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그리라고 했는데 왜 북한도 그렸어?"


15.10.18 19:36l최종 업데이트 15.10.18 19:36l


공공미술 'Wasch Wasch FEST-빨래 프로젝트'는 베르나우(Benau) 문화부와 베를린예술대학 Art in Context 연구소의 주최로 필자가 독일에서 2015년 6월부터 9월까지 진행한 참여형 예술프로젝트다.

이번 공공미술 'Wasch Wasch FEST-빨래 프로젝트'는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올해로 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과 통일 25주년을 맞이하는 독일 사이에 어떠한 역사적 간극이 존재하는지,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전쟁 이후 과연 독일과 한국 사람들의 삶은 어떠한지 베르나우 지역주민들과 예술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과정을 <오마이뉴스> 독자들과 나누고자 몇 회에 걸쳐 게재하려 한다. - 기자 말 

"한국을 종이에 그려주세요."

이렇게 외국인이 부탁한다면 당신은 서슴지 않고 종이 위에 선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머릿속으로 호랑이 모양을 연상하면서. 그리고 당신의 성격이 꼼꼼한 타입이라면 한반도 밑에는 제주도를, 그리고 오른편에는 독도를 그리는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마지막으로 한반도 가운데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휴전선을 하나 그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그림을 본 외국인은 의아해 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한국을 그리라고 했는데 왜 북한도 그렸어?" 

만약, 당신이 이러한 질문을 받는 순간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실제로 내가 이 질문을 독일인 친구에게 받았을 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의 현대사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지도 하나를 그렸을 뿐인데 독일인 친구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수십 개가 넘었기 때문이다.

가령, 한국전쟁은 몇 년도에 왜 벌어졌는지, 한국이 어떻게 분단이 되었는지,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누가 있었는지, 왜 한국과 북한은 하늘로든 땅으로든 바다로든 서로 자유롭게 왕래를 할 수 없는지 등등. 

한참 동안 한국현대사에 대해 설명한 후에 그 친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숨) 한국이 분단이 안 되었다면 독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도 갈 수 있었을 텐데... 항공으로나 육로 모든 교통수단이 38선 위로 막혀있으니 결국 한국은 섬나라구나." 

"응? (당황) 응…." 

어쩌면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외국에서의 단순한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지도 그리기'에 관련한 에피소드는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현재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발표한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만약 정부가 만드는 '올바른 역사교과서'가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반영하게 된다면 한국은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후 역사는 북한의 존재를 배제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내용을 바탕으로 본다면 보통의 한국 사람들이 북한을 포함하여 그리는 한국 지도는 '틀린' 그림이 된다. 
기사 관련 사진
▲  북한을 제외한 한국의 모습
ⓒ 권은비

당신의 심리적 나라는 어디인가요? 

헌데 왜 우리는 항상 지도를 그릴 때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를 그리는 것일까. 신기하게도 우리나라를 그리라고 했을 때 남한만 그리는 사람을 난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을 그릴 때 북한을 포함한 호랑이 모양으로 그리는 현상을 프랑스 상황주의자인 기 드브로 식의 심리-지리학(psychogeography)의 일종으로 해석해 보자. 한국인들에게 '나라'를 그린다는 것은 단순히 객관적으로 지리적, 영토적 영역을 표현하는 것 그 이상의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우리가 한국을 그릴 때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를 그리는 것은 곧 무의식적으로 북한을 빼놓고는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우리나라'를 생각할 수 없다는 반증이 아닐까. 이렇듯 한국의 역사가 갖고 있는 복잡 다양한 민족 모순은 간단한 '지도 그리기'에서도 가감 없이 나타난다. 

그러고 보면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의 지극히 단순한 '대한민국 지도그리기'에 대해 내가 오랜시간 동안 의문을 갖게 된 것은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독일에서 발견하게 되는 한국의 역사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독일에서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이미지 생산과 예술작품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던 나는 다소 충격적인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아래의 그림을 보자. 
기사 관련 사진
▲  동독시절에 그려진 한국전쟁에 관한 포스터
ⓒ Hans Dieter Kuhn

'아빠 그리고 엄마가 죽었어요'라는 독일어 문구가 상단에 쓰인 이 포스터는 한국전쟁 당시 그려진 것이다. 누가 봐도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고 있는 한 소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포스터 하단에는 다소 놀라운 문구가 쓰여져있다. 

'여성들과 아이들에 대한 미국의 테러공격에 대항하자!' 

동독에서 한국전쟁을 '미국에 의한 테러'라고 정의하고 이러한 포스터를 제작했다는 것은 꽤 충격적이다. 더불어 이 포스터는 한국전쟁이야말로 냉전의 흐름 속에서 가장 잔인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 포스터가 그려진 목적은 더욱 놀랍다. 바로 동독정부가 한국전쟁과 관련해 시민들에게 기부를 해줄 것을 요청하는 포스터이기 때문이다. 자세히 보면 포스터의 맨 하단에는 기부를 할 수 있는 계좌번호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 현대사를 독일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편 이미 앞선 글(관련 기사 : 온통 빨간색 군사기지, 한국이 불안하다)에 언급했듯이 독일에서 흔하게 듣는 "어디서 왔니"라는 단순한 질문도 나에게 어느 순간부터 가장 어려운, 혹은 슬픈 질문이 되어버렸다. 

나는 독일 사람들로부터 한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수십, 수백 개의 질문들을 항상 받아야만 했고, 그에 대한 대답을 매번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나의 나라는 어디인지, 나에게 국가란 무엇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는 나의 '심리적 나라', 나의 '정신적 나라'를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이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한국이 아닌 독일에서 찾게 된다. 베르나우 공공미술프로젝트 총괄감독이자 렉처퍼포먼스의 감독을 맡은 베를린 예술대학의 크리스티나 교수는 사실 이번 행사가 진행되기 몇 개월 전부터 나에게 적극적으로 렉처퍼포먼스를 해줄 것을 제안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강의형 퍼포먼스로 불리는 렉처퍼포먼스는 학문적인 영역과 퍼포먼스적인 영역이 결합된 새로운 예술형식이다. 

그녀는 내가 진행하는 'Wasch Wasch FEST-빨래 프로젝트'(관련 기사 : 한국말로 뭐라 했지? 아, 빨갱이 내가 빨갱이야)에 대한 렉처퍼포먼스를 원했다. 한국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나의 프로젝트가 탈식민주의와 포스트 아이덴티티를 고민해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려면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과연 독일 사람들이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지루한 역사를 듣고 싶어 하겠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교수님은 '적어도 나는 너의 이야기가 너무 듣고 싶어'라는 말로 내가 빠져나갈 핑계를 모두 사라지게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Wo ist mein Land?(나의 나라는 어디인가?)' 

독일 사람들이 편견없이 보는 한국의 역사?

유난히 햇빛이 좋던 어느 날, 독일이 분단되었을 때 소비에트 군대의 점령지였던 베르나우 육군군사보급기지 1동, 맨 꼭대기 층에 설치된 렉처퍼포먼스 간이 무대에 조명이 켜졌고 나는 무대 위에 올라섰다. 

나의 렉처퍼포먼스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단락은 러일전쟁을 시작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나의 주관적 서술 없이 이미지로만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관객들 스스로 제시된 이미지에 따라 유추되는 한국의 역사를 추적해보는 것이었다. 

두 번째 단락은 '현재'로서의 한국을 에세이로서 관객들에게 낭독을 하는 것이었는데, 내가 에세이를 읽는 동안 한국언론보도용 사진들이 관객들에게 보여지게 된다. 즉 에세이의 '픽션'과 한국언론보도용 사진들의 '논픽션'이 동시에 보여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렉처퍼포먼스 첫 번째 단락을 진행하는 중 나는 흥미로운 반응을 독일 관객들로부터 받게 된다. 그것은 바로 아래의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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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 대통령의 경축사 동안 스탠드에 그려지는 대통령 초상화 카드섹션. 1973.10.1
ⓒ 연합뉴스

"혹시 사진 속에 보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내가 질문을 던지자. 내 귀를 의심케하는 말들이 관객석으로부터 들려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독재자 아닌가요?" 

대답을 한 독일 관객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 인물을 영웅화하는 카드섹션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진 속의 사람은 독재자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히틀러의 영향으로 다수의 집단이 정치인을 영웅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독일 사람들 눈에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최근의 한국의 모습이 담긴 사진 다른 한 장을 보여주자 관객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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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강화 북괴 김정은 타도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다.
ⓒ 연합뉴스

"이 사진 속에 그려진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라고 묻자 

"할리우드 영화배우인가요?" 
"하하, 모르겠어요." 

라는 식의 대답들이 돌아온다.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라고 사진의 상단에 쓰여진 문구를 독일어로 번역해서 설명해주자 밝은 표정으로 사진을 바라보고 있던 관객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일그러진다. 

"사진 속에 그려진 사람은 영화배우가 아니라 주한미국대사입니다." 

라고 설명을 하자 

"오, 아니요! 말도 안 돼요!" 

라는 식의 탄성들이 들려온다. 이 외에 한국 역사에 대한 별다른 설명 없이 제시된 여러 시각 이미지들에 대한 독일 관객들의 반응은 다소 따분해 할 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꽤 뜨거웠다. 

차마 혼자보기 아까운 관객들의 표정들과 반응들이 많았지만, 한국 역사에 대한 어떠한 편견 없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한 사진들을 보고 나타낸 반응은 분명 한국 정권은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들이었다. 

시차 

그리고 곧이어 렉처퍼포먼스의 두 번째 단락이 시작되었다. 나는 준비한 에세이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장벽을 허무는 일은 눈에 보이는 장벽을 허무는데 드는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릴 것이다...(중략)...저쪽 편에서는 행동의 자유가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이 이쪽 편에서는 혐오스러운 사회 체제를 가리키는 생생한 상징이 되었다...(중략)...남쪽 사람들에게 경계선은 날마다 누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지를 말해주는 거울이 되었다. (후략)…." 

"처음으로 난 뭔가 혼란스러운 것을... 이산가족 상봉 시에 일으키는 감정의 위조를 느꼈다. 인사말에서 작별 인사까지, 모든 행동이 내겐 놀랄 만큼 과장되어 보였으며, 발설하지 않은 희망이나 비난이 담겨있었고, 어쩌면 이런 상봉이 딱 한 번만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머지 경직되어 있었다...(중략)...그리고 미리 서둘러 '그럼 또 보자' 하며 작별인사를 던지는 건 조소하는 듯 들렸을 것이다." 
기사 관련 사진
▲  렉처퍼포먼스에서 에세이를 낭독하고 있는 모습
ⓒ 권은비

에세이가 낭독되고 내용에 따라 38선의 사진이나 한국 이산가족 상봉 모습 등 언론보도사진들이 보여지자 관객들의 몰입도가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높아졌다. 모두가 숨죽여 한국의 분단 상황이 어떠한지를 보고, 듣고 있었다. 

사실 이 에세이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렉처퍼포먼스에서 낭독한 것은 독일의 작가 '페터슈나이더'에 '장벽을 넘은 사람'이라는 에세이를 재구성한 것이었다. 나는 그저 이 에세이에 쓰여진 '독일'을 '코리아'라 읽고, '서독'을 '남한'으로 ,'동독'을 '북한'이라고, 그리고 '베를린 장벽'을 '38선'으로 바꿔 읽었을 뿐이었다. 

이어서 시간은 퍼포먼스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나는 마지막 구절을 읽어 내려갔다. 

"만일 내게 조국이란 게 있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다. 내가 시민으로 살고 있는 그 국가는 나의 조국이 아니다. 만일 국적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내가, 나는 코리아 사람이요 하고 주저 없이 대답한다면, 난 분명히 어느 한 국가가 아니라, 어떤 국가적 정체성도 갖지 않은 한 민족에 대한 나의 소속감을 선택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는 이 마지막 구절이 아니었나 싶다. 외국에서 살면서 언젠가부터 나는 너무 나도 단순한 질문하나인 

"어디서 왔니?" 

라는 물음이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다. 한때는 이것이 그저 나 혼자만의 고민인가,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일까 싶었을 때, '페터 슈나이더'의 '장벽을 넘은 사람'에서 나는 나와 똑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에세이 속 독일 청년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독일에서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좋은 점들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국민들의 삶을 점점 힘들게 만드는 나의 나라가 '나쁜 나라'인 것 같아서 점점 우울해져 갔을 때,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을 이 에세이에서 찾게 된 것이다. 

렉처퍼포먼스가 끝난 후, 무대 위에서 내려오자 관객석에 있던 몇몇 어르신들이 달려와 갑자기 덥석 나의 손을 꼭 잡는다. 꽤 긴 시간 동안의 퍼포먼스였을 텐데 연신 나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신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자신들을 원망하신다.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눈에 그렁거렸다. 한 어르신들이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시며 말씀하신다. 

"독일에선 70년 전에 벌어졌던 아픔들이 한국에서는 '지금' 더욱 극단적으로 벌어지고 있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힘내라." 

그렇다. 독일과 한국 사이에는 분명 시차가 존재한다. 국가별 거리에 따른 한국과 독일 간의 8시간 차가 아니라 '역사적 시차'가 70년이나 존재한다. 더군다나 독일에서는 히틀러 시대에나 존재했다는 국정교과서가 한국에서는 다시 부활하는 상황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지금 다시 쓰이는 역사는 도대체 누구의,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역사일까?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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