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직접 물은 단 2개의 질문, 윤석열은 부인하거나 모르쇠

 

윤 면전서 재생된 ‘계엄의 밤’ CCTV 영상들, 그럼에도 국회 의결 방해는 전면 부인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있다. 2025.1.21 ⓒ뉴스1

21일 탄핵심판 변론기일에 직접 출석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물은 질문은 딱 두 가지였다.

“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하라는 쪽지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과 “이진우 수방사령관,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계엄해제 결의를 위해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 있나”라는 질문이다. 이는 모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둘러싼 위헌성을 판가름할 핵심적인 내용인데, 윤 대통령은 두 질문 모두 부인하거나 모르는 체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3차 변론기일에 처음으로 출석해 위헌, 위법 사안에 대해 직접 변론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현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에게 ‘비상입법기구’ 관련 내용이 담긴 쪽지를 건넸냐는 질문에 “저는 이걸 준 적도 없고, 나중에 계엄을 해제한 후에 한참 있다가 언론에 이런 메모가 나왔다는 것을 기사에서 봤다. 기사 내용이 조금 부정확하다”며 전면 부인했다.

이어 “이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김용현) 국방부 장관밖에 없는데 국방부 장관이 그때 구속돼 있어서 구체적으로 확인을 못 했다”며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내용 자체가 서로 모순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다. 자세하게 물으면 제가 아는 대로 답변을 드리겠다”고 얼버무렸다. 

이 질문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재판부가 물은 질문이기도 하다. 당시 윤 대통령이 ‘김용현이 쓴 것인지 내가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측은 해당 쪽지를 김 전 장관이 직접 작성한 것이라는 입장을 냈다. 하지만, 쪽지 작성 주체가 누구든 윤 대통령이 해당 내용을 몰랐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 최 부총리는 이미 국회에 출석해 ‘대통령이 참조하라’면서 해당 쪽지를 받았다고 여러 차례 진술한 바 있다.

김용현 전 장관의 공소장에도 해당 쪽지를 건넨 구체적인 상황이 기재돼 있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 후) 다시 대접견실로 돌아와 한덕수 등 국무위원에게 이후 비상계엄 상황에서의 대응 및 조시 사항을 지시했다”며 “특히 윤석열은 최상목에게 미리 준비해 둔 비상계엄 선포 시 조치 사항에 관한 문건도 함께 건네주었는데, 그 문건에는 ‘예비비를 조속한 시일 내 충분히 확보해 보고할 것, 국회 관련 각종 보조금·지원금·각종 임금 등 현재 운용 중인 자금을 포함해 완전 차단할 것, 국가비상입법기구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 등이 기재돼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검찰은 이 문건 등을 토대로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국헌 문란의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회에 모인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한 적 있나’라는 질문에도 별다른 설명 없이 “없다”라고만 답했다. 비상계엄 당시 국회의원들이 군과 경찰의 봉쇄를 뚫고 본회의장에 속속 집결하는 상황에서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에게 했다는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는 지시나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했다는 ‘문짝을 도끼로 부수고서라도 안으로 들어가서 다 끄집어내라’는 구체적인 지시 모두 “오염된 진술”이라는 게 윤 대통령 측 주장이다.

국회 측, 헌재에 윤석열 측 ‘부정선거 음모론’ 제한 요구도
윤석열 “음모론 제기 아닌 팩트 확인 차원” 궁색한 변명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2025.01.21. ⓒ뉴시스

국회 측 대리인단은 증거 조사 과정에서 비상계엄의 위헌, 위법성을 모두 부인하는 윤 대통령의 면전에서 비상계엄 당시 상황을 담은 CCTV 영상을 재생했다.

이 영상에는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 뒤편 운동장에 속속 도착한 모습,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앞두고 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 내부로 진입한 모습, 비상계엄 해제 의결 뒤에도 국회의장 공관 인근에 계엄군이 머무르는 모습, 계엄군이 권총을 들고 선관위에 침투한 모습, 선관위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서버실로 곧장 이동한 모습, 계엄군이 선관위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모습, 경찰이 수원 선거연수원에 출동한 모습 등이 낱낱이 담겨 있었다.

국회 측은 이 외에도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했다는 군 지휘관과 경찰 지휘부의 공통된 진술이 담긴 국회 회의록의 주요 증언도 직접 읽으며 소개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이 한 증거 조사는 부정선거 의혹 제기가 전부였다. 윤 대통령 측은 극우세력이 주장하고 있는 부정선거 의심 정황을 줄줄이 나열하며 “핵심은 국내·외 주권 침탈 세력에 의한 거대한 선거 부정 의혹이 있었으나 선관위와 법원, 수사기관을 통해 제도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게 국가비상상황이 초래됐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법은 계엄 선포 요건으로 ‘국가비상사태’를 명시하는데, 극우세력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이 ‘국가비상사태’이기 때문에 비상계엄 선포는 정당하다는 게 윤 대통령 측 논리다. 윤 대통령은 전날 헌재에 24명 이상의 증인을 추가 신청했는데, 여기엔 부정선거 의혹 제기용으로 보이는 투표관리관과 사무관도 포함돼 있다.

윤 대통령 측은 지난 기일부터 탄핵심판장을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하는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에 국회 측 대리인단은 헌재에 이같은 행태를 제한해달라고 직접 요구하기도 했다.

국회 측 김진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 측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은) 대부분 대법원 및 사법기관 판단을 통해 모두 근거 없는 주장으로 판단된 사안들”이라며 “피청구인 측의 선거 부정에 관한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 탄핵심판의 쟁점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부정선거 의혹은) 계엄에 실패한 이후 비로소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유로 등장한 것”이라며 “민주주의의 생명이자 핵심인 선거 공정성을 쓰레기통 속에 구겨 넣는 주장을 방치하면 우리 민주주의도 어느 순간 같은 운명에 처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정질서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발생한 폭도들의 만행은 이와 유사한 무책임한 주장들이 초래한 결과”라며 “선거 부정은 사법부와 검찰의 판단까지도 믿지 못하며 객관성이 없는 무리한 의혹을 제기하는 집단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더 이상의 선거 부정의 의혹 제기, 그와 관련된 증거 신청을 적절하게 제한해 달라”고 헌법재판관을 향해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직접 반박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부정선거 의혹이 음모론이라고 하고 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 사후에 만든 논란이라고 했는데, 이미 계엄을 선포하기 전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 많이 있었다”며 “부정선거 자체를 색출하려는 게 아니라 선관위의 전산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스크린할 수 있으면 해봐라, 어떤 장비가 있고 어떤 시스템에 의해 가동되는 것인지 (스크린)해보라는 것이다. 저희가 무슨 선거가 부정해서 믿을 수 없다는 음모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팩트를 확인하려는 차원”이라고 궁색한 변명을 늘어놨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 발언으로 국회 측이 증거로 재생한 CCTV 영상 속 상황을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영상에 대해 제가 짧게 이해를 돕는 차원에서 말하겠다. 잘 봤다”며 “그런데 아까 군인들이 본청에 진입했는데 (국회) 직원들이 저항하니 얼마든지 더 들어갈 수 있는데도 스스로 나오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충돌을 피하기 위해 소극적으로 대응하며 부당한 명령에 저항한 군인들의 행위를 자신을 변호하는 데 끌어 쓴 것이다.

또한, “국회 의결을 방해했다는 얘기를 자꾸 소추인 측에서 또 민주당에서 하는데, 의결을 방해했다면 더 이상 계엄해제 요구를 못 하고 계엄이 쭉 가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며 “대한민국에서 국회와 언론은 대통령보다 훨씬 강한 ‘초갑’이다. 만약 제가 무리해서 계엄해제 요구 의결을 못 하게 한다 해도 국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도 할 수 있고, 이후 얼마든지 계엄해제 요구를 할 수 있다. 그걸 막았다고 한다면 정말 뒷감당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저도 방송을 보고 있었지만, 의원들 사이에서도 (해제 결의안 처리를) ‘빨리하자’고 하고, 우원식 의장은 ‘절차는 밟아야 하는 거 아니냐‘면서 국회법에 맞지 않는 아주 신속한 결의를 했다”며 “그렇지만 저는 그걸 보고 바로 군을 철수시켰다. 국회의장 공관 옆에 군인이 지나가는 모습도 아마 퇴각 과정에서 일어난 일 아닌가 보고 있다”고 강변했다.

한편, 윤 대통령이 직접 출석한 이날 변론기일은 1시간 43분 만에 끝났다. 김용현 전 장관이 증인으로 나오는 4차 변론기일은 오는 23일 오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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