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윤석열 살려낸다? 그들이 단단히 착각하는 것
[강명구의 뉴욕 직설] 트럼프와 네오콘의 외교노선 차이 분명... 한미동맹, 장기적 관점으로 봐야
25.01.20 06:57ㅣ최종 업데이트 25.01.20 06:57
"부자 나라 한국을 우리가 왜 지켜줘야 하는가?"
트럼프의 이 도발적 질문이 다시 현실로 다가왔다. 2기 행정부는 취임 첫날부터 충격적인 행정명령을 쏟아내며, 100일 이내에 동맹국들을 상대로 강력한 압박을 시작할 전망이다. 젊은 충성파들로 구성된 내각과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는 트럼프의 구상을 신속하게 실행에 옮길 태세다.
하지만 트럼프발 위기론에 너무 위축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오히려 급할수록 돌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트럼프 2기 정부는 독립 250주년이 되는 2026년 7월까지 경제, 이민,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 내년 11월 중간선거까지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정치적 위기는 불가피하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동맹국들에 대한 압박 수위를 최대로 끌어올리겠지만, 결국 성과를 위해서는 양보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동맹관계에도 '거래적 접근법'을 취하는 트럼프의 입장에서는 거래 자체가 깨지는 것보다는 성사되는 쪽을 선택하는 것이 단기적인 가시적 성과 달성에 유리하다.
그런데 현 탄핵 국면에서 일부 계엄 옹호 세력은 오히려 트럼프 진영에 로비를 시도하며 한국 내정에 개입해 주길 바라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의 협상력을 떨어뜨려 국익을 훼손하는 대단히 부적절한 처사다. 물론 광장에서 성조기 흔든다고 트럼프나 미국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판이다.
이들의 오판은 트럼프와 전통적 공화당 주류인 '네오콘'을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둘 다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지만, 외교안보 정책의 목적과 방식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트럼프는 비개입주의를 선호한다. 한국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의 국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미국 보수주의의 두 흐름: 네오콘의 탄생
트럼프와 네오콘의 근본적 차이는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은 1776년 독립 이후 오랫동안 해외문제 불개입 원칙을 고수했다. 1930년대까지도 의회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유럽과 아시아 개입을 막고자 '중립유지법 (Neutrality Act)'을 네 차례나 통과시켰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미국의 대외정책은 급변했다. 전후 대영제국을 대체하며 패권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냉전기에 압도적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개입주의로 선회했고, '공산권 봉쇄'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1947년 '국가안보법'으로 국방부, 중앙정보국(CIA),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을 설립해 대통령 중심의 통합 국가안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후 1950년대 한국전쟁과 아이젠하워 행정부를 거치며 군수산업과 정보·군사 조직이 긴밀하게 연계된 '군산복합체'가 탄생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61년 고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의 막강한 영향력을 경고한 이유다.
이런 배경 속에서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네오콘이 등장했다. 이들이 신보수주의라 불린 이유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고립주의 노선과 달리, 적극적인 해외 개입과 미국의 세계적 지도력 행사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흥미롭게도, 이들 상당수는 원래 사회민주주의 성향의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신좌파(New Left)의 급진적 반전운동에 반발하며 보수화됐고, "공산주의 확장을 막으려면 군사력 사용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취하게 됐다.
1970년대 네오콘의 입장은 더 체계화됐다. 정치철학자 레오 스트라우스의 영향으로 국제정치를 "절대적 선과 악"의 구도로 해석했고, 랜드연구소와 헤리티지재단 같은 보수적인 싱크탱크를 통해 영향력을 키웠다.
네오콘이 실질적인 정책 영향력을 갖게 된 것은 레이건 행정부 시기다. 많은 네오콘 인사들이 국방부와 국무부의 요직에 진출했고, "힘을 통한 평화"라는 레이건 대외정책을 정책적,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며 군산복합체와의 결합을 공고히 했다.
1990년대 냉전 해체 후 잠시 주춤하던 네오콘의 영향이 새로운 탄력을 얻은 것은 2001년 9·11 테러였다.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끌었고, 워싱턴의 외교안보 정책을 장악했다.
오바마 정부도 아프가니스탄 증파와 드론 작전을 확대했으며, 바이든 정부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전형적인 네오콘 노선을 보여줬다. 이는 네오콘을 중심으로 한 기존 국가안보 카르텔이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어 워싱턴 전반에 깊이 뿌리내려 있음을 시사한다.
트럼프와 네오콘의 대립
이런 네오콘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 트럼프다. 그는 1기 정부 시절, "미국이 왜 세계의 경찰이 되어야 하나"라며 장기적인 해외 군사개입을 비판하고, 시리아·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추진했으며, CIA와 FBI 등 정보기관과도 정면으로 충돌했다.
트럼프 진영과 이들의 갈등은 러시아 게이트 특검수사(2017-19)와 첫 번째 탄핵 과정(2019)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기관 관계자들이 주요 역할을 했고, 이로 인해 트럼프 진영은 기존 워싱턴의 국가안보 기득권 세력을 더욱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딥스테이트'는 바로 이들을 지칭한다.
트럼프와 네오콘의 핵심적 차이는 미국의 세계적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다. 네오콘은 미국이 세계 질서를 주도해야 한다고 믿으며, 이를 위해 군사력 사용과 동맹 강화, 자유무역 추진을 지지한다.
반면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는 굳이 비교하자면, 제2차대전 이전의 전통적 미국 보수주의의 비개입주의에 더 가깝다. 도덕적가치나 세계 질서보다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거래-비용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외교, 안보, 무역 등 모든 정책은 당장의 손익계산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며, 이는 기존 워싱턴 외교가 중시해 온 장기적 전략이나 가치 동맹의 개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지난 대선에서 공화당의 주요 네오콘 인사들이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은 것은 이러한 노선 차이를 잘 보여준다. 2024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는 워싱턴 D.C.에서 10% 미만의 득표율을 기록했는데, 이는 워싱턴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거부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는 2기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에 '딥스테이트' 영향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젊은 충성파들을 임명했다.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44세), 털시 개버드 국가정보국장(43세), 캐시 파텔 FBI 국장(44세) 등은 워싱턴의 기존 권력 네트워크와 거리가 멀고, 트럼프의 'MAGA' (미국을 위대하게) 비전에 동조하는 인물들이다.
젊은 충성파 참모진의 등장은 트럼프 2기 동안 트럼프와 네오콘 세력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2기 정부 외교안보 정책의 성패도 이 근본적인 대립을 어떻게 관리하고 풀어가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세대, 한미동맹의 중심으로
F1 레이서가 시속 300km로 질주할 때 시야는 바늘구멍처럼 좁아진다고 한다. 이를 '터널 비전'이라 부르는데, 생존을 위해 뇌가 가장 긴박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처리하기 때문이다. 12.3 비상계엄 내란 이후 우리 사회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이런 위기 상황일수록 더 멀리, 더 넓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미동맹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당장의 위기에 매몰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신감과 지혜다. 이를위해 문화적 자신감과 기술적 역량을 갖춘 새로운 세대의 시각으로 한미관계의 미래를 구상할 필요가 있다.
BTS의 빌보드 석권과 블랙핑크의 글로벌 성공, 넷플릭스를 점령한 <오징어 게임>과 K-드라마, 아카데미를 석권한 <기생충>까지,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공을 직접 목격하며 성장한 새로운 세대는 한미관계를 더 이상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로 보지 않는다. 물론, 트럼프나 그가 임명한 젊은 내각 진용도 마찬가지다. 이 공통된 인식이 실용주의로 수렴해 상생의 기회를 넓혀 갈 수 있다.
실제로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첨단 산업에서 한미는 이미 중요한 파트너다. 세계 9위 국으로 부상한 우리 군수산업은 미국과 우주·사이버 안보 분야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미 우리의 우수한 선박 건조 능력을 인정하고 방산 협력을 타진한 상태다.
트럼프가 단기 성과에 집중할수록, 우리는 오히려 장기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 트럼프의 '거래적 접근'은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단기 성과를 위한 요구를 중장기적인 한국의 전략적 이익과 연계시켜 패키지 딜을 만들어 내야 한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우리 방산업체의 미국 시장 진출이나 첨단 무기체계 공동 개발로 연계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역흑자해소를 위한 한미FTA 개정협상을 통해 오히려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고 더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틀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제는 "친미냐 반미냐"는 진영 논리를 넘어, 우리의 국익을 극대화하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최근 비상계엄 위기 극복 과정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은 우리 사회가 이런 변화를 이끌어낼 충분한 역량이 있음을 증명했다. 한미동맹의 미래, 이제는 첨단기술과 문화 역량으로 무장한 신세대가 이끌어 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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