기사도 내보낸다. [편집자말]
▲ 오징어, 도루묵, 아귀 등 생선을 파는 좌판에 손임이 밀리면서 활기를 띠고있다. ⓒ 김종술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지난 25일 경북 영덕 '영해 관광시장'에서 열리는 5일장 앞에 서니 가수 오승근의 뽕짝이 흘러나왔다. 흥겨운 노랫소리는 시끌벅적한 시장 속으로 파고들었다. 여기저기 어물전에서 흥정이 벌어지고 살아서 팔딱거리는 생선들이 팔려나갔다.

"오징어가 10마리에 만원. 떨이요, 떨이!"
"이만 원어치나 샀는데..."   

할아버지의 하소연에 상인은 덤으로 몇 마리의 생선을 담아줬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느 5일장과 크게 다를 게 없다. 그런데 오는 11월 11일 영덕 핵발전소 유치를 묻는 찬반 주민투표를 앞두고 날 선 악다구니와 신경전이 벌어졌다. 

노란 조끼를 입고서 옷가게 아저씨랑 장난을 치던 손보경(7, 남)이가 쪼르륵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아래: 대책위)'는 이날 노란 조끼를 입고 장마당을 돌면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핵발전소는 경기 살린다" vs "서민은 똥물도 없다"
▲ 문어와 오징어를 선주지만 지금은 노점에서 오징어를 팔고 있다는 주민의 좌판 ⓒ 김종술

이를 안 옷가게 상인(포항 거주)은 "관광객이 많아서 늦은 시간까지 북적대기는 하지만, 경기가 안 좋아서 물건이 잘 팔리지는 않는다"며 "(핵발전소) 들어오면 돈이 풀리고 경기가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말이 화근이었다.  

"안 된다!"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물고기도 안 잡히고, 누가 사 먹어요."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끼어들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 와중에 '주민투표는 필요 없다'는 붉은 어깨띠를 두르고 유인물을 나눠주던 핵발전소 유치 찬성 측 주민 10여 명이 마른오징어를 팔던 상인과 만나면서 큰소리가 터졌다. 

"영덕 주민들 죽일 일 있나, 말도 안 된다." 
"넌, 전기 안 써?"
"그렇게 좋으면 아저씨 집에 세워라."
"영덕 대게 다 팔아먹는다, (보상금) 위에서 다 먹고 서민은 똥물도 없다."

"서울에 보낼 전기 때문에 왜 우리가 피해를"
▲ '주민투표는 필요없다'는 어깨띠를 두룬 핵발전소 유치 추진 주민들이 시장을 찾았다. ⓒ 김종술

붉은 어깨띠를 두른 주민들이 유인물을 손에 쥔 채 바쁜 걸음으로 빠져나갔지만, 분이 덜 풀린 오징어가게 상인은 "일본에서 (원전사고) 터져서 생태도 못 먹는데... 높은 놈들만 챙기지"라며 쏘아붙였다. 옆에서 무, 깨, 쌀, 감 등 농산물을 팔던 상인도 거들었다. 

"맞다, 맞다, 반대해야 한다. 포항에서 영덕까지 공장 하나도 없는 청정지역이다. 서울로 가져갈 전기인데 왜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하나, 공기 좋은 곳에서 건강하게 살아야지, 돈 몇 푼에 아프면 다 끝이다. 근데 니는 와 아까부터 적고 지랄이고?" 

험악한 말이 기자한테 쏟아졌다. 취재차 왔다는 설명을 듣고 나서야 얼굴이 펴졌다. 원전 유치를 놓고 오랫동안 찬반이 지속되면서 짜증이 날만도 했다. 장에 나오려고 아침 5시부터 짐 챙기느라 늦어서 아침도 못 먹었다고 한다. 오전 11시가 다 되었는데 5만 원 정도밖에 못 팔았다고 했다. 기자에게 화냈던 게 미안했는지 단감 한 개를 깎아서 내민다. 아삭아삭 달짝지근하다. 

"이래 보여도 집에 큰 배가 있다. 문어와 오징어를 잡았는데 문어는 씨가 마르고 오징어만 잡는다. 지금은 잘 잡히지 않아서 (신랑) 아저씨랑 나랑 둘이서 배 타고 고기 잡아서 직접 말린다. 외가집도 부산 기장인데 멸치도 잘 안 잡혀서 걱정이다. 지금도 이런데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고기 씨가 마른다. 그나마 젊은 사람들도 다 떠나가는데, 우린 다 죽는다."  

시장통에서는 가끔 투표를 독려하는 대책위의 방송차량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신규 원전 결사반대, 핵발전소 원전 투표는 군민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핵발전소 막아내고, 투표하여 청정 영덕 지켜내자. 아자!"

"원전은 경제 유발 효과 높다"
▲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회원들이 오일장을 찾아 11월 11일 주민투표를 톡려하고 있다. ⓒ 김종술

어물전에서 만났던 찬성 측 주민들을 시장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핵발전소를 유치하자는 선전전을 끝내고 돌아가는 중이란다. 무리 중에 있던 이완선 전 군의원에게 찬성 이유를 물었다. 

"60년대, 70년대만 하더라도 영덕의 인구가 13만 명 정도로 큰 도시였다. 지금은 4~5만 정도로 줄어들었는데 (산업)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공업단지 유치도 안 된다. 원전은 대체로 위험하지 않다. 경제 유발효과도 높다. 농사만 지어서는 살 수 없다. 

원전이 있는 영광이나 울산에도 사람이 산다. 거기도 인구가 준다고는 하지만 여기처럼 급격하게 줄지는 않는다. 우리도 청정지역에서 살고 싶다. 그러나 젊은 세대가 없다. 원전 유치로 인구가 만 명에서, 만오천 명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 지난 2005년에는 핵발전소를 반대했지만, 여전히 인구는 줄어들고 경제는 무너져 내린다. 제발 영덕의 문제는 영덕이 해결하도록 외부세력은 빠져야 한다." 

시장을 빠져나오는데 시장 입구에서 판소리가 울려 퍼진다. "정이 넘치는 5일장! 신명 나는 영해관광시장!" 공동 마케팅 장터 한마당에 한복을 입은 명창들의 공연이 펼쳐졌다. 흥에 겨워서였을까? 주민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군민 4만 명중 399명의 의견만 듣고...
▲ 청정 영덕군은 대개와 송이 생산량이 전국 1위로 관광객이 한해 천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 김종술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 센터에서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영덕군은 지난 2010년 12월 31일 한수원에 핵발전소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4만 군민 중 399명이 주민의견동의서를 제출했다. 영덕군은 유치신청서 제출 4일 전에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는데, 이 설명회에서는 3개 마을 185명의 주민만 참가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영덕군은 2010년 이후 핵발전소의 위험과 그로 인한 영향 등에 관한 주민공청회는 단 한 차례도 진행하지 않았다. 대책위에 따르면 "영덕 핵발전소 건설에 대한 여론이 점점 커지면서 최근 이희진 영덕 군수가 농협 임직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영덕 군민 60% 이상이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단다. 

대게의 고장 영덕군은 송이 생산량도 전국 1위라고 한다. 한해에 무려 300억 원을 벌어들인단다. 핵발전소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약일까 독일까? 대한민국 특산물이기도 한 '명품 대게'와 송이 생산과는 무관한 일일까? 

핵발전소 찬성과 반대 측은 5일 장터에서 장바닥 민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투표하자'와 '투표하지 말자'로 의견이 엇갈렸다. 오승근의 노랫가락이 끝난 시장통을 빠져나온 도로변에도 '주민분열 주장하는 찬반투표 중단하라'는 찬성 측 현수막과 '11월 11일은 주민투표를 하는 날입니다'란 반대 현수막이 번갈아 걸려있다. 
▲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는 24일 영덕읍 시내에서 핵발전소 반대 집회를 했다. ⓒ 김종술

영덕 군민들을 상대로 핵발전소 유치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일인 오는 11월 11일~12일이 주목된다. 

○ 편집ㅣ박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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